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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기둥 불기둥만 바라지 맙시다

기사승인 2024.04.28  04: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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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강해 11(출애굽기 13:21-22)

▲ Paul Hardy, 「The Pillar of Fire」 (The Art Bible, 1896) ⓒWikipedia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이 내리고 나서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것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왜 구원받았을까요? 무엇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요? 무엇을 했길래, 구원받을 만한 무슨 삶을 살았길래 구원받았을까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구원받기 이전에도 구원받은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원망하기만 하고, 하나님 앞에 투정 부리기만 합니다. 그런데도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에 관한 한 우리의 공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뭘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잘한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주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 주님 앞에 아뢰었다는 것, 그것 하나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주님 앞에 기도하고, 탄원한 것밖에 없습니다. 비록 그게 원망일지라도 하나님께 아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공로가 있다면 저는 그것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부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어요. 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구원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사실 구원받은 그 사람들이 보여준 믿음이랄 게 별거 없습니다. 대단한 믿음이랄 게 없습니다. 30년, 40년 교회를 다녔습니까? 율법에 충실했습니까? 헌신을 했나요? 봉사를 했나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날 그 시간에 예수님 앞에 나와서 엎드린 것, 그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너의 믿음이 너를 구했다’라고 구원해 주십니다.

단 하나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기도한 것, 그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는 그걸로 족합니다. 하나님은 뭐가 필요하신 분 아니에요. 하나님은 뭐가 부족하신 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쉬울 것 하나도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을 보시면서, ‘그래, 생명교회 너희들, 나한테 뭘 얼마나 잘하나. 보자.’ 그렇게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 나를 흡족하게 했으니 은혜 내려줘야지’ 하시거나, ‘오늘은 생명교회 나한테 뭐 제대로 하는 게 없네. 그러면 이번 주는 은혜 없어’ 그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그것으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예요. ‘다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만 해라. 너의 삶을 내 앞에 솔직히 말해봐라. 너의 마음을 내 앞에 내어놓아 봐라. 그리고 나랑 같이 얘기하자. 너 힘든 것 나와 이야기하자. 너 아픈 것, 억울한 것, 원망스러운 것, 딴 데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 말고, 나랑 이야기하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 단 하나입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이 드디어 광야길로 나섭니다. 광야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평가를 오늘 출애굽기 13장 21절 22절 말씀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이 어떤 길입니까? 어떻게 걸어갔습니까? 힘들어서 고생고생하면서 겨우겨우 걸어갔습니까? 온갖 고난 다 하면서 걸어갔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여 주셨다. 그들의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다.’ 이것이 광야길에 대한 출애굽기의 한 줄 요약입니다. 힘들어 죽겠다 하면서 겨우겨우 간 것이 아니라, 죽을 둥 살 둥 고생만 하면서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그 인도하심을 따라 갔다는 것입니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고백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얼 주셨나? 하나님은 나를 기쁘게 해주셨나? 나를 즐겁게 해주셨나? 행복하게 해주셨나?’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출애굽기의 한 줄을 이렇게 썼을지도 모릅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땅으로 가긴 갔는데 고생고생만 했다.’

그러나 오늘 출애굽기의 고백은 그 광야길이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셨다’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필요할 때만, 내가 간구할 때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잠깐 찾아오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그럼 하나님 언제 쉬십니까? 낮에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다가도 사람들 쉴 때 하나님도 같이 쉬셔야지요. 그렇게 휴식 취하고 같이 가야지요. 그런데 아니에요. 하나님은 밤에도 인도하셨대요. 하나님 도대체 언제 쉬셔요? 하나님은 안 쉬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할 때만 ‘하나님 내 곁에 계시지’하고 고백해 놓고는, 세상에 나가서 내 삶을 살 때는 하나님 어디 계신지 관심이 없어요. 상관하지도 않아요. 그러다가 필요할 때 주님 곁으로 슬며시 와서는 ‘주여, 주여’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신다고요? 내가 하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가 하나님께 등돌리고 있는데도, 밤이나 낮이나 쉬지도 않으시고 내 곁에 계신다는 거예요. 그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의미입니다. 그것도 멀리 계신 게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지키신다는 거예요. 필요할 때 잠깐 오셔서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 앞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하죠?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고 계신다’고 합니다. 요즘은 안 그렇습니다만 예전에는 이웃사촌끼리 숟가락 몇 개 젓가락 몇 개 다 안다 그랬습니다. 오늘 아침에 반찬 뭐 해 먹었는지 다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집집마다 몰래카메라 설치해 놓았나요? 아닙니다. 바로 곁에 있으니까 아는 겁니다. 내 곁에서 나랑 같이 사니까, 숟가락 몇 개 젓가락 몇 개 오늘 반찬 뭐 해 먹었는지 아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신 바 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저기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내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내 곁에 계셔서, 그래서 아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무슨 생각하고, 하나님이 지금 어떤 마음이고, 하나님 마음에 어떤 고민이 있고,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계획하고 계시고, 하나님이 오늘 어떤 일이 있어서 맘 아팠고, 어떤 일이 있어서 기뻤고, 어떤 일이 있어서 속상했고 …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시나요? 속속들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시나요?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데, 우리는 하나님 곁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내 곁에 와주세요’ 하고 기도하면서도, 내가 하나님 곁으로 갈 생각은 안 합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를 돌봐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서, ‘나도 그렇게 하나님 곁에 있겠습니다’ 하는 결단과 각오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주님 곁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 곁으로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곁으로 간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친목만 하면 되고, 이야기만 나누면 되는 게 아니라, 삶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호해야 되고, 인도해야 되고, 앞 길을 보여줘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은 그냥 계시는 게 아니에요. 우연히 전철 옆자리에 같이 앉은 사람은, 길게는 한 두 시간 같이 앉아서 가지만, 나와 나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옆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붙들고 내 삶을 주장하고 나를 위로해주고 내 삶을 이끌어주고 나에게 힘주시고 그렇게 곁에 계신 것입니다.

