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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공공의 재산이다

기사승인 2019.12.02  16: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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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30)

성서의 희년법은 사람의 몸과 땅과 주택은 하나님의 ‘아훗짜’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아훗짜’는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고, 그 누구도 지배하거나 소유하거나 독점해서는 안 된다. 본 연재 28회(“성서의 희년법은 부동산 투기를 심판한다”)에서 필자는 성서의 희년법을 분석했고,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를 설명했다.

오늘의 상황에서 희년법에 충실한 교회는 땅과 주택이 자주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배분되는 사회를 형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땅과 주택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훗짜’로서 보장되는 사회는 오직 재산권 보호를 헌법 규범으로 설정하여 땅과 주택에 대한 소유와 독점을 허용하고 있는 사회 체제가 궁극적으로 해체되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재산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회 체제가 당장 해체되지 않더라도, 교회는 부동산투기와 천문학적인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절하기 위하여 1)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에 근거하여 토지 공(公) 개념이 확장되고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2) 땅과 주택의 소유와 독점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부동산 불로소득을 남김없이 환수할 것을 강력하게 선언하여야 한다. 교회는 또한 3)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자주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공공주택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공급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가 내거는 세 가지 주장과 요구에 대해서는 본래 이번 연재에서 다룰 생각이었으나, 그 내용이 매우 많기 때문에, 오늘의 연재 제30회에서는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과 토지 공(公) 개념 강화에 대해서만 설명한다. 지대공유제와 부동산보유세 도입 등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다루기로 한다.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인가? 고대와 중세 교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토지 공(公) 개념은 재산권과 그 행사를 사회적으로 규율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기에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재산권은 제3자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라고 여기는 통념이 깊고 넓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재산권이 신성불가침한 권리이고, 그것은 본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재산권의 신성불가침성은 근대에 들어와서 확립된 관념이다. 근대적 재산권은 소유권자의 소유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그 핵심으로 하는 개념인데, 근대 이전에는 이러한 주장이 강력한 제동에 걸려 있었다.

교회가 재산권의 절대성 주장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살피기 위해서는 일단 멀리 로마 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처럼 먼 옛날이야기를 끌어들이는 까닭은 근대의 절대적 소유권 사상이 로마의 물권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대토지소유제(Latifundium)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세계에서 교회의 교부들은 땅과 땅 위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땅을 독차지하는 것 자체를 ‘도둑질’(대 바실리우스)로 규정했다. 그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수가 독점한 땅에서 엄청난 부를 획득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가난에 허덕이게 하는 것을 ‘살인죄’에 버금가는 죄악으로 선언했고,(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소수가 토지를 지배함으로써 얻는 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암브로시우스)

로마 제국에서 대토지소유제는 물건의 귀속관계에 바탕을 두고 그 물건의 소유자가 그 물건에 대해 갖는 배타적인 사용·수익·처분의 권리를 뒷받침한 로마의 물권법에 바탕을 두었다. 교회 교부들은 이러한 로마의 물권법을 자연법으로 보지 않고 인정법(人定法)으로 격하시켰다. 인정법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편의상 정한 법이다. 인정법은 자연법 아래 있고 자연법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대 바실리우스, 암브로시우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같은 많은 교회 교부들은 자연법에 대한 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인정법의 위상을 갖는 물권법의 절대성 주장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맡긴 땅과 토지를 소수가 독차지해서 거기서 나오는 부를 배타적으로 향유하는 것은 자연법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 토지의 독점으로 인한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Getty Image

재산권의 절대성 주장에 제동을 걸려는 노력은 중세 교회에서도 또렷하게 나타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윌리엄 오캄 같은 뛰어난 신학자들 역시 재산권이 인정법의 위상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인정법이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라면, 자연법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정한 법이다. 자연법은 인정법보다 높은 위상을 갖는다. 인정법이 자연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인정법은 자연법의 요구에 따라 제한되거나 개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은 재산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재산권이 인정법인 한, 자연법의 규율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추론에 바탕을 두고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굶주린 사람이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달리 찾을 수 없는 한, 다른 사람의 빵에 손을 대고 그것을 입에 넣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법의 요구이다. 인정법은 다른 사람의 빵에 손을 댄 굶주린 사람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겠지만, 인정법이 자연법의 요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재산권과 그 행사는 절대적인 권한이 아니라 상대적인 권한이다.

