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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70평의 성전을 7년 동안 지었다?

기사승인 2021.01.07  16: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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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역사 알기 ⒄

솔로몬 성전

남왕국과 북왕국의 역사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열왕기」에 나타난 예루살렘 성전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우리가 성전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지만, 막상 성전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예루살렘 성전이 상당히 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목사님들께서는 지금 남아있는 성전 터를 보고 오셔서 예루살렘 성전이 이렇게 생겼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 솔로몬 성전(1차)과 헤롯 성전(2차) 비교 ⓒ로고스 바이블 소프트웨어

위의 그림은 로고스 바이블에서 제공하고 있는 1차 성전(솔로몬 성전)과 2차 성전(헤롯 성전) 비교 그림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루살렘 성전은 주전 19-20년경 ‘헤롯 대왕’이 증축한 성전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성전은 ‘헤롯 대왕’의 성전만큼 크고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왜소해 보일 정도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열왕기상 6장 38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7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래에서 대략적인 크기를 살펴보게 되겠지만, 약 70평의 네모반듯한 건물 하나를 짓는데, 7년이 걸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하나씩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에 의해 건축됩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 이야기와 성전의 형태에 관한 진술은 「열왕기상 6-8장」에 나타납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대략적인 모형도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 솔로몬 성전 평면도 ⓒ위키피디아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사용된 단위인 ‘규빗’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긴 규빗(52.5cm)과 짧은 규빗(44.7cm)입니다. 지난 글에서 보았던 ‘히스기야 터널’에서 발견된 비문 내용을 보면, ‘히스기야’ 시절에는 짧은 규빗 44.7cm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단위가 ‘솔로몬’ 시절에도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모형이기 때문에 짧은 규빗을 소수점에서 반올림하여 45cm로 계산한 것입니다.

위 그림은 잘못된 부분, 알 수 없는 부분,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잘못된 부분은 아래에 있는 평면도를 봤을 때, 위아래로 나 있는 출구입니다. 「열왕기상 6장 5-8절」에는 성소를 둘러싼 다락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문은 성전 ‘오른쪽’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때 ‘오른쪽’도 문제인 표현입니다. ‘오른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예마니(ימני)’는 방위를 뜻할 때는 ‘남쪽’을 의미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오른쪽’, ‘왼쪽’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기준으로 합니다. ‘예마니’가 남쪽이라는 뜻이라면 다락의 문은 아래쪽에 표시된 문만 있던 것입니다. 만약 성전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성전을 설명하면서 ‘예마니’를 썼다면 그건 오른쪽인 북쪽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 문이 맞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열왕기상 6장」에서 다락의 문은 한 방향으로 나 있었다고 말하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신앙적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점은 또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이 잘못된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열왕기상 6장 8절」에서 ‘중층 골방의 문은’이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중층(티콘, תיכון)은 아래층과 윗층이 아닌 층을 의미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 따른다면, 성전 다락으로 들어가는 문은 2층에만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1층에 문을 만들지 않고 2층에만 문을 만드는 것이 어떤 신앙적 이유가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중층’을 ‘중앙’으로 해석합니다. 다락의 문은 가운데에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중앙에 문이 있었다고 번역하는 편이 옳다고 봅니다. 따라서 위의 그림은 잘못되었습니다. 문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은 ‘놋쇠 바다’의 위치입니다. 「열왕기상 7장 23-39절」에는 놋쇠 바다와 놋 받침, 물두멍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타납니다. 이는 성전 전체의 설계도보다 절수는 짧지만, 더 구체적인 설명이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놓인 위치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놋쇠 바다가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 우리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감성적으로 성전 정문 앞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성전 그림에서는 성전 정문에서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표시합니다.

