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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게로 오라

기사승인 2021.04.17  14: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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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이야기 8

ⓒ김경훈 작가

내가 어릴 때 기억이지만 동네 대중 목욕탕에 가면 탈의실 벽에 빨간 글씨로 “피부병이 있거나 정신 질환자는 입욕을 삼가해 주십시오!” 라고 써 있는 안내문을 봤다.  내 돈 내고도 마음대로 목욕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문구임에 틀림 없다.

요즘에도 그런 안내문이 있는지는 몰라도 세상에는 내가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그렇지 못한 곳이 있다. 그뿐인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은 평민은 절대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계급 사회는 아니지만 높으신 분을 함부로 만나자고 했다가는 오히려 면박만 당하기 쉬우니 애당초 포기 하고 산다.

우울증을 앓다 보면 누가 불러도 가기 싫고 사람 만나는것이 제일 귀찮고 짜증스러워 아예 문 걸어 잠그고 산다.  하지만 의사들은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대인 관계를 원활하게 해야 된다고 조언을 하지만 환자들 대부분은 정 반대 생활을 한다. 제일 가까운 가족의 부름도 듣기 싫고 심지어 자식의 이름도 부르기 싫어지는 아주 무서운 병이다.

그 병을 앓았던 나의 그때 심정은 솔직히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불러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몇 해를 고생하다가 어느날 저녁 “이젠 그만 헤매이고 나에게 오라!” 라는 조용한 음성을 듣고  “나 이제 옵니다!” 하면서 주님께 돌아왔던 경험이 있기에 오늘도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찬송이 저절로 나온다.

윌 톰슨(Will Lamartine Thompson, 1847-1909)의 작곡 작사인 이 찬송”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예배때 목청 돋구어 부르기는 하지만 정작 예수님의 부르시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으니 이게 문제다.  세상을 향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커녕 메아리도 없는 주님의 부름은 참으로 허무하기만 하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손해라고 판단 되면 가차없이 돌아서는게 세상 인심 아니던가!  찬송만 열심하 불렀지 “어서 오라!” 는 소리는 못 듣고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고생이란 고생 죄다 경험 한 뒤에 세상 인심  나쁘다고 하지말고 지금 이라도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라고 부르는 주님의 소리에 얼른 가는게 현명한 행동이다.

공연히 어른이 부르실 때 대답도 않다가 매 맞고 울면서 갈게 아니고 지금 “네!” 하고 가는 엉덩이 가벼운 행동이 훨씬 슬기로운 주의 자녀로 사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실패 했다고 모두가 하나님의 채찍이요 매라고 여기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내 스스로  “이건 매 다!” 라고 생각이 들면 어서 속히 오라고 부르는 소리라고 여기고 주님께 안기는것이 좋다. 살다보니 그렇더라.

매도 맞아 본 사람이 안다.  맞기 전에 부르시는 소리에 얼른 그 품에 안기는게 나와 가족을 위한 일 이라는것을 일찍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이 앞서는 아침이다.

ⓒ김경훈 작가

김경훈 작가(사진·십자가 목공예) kimkh530@g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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