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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국가 틀에서 디아코니아 정체성 어떻게 살리나?

기사승인 2019.10.07  18: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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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22)

교회는 기독교 경제윤리가 제시하는 ‘정의’의 원칙과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에 따라 기독교인들의 디아코니아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이를 신학적으로, 선교정책적으로, 교회법적으로 뒷받침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이 작은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가난과 압제와 차별과 배제와 주변화로부터 건져 내심으로써 그분이 정의로운 분임을 드러내셨다고 믿고 있다. 또한 교회는 우리 가운데 지극히 작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 쉴 곳, 병 치료, 감금당한 상태에서 받는 위로 등을 제공함으로써 그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믿고 있다.(마태 25:31 이하) 이러한 믿음을 갖는 기독교인들이 우리 가운데 현존하는 작은 사람들을 편들고 그들을 섬기는 일이 곧 디아코니아이다.

디아코니아 활동은 교회가 직접 나서서 하는 경우도 있고, 기독교인들이 디아코니아 기관을 꾸려서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디아코니아 활동은 오래 전부터 교회나 기독교인들의 구제 사업이나 사회봉사 사업 등의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그 활동의 주체는 임의단체, 등록단체, 협회, 사단법인, 재단법인,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다양한 법적 형태를 갖고 있다. 그 활동을 위한 금원은 대체로 기부금, 수익, 보조금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의 사업비 지원 등과 같은 보조금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사회국가의 면모를 갖추면서 기독교인들의 디아코니아 활동은 사회국가의 틀에서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국가의 협력의 틀에서 디아코니아 활동의 정체성과 특색을 살려나가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번 연재를 비롯해서 다음 몇 차례에 걸친 연재물에서 필자는 사회국가의 틀에서 디아코니아 활동을 펼쳐 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짚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다.

디아코니아 활동의 여러 차원

기독교인들의 디아코니아는 여러 차원을 갖고 있다. 선교적 차원, 교회적 차원, 정치적 차원 등이 그것이다.

디아코니아의 선교적 차원은 기독교인들이 우리 가운데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펼쳐서 그들을 가난과 압제, 차별과 배제, 주변화로부터 구출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널리 펼치고자 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작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둘이 아니라 같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디아코니아는 선교적 디아코니아의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디아코니아가 말씀의 선포(케리그마), 친교(코이노니아) 등과 함께 교회의 본질을 이룬다고 믿는 사람들은 디아코니아의 실천이 교회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며, 교회가 디아코니아의 실천을 위하여 제도적인 틀을 갖추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이를 가리켜 교회 디아코니아라고 말한다.

디아코니아는 교회가 국가와 협력하여 펼치는 활동이기도 하다. 국가는 그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여야 할 의무를 갖고 있고,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을 펼쳐서 그 의무를 수행한다. 교회는 한편으로 이러한 사회국가의 틀에서 국가와 협력하여 디아코니아를 펼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을 비판적으로 살피고 국가가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비판적 담론 형성은 교회와 국가 사이에서 수행하는 디아코니아의 한 과제로서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를 가리켜 독일의 사회윤리학자요 디아코니아 이론가인 하인츠-디트리히 벤들란트(Heinz-Dietrich Wendland)는 오래 전에 ‘사회적 디아코니아’라고 지칭한 적이 있는데, 필자는 ‘정치적 디아코니아’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교회 디아코니아의 본질은 주님을 섬기듯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Getty Image

이제까지 한국 교회는 선교적 디아코니아 개념에는 익숙했지만, 교회적 디아코니아나 정치적 디아코니아 개념을 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발전시켜야 한다. 선교적 디아코니아는 믿음과 사랑의 통일을 전면에 내세운 경건주의 전통에 맞닿아있고, 복음의 전파와 디아코니아 활동을 결합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선교적 열망에서 비롯되고 있기에,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나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에게 쉽게 수용되는 관점이다.

교회적 디아코니아는 무엇보다도 성서에 근거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초기 교회는 사도와 집사를 구별하고. 집사직을 디아코니아 활동을 위한 직제로 설정하였다.(행 6:1-7) 초기 교회는 하나님 앞에 바치는 헌물을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디아코니아 활동을 통하여 유무상통의 공동체를 이루는 빛나는 전통을 이루었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이전에 교회는 금식을 통해 모은 헌금을 디아코니아 활동을 위해 사용했고, 콘스탄틴 공인 이후에 교회와 수도원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들을 위해 구빈원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활동했다. 마르틴 루터의 비텐베르크 금고 규정이나 라이스니히 금고 규정에서 보듯이, 종교개혁자들은 교구 단위로 기금을 조성하여 디아코니아 활동을 펼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 전통은 디아코니아 활동을 교회 기구로 제도화한 독일개신교협의회의 예에서 잘 계승되고 있다.

