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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의 가련한 적들 (2)

기사승인 2024.05.16  04: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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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의 계보학⑦

가련한 적들

▲이충범 협성대 교수

복음주의와 근본주의가 악으로 규정해 공격한 대상은 시대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그 대상을 나열해보면, 노예제 폐지론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노동조합원 등 정치적 그룹들,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등의 예술가들, 흑인, 이민자, 유대인 등 소수인종들, 가톨릭, 모르몬교, 소종파주의, 프리메이슨, 자유주의 신학 등 종교 그룹들, 진화론자를 비롯한 공교육 관계자들, 그리고 로큰롤, 록, 디스코, 메탈 등 대중음악에까지 사회 전반을 포괄한다. 최근에는 낙태, 포르노, 가족해체, 동성애, 공립학교 종교교육 등을 또 다른 적으로 간주하고 있고, 한국 근본주의자들의 4대 혐오의 대상은 진화론, 공산주의, 동성애, 이슬람이라고 한다.(1)

1925년에는 테네시 주의원 존 워싱턴 버틀러에 의해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출되어 통과되었다. 이는 1920년대 소위 ‘반진화론 십자군 운동’이라 불렸던 미국 근본주의의 진화론 거부운동의 개가였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급속하게 자유주의화 되어 가는 복음주의 계열의 축소로 인해 주류에서 멀어져가던 복음주의 계열의 도피처였던 근본주의는 마침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이 서술된 교과서를 사용한 과학 교사 존 스콥스를 고소했다. 그러나 스콥스가 패소하여 벌금형을 받은 소위 원숭이 재판은 오히려 근본주의 계열을 겸연쩍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기독교 복음(근본)주의가 KKK와 같은 그룹들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점이었다. KKK는 ‘미국을 망치는 것은 진화론 교육’이라고 부르짖었고, 심지어 지식과 공교육을 거부하고, 지역 도서관 건립을 반대하기도 했다.(2)

1940년대 미시간 출신 연방 하원의원 조지 돈데로(G. Dondero)는 의회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학교 안에 퍼져있는 공산주의,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등의 예술 사조와 맞서 싸우는 십자군 노릇을 해왔다고 자랑스럽게 발언했다.(3) 당시 복음주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학교에 다니면서 기도를 게을리하게 되거나 이상한 ‘주의(ism)’에 물들지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고, 돈데로는 이런 학부모들을 염두에 두고 발언한 것으로 추측된다. 복음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렇듯 모더니즘에 대한 극심한 저항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4)

러시아 혁명 이후부터 미국에선 소위 ‘적색공포증(Red Fear)’이 횡횡했다. 세월이 지나 냉전 시대가 되자 적색공포증은 재발했고, 급진 우익이었던 복음주의 기독교 우파는 반공을 기치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소련은 적그리스도가 되기에 충분했다. 1950년대, 소위 대심문(Great Inquisition)의 시대는 매카시즘으로 대변된다. 1차 적색공포증과 메카시즘은 단지 공산주의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공격은 아니었다. 이는 러시아 이민자, 무정부주의자, 노동조합원, 사회주의자, 진보적 지식인과 예술인 등 광범위한 사냥감을 추적했다. 이때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여러 단체를 조직하여 매카시(J. McCarthy)의 반공주의 선전활동에 적극 가담했고, 공화당의 강경 보수 노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골드워터(B. Goldwater)를 강력히 지지하며 정치 개입을 시도했다. 여타 복음주의 교회들은 대중의 의견 결집, 대중집회, 입법책임자 설득, 법적투쟁 등을 펼치면서 열기를 올리며 적극적으로 먹이감 몰이를 했다.