윌리엄 오캄은 토마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면도날처럼 예리한 분석력을 갖추었던 오캄은 재산권을 사용권과 소유권으로 구별했다. 그는 사용권을 타락 이전에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되었던 자연법적 권리라고 보았다. 반면에 소유권은 타락 이후에 인간 사회에서 서로 맞서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그때그때 사람들 사이의 동의와 협약에 근거하여 실정법을 통하여 정한 인정법적 권리이다. 따라서 자연법적 질서에 속하는 사용권이 인정법적 질서에 속하는 소유권에 앞선다. 이와 같은 윌리엄의 재산권 해석은,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를 구별하는 현대적인 재산권 법리 해석에 맞닿아 있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윌리엄은 교황이 엄청난 교회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교황이 타락 이전의 자연법적 질서에 따라 교회의 재산을 포기하지 않고, 타락 이후의 인정법적 질서에 따라 교회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고집하는 것은 심지어 이단적인 태도라고 맹비난했다.

근대 사회에서 재산권이 절대화된 경위

근대에 들어와서 재산권은 그 어떤 제한도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절대화되어 갔다. 재산권의 절대화는 서로 성격을 달리 하는 두 과정을 통하여 확립되었다. 하나는 공유지의 약탈과 사유화 과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재산권이 자유권의 위상을 차지하는 과정이다.

⑴ 땅과 토지의 약탈과 사유화 과정

근대 세계에서 재산권은 봉건영주나 지방 토호세력이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고 그것의 배타적 사용·수익·처분의 권리를 확립하는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과정을 거쳐 확립되었다. 이 과정은 흔히들 인클로우저 운동이라고 일컫는다. 인클로우저 운동은 중세 말기에 시작되어 근대가 확립될 때까지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으나, 영국은 그 전형을 보여 주었다.

인클로우저 운동은 봉건영주나 지역 토호세력이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서 양을 치기 시작한 데서 연유한 명칭이다. 14세기경에 플랑드르 지방에 발달하기 시작한 양모공업은 양털의 수요를 증가시켰고, 양털의 수출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던 세력들은 공유지의 약탈적 점유와 배타적 사용을 주장했다.

인클로우저 운동은 영국 농업에 자본주의적 경영을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였다. 토지와 공유지를 상실한 농민은 농촌을 떠나지 않는 한 임금노동을 수행하는 농업 노동자가 되었다. 국가는 구빈법과 직인조례를 제정하여 빈민화된 농민의 이주를 금지하고, 이들을 구호하면서 노동에 종사하도록 강제하고 그들의 몸에 노동규율을 새겼다. 인클로우저 운동이 종료된 뒤에 농촌에 잔류한 농민들은 대농장에서 농업 프롤레타리아트로서 임금노동에 종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1820년대에 영국 농촌은 9천 명의 지주가 지배하였으며, 그들과 토지 임대 계약을 맺은 수만 명의 차지농이 자본주의적 영농을 수행하였다. 차지농은 수십 만 명의 농업노동자를 고용하였으며, 이들을 제외한 농촌 주민들은 머슴이거나 소농이었으나, 소농조차도 차지농과 고용 계약을 맺고 경작 노동을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농업에 도입된 자본주의적 영농은 한편으로는 영국의 근대화를 뒷받침한 방대한 자본을 축적하였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공장제도를 위한 산업예비군을 양산하였다.

시장경제의 성립 과정에서 소유권 제도의 확립은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데, 이를 수행한 것은 국가였다. 국가는 입법을 통하여 근대적 소유권 제도를 창출했다. 인클로우저 운동을 통해 공유지를 차지한 지방 토호 세력은 크롬웰 공화국 시절에(1648년과 1649년) 약탈적으로 점유한 토지와 대여토지 전부에 대한 절대적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1660년 왕정복고 이후 인클로우저 운동은 법에 의해 뒷받침되어 유례없이 강력하게 진행되었다. 18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예 “공유지 인클로우저 법”이 제정되기까지 했다.

