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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위원회 틀에서 국민경제 거시계획 세운다

기사승인 2019.07.15  17: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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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10

노사정위원회의 의의

참여의 원칙에 따라 경제를 민주적으로 규율할 것을 주창하는 교회는 기업의 공동결정과 산별 노사교섭 제도를 옹호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경제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이 대등한 사회적 파트너로서 참여하는 노사정위원회의 운영을 지지한다. 노사정위원회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노동, 자본, 정부가 대등한 주체로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 기구이다.

노사정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개방적인 세계경제에서 국민경제의 운영 방식, 국민경제 차원의 소득분배와 거시 계획, 노동시장 정책, 공공 서비스 공급의 확대, 금융의 통제와 감독 등에 관한 공동결정을 내리고, 입법부와 협력하여 그 결정을 법제화하는 방식으로 경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정위원회가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던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같은 나라들에서는 시장경제의 사회적 규율내지는 민주주의적 규율이 제도화되고, 노동과 자본의 계급타협에 근거한 사회적 평화가 장기간 구현된 바 있다.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만일 자연의 권리를 창설할 수 있다면,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법인이 사회적 협의 기구에 다른 당사자들과 대등한 자격을 갖는 주체로 참여하여 공동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장경제를 사회적으로 규율할 뿐만 아니라 생태학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 운영에서 얻는 교훈

우리나라에서 노사정위원회는 IMF 경제관리를 받았던 1998년 1월 초에 처음으로 결성되었다. 노사정위원회는 1999년 5월에 제정된 「노사정위원회의설치및운영등에관한법률」에 따라 대통령 직속 기구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 법은 2007년 1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법」으로 개정되었으며, 2018년 6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으로 전부 개정되었다. 오늘의 노사정위원회는 2018년 법에 근거하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노사정위원회를 실험했던 다른 나라들에서 노사정위원회는 국민경제 수준의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하여 노동과 자본의 합의에 바탕을 두고 조직되는 자율적인 사회적 협의기구의 성격과 위상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노사정위원회는 사회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공법단체의 외양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렇게 된 것은 노동측 대표들이 사회협약의 구속력을 높이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의 법제화를 요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다시피 한 우리나라에 국가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었던 탓도 크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실험된 노사정위원회 운영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산별 노사교섭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자본이 권력균형에 바탕을 두고 실질적인 사회적 파트너관계를 이루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연재 8에서 상술하였기에 여기서 더 길게 논의하지 않는다. 또 다른 하나는 국가가 두 사회세력들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노동보다는 자본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의 친자본적 입장은 기업친화적인 정권임을 내세운 이병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때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덜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에도 강하게 나타났다.

물론 1998년 초에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노동과 자본과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고통을 분담하고 경제를 회생하기 위하여 정리해고제 도입, 지배구조 개혁, 사회적 안정망 확충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제2기 노사정위원회는 출범한지 불과 5개월도 지나지 않아 양대 노총 가운데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함으로써 사회적 협약 기구의 성격을 크게 상실하였다. 1998년 11월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박차고 나간 것은 첫째 자본측이 해고회피, 노조전임제 인정, 지배구조 개혁 등 노동측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둘째 노동측은 정부에 수배노동자 수배해제와 구속노동자 석방,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의 성실 이행 등을 요구하였으나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고 판단하였고, 더구나 그 당시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빅딜, 공기업 및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에 관련해서 노동 측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자본측을 감싸고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노동측은 정부와 자본측이 노사정위원회라는 대화의 장을 열어놓는 시늉만 할 뿐 실질적인 사회적 협의에 나서지 않는 등 기만행위로 일관하고, 사회적 대화를 빌미로 노동단체들을 실질적으로 무장해제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노사정위원회가 실험되었던 초기 단계에서 노동측이 정부와 자본측에 대해 강한 불신을 품게 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러한 노동측의 불신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법제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는 개접휴업 상태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사회적 협약의 형태로 추진하고자 한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가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도 노동측의 뿌리 깊은 불신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날 노사정위원회 운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노동과 자본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그것은 정부가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관계가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모른 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일 정부가 노동과 자본의 기울어진 권력관계에 대해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를 취한다면, 정부는 결과적으로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판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것은 정부의 사회적 중립성 계명에 배치된다. 정부는 노동과 자본이 권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자본의 권력에 맞설 수 있도록 노동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강화시켜야 할 당사자는 노동자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단결과 연대, 일상적인 투쟁을 통해 힘을 모아야 하고, 시민사회의 뒷받침을 받아 그들의 힘을 증폭시켜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모두 나서서 국가를 압박할 수 있는 힘을 조직하여야 비로소 국가가 노동입법에 나서게 될 것이다. 지난날 국가가 경제발전을 위하여 총자본가 역할을 서슴지 않았던 데다가 자본친화적인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쳐서 기업독재 사회를 구축한 바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노동의 권력을 강화시킬 리 만무하기에 시민사회단체들이 노동입법을 위해 힘을 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 입법의 핵심은 이미 본 연재 7회와 8회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단위 기업 수준에서 노사 공동결정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고, 산별 노사교섭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개방적인 국민경제에서 노사정위원회의 핵심 과제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에 경제의 지구화 과정이 급속히 광폭으로 전개되어 왔지만, 국민경제는 그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민경제는 지역경제들과 산업분야들을 엮는 허브이고, 무역과 국제금융 네트워크의 구성부분이다. 오늘의 국민경제를 개방적인 경제 시스템으로 설정한다면, 시스템 안팎에서는 상품과 자본이 끊임없이 교환되지만, 시스템 자체는 고도의 평형을 유지하도록 운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개방적인 국민경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노동과 자본의 협력이 필요하다. 오늘의 국민경제에서 정부는 여전히 시장 규율의 책임자로서, 공익의 실현자로서, 신용제도의 마지막 보증자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고, 노동과 자본은 국민경제의 발전에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정부와 노동과 자본이 대등한 주체로 참여하는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협의 기구로서 운영되어 사회적, 경제적 의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그 합의에 바탕을 두고 국민경제가 운영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개방적인 국민경제에서 노사정위원회가 다루어야 할 핵심적인 과제들은 무엇일까?