▲ Photo-illustration by Katie Martin. ⓒRoberto Schmidt / AFP / Getty

1959년부터 1960년, 약 1년여 간 미국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 졌다. 아이돌 스타 1위부터 4위 중 3명이 사망하고 1명은 영구 장애를 입을만큼 크게 다쳤다. 당시 최고의 스타 버디 홀리 앤 더 크리케츠의 버디 홀리(B. Holly), 약관 17세에 전 세계적 인기를 몰고 다녔던 리치 발렌스(R. Valens), 에디 코크런(E. Cochran) 등 3명은 사고로 사망했고, 진 빈센트(G. Vincent)는 영구 장애를 입었다. 이상한 것은 버디 홀리와 리치 발렌스는 둘 다 항상 버스로 공연장에 가곤 했는데 그날따라 두 사람 다 버스가 고장 나서 경비행기를 탔다가 각각 추락사를 당했다. 진 빈센트와 에디 코크런은 함께 영국 공연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러 가다 트럭과 충돌해 사고를 당했다.

근본주의자들에게 되바라진(?) 아이들이 부모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다리를 건들거리고, 전자음을 내며, 경망스럽게 춤을 추며 노래하는 아이들, 부모들에겐 해맑은 영혼을 그 누구에겐가 빼앗긴 악마들의 모습이었다. ‘로큰롤 혹 록은 아이들의 영혼을 빼앗고 사악하게 물들이는 사탄의 음악’이었다.

학부모단체(PTA)가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과 함께 움직였다. 물론 학부모단체는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 경도된 부모들의 이익단체였다. 사탄의 음악을 틀어대는 라디오 디제이들은 구속당했고, 로큰롤 스타들은 일시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스탠더드 팝 가수로 미국의 아이콘이었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1958년 “로큰롤은 가장 야만적이고, 흉하며, 야단스럽고, 사악한 형태의 음악적 표현으로, 그런 음악을 듣는 것은 불행이다.”라고 미의회에서 증언했다.(5) 의회가 새롭게 출현한 장르의 음악 하나 때문에 국민가수의 증언을 요청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바이블 벨트의 교회 목사들과 순회 부흥사들은 ‘로큰롤과 록은 사탄의 음악’이라는 순회설교로 듬직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복음주의자들이 적들을 향한 불만은 단순한 반대와 비난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증오의 표출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희생자가 생길 때마다 희열을 맛보는 듯했다. 하지만 집단 증오는 단순히 감정을 넘어 신념화된다. 반대, 비난, 증오, 신념으로 발전된 불만은 소수의 대상을 한 사회의 미래를 위해 격리 혹은 제거해야 할 희생 제물로 삼는다. 하지만 복음주의가 전면에 나서 공격했던 프리메이슨, 노예제 폐지론자, 가톨릭교도, 유대인, 흑인, 이민자, 로큰롤 스타, 진화론자, 공산주의자 등은 사실 공격의 대상이라기보다 적들에게 퍼부었던 복음주의자들의 무기였다. 정작 그들이 공격하면서도 두려워했던 것은 그 어떤 대상이나 주의(ism)라기보다 다름, 낮섬, 안정을 뒤흔드는 변화, 창의성이었다.

가련하게도 그들이 두려워서 지옥으로 보낸 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두렵고 힘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었던 창백한 지식인, 갈비뼈가 드러난 몸 하나로 하루를 생존해야 했던 육체노동자, 노골적 차별에 서럽게 울었던 소수자, 여성이라서 억울한데 게다가 이혼한 싱글 맘,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상상을 현실화했던 골방의 창작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미국의 역사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미국 사회의 부정적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지 못하고, 지금 한국사회, 정치, 교회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역시 문화적 백지상태였으므로…

미주

(1) 신익상, “개신교 근본주의의 반진화론-반동성애-반이슬람-반공산주의 연대”,  『과신대·기사연 공동포럼 자료집』, 2020.
(2) 리처드 호프스테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유강은 역 (교유서가, 2022), 181-2.
(3) 호프스테터, 35.
(4) 정태현, “공적 종교로서의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정치적 역할과 한계”, 『현상과인식』, 2009(봄/여름), 51.
(5) 강헌, 『전복과 반전의 순간』, (돌베게, 2015), 73, 77-78에서 요약.

이충범(협성대학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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