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론과 진화론의 새로운 충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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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식 서울신대 교양교육원 교수가 창조론을 둘러싸고 대학당국과 교단과 갈등을 빚고 있다. 대학당국과 교단은 이른바 창조과학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 |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교양교육원)가 창조과학을 비판하고 유신진화론을 옹호해 왔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유신진화론은 과학으로 창조를 설명하려는 ‘과학적 창조론’과 구분되는 ‘신학적 창조론’으로서 진화 과정도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아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서울신대 이사회는 교원징계위원회에 징계 의결 요구서를 보내 박 교수의 중징계를 주문했다.
사건의 발단과 경위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박영식 교수는 2020년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 MTS(평신도 신학석사) 과정에 ‘창조과학’ 강의가 개설되자, 페이스북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총장이 아마도 대학원 운영난의 타개를 위해, 또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창조과학 강의를 개설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교양학부에서는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강사가 가끔 초빙되기는 했지만, 신학부에서는 매우 논란이 많은 창조과학을 정규 과목으로 개설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학자들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도 없이 갑자기 창조과학을 신학부에서 가르치게 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므로 많은 교수들은 의혹과 비판의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박 교수가 용감히 이 문제를 최초로 거론했다. 그러나 학교 내부에서는 창조과학에 관한 이론적 논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흘러자 이에 관한 논쟁은 박 교수와 시간 강사 장 모 박사 간에 페이스북을 통해 뜨겁게 전개되었다. 나는 두 사람 간의 논쟁을 처음에는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두 사람이 어떤 근거에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 간의 논쟁은 불행하게도 논리보다는 감정에 더 치우친 듯하더니 결국 인간적인 불화로 이어졌고, 이어서 장 박사는 박 교수가 교단 신학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지 여부를 검증해 줄 것을 교단 총회장과 서울신대 총장에게 요청했다. 이로써 학문적 논쟁은 정치적 문제로 증폭되고 말았다
이어서 시간 강사 양 모 박사가 자신이 속한 지방회의 감찰회를 통해 박 교수를 서울신대에 고발했다. 박 교수의 주장이 교단과 학교의 이념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서울신대 신학검증위원회를 열어 박 교수의 신학을 검증하기 시작했다. 2022년 신학검증위원회는 박 교수가 ‘유신진화론’을 배타적으로 주장하고, 성경 해석과 신학적 방법론에서 과학주의적, 합리주의적 관점을 적용하는 것은 개신교 복음주의와 성결교회의 교리적 입장에 배치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창조와 진화에 관해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성결교회의 교리적 입장에서 명확히 교육할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8쪽 분량의 의견서를 통해 학교 측의 조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 교수는 의견서에서 자신의 창조 신앙이 성결교단 전통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미 성결교회의 사부라고 불리는 이명직 목사도 신앙과 과학의 수준을 구분하셨고, 지구의 연대에 대해서도 6,000년에 붙잡히지 않고 훨씬 더 오래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개방된 자세도 보여 주셨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살아 있는 샘물이 되어 사중복음의 생명을 전하는 성결교회의 신학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근거해 현대적 논의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하는 자연주의적 진화 이론을 비판하고 배격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자연 세계를 창조하시며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를 신앙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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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교수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서울신대는 박 교수에 대한 조사를 멈추지 않았다. 서울신대 이사회는 2022년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박 교수를 불러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은 것을 믿는지?”, “성경의 6일 창조를 믿는지” 등을 추궁했다. 박영식 교수가 “그렇다”고 하자, 이사장과 조사위원들은 “박 교수는 합리적이라 그런 거 믿으면 안 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들은 “박 교수의 가르침 때문에 학생들이 혼란에 빠지면, 기금 모금이 되지 않는다.”면서 박 교수를 거듭 비난했다.
서울신대 황덕형 총장은 2022년 중재해 주겠다며 박영식 교수에게 ‘자술서’를 내밀었다. 자술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계시성을 떨어뜨린다는 오해를 일으키는 표현을 수정하고. ‘무로부터의 창조’의 의미를 심화하고 보완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수정하며, 유신진화론을 우호적으로 해석하고 창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제한했다는 우려를 받아들여 이를 수정하고, 복음주의 신학의 전통에 배치된다는 우려를 수용해 합리성을 넘어 하나님의 계시성에 기반한 신학을 전개함으로써 ‘창조의 신학’(박 교수의 저서) 등을 강의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박 교수는 자술서에 서명하는 대신 ‘신학적 고백과 반성’이라는 글을 직접 써서 총장과 이사회에 보냈다. 그는 교단 구성원들의 염려를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숙고해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임하겠다고 썼다. 박 교수의 반성문 제출에도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사회는 박 교수에게 연구년 기간에 유신진화론을 비판하는 논문을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박 교수는 학자적 양심을 위반하면서까지 유신진화론을 반대하는 입장을 증명하라는 이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대신 박 교수는 ‘성결교회 창조신학 구성을 위한 기초 작업’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는 이명직, 조종남, 전성용, 이신건 교수 등이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들이 창조를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담았다. 그러나 이 논문도 학교의 조사 대상이 됐다. 논문을 검토한 대학 조사위원회는 박 교수가 유신진화론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성결교단의 창조론만을 다뤘다고 비판했다.
