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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의 가련한 적들 (1)

기사승인 2024.05.08  14: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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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의 계보학⑥

새로운 형태의 종교

▲이충범 협성대 교수

단적으로 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미국의 종교이다. 미국에서 탄생한 미국식 기독교다. 문화적으로 백지상태에 있던 신대륙에 뿌려져, 발아하고, 성장한 초교파 종교운동이자 거의 모든 교파의 근간이 된 기독교의 한 유형이다. 건국 초, 종교적 형식과 칼뱅신학으로 무장한 청교도주의에서 조나단 에드워드(J. Edward)는 형식과 전례를 벗겨내며 종교적 감정을 갖오했다. 그리고 제2차 대각성 운동을 통해 찰스 피니(C. Finney)는 청교도주의에서 칼뱅을 벗겨내며 미국의 복음주의를 구체화시켰다. 당시 부흥 운동가들과 떠돌이 설교자들은 청교도 신학을 단시간에 밀어내면서 청교도의 시대를 접고 새로운 형태의 미국식 종교를 탄생시켰는데, 이 유형의 기독교가 현재까지 미국의 주류가 된 복음주의이다.(1)

복음주의 기독교는 내적으로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다.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으로서의 중생, 종교의 궁극적 권위로서 성서, 구속사에 초점을 둔 그리스도(성자)론, 구원받은 자에게 적합한 삶의 성결, 신앙을 나누고 교회와 선교에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활동주의를 강조한다.(2)

종교사적으로도 복음주의는 큰 의미가 있는데, 복음주의는 성직자와 예전 중심의 종교를 극적으로 대중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나의 용어로 ‘성령의 민주화 과정’이라 칭하는바, 복음주의는 중세 후기 서유럽을 강타했던 신심 운동의 현대판 자본주의 버전의 민중 신앙 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또한, 복음주의는 종교를 살아 있는 실체로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복음주의 운동은 기독교를 탈국교화함으로 종교 자유를 획득하였고, 탈제도·탈관료화 하며 생기를 주입했으며, 근대화된 유럽에서 게토로 전락하고 있는 기독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따라서 복음주의는 탈 국교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에 기독교를 공공화하는데 성공했다. 태어나자마자 자동적으로 유교인이 되었던 조선인이 드디어 공맹(孔孟)을 사랑하고 그들의 인격을 체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미국 전역의 교회는 교단별, 인종별, 계층별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회 공동체가 형성되어 교회 공동체는 곧 사회 공동체가 되었다.(3) 이런 사회의 모습을 1831년 미국을 방문했던 프랑스인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에서보다 기독교가 사람들의 영혼에 큰 영향을 유지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아무 곳도 없다.”고 평가했다.(4)

복음주의는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고립 문화로 전락해가고 있던 유럽의 기독교를 살아 있는 실체로서 그 힘을 발휘하게 했다. 문제는 종교가 비인간화된 자본시장, 대중 정치, 천민화된 제도와 문화를 도덕적으로 지적하고 수정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스스로 시장 논리와 정치판에 함몰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로 짜여지고 있던 정치, 경제 체계와 종교의 융합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 바로 미국의 복음주의였다.(5)

▲ 미국식 복음주의가 만들어낸 적대적 적 개념은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Getty Images

머리로 믿지 말고 가슴으로 믿어라

대중 신앙운동은 숙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최고의 도구는 쉬운 메시지와 직접적 체험이었다. 복음주의는 이 두 방법론으로 종교 대중화에는 성공했지만, 그 결과 천박한 반지성주의가 미국의 주류가 되는 큰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이제 지식인들에 의해 건국된 미국에서 지식인들은 아웃 사이더거나 종복이거나 희생양이 되는 웃픈 현실이 일상화되었다.(6)

고도의 지적 작업, 합리성, 상식, 지적성찰 등의 요소가 제한되거나 소거됨으로써 미국의 종교는 지식 혹 과학과 무관하거나 적대적 관계가 되는 병리적 상태가 되기에 이르렀다. 과학과 지식은 종교의 부분으로 분기했고, 복음주의는 ‘믿음 및 도덕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관한 유일한 결정자’임을 자처하며 미국 사회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했다.(7) 그리고 공화당과 1차 유럽대전을 적극 지지했던 복음주의자요 부흥운동가였던 빌리 선데이(B. Sunday)의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말을 하는 학자는 지옥’으로 가야만 했다.(8)

그러나 모든 노력을 다해 과학과 지식을 지배하려고 해도, 현대성(modernity)은 여지없이 종교를 궁색하게 했다. 현대성의 공격으로 수세에 밀린 복음주의는 완전하고 확실하며 최종적이고 영원한 것의 마지노선을 확정해 사수하고자 했다. 복음주의가 드와이트 무디(M. Moody)의 부흥운동과 넬슨 다비(J. Dabby)의 전천년설, 프린스턴의 성서무오설과 합체하여 더욱더 전투적이고 폐쇄적인 근본주의라는 극우적 형태로 진화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리고 전천년설에 대한 확신은 이 땅에서 완성되어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자연스럽게 무관심했다.

복음주의에서 분기한 근본주의자들은 현대학문에 위협받는 자신들의 신조를 지켜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이 세계란 신조를 지키려는 자신들과 이를 침범하려는 자들과의 끊임없는 충돌의 장(場)이며, 침범하는 자들은 악, 이를 지키려는 자신들을 선으로 확정했다. 침범하는 악과 타협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선과 악 사이의 모호함을 참아내지 못했다.(9) 그런데 거침없이 밀려오는 악의 축들과 전투를 위해선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역설적이게도 말로는 늘 세상적인 것을 성경적인 것과 구별하면서도 세상의 정치·경제 시스템과 종교의 융합을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미국 복음주의였다.(10)

1920-30년을 전후로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는 정치적 극우파와 확실하게 결합했고, 종교운동을 곧 정치운동으로 만들었다.(11) 그리고 곧 복음주의는 상업화, 세속화 되었다. 마슬로우에 따르면 이런 입장이 되면 교회는 변화에 저항하고, 보수화되고, 반지성주의가 지배하며, 반과학적, 권위적이되어 결국 모순된 사실적 진리에 전적으로 복종하며 파멸해 가게 된다.(12) 이렇게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으로 무장한 복음주의가 공적 영역에 진입한 것은 1차 유럽대전 전후였다. 우리가 성장 시기에 교회 강단에서 자주 들었던 말, ‘머리로 믿지 말고 가슴으로 믿어라.’라는 경구가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대변했다.

(다음에 이어서)

미주

(1) 스티븐 프로테로, 『아메리칸 지저스』, 노동래 역, (새물결플러스, 2020), 27.
(2) 마크 놀, 『복음주의의 발흥』, 한성진 역, (CLC, 2012), 24,
(3) 정태식, 『거룩한 제국』, (페이퍼로드, 2015), 69.
(4) Alexis de Toqueville, Democracy in America, Chapter, 17. 1835, http://xroad.virginia.edu
(5) 정태식, 27.
(6) 리처드 호프스테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유강은 역, (교유서가, 2022), 206.
(7) A. Maslow, Religions, Values, and Peak-Experience, Chapter Ⅱ., Marijuana Business News.com
(8) W. McLoughlin, Billy Sunday Was His Real Name, (Chicago, 1955), 213.
(9) 리처드 호프스테터, 194.
(10) 정태식, 27.
(11) 정태식, 31.
(12) A. Maslow, 같은 글.

이충범(협성대학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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