정치적 디아코니아는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 디아코니아 기관들과 종사자들에게는 거의 터부시되는 분위기가 있지만, 교회가 세상에 대해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하고 파수꾼의 직무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모니터링과 정책 조언을 하는 것은 교회가 당연히 맡아야 할 일이다. 교회가 국가와 협력하여 디아코니아 활동을 조직한다면, 국가가 수립하는 사회복지의 조직 원리와 운영 원리를 파악하고, 사회복지 운영의 기본 구상에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비판해서 국가가 이를 바로 잡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정책 노선의 문제점

우리나라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 사업은 최근 20여 년 동안 크게 발전하였고, 운영예산도 엄청나게 늘었다. 사회복지 운영 예산의 규모는 그 배후에 깔려 있는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의 기본 성격을 드러내기 때문에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부 예산 가운데 사회복지 지출은 2016년 현재 GDP의 10.5%에 달한다. 1990년 현재 GDP의 2.7%, 2000년 현재 4.5%, 2010년 현재 8.2%에 비하면 매우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OECD 국가들 가운데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가장 많은 프랑스가 2016년 현재 GDP의 31.5%, 5위인 덴마크가 28.7%, 9위인 독일이 25.3%에 이르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OECD 35개국 가운데 한국 다음에는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GDP의 7.5%에 불과한 멕시코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이처럼 적은 것은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이 여전히 잔여적, 부분적, 선택적 복지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가 구성원들은 제도적, 전면적, 보편적 복지의 수혜자로서 양과 질 양면에서 충분한 복지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복지 지출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올리겠다고 하면 이에 대한 저항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다. 만일 모든 국민이 제도적, 전면적, 보편적 복지 정책의 틀에서 더 많은 복지, 더 나은 복지의 수혜자가 된다면, 그들은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을 신뢰하여 국가의 복지 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데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의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교회는 이 점을 인식하고 국가의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을 재조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제도의 조직 원리와 운영 원리의 문제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에 관련된 법령들을 살펴보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 사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매우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많은 점에서 근본적인 개선과 변화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모든 문제점들을 분석할 수 없으니, 디아코니아의 관점에서 노동연계복지 개념과 사회복지 사업의 민간위탁 지침의 문제만을 짚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관련 법률들과 시행령들, 시행규칙들 가운데는 아주 오래 전에 제정되어 개정에 개정을 거친 것들도 있으나,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기에 IMF 경제신탁을 받는 동안에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제정된 법령들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법 체계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은 노동연계복지 개념과 민간위탁사업 지침일 것이다.

노동연계복지는 국가로부터 복지 수급을 받기 위해서는 노동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는 국가복지 시행 원칙이고, 민간위탁사업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여야 할 사회복지 사업들을 외주화하여 민간기관들에 맡긴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침이다. 이 두 가지 원칙과 지침은 우리나라 사회복지 제도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기울어져 있고 관료주의적 통제의 위협 아래 놓여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인간존엄성 보장의 원칙’에 입각해 노동연계복지 개념 철폐를 요구한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에 입각하여 노동연계복지 개념을 비판하고 그 철폐를 요구한다. 이미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연재 제13회에서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다룰 때 말한 바와 같이, 교회는 한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그분과 바른 관계에 선다는 바로 그 사실로부터 그 사람의 존엄성이 인정되고, 그 사람의 존엄한 삶은 그 사람이 이룩한 업적과 무관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한 사람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그 사람이 받는 복지 수급은 그 사람이 수행하는 노동의 업적과 무관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철학적인 어법으로 다시 표현한다면, 한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엄한 삶을 살 권리는 그 사람이 사람으로서 현존한다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권리이다. 그 사람이 사람으로서 현존하는 한 그 사람은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복지의 수급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는 그 사람이 노동을 해서 업적을 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무조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이 존엄한 삶을 살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물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는 점을 국가를 향해 확실하게 말해야 하고, 노동의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만이 국가로부터 복지 수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노동연계복지 원칙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성), 제34조 1항(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 곧 행복 추구권)과 2항(국가의 사회복지 및 사회보장 의무)의 규범에도 정확하게 부합한다.