박영식 교수는 2012년 창조론을 주제로 시범 강의를 한 후에 임용되었고, 지금까지 ‘종교와 과학의 대화’라는 강의를 진행해 왔으며, 교단에서도 창조신학 세미나를 여러 차례 하는 동안 아무도 문제를 삼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자유와 학자적 양심을 억압하고 유독 그에게만 징계의 굴레를 씌우려고 하는 학교 당국의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강의를 통해 창조론과 섭리론 안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을 적절히 수용할 수 있음을 오랫동안 가르쳐 왔지만, 그 누구로부터 비판을 받거나 심지어 징계의 대상에 오른 적은 전혀 없었다. 황덕형 총장이 “박 교수가 자신을 괴롭혔고, 총장 선거 당시에 박 교수를 비롯한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총장 연임에 반대했다.”고 말했다니, 이번 사태의 뿌리에는 학문적 갈등 외에도 감정적, 정치적 요인도 깊이 내재해 있는 듯이 보인다.
박영식 교수가 중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료 학자들을 비롯해 학교 안팎에서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이 잇따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문화신학회, 기독교교양학회, 한국민중신학회, 서울신대교수협의회, 한국조직신학회 교수들, 서울신대 동기회(62명) 등이 학문적 자유를 억압하고 양심적인 학자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부당한 절차를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처음부터 이 사태를 예의 주시해 온 나는 최근에 나의 유튜브(이신건TV)에 사건의 발단과 경위와 현황을 소개하고 다음과 같이 일곱 개의 질문을 던졌다.
1. 성결교회 신학 검증을 위해 왜 외부인을 끌어들였는가? 박 교수의 주장이 성결교단의 교리와 서울신대의 교육 이념에 맞는지를 검증한다면서, 성결교단에 속해 있지 않은 김영한 박사를 왜 검증위원에 위촉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여기서부터 정치적 의도가 존재한다거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2. 성결교회 신학자들 간에는 왜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았는가? 성결교회에는 조직신학을 전공한 원로, 은퇴, 현직 교수들과 강사들이 다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견을 전혀 들어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신학검증위원회에 속한 학내 교수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회와 총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검증위원회의 객관성과 신뢰성은 처음부터 보장되기 어려웠다.
3. 신학부 교수의 성명이 성결교회의 신학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신학부 교수 25인이 익명으로 발표한 성명서는 자율성과 순수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입장이 곧 성결교회의 공식 입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단 총회의 결정과 헌법의 수록을 거치지 않는 견해는 결코 교단의 공식적인 입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4. 교단 신학은 영원하고 절대적이고 오류가 없는가? 가톨릭교회를 개혁함으로써 출발한 개신교회는 자신을 항상 개혁해 나감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실현한다. 모든 신학은 항상 역사적, 잠정적,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한 두 사람 또는 특정 집단이 신학과 교리를 독점하거나 절대화하고, 이를 통해 다른 신학과 교리를 마구 폄하하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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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건 교수는 이번 박영식 교수를 둘러싼 갈등이 학교 내 정치적 요인이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신건 교수 페이스북 |
5. 교단 신학자는 전통적 입장과 다른 견해를 제시할 수 없는가? 신학자는 자신이 속한 교단의 전통과 신학을 분명히 소개하고 이를 강조해야 하지만, 때로는 이를 신학적으로 검증하고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한다.
6. 교단 신학은 어떻게 수정, 발전할 수 있는가? 만약 신학자가 자신의 교단의 신학 안에서 영원히 머물러 있거나 갇혀 있다면, 신학의 오류와 수정, 발전은 영원히 기약할 수 없다.
7. 과학적 사실로 확인된 진화 현상을 부정해도 좋은가? 비록 진화론도 계속 수정되고 보완되고 있지만, 진화라는 현상 자체는 더는 논박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러므로 신학자는 무신론적 진화론은 부인해야 하지만, 계속적 창조론과 섭리론에 근거하여 현대의 진화론과 부단히 대화해야 하며,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세상을 향해 효과적으로 선교하며, 당대의 세계관 속에서 기독교를 적절히 변증할 수 있겠는가? 이미 성서 안에도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창조론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신건 은퇴교수(서울신대 조직신학)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