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 기고문] 통일삭제 한조수교 내란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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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12.3 내란 사태에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똑똑하게 목격했다. |
윤석열 파면이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입니다. 지난 12.3 내란사태 이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평화통일분야 사회선교사로서 내란종식을 위해 여러 실천을 하는 가운데 정리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내란사태로 인해 제 스스로가 커다란 충격을 받고 제 선교분야인 ‘평화통일’ 문제에 대해 180도로 인식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내란정국에서 정리한 제 생각을 12자 구호로 말씀드리면 ‘통일삭제 한조수교 내란종식’입니다.
3개의 구호를 풀어서 말씀드리면, ‘통일을 삭제하고,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사이에 항구적인 평화관계, 즉 국교를 수립해야 영구적인 내란종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제까지 ‘통일’운동에 앞장서왔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사회선교사로서 ‘통일을 삭제하자’는 말씀을 드리기가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변화된 정세 속에서 정확한 대응을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는 판단으로 기고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통일삭제
이번 내란의 주범들은 ‘통일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명기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조선의 질서와 체제를 부정하는 전단을 실은 무인기를 평양 상공으로 보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기에 자국의 영공인 평양 상공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것은 이들에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내란세력’은 ‘통일세력’이기도 합니다.
헌법의 이름으로 외환을 유치하고 내란을 획책하는 이런 키메라 같은 의식의 착종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내란세력’은 헌법에 명시된 ‘통일’을 ‘흡수통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보수정당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제3조 영토조항과 제4조 통일조항을 모두 ‘흡수통일’의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박근혜의 ‘통일대박’이나 김건희의 ‘통일대통령’은 ‘흡수통일’이라는 썩은 토양에 뿌리박은 한 나무의 두 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흡수통일’ 조항이 버젓이 박혀 있는 한, ‘통일’을 빌미로 ‘전쟁’을 획책하고 ‘내란’을 일으키려는 세력의 준동을 근원적으로 제거하지 못합니다.
2024년 벽두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였으며 동족관계를 청산하고 통일을 삭제하였습니다. 조선은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하였는데, 탑의 높이는 61.5미터였습니다. 6.15공동성명을 포함하여 ‘통일’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깡그리 ‘삭제’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의지를 표출한 것입니다. 조선이 이러한 조치를 취한 이유는 지난 80년간 ‘대한민국’ 정부가 극보수, 중도민주 정권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흡수통일’을 지향해왔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의 민중들이 염원했던 통일은 ‘상대인 조선을 국가실체로 인정하는 통일’이었습니다. 흡수통일의 망상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를 인정하는 민간의 통일운동을 정죄해왔습니다. 통일에는 상대가 있습니다. 이제 그 상대인 조선이 통일을 삭제하였습니다. 조선이 삭제한 통일을 한국이 계속 불러내려는 시도는 스토킹에 해당합니다. 부적절할 뿐더러 유효하지도 않습니다. 한때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담아내었던 ‘통일’이라는 개념은 이제 너무도 오염되어 도저히 고쳐 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조수교
‘조국통일’을 삭제한 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한조수교’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한조수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실에서 정치적으로 폐기된 ‘통일’보다는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한반도 평화체제가 ‘한조수교’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적 실체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어야 ‘정상적인 국가관계’가 성립되고 ‘한반도 평화’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한조수교’를 위해서는 선행공정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조미(조선-미국) 평화협정 체결’이 있어야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에 지속되고 있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군사주권을 미합중국이 점유하고 있는 조건에서 미국이 조선과의 전쟁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조선과의 수교를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조수교’를 위해서는 ‘조미 평화협정 체결’을 강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평화협정과 병행하여 ‘조미수교’가 있어야 합니다. ‘적대관계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은 양국 간 ‘수교’로 이어져 양국 간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됩니다. 대한민국의 군사주권을 미합중국이 점유하여 대한민국의 온전한 주권행사를 제약하고 있는 조건에서 조선과 미국 간 수교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조선과 미국의 관계가 완전하게 정상화되는 ‘조미수교’의 결과로 대한민국이 주권을 온전히 회복하여야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등한 국가 대 국가의 수교 관계를 수립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한조 평화협정 체결’이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최대의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적 실체입니다. 한반도에 한국과 조선이라는 두 개의 국가적 실체가 존재하고, 두 국가 간에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조건에서 ‘한조 평화협정 체결’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이번 내란세력의 외환유치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대한민국은 온전치 않은 작전권의 행사로도 충분히 한반도에서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조미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대한민국이 군사주권을 회복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기 때문에, ‘조미 평화협정’ 체결 과정과 병행하여 ‘한조 평화협정’ 체결도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번 내란에서 중요임무를 수행한 대한민국 군부 내 반란 가담자들을 완전히 가려내어 온전히 격리시키지 못한 조건에서 물 샐 틈 없는 ‘한조 평화협정’ 문안을 준비하여 ‘불가침’을 못 박고 내란세력의 2차 준동을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한국과 조선 사이에 국교 수립 시 전제되어야 할 원칙은 ‘상대방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인정’입니다. ‘영토와 주권의 인정’은 유엔에 가입한 모든 국가들이 지켜야 할 원칙이기도 합니다.