사회복지사업의 민간위탁은 보충성의 원칙에 충실하여야 한다

교회는 국가가 맡아야 할 사회복지 사업들을 민간 복지 단체들에 외주화하는 민간위탁 지침이 보충성의 원칙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복지 사업의 민간위탁은 「정부조직법」 제6조 3항, 「지방자치법」 제95조 2항,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 제3장과 제5장, 「사회복지사업법」 제34조 5항에 근거하고 있다. 현행 법령상 사회복지 사업의 민간위탁은 복지 사업의 재원 확보, 복지 서비스의 생산과 전달 등 사회복지사업의 본질에 해당하는 사업의 민영화를 허용하는 제도인 만큼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여지가 있고, 사회복지 서비스의 시장화로 치닫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 사업의 민간위탁은 보충성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특히 민간위탁 사업의 선정 및 지원 방식이 그렇다.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복지 단체들과 기관들을 선정하여 사회복지 사업을 맡길 때에는 프로젝트 심사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러 단체들과 기관들이 프로젝트들을 제출하면 정부 당국이 절차와 규정에 따라 심사하여 그 가운데 적절한 프로젝트를 선택하여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선정된 프로젝트 수행은 지방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엄격한 감독 아래 놓인다.

이러한 민간 위탁자 선정 방식이 사회복지 사업에 종사하는 단체들이나 기관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제도는 민간 사회복지 단체의 사회복지 사업을 장기적으로 안정성 있게 수행하도록 돕는 제도가 아니고, 그 단체들의 자율적 운영을 촉진하는 제도도 아니다. 이 중요한 문제는 사회국가를 뒷받침하는 보충성의 원칙이라는 헌법 규범에 비추어 검토되어야 한다.

현대국가는 보충성의 원칙을 헌법 규범으로 갖고 있고, 보충성의 원칙을 구현하는 법제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민법, 지방분권법도 그렇지만, 사회복지 관련 법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복지법」 제4조 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복지를 증진할 책임을 진다.”고 해서 사회복지의 최종적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명시한 뒤에, 5항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민간부문의 사회복지증진활동이 활성화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사업과 민간부문의 사회복지증진활동이 원활하게 연계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국가복지와 민간복지가 보충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연계되도록 하고 있다.

보충성의 원칙은 작은 일은 작은 단체들이 맡게 하고, 큰 단체는 작은 단체가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돕는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작은 단체가 작은 영역의 일을 더 잘 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작은 단체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을 큰 단체가 나서서 대신 맡거나 회수하지 말라는 뜻을 내포한다. 가정, 공동체,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 등이 맡는 일들의 층위를 구별하여, 각각의 단위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되, 각 단위가 제 할 일을 못할 때 보다 큰 단체가 지원하고, 마침내 가장 큰 단체인 국가가 최종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이 보충성의 원칙이다.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이미 설립되어 운영 중인 사회복지 단체들과 기관들의 사업을 존중하고,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사적 자치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사업을 지원하고, 그 단체들과 기관들이 제 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국가가 나서서 최종적인 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사회복지 사업의 선정 및 지원 제도는 이러한 보충성의 원칙에 비추어볼 때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민간 사회복지 단체들과 기구들의 안정성을 크게 침해할 여지가 있다. 어떤 프로젝트가 선정되면 해당 단체나 기관은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그 사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일정 기한이 지나 그 사업에 선정되지 않으면 그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복지 단체나 기관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그 단체나 기관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수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다음에, 그러한 사업 선정 및 지원 제도는 사적 자치를 크게 위축시킨다. 지역 차원에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지역 사람들의 요구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들과 정보들, 재정적인 수단들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알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복지 단체들과 기관들의 사적 자치는 장려되어야 하고, 행정당국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관련해서는 행정당국이 관료주의적 규제일변도로 나아가는 속성을 갖고 있고, 관료적 감독을 위해 사적 자치를 황폐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선정 및 지원 제도는 오직 국가가 사회복지 사업의 새로운 방향과 과제를 설정하고 사회복지 단체들과 기관들이 그 사업에 나서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는 경우이거나 신뢰성 있는 사회복지 단체나 기관이 없는 지역에서 사업자를 새롭게 선정하여 지원하는 경우에 한정해서 시행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세계관적 중립과 디아코니아