위 그림에서 빠진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제단’의 위치입니다. 제단은 조금 애매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열왕기상 8장 64절」을 보면, ‘솔로몬’이 ‘성전 앞뜰 가운데’에서 제사를 지내고 그 장소를 거룩하게 구별하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에 따라 생각한다면, 제단은 성전 정문 앞에 있었습니다. 이는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남왕국 ‘아하스’가 제단의 위치를 바꿨다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제단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솔로몬 성전 상상도 ⓒESV Bible

위의 그림은 ESV(English Standard Version) 성경에 삽입된 성전 조감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한눈에 이해하기 쉽게 그려놓긴 했지만, 제단이 성전 정문 앞 가운데에 위치해 있지 않고, 오른쪽 위쪽의 평면도를 보면, 위아래로 다락 출입구가 그려진 모습을 보았을 때, 「열왕기상 6장」에 맞지 않는 조감도입니다.

솔로몬 이후 성전의 모습

‘솔로몬’ 이후 성전에 물리적 영향을 끼친 왕은 몇 명 등장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남왕국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남왕국 왕들입니다. 「열왕기상」에는 성전에 있는 보물을 이웃 국가에 바친 왕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성전 건물의 형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솔로몬’ 이후 성전과 가장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왕은 ‘요아스’입니다. ‘예후’의 반란으로 남북왕국 왕들이 모두 죽었던 시기, 남왕국은 북왕국 왕 ‘아합’의 딸이자, 남왕국 왕 ‘여호람’의 아내이며, 남왕국 왕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가 통치하게 됩니다. 이는 ‘예후’의 혁명이 남왕국까지 미치지 못했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열왕기하 11장 1절」을 보면 남왕국 왕권을 잡은 ‘아달랴’는 남아있는 다윗의 자손들을 멸절시키는데, ‘아달랴’의 손자이자 ‘아하시야’의 아들인 ‘요아스’는 몇몇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11장 3절」에 따르면 ‘요아스’는 6년 동안 예루살렘 성전에 숨어서 살아갑니다.

성전에서 자라서인지 ‘요아스’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당시의 제사장 ‘여호야다’를 지원하였으며, 성전 보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점에 대해 제사장들을 문책하며 성전 보수를 제대로 진행하도록 규정을 세우기도 합니다(왕하12:4-16).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은 ‘요아스’가 7세일 때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지원했다고 말하기에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왕하11:17-21).

‘요아스’가 진행한 것은 성전 증축은 아니었습니다. 성전의 파손된 곳을 보수하는 일이었습니다(왕하12:5). 따라서 ‘요아스’ 시절에 성전의 형태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요아스’ 이야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서 살펴볼 부분은 「열왕기하 11장 11절」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에게 반역을 일으킬 때, 호위병을 ‘성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곁에 세웠다’고 말합니다. 오른쪽은 앞서 살펴봤던 ‘예마니’이고 왼쪽은 ‘쉐마알리(שׂמאלי)’입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북쪽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성경도 번역된 개역개정 성경과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학자들은 ‘북쪽과 남쪽에’로 번역하곤 합니다.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호위병을 둔 것이 아니라 북쪽과 남쪽에 호위병을 둔 것입니다. 왜 북쪽과 남쪽에만 호위병을 두었을까요? 성전 문이 북쪽과 남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전 동쪽에도 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어오시고 나가시는 문이기 때문에 성전 건축 이후로 열리지 않는 문입니다(겔11:1-25 참고). ‘여호야다’는 어린 ‘요아스’를 보호하기 위해 성전 북문과 남문에 호위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를 열심히 읽으신 분들이라면 여기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성전 문은 어디에 있었을까?’라는 점입니다.

▲ 성전 일러스트 ⓒ 『A History of All Nations from The Earliest Times』

위의 그림은 하버드 대학에서 1905년에 출간된 『A History of All Nations from The Earliest Times』에 실린 일러스트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성전에 외벽이 있고, 그 밖을 둘러싼 외벽이 또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성전 바로 바깥에 있는 벽 안쪽을 ‘성전뜰’, 그 바깥 외벽 안쪽은 ‘바깥뜰’이라고 써놓았지만, 「열왕기」에서 ‘안뜰’은 성전 건물 바로 옆을 둘러싼, 땅보다 한층 높은 곳이고, 나머지 부분이 ‘바깥뜰’입니다.