‘한조수교’가 이루어지려면 대한민국은 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에 대한 야욕’을 포기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내정간섭의 욕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욕심은 헌법의 보장 아래 대한민국이 마음껏 키워왔던 터라 갑자기 내려놓기는 힘들 것입니다. 지금부터 꾸준히 차근차근 마음공부를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내정간섭 욕구의 첫자리를 다투는 두 가지가 ‘수령제’와 ‘핵무기’입니다. ‘수령제’는 조선의 내정이 운영되는 ‘정치체제’인 동시에 조선의 국가신앙인 ‘수령신앙’의 근간입니다. ‘한국’이 ‘조선’과 ‘수교’하게 되면 ‘수령제’에 대한 비방을 멈추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일본국’의 ‘천황제’를 찬성해서 1965년에 수교한 것도 아니며, 한일수교 이후에도 일본의 천황제를 두고 비방한 적이 없습니다. 같은 이치로 ‘조선’을 대하면 됩니다.
‘핵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의 핵포기를 조건으로 걸지 않았으며, 한중수교 이후로도 중국의 핵무기를 두고 시비한 적이 없습니다. 핵무력을 완성한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두고 핵포기를 수교의 조건으로 거는 것은 수교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에 다름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의 핵을 제쳐두고 유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에 민감한 것은 조선의 핵이 중국의 핵보다 위력해서가 아닙니다. 중국과는 ‘우호관계’를 맺고 있지만 조선과는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과 조선이 교전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조선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교전상태를 끝장내고 한조수교를 성사시켜야 상시적인 ‘핵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조수교’가 아니고서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방도가 없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강점했던 불구대천지 원수 ‘일본국’과도 수교했고, 한국전쟁에서 맞서 싸웠던 ‘중화인민공화국’과도 수교했고, 월남전에 파병 나가 싸웠던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과도 수교했습니다. ‘평화’가 정상이고 ‘전쟁’은 비정상입니다. ‘한조수교’가 정상이고 ‘교전관계’가 비정상입니다.
내란종식
내란의 영구적 종식의 방도는 작금의 12.3 내란사태를 종결짓는 것만이 아니라, 향후로도 있을 수 있는 내란의 싹을 대한민국에서 완전하게 불가역적으로 도려내는데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 제4조가 살아있고, 그 조항들에 명시된 흡수‘통일’에 영감을 받는 야심가들이 등장하게 되면 외환유치를 동반한 내란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헌법 3,4조에 명시된 종류의 탐욕스럽고도 이미 현실에서 폐기되어버린 흡수‘통일’ 조항을 완전히 ‘삭제’해야 내란세력의 재등장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12.3 내란사태도 민주시민들이 막아냈듯이 영구적 내란종식을 위해서도 민주시민들이 나서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또아리 틀고 있는 흡수‘통일’의 망령은 헌법 조항이 개정되더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항개정’보다 ‘의식개혁’이 필요합니다. 민주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한조수교’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져야 비로소 ‘내란영구종식’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방향을 전환할 때
지난 80년간 이어온 대한민국의 통일운동 진영이 ‘통일을 삭제하고 한조국교 수립하여 한조평화 실현하자’는 저의 주장을 단번에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통일운동’에 나섰던 그 치열함과 용감함이 있어야만 ‘통일’을 삭제하고 ‘한조수교’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변화로 실천과제가 변동되었으나 상대를 사랑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그 마음만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포함하여 개신교의 각 교단들, 그리고 NCCK에서 제 제안을 깊이 검토해주시길 요청 드립니다. ‘조국통일’을 ‘한조수교’로, ‘평화통일위원회’를 ‘한조평화위원회’로, ‘화해통일위원회’를 ‘한조평화화해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를 ‘통일’에서 ‘한조수교’로 재설정하는 방향전환을 고려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절실한 마음들이 모여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 교류, 화해, 협력으로 나아가는 길에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시는 사랑의 주님께서 함께 하시길 간절히 빕니다.
정대일 박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