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디아코니아 활동이 기독교적 정체성과 특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는 것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디아코니아 단체들과 기관들은 재정 운영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감독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 단체나 기관의 자율적인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인사정책과 프로그램 수행 방식 등에 관해서도 사적 자치를 보장받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디아코니아 단체나 기관은 자신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한, 일자리를 공시할 때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뽑겠다는 것을 알릴 수 없고, 선발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평점을 주어서도 안 된다.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디아코니아 단체나 기관이 인사정책에서 세계관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세계관을 이유로 해서 지원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 다음, 디아코니아 단체나 기관이 기독교적 아이덴티티에 바탕을 두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특색을 살리는 일도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한에는 엄격히 금지된다. 예컨대, 「사회복지관설치‧운영규정」 제4조(운영의 기본원칙) 7항은 “사회복지관은 정치활동, 영리활동, 특정종교활동 등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중립성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세계관적 중립성을 법적 규범으로 명시하고 있다. 디아코니아가 교회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활동이고 신앙과 사랑의 통전성에서 우러나오는 활동이기에 디아코니아 사업의 기독교적 특색을 나타내는 상징을 사용하거나 디아코니아 담론을 전개하거나 직원을 디아코니아 실천 요원으로서 훈련시키는 일이 당연한 일이어야 할 터인데, 이 법적 규범 아래서는 그 당연한 일이 금지된다.

만일 디아코니아 단체나 기관이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조건 아래서 세계관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따라서 디아코니아의 정체성과 특색을 살릴 수 없다면, 교회는 디아코니아 단체들과 기관들이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말 것을 권고하고, 사회복지 사업에 관한 한 교회와 국가의 협력을 철회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디아코니아 활동에 관련해서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 계명은 크게 오해되고 있고, 잘못 적용되고 있다.

의문의 여지없이, 우리나라는 세속국가이다. 이 점은 우리나라 헌법 제20조에서 분명하게 천명되고 있다. 세속국가에서 모든 사람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국가는 국교를 정하지 않고,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 헌법 제20조는 몇 가지 점에서 신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하는 헌법 제20조 제2항 제2문은 전문적인 법적 용어로 적절하게 정식화되지 않았기에 오해의 여지 없이 잘 해석되어야 한다. 제2문은 국가단체와 종교단체가 하는 일을 구분한다는 전문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지,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국가가 하는 일을 비판하거나 국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는 의미로 새길 수 없다. ‘정치적 디아코니아’가 가능한 것은 교회가 국가가 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감시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둘째, 헌법 제20조 제2항 제1문의 국교 금지는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을 명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국가가 종교단체가 하는 일에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고,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을 선호하거나 폄하하지 말고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말라는 뜻이다. 따라서 국가가 세계관적 중립을 지키라는 헌법의 규범적 요구에 따를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은 세속국가 안에서 종교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 국가는 각 사람이 종교의 자유를 갖고 그 자유를 행사할 권리를 인정하여야 하고, 그 자유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는 그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이 갖는 진정한 의미이다.

국가가 세계관적 중립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해서, 국가 재정이 투입된 단체나 기관이 세계관적 중립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것은 국가 재정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워 종교의 자유와 종교 행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국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헌법 제21조 1항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에 따라 단체를 형성할 권리가 있고, 그 단체를 통하여 종교적 세계관을 표현하고 종교적 자유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

거꾸로 국가가 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단체나 기관을 이루어 종교적 세계관을 표방할 것이 예상되므로 그들의 단체나 기관에 재정 수단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는가? 역시 그럴 수 없다. 만일 국가가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유에서 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결사의 자유에 따라 결성한 단체들을 공공연하게 차별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헌법 제20조가 규범으로 정한 종교의 자유와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 의무는 교회가 교회에 속한 고유한 일들을 자주적으로 수행할 것을 보장하고, 국가가 교회의 고유한 일들에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지한다. 디아코니아는 설교, 교육, 친교, 선교, 교회 인사 및 직무 규정 등과 함께 교회의 고유한 일들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을 표현하는 행위들 가운데 하나이다. 교회가 설립한 사회복지 단체들과 기관들, 교회의 우산 아래 들어와 있는 모든 사회복지 단체들과 기관들은 국가의 간섭과 개입에서 벗어난 종교의 자유 아래서 교회의 고유한 일들을 펼치기 위하여 자주적인 인사정책을 수립하고, 디아코니아적 특색을 갖는 사회복지 사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개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국가의 재정 수단이 투입되는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만일 국가가 디아코니아 단체들과 기관들의 자주적인 인사정책과 특색 있는 사업 프로그램들을 금지하고 재정 지원을 거부한다면, 교회는 헌법 소원에 나서서 교회가 국가의 간섭과 개입 없이, 더 나아가 국가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디아코니아적 특색을 갖는 사회복지 사업을 펼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그 권리를 헌법 규범에 따라 보장받아야 한다. 이러한 헌법 소원에 나설 원고는 교단 총회의 대표이거나 교단 사회복지법인의 대표일 것이다.

다음 연재에서 필자는 독일 디아코니아 최고기관인 독일개신교협의회사회봉사국이 헌법 소원을 통하여 디아코니아의 자율성과 특색을 어떻게 구현하였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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