그 동안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노동시장 정책, 기업정책, 복지정책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의제들을 다루어 왔고, 필자 역시 그러한 이슈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노사정위원회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의제들이 이제까지 한 번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개방적인 세계경제에서 국민경제를 운영하는 방식, 국민경제 차원에서 소득분배의 적정 기준을 정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아래서는 이 의제들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약술한다.

내수와 무역의 균형

필자가 보기에 노사정위원회가 다루어야 할 중요한 의제들 가운데 하나는 국민경제에서 내수와 무역의 적정 비중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경제는 국가주도적인 수출입국 경제체제로 발전되어 왔기에 수출과 수입이 전체 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높다. 우리나라 국민경제가 무역과 금융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세계경제에 깊이 편입되어 있어서 높은 수준의 대외개방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2018년 현재 국민총소득의 무역의존도가 86.8%에 달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본래 수출은 국민경제 안에서 소화되지 않는 잉여 상품과 잉여 자본을 국민경제 바깥으로 밀어내는 격렬한 운동이었고, 과거에는 식민지 확보와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던 사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근린궁핍화(近隣窮乏化)를 회피하는 호혜무역의 원칙에 따라서 자유무역이 활성화되었고, 그 때문에 식민지 무역의 형태나 전쟁을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자본도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무역을 통하여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국민경제는 구조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갖는다. 무역을 위하여 내수가 희생되기 때문이다. 수출경쟁력을 갖춘 거대기업들을 육성하기 위하여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축적되어야 하고, 그것은 노동자들의 소득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빚어낸다. 일반적으로 노동소득이 줄어들면 유효수요가 줄어들고, 상품 소비가 줄어들면 재고가 쌓여 급기야 공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지만, 수출지향적인 거대기업들은 내수부족에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기업들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국민경제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해 생산되기 때문이다. 그 기업들은 무역을 통해 축적한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수출하여 유리한 입지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무역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출지향적인 거대기업들을 위하여 노동소득과 내수를 희생시키는 국민경제는 결코 사회적 친화성을 가질 수 없다.

수출지향적인 국민경제의 운영은 한 나라의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초과하는 과잉생산의 경향을 띨 수밖에 없고, 그것은 두 가지 효과를 빚어낸다. 첫째, 노동자들을 항구적인 과로 상태에 밀어 넣는다. 노동자들이 자신과 가족의 삶을 부양하고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일하는 적정 시간보다 더 일하게 하는 경제가 좋은 경제일 수는 없다. 둘째, 수출지향적인 과잉생산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크게 위협한다. 국민경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하여 수출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에너지와 물질을 수입하고, 이를 상품 생산 과정에 투입하고 난 뒤에 발생하는 폐기 물질과 폐기 에너지가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는가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이처럼 인간 친화적이지도 않고 생태 친화적이지도 않은 수출지향적인 경제 시스템을 무엇 때문에 유지하여야 하는가?

따라서 노사정위원회의 가장 큰 과제들 가운데 하나는 국민경제에서 내수와 무역의 비중을 조정하여 사회 친화적이고, 인간 친화적이고, 생태 친화적인 방식으로 국민경제를 운영하는 방안에 관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국민경제 차원의 소득분배의 중요성

내수와 무역의 비중을 조정하는 것과 더불어 노사정위원회가 수행하여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소득분배의 적정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분배는 흔히들 국민저축이라 지칭하는 국민경제의 잉여가치를 노동과 자본의 몫으로 적정하게 배분하는 일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잉여가치는 총소득에서 총비용을 공제한 몫으로 나타난다.