바로 앞길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신 방식입니다. 지혜를 주시고, 지식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비전을 주십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일러주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같이 가자고 하십니다. 21절 말씀을 보면 ‘앞서가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하나님이 앞서가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가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봤지? 괜찮아. 너도 이렇게 가자. 그런데 좀 힘들지? 내가 같이 짊어져 줄게. 어렵지? 내가 손잡아 줄게. 무서워? 걱정하지 마.’

그러면 그렇게 계신 주님과 나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중요한 것은 내 삶의 방향이에요. 내 삶의 목표예요. 내가 잘 살기 위해 내 욕심에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21절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주시는 이유가 있어요. ‘그들이 밤낮으로 행군할 수 있도록.’

행군한다는 것은 그냥 걸어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행군은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전쟁과도 같은 이 삶에서 대장되시는 하나님께서 가라 하는 목표를 향해서 가는 것을 행군이라고 표현합니다. 전투에 나간 군인이 어디를 향해 갑니까? 대장이 가라 하는 곳으로 갑니다. 내 편한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저기 가면 먹을 게 많이 있네. 우리 저기 가서 먹고 가자. 쉬었다 가자.’ 그러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도 힘들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대장께서 가라 하면 그 길로 갑니다. 그게 행군입니다.

그렇게 걸어갈 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땅으로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아라’ 하는 길로 살아가도록…

이 목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세요’ 하고 암만 기도해도 소용없습니다. ‘내 맘대로 살 건데, 내가 내 맘대로 갈 건데, 그 길에 구름기둥과 블기둥으로 나를 보호해 주세요.’ 이런 기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건 간구가 아닙니다. 원하는 것 주님 앞에 다 쏟아내라고, 무슨 말이든 해도 된다고 그랬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는 듣는 것입니다. 진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과정입니다. 기도할 것이 없으면 원망이라도 해야된다고들 하지만, 원망이라도 주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원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진짜 나의 마음이 ‘내 맘대로 살래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잘 안 됩니까?’ 하는 그런 원망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원망이라도 주님 앞에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 원망이 차차 감사로 바뀌기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진짜 기도는 ‘주님, 내 갈 길을 보여주십시오. 내 갈 길을 알려주십시오. 내 갈 길을 정해주십시오.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고 조용히 듣는 것입니다. 들은 다음에 ‘알겠습니다. 그 길로 가보겠습니다’ 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로 걸어가면서 ‘힘듭니다. 가라고 하셨으면 하나님이 좀 책임져 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가라고 하셨으면 잘 걸어갈 수 있게 밥도 먹여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창도 주시고, 방패도 주시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원망을 그제서야 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구름 기둥도 있고 그때 비로소 불기둥도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앞에 믿음을 올바르게 고백하는 사람들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악한 귀신들도 주님 앞에 나옵니다. 악한 귀신도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자기의 소원을 이야기합니다.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내 가는 길을 막지 마시오. 난 내 갈 길 갈 건데, 나 방해하지 마요!’ 예수님 앞에 그렇게 얘기합니다. 성경에는 악한 귀신들이 하는 말을 험하게 적어 놓았을 분이지, 내용을 그대로 놓고 표현만 바꾸면 그것도 기도입니다. 어리석은 기도입니다. ‘나 내 맘대로 살고 싶은데 내 길을 왜 막습니까? 내 길에 먹구름 걷어주고, 내 길에 구름기둥 불기둥 주시오!’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할까요? 무턱대고 ‘주여, 나에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하는 그런 기도 말구요. 구름기둥 불기둥은 하나님께 맡기고요. ‘주님, 밤낮으로 행군 잘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일러주신 곳이 어딘지, 내 행군의 방향을 일러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방향을 일러주셨을 때는 ‘열심히 가보겠습니다.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딴 길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겠습니다. 길 잃지 않겠습니다.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넘어지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길 가는데 배고픕니다.’ 그때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길 가는데 목마릅니다.’ 그러면 반석에서 물이 터져나오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길 가는데 발이 부르틉니다.’ 그럴 때 신발 신겨 주십니다. ‘그 길 가는데 적들이 가로막습니다’. 그때 이기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길을 갈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불기둥을 주님의 구름 기둥을 만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 앞에 온전히 탄원하고 그러기 위해 주님 앞에 온전히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해 주시고, 그 기도를 하나님이 어여삐 여겨주시고 ‘그래, 너는 내 백성이지. 내가 가라 한 길로 잘 행군하고 있지. 나의 군사지. 내가 너의 주가 되어서 만군의 주가 되어서 너의 모든 삶을 인도해 줘야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그렇게 결심하시는, 그렇게 주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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