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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탄생과 죽음: 신의 자유 2

기사승인 2025.03.24  03: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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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니미의 신 이야기 (12)

▲ 사람의 나고 사라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억울한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신의 문제를 직면하게 한다. ⓒGetty Images

신의 자유는 인간의 기도나 제물을 받아주거나 거절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극명하게 신의 자유를 표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거나 걷어가는 데에도 나타난다. 어느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거나,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 신은 자유롭게 생명을 부여하고, 자유롭게 생명을 거두시기도 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

인간의 살고 죽음이 신에게 달려있다는 고백이다. 물론 신에게 기도를 열심히 해서 아이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겠지만, 구약성서의 삼손이나 솔로몬, 신약성서의 예수나 세례요한의 경우,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천사가 사람에게 날아와 아이의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아이의 출생을 예고해 준다. 아이의 탄생은 신의 선처이다.

삼손과 예수의 경우, 하나님의 천사가 어머니 될 사람에게 찾아와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예고해준다. 즉 수태고지가 있다. 다윗이 밧세바를 불의한 방법으로 취하여 생긴 아이는 죽게 하시고, 대신 솔로몬을 낳게 하시는 것도 신의 자유로운 행위이다. 세례요한의 경우 부모의 늦은 나이에 낳게 되지만, 그 부모가 오랫동안 자녀를 위한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처럼 사람이 탄생하는 것은 신의 자유에 의한 것이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는 표현을 쓰는데, 구약성서에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표현도 있지만, 생명이 신에게 달렸으므로, 신에게서 왔다가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뜻도 된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신의 소관이라는 인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하는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도 죽은 이후 하늘, 즉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고, 그를 믿는 자들도 결국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언급한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자유하신 신의 소관이라고 할 때, 생기는 질문들이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신이 부여한 과제를 잘 수행하고 노쇠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304명의 청소년의 죽음, 이태원에서 인파에 떠밀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그리고 러시아-아프간 간의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 이스라엘의 맹폭으로 인해 사망한 팔레스타인사람들의 죽음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신이 그들의 생명을 가져갔다고 하기엔 너무나 억울하고 신의 뜻에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도 인간인 이상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엔 이의를 제기할 수 업다.

그러나 자살 왕국 한국에서 자살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태어나는 것은 내 맘대로 못했지만, 죽는 것만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잖아요.” 이런 말 배후에는 자살로써 신적인 일을 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학자인 필자는 “신을 닮은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을 하게 된다. 신과 가장 유사한 인간에겐 자유도 가장 소중한 가치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으로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김판임 교수(한신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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