국민경제 차원의 잉여가치는 통상적인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생소한 개념이다. 거기서는 국민저축이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국민소득계정이다. 국민소득계정에서는 가계와 기업의 소득을 합산해서 국민총소득을 표시하고, 국민총소득에서 가계지출과 기업지출을 공제하고 남은 것을 국민저축이라고 지칭한다. 그런데 국민저축이라는 용어는 시장경제에서 잉여가치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증발시키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국민경제에서 잉여가치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중시하는 까닭은 잉여가치의 일부가 결국은 생산과 소비로 배분되어 생산과 소비의 거시균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소득에서도 저축이 발생하고 그 저축은 국민경제 차원의 잉여가치의 일부를 구성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저축은 미래의 교육 소비, 주택 소비, 내구재 소비, 퇴직 후 소비 등 비생산적 활동을 위해 지출되는 경향이 있기에, 국민경제 차원에서 투자의 중추를 이루지 않는다. 오늘의 시장경제에서 보험이나 연금 등을 운영하는 금융기구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구들은 자본 시장에서 시세 차익 실현이라는 논리에 충실하기 때문에 생산적 활동으로 직접 나타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필자는 기업의 매출에서 노동비용과 자본비용을 공제한 몫을 따로 합산하여 국민경제 차원의 잉여가치를 계산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민경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총투자의 양은 기업의 잉여가치를 합산한 총저축의 양이라고 보는 것이 사리에 맞다. 케인즈가 말하는 저축률=투자율이라는 등식은 오직 잉여가치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감안할 때에만 국민경제 차원에서 설명능력을 갖는다.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자본의 재생산도식에서 저축률=투자율의 공식이 갖는 사회경제적 성격을 가장 날카롭게 포착했고, 오타 쉬크(Ota  Šik)는 국민경제 치원의 생산과 소비의 거시균형에 연결시켜 그 공식의 의미를 해석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잉여가치는 오직 국민경제의 재생산 과정에서 투자와 소비의 균형을 유지하는 소득분배 원칙이 결정될 때 가장 이상적으로 배분된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자본의 이해관계와 노동의 이해관계, 곧 투자와 소비의 균형을 이룩하는 것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자본의 권력이 노동의 권력을 압도하여 자본의 이해관계를 관철한다면, 자본재 생산 부문이나 소비재 생산 부문에서 고정자본의 비율이 턱없이 높아질 것이다. 또한 자본 상호간의 삶과 죽음을 건 투쟁 속에서 고정자본의 증가가 노동절약적 합리화로 치닫게 되면, 실업의 증가는 피할 수 없고, 국민경제 차원에서 투자와 소비의 균형은 완전히 깨지고 만다. 정반대의 상황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만일 노동의 이해관계가 관철되어 잉여가치의 상당부분이 비생산적 활동을 위하여 지출되면, 확대된 수요에 대한 재화의 공급 능력은 턱없이 부족해져서 경제는 침체되고 인플레이션은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상황을 회피하는 길은 노동의 이해관계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상대방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며 관철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두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투자와 소비의 거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열쇠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잉여가치를 노동과 자본에 배분하는 적정비율을 결정하는 것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잉여가치 배분의 원칙