위의 첫 번째 그림에 있는 솔로몬 성전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계단이 두 개 있는데, 한 계단을 올라오면 ‘바깥뜰’이고 두 계단 올라오면 ‘안뜰’입니다. ‘안뜰’과 ‘바깥뜰’의 구분은 「열왕기」 뿐만 아니라 「에스겔 8-11장」에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위의 그림을 보았을 때, 성전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이 있고 그 벽에 문이 있습니다. 남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던 주전 586년 이 문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에서 이 문을 만들었다고 기록된 사람은 ‘요담’입니다. ‘요담’은 ‘요아스’의 증손자입니다. 「열왕기하」에 나타난 시간차만 봐도 100년이 넘습니다.

「열왕기하 15장 35절」을 보면 ‘요담’이 성전의 윗문을 건축했다고 나타납니다. 이때 ‘윗문’은 우리가 잘 아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사아르 베이트 아도나이 하엘리온(שׁער בית־יהוה העליון)’ 교회에서 ‘높이 계신 하나님’을 말할 때 쓰는 단어 ‘엘리욘’이 등장합니다. ‘엘리욘’은 ‘높다’는 뜻도 있지만, ‘위쪽’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윗문’이라고 번역됩니다. 이 ‘윗문’은 ‘북쪽에 있는 문’을 의미합니다.

또 ‘사아르(שׁער)’는 지붕이 없는 벽에 붙은 문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자면 ‘대문’을 뜻합니다. 지붕이 있는 건물에 붙어 있는 문은 보통 ‘페타흐(פתח)’를 사용합니다. 가끔 이 단어가 혼동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렇게 사용됩니다.

‘요담’이 건축했다고 말하는 이 문은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될 즈음에 분명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 20장 2절」에도 거의 똑같은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바스훌’에 의해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묶이게 됩니다. 이때 베냐민 문이 히브리어로 ‘사아르 빈야민 하엘리온(שׁער בנימן העליון)’입니다(겔9:2에도 같은 표현이 나타납니다).

이런 기록들 속에서 우리는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요담’이 벽을 만들고 문을 만든 것인지, 벽은 있었는데 ‘요담’ 때에야 문이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는 북문이 이미 있었는데 ‘요담’이 새로운 문을 만들었는지, 증축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동문은 닫힌 상태로 있었다면 서쪽은 절벽이기 때문에 문을 만들 수가 없고, 북쪽과 남쪽에 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남쪽은 왕궁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따라서 일반 백성이 성전 바깥뜰에 들어갈 수 있는 분은 북문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북문은 ‘요담’ 때에야 만들었다는 「열왕기」의 기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열왕기하 16장 18절」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로 번역되어 있는데, ‘낭실’ 자체가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낭실’이라는 말은 지금으로 보자면 현관문을 지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통로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출입구가 되는 통로가 ‘낭실’입니다.

전자의 ‘낭실’은 여러 가지 논쟁이 있습니다만, 통로보다는 가구의 일종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후자의 ‘낭실’은 왕궁과 성전을 연결하는 통로로 해석되는데, 위의 그림에서 본다면 성전 남쪽에 문이 있었고, 이 문은 왕궁에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통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하스’는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 Ⅲ세’의 눈치를 보며 왕궁에서 성전으로 통하는 통로를 봉해버렸다고 「열왕기」는 기록합니다. 만약 성전 북문이 ‘요담’ 때에 만들어졌다면 이전에는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왕궁을 통한 문인 남문과 하나님만이 들어가실 수 있는 동문밖에 없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모호하게 생겼고, 접근성도 좋지 않습니다. 심지어 목사인 제가 봤을 때, 성전에서 활동하는 제사장에게도 상당히 불친절한 구조입니다.

성전과 관련된 열왕기 평가

「열왕기」에는 ‘요아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성전을 보수했다고 말합니다. 이 세 사람은 열왕기 역사가에 의해 ‘좋은 왕’으로 평가받은 사람들입니다. 성전 북문을 건축한 ‘요담’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왕하15:34).