이러한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땅과 토지의 재산권 확립 과정에서 자연법은 빛을 잃었다. 한 때 인정법을 규율한다고 생각된 적이 있었던 자연법 따위를 말하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⑵ 재산권이 자유권의 위상을 차지하다

재산권의 절대화를 촉진시킨 것은 시민혁명 이후에 재산권이 자유권의 위상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프랑스 혁명 이후에 채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1789)이다. 이 선언은 재산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그것에 ‘신성불가침’의 성격을 부여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 제17조는 “소유는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므로 누구도 법률로써 공공필요를 위하여 명백히 요구되는 경우가 아니면, 또한 정당한 사전 보상이 지불될 조건이 아니면 이를 박탈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재산권이 자유권적 권리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재산의 신성불가침성은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침탈당하지 않은 채 자주적인 삶을 형성하기 위한 물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을 의도한 것이었고, 그러한 한에서 재산권은 자유권적 성격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만일 국가가 개인의 자유롭고 자주적인 삶의 형성에 꼭 필요한 재산과 재산권 행사를 침탈한다면, 그러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국가에 예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재산권은 응당 자유권적 권리로 천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와 같은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은 현대 국가에서도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권리의 주체는 자연인으로 한정되어야 하고, 그 규모는 사회규범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프랑스 인권 선언의 소유권 조항은 곧바로 로마 물권법의 소유권 개념과 결합되었고, 소유자의 귀속 재산에 대한 절대적 처분권을 뜻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소유권 개념에 바탕을 두고서 혁명 세력은 구체제 말기까지 유지된 봉건적 소유관계를 일거에 철폐하고 근대적 소유권 제도를 확립했다. 프랑스 혁명은 로마의 물권법 사상에 따라 재산권을 물건의 귀속관계를 매개로 해서 소유자가 물건에 대하여 행사하는 일원적, 배타적 지배권으로 해석하였으며, 이와 같은 소유의 대상은 동산뿐만 아니라 토지까지도 포함하였다.

프랑스 혁명에 의해 널리 수용되기 시작한 로마법적인 소유권 개념은 1804년의 나폴레옹 법전에 수용되었다. 나폴레옹 민법전 제544조는 “소유는 법률 또는 규칙에 의하여 금지된 사용을 하지 않는 한, 절대적인 방법으로 물건을 수익, 처분하는 권리”로 규정하였다. 이 조항은 소유권을 사용권과 수익권과 처분권으로 규정하고 그 권한의 절대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근대 소유권 질서의 틀을 선구적으로 만들어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근대적 소유권의 3대 속성은 절대성, 배타성, 영구성이다. 비록 이 세 가지 속성이 나폴레옹 민법전에서 모두 명시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나폴레옹 민법전은 소유권의 절대성을 앞세움으로써 근대적 소유권의 3대 속성을 사실상 모두 아울렀다고 볼 수 있다. 나폴레옹 민법전은 부동산에 대한 세밀한 규정을 많이 두어서 부동산도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교환경제에 포섭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나폴레옹 법전은 나폴레옹 전쟁을 통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이식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확립된 근대적 소유권 개념은 입헌국가들의 헌법적 원리로 격상되었고, 국가는 소유권의 신성불가침성을 인정하고 소유를 보호하는 것을 국가적 과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소유권 개념과 법제는 우리나라 헌법과 민법전에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소유권 법제가 일본으로부터 계수되었고, 일본의 소유권 법제는 독일 민법전 체계를 계수한 것이고, 독일 민법전 체계는 나폴레옹 민법전의 영향 아래서 로마 물권법을 계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을 향하여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은 근대적 재산권 법제에서 비롯된 엄청난 적폐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사회적 요구이다. 

⑴ 근대적 소유권 관념과 재산권 법제에서 비롯되는 문제들

근대적 재산권 법제는 한편으로 힘 있는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점유한 땅과 토지를 합법화하는 역할을 하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 재산권을 자유권의 하나로 설정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재산권이 침탈되거나 재산권의 본질이 제한될 수 없도록 만들었다.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과 나폴레옹 민법전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된 소유권 개념과 법제는 부르주아가 정치사회적 지배 계급으로 등장하였음을 철학적, 법적, 제도적으로 고지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소유권 제도에 근거하여 그 계급의 헤게모니를 관철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것은 사실상 소유권이 인간과 시민의 다른 일체의 권리들에 앞선다는 주장으로 극단화될 소지를 가졌다. 그러한 소유권 개념은 대토지소유자의 권력을 강화시켰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소유자의 사회적 권력을 절대화했다. 이렇게 해서 확립된 소유계급의 지배는 소유자 중심의 정치적 지배체제의 구축으로 공고화되고, 헌법 규범의 정식화와 해석을 소유자친화적으로 고착시켰다. 이것은 소유권의 자유권적 성격을 명시한 헌법이 자리를 잡은 모든 사회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⑵ 재산권의 새로운 법리