국민경제에서 생산과 소비의 거시 균형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잉여가치를 배분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잉여가치의 분배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갈등은 국민경제의 적정 성장률을 제시하는 조건 아래서 조정되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저축률=투자율의 등식은 확대재생산 조건 아래서 소비의 확대와 투자의 증대를 균형 상태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예시한다. 국민경제의 적정 성장률은 국민경제의 성장을 조율하는 국가 기구의 지도 아래서 노동의 대표기구와 자본의 대표기구가 대등한 사회 권력으로서 마주 앉아 합의하고, 이를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를 통해 추인할 수 있다. 물론 잉여가치의 배분을 둘러싼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와 국회의 추인은 결코 시장 활동을 대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는 없고, 시장을 보완하는 기능을 맡아야 할 것이다. 만일 잉여가치의 배분과 관련하여 성장률 가이드라인이 책임 있게 제시되면, 산업 분야와 기업 차원에서 잉여가치의 배분이 적정하게 이루어지는 분배 기준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오늘날과 같이 민간경제 부문에서 잉여가치의 집적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국가가 투자 활동에 나서기보다는 소비 확대를 위한 공공 서비스를 확대하여야 한다. 민간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투자는 시장 경쟁 조건들 아래서 필연적으로 노동비용 감축을 위한 합리화로 귀결될 것이며, 투자를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은 거의 모든 산업 분야들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노동력의 퇴출을 강제할 것이다. 가치생산과정에서 퇴출되는 노동력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잉여가치의 상당 부분을 세금의 형태로 퍼내어서 시장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생계비를 지원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를 확대하여야 한다. 예컨대 의료와 교육, 문화 창달과 자연 보호를 위한 국가 활동의 강화와 이를 위한 증세는 고용 문제와 소득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만일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을 보장하고자 한다면, 노사정위원회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생산되는 총가치를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 자본의 감가상각보전, 시장임금, 기본소득 등의 네 가지 항목으로 적절하게 나누는 방안을 놓고 사회협약에 나서면 될 것이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12회분 연재물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셋째, 국민경제 차원에서 잉여가치를 배분할 때 경제성장의 속도를 조율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생태계 안정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미 연재 6회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시장의 가격장치나 가치법칙을 갖고서 생태계 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시장의 가격 기제나 가치 법칙은 이 분야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 생존의 자연적 기반들과 경제의 생태학적 기반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용은 오직 가격과 가치 개념을 뛰어 넘는 방식으로 조달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생태계 안정을 위한 정치적 합의에 기초하여 잉여가치의 상당 부분을 생태계 안정을 위해 소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계 안정은 국민경제의 적정 성장을 설정할 때 함께 고려되어야 하며, 생태계 안정을 위해 투자와 소비의 규모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오직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때에만, 소방 활동에 비교할 수 있는 임기응변식의 자연 보호 활동이 지양되고 생태계 안정을 위한 국가의 체계적이고 예방적인 활동이 조직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활동의 강화는 생태계 보전을 위한 공공 서비스 부문을 확대하여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다루어야 할 그 밖의 의제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오늘과 미래의 경제를 크게 바꿀 것이기에 노사정위원회는 이에 대비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아마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진다.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에게 날로 희귀해지는 일자리를 배분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의 큰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시간 정책과 일자리 분배를 위한 사회적 협약을 준비하여야 할 것이고, 더 이상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득과 생활 활동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생활을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사회협약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 정책, 일자리 배분정책, 기본소득 정책, 노동업적에 바탕을 둔 시장사회와 생활활동에 근거하는 공동체형성을 결합시키는 이중경제 모델에 대한 논의는 다음 연재 12회와 13회에서 진행하고자 한다.

자연국가를 향한 도정에서 노사정위원회는 확대 구성되어야

경제의 운영은 사회적 친화성과 인간적 친화성과 생태학적 친화성을 가져야 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모델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 민주주의일 것이다.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는 국민경제의 거시계획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사회적 협의 기구에 노동과 자본의 대등한 참여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이해관계와 경제계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대리인들의 대등한 참여를 요청한다. 인간의 엄청난 자연지배 능력으로 인하여 생태계와 경제계의 세력균형이 완전히 깨져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협의기구를 구성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생태계와 경제계의 세력균형을 회복하는 데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 장치를 밑바닥에 깔고 경제계의 두 주체, 즉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거시경제 수준에서 조절할 수 있는 경제민주주의의 틀을 짜야 한다.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지향을 갖는 사회적 협의기구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원칙만을 이야기하자면, 생태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들과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들은 동등권에 입각하여 쌍방의 이익을 조절하는 심급을 구성하고,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기술수준 아래서 생태계 활용의 최소한의 요구를 명시하는 기준치를 결정하여 경제 운영의 생태학적 틀을 짜는 것이다. 이 기준치가 결정되면,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기술수준 아래서 이를 준수하는 데 필요한 투자의 규모가 결정되고, 생태학적으로 적정한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지출되어야 할 소비의 규모도 결정될 수 있다. 국민소득 가운데 자연의 보전을 위해 지출되어야 할 몫이 정해지는 것이다.

국민소득에서 자연의 몫을 뺀 나머지 가치총량의 배분과 관련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국민경제 차원에서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배분하여 생산과 소비의 거시 균형을 달성하는 방안을 모색하면 될 것이다.

결론

디지털 경제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등 경제 환경의 엄청난 변화와 지구 경제의 도전에 직면한 오늘의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현 사회경제노동위원회)는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중요하다. 필자는 노동의 권력이 자본의 권력과 실질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노동과 자본의 사회적 파트너관계가 성립되고 그 바탕 위에서 노동과 자본과 정부가 대등한 주체로서 사회적 협의기구를 운영하여 국민경제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를 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노사정위원회가 국민경제 차원에서 소득분배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새로운 주장이다.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논의된 적이 없는 새로운 의견이다. 필자는 이 두 가지 과제가 제대로 논의되어 우리나라 경제를 보다 인간 친화적이고, 사회 친화적이고, 생태 친화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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