반면에 성전 리모델링을 시도했던 ‘아하스’와 성전에 각종 신상을 들여놓았던 ‘므낫세’는 똑같이 최악의 왕으로 선정됩니다. 두 사람 다 ‘이스라엘 왕의 행위를 따라 악을 행하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라는 설명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왕하16:3-4; 21:3-6).

앵커바이블 주석(Anchor Bible Commentary)에서 『열왕기하』를 적은 ‘코간(Mordechai Cogan)’은 ‘아하스’의 우상숭배는 당시 주변국에 퍼진 종교 현상을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열왕기하 16장 10-11절」에 나타난 ‘아하스’가 다메섹에 있는 제단의 구조와 양식을 예루살렘에 보내서 똑같이 만들게 했던 행위가 아시리아의 속국임을 보이기 위한 종속적 행위가 아니라 당시 주변국에 널리 퍼져있던 종교 방식을 받아드리려고 했던 문화 유입의 일종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 문화 유입일 수도 있지만, 열왕기 역사가는 이를 죄악이라고 말합니다.

‘아하스’의 영향으로 인해 변화된 성전의 모습도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Logos Bible과 ESV Bible이 제안한 성전 모형에서 ‘제단’은 모두 성전 정문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는 ‘아하스’가 아시리아에서 보고 온 새로운 제단을 성전 정문 앞에 두고 예전의 제단을 그보다 북쪽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아하스’의 제단은 ‘요시야’가 부숴버렸기 때문에 모형도에서 사려졌고(왕하23:12 참고), 본래 있었던 제단을 다시 옮겨놨다는 말이 없기 때문에 성전 정문 앞이 아닌 약간 북쪽에 제단이 놓인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전은 ‘요시야’ 이후 완성형에 가까운 성전입니다. 이 성전의 모형은 「에스겔 8-11장」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열왕기」에 따르면 이런 성전의 모습은 ‘요아스’ 이후로 보수되고 증축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요아스’ 이전까지의 성전은 너무나 불완전합니다. ‘솔로몬’이 7년이나 들여서 건축하였다는 그 성전은 모든 면에서 불완전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조심스러운 추측을 하게 됩니다. ‘성전 보수’나 ‘성전 증축’이 실제 역사에 기록된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이미 완성되었지만, 「열왕기」의 내용이 성전이 점차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성전에 관한 내용은 열왕기 역사가의 저작이 아니라 후대 제사장 집단의 첨가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제사장 집단의 첨가라기보다 역사가 집단이 왕에 대해 평가할 때, 자신들이 좋은 왕이라고 평가하는 왕은 성전 완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기록하였고, 나쁜 왕이라고 평가하는 왕은 완성된 성전의 모습을 망가뜨렸다고 기록하였다고 봅니다. 왕에 대한 평가와 성전에 관한 기록은 거의 일치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와 정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 그 왕들이 성전을 보수하고 증축했기 때문에 그 왕들은 좋은 왕이라고 평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기에 예루살렘 성전은 왜 존재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완전한 상태로 보이기 때문에 저는 정반대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예루살렘 성전 모형은 성경공부 때에 사용하려고 준비하다가 1년 가까이 준비만 하게 된 내용입니다. 성전의 마지막 형태만을 전해드리는 일은 쉽지만, 성전이 왜 이렇게 만들어져 왔는지, 누가 이렇게 했는지, 실제로 이런 건축들이 이루어졌는지를 따져보면 어려운 점이 참 많습니다.

어쩌면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 하나하나에도 역사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솔로몬’이 건축했다는 성전 다락은 왜 문이 한쪽에만 있었는지, 이 문을 왜 중층(2층)에 만들었다고 기록했는지, 여기에 어떤 신앙적 의미가 담겨있는지 더 연구해보려고 합니다만 이 글은 여기에서 마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형태에 관해서는 이후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 잠깐씩만 더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솔로몬’에 대해 다룰 때에도 이번 글과 같이 구체적인 성전 이야기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남왕국의 ‘요담’, ‘아하스’, 북왕국의 ‘베가’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이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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