근대 세계에서 재산권의 절대화가 가져온 혼란과 적폐에 대한 성찰은 재산권 개념이 로마법상의 물권으로 축소된 데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인식하게 하였고,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를 새롭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법 전통에서 물권은 물건에 대한 권리로 한정된다. 이처럼 재산권이 물건에 대한 권리로 한정되었기에 물건에 대한 처분권은 절대화되고, 재산권의 제한은 한 물건에 대한 재산권의 행사가 다른 물건에 대한 재산권이나 그 행사를 침해하는 경우로 한정되었다.

로마 물권법에서처럼 재산권을 물건에 대한 권리로 일면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그러한 일면적 규정에서 비롯되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재산권이 사람의 물건에 대한 관계를 매개로 해서 성립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측면이 완전히 도외시된다는 것이다. 만일 재산권이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자신에게 귀속된 물건에 대한 관계를 규정하는 권한이라면, 재산권은 논리적으로 물건의 사람에 대한 귀속을 그 본질로 하고, 제3자가 그 물건에 대한 간섭이나 침해 금지의 의무를 받아들이고, 이와 동시에 소유자가 귀속 물건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규범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그 실체로 한다. 물건의 귀속관계와 물건에 대한 권한 행사를 구별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를 구별해서 생각하게 되면, 재산권은 사회적 동의에 근거하여 규범적으로 인정되는 권능이고, 국가의 법률에 의해 규율되어야 할 권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물건의 사람에 대한 귀속 관계를 지칭하는 재산권의 본질과 재산권의 행사 권능을 가리키는 재산권의 실체를 서로 구별하고,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가 모두 법률의 규율 아래 놓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재산권의 핵심적인 법리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 규정으로부터 재산권이 사회적 인정과 규율 아래 놓인다는 원칙이 확인되면, 재산권 행사는 책임을 지며 그 책임은 법률에 의해 부과된다는 규범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념을 받아들인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은 세계 헌정사에서 최초로 재산권의 사회적 책임을 명문화했고,(1)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된 독일 헌법에 계수되었다.(2) 재산이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토지에 대한 재산권이 귀속토지에 대한 사용·수익·처분의 권능으로 구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재산권의 행사는 단순히 제3자의 간섭과 침해를 배척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산권 행사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까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소유자의 귀속 토지에 대한 지배권이 사회적으로 승인되어야 할 권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토지 지배를 매개로 한 봉건적 지배관계가 철폐된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뒤에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토지 수용과 배분이 이루어진 것도 같은 이치이다.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부동산 가격 폭등과 터무니없는 지대 수취로 인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사회적 약자의 생활권과 주거권, 그리고 영업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부동산 소유자가 재산권 행사에 따르는 의무와 부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사회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부동산 개발의 여파로 상가구역이 소멸됨으로써 수익기회를 상실한 데 대한 정당한 배상이 재산권 행사라는 이름으로 무시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토지 공(公) 개념의 확장과 강화를 향하여

땅과 토지가 소유와 독점의 대상이 되지 않고 공익을 최대한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고, 사람이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재화로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배분되기 위해서는 토지 공(公) 개념을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토지 공(公) 개념은 문자적으로는 토지공유를 지향한다. 토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공재이기에 누구나 그 토지를 사용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하고, 누군가에 의해 독차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토지가 이미 소유의 대상이 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그 토지에 대한 재산권의 행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공익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하며, 그것도 넓은 의미에서 토지의 공(公) 개념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토지 공(公) 개념은 낯설지 않다. 그린벨트 설치와 운영은 토지 공(公) 개념이 실현된 매우 중요한 실례이다. 1971년 그린벨트 제도가 억압적인 방식으로 도입되었고, 그린벨트 해제가 개발 압력에 밀려 행정당국의 자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린벨트의 설치와 운영은 재산권이 공익을 위해 제한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토지 공(公) 개념은 우리나라 헌법 제122조에 나름대로 명문화되어 있다.(3) 이 헌법 규정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 자치단체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재산권과 그 행사에 제한과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 헌법 제122조는 헌법 제23조 ③항(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이 두 헌법 조문에 근거하여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상을 한 토지와 땅을 국가의 판단에 따라 이용하거나 개발하거나 보존할 수 있다. 이것은 재산권이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고,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국토개발’을 위해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권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헌법 제122조가 규정하는 토지 공(公) 개념은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으로 규정되고 있기에 수정되거나 보완될 필요가 있다. 헌법 제122조는 토지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체를 국가로 한정하고 있고,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국토개발’의 목표 아래 토지의 공공성을 설정하고 있다. 더구나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은 국가에 일임되어 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이다. 국가가 국토개발을 주도하여 공익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한 것도 사실이지만,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국가가 국토개발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토개발을 주도함으로써 재벌이나 주택개발업자, 투기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부동산 투기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토지 공(公) 개념이 더욱 더 강화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국가주의적인 토지 공(公) 개념의 프레임은 국민을 토지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체로 세우는 프레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토지와 땅은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공유재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원칙적으로 사유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하고난 뒤에 개인이나 생활공동체가 자주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땅과 토지에 대한 소유권과 사용권을 인정하되 사회규범이 용인하는 한도 안에서 그 규모를 법률로 정하도록 한다면, 국민이 참여하는 토지 공(公) 개념을 구현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헌법 제122조는 국가의 행위에 관한 문언만을 포함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국민의 땅과 토지에 대한 소유는 토지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데 이바지하여야 하고, 자주적인 삶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 허용되며, 그 내용은 법률로써 정한다는 문언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토지의 공(公) 개념은 헌법 제122조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구현되지 않는다. 토지의 공(公) 개념은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에 바탕을 둘 때에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이 가능해지려면, 재산권을 규정하는 헌법 제23조가 반드시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23조 ①항에서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을 분명히 함으로써 국가가 재산권의 법률적 보호의 책임을 진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 헌법 제23조 ②항은 재산권 행사가 공공복리에 적합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해서 재산권이 사회적으로 규율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선언하고 있다. 더 나아가 헌법 재23조 3항은, 이미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법률에 의한 정당한 보상을 전제로 해서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을 규정하고 있다.(4) 언뜻 보면, 우리나라 헌법은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을 향해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헌법 제23조 ①항이 재산권을 자유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에 관한 헌법 제23조 ②항의 규정은 여전히 선언적 의미만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헌법 제23조 ②항이 헌법 제23조 ①항에 의해 자유권으로 규정된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취지는 대법원 판례들과 헌법재판소 판결들에 의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재산권이 자유권으로 규정되지 않고 사회적 권리로 재규정되어야 한다. 재산권은 무조건 보호되어야 할 권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승인되고 인정되어야 할 권리이다. 이 경우, 사람의 자주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재산권의 자유권적 성격 규정이 지나치게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 필자는 재산권의 자유권적 측면은 자연인에 한정해서 최대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연인의 재산권은 특별히 보호되어야 하되, 그 규모는 사회규범이 용인하는 범위 안에서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필자는, 앞에서 상세하게 살핀 바와 같이, 재산권의 본질과 재산권의 실체를 구별하고 양자를 통일된 전체로서 실현할 때 비로소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을 헌법에 명문화할 수 있다면, 토지 공(公) 개념을 규정하는 헌법 제122조를 따로 둘 필요 없이 헌법 제23조에 병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헌법 제23조와 제122조를 병합하여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면, 토지의 공(公) 개념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그것이 성서의 희년법 정신을 근사치적으로 구현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① 재산권은 인정된다. 그 본질과 실체(5)와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여야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는 법률에 의해 특별한 제한과 부담과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
③ 공공의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 정하되, 재산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④ 국민의 땅과 토지에 대한 소유는 토지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데 이바지하여야 하고, 자주적인 삶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 허용되며, 그 내용은 법률로써 정한다.

미주

(미주 1) 바이마르 제국헌법 제153조 ③항: “재산은 책임을 진다. 그 사용은 동시에 공동의 최선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미주 2)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14조 ②항: “재산은 책임을 진다. 그 사용은 동시에 만인의 복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미주 3) 대한민국 헌법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미주 4)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미주 5) 만일 현행 헌법 제23조 ①항 규정에 나오는 재산권의 ‘내용’이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를 의미한다면 그렇게 써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과 민법이 대륙법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재산권의 ‘내용’을 그 ‘본질과 실체’로 보완하는 것이 적절하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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