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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

기사승인 2024.05.12  04: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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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강해 13(신명기 6:4-7)

▲ Ivan Aivazovsky, 「Passage of the Jews through the Red Sea」 (1891) ⓒWikipedia

이스라엘의 구원이 닥쳐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갑자기 닥쳐온 구원입니다. 모세가 아론이 와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이다’ 말해줬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 믿지 못했어요. 오히려 당신들 때문에 일이 힘들어졌다 원망만 했지요.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를 휩쓸고 있는데도 이것을 구원의 징조라 생각하지 못해요. 오히려 ‘아이고, 이러다 우리도 다 죽는 것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기만 했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신다. 우리가 이 모진 고통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의 땅으로 간다’ 하는 확신 가지고서 구원을 기다렸던 게 아니에요. 그렇게 갑자기 출애굽하게 된 것입니다. 급하게 보따리를 싸고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길을 떠납니다.

그렇게 나와서 홍해를 맞닥뜨리고 뒤쫓아오는 전차 무대를 맞닥뜨립니다. 과연 이런 백성들이, 과연 이런 수준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제대로 감사할 수 있을까요? 신앙으로 똘똘 뭉쳐서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아무리 어떤 어려움이 나에게 닥쳐도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집트에게 지금 세상에 내리고 있는 이 재앙은 하나님이 내리신 것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주관하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구원 얻을 것 확신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도 흔들릴 법한 세상에서 제대로 된 신앙 없는 이집트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제대로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서 홍해 바다를 가르실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셔요. “너희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내가 구원하는 이 구원을 바라봐라.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잘 보아라” 합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니까 너희들 나에게 감사해라’ 그러지도 않습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니까 너희들도 구원에 합당한 뭔가를 나한테 바쳐라’ 그러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바다를 가르시면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하는지 똑똑히 봐라. 제대로 기억해라.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렇게 출애굽한 백성들은 이후 광야를 광야 생활을 해나가면서 여러 가지 신앙의 풍파를 겪지만 불평도 하고 원망도 하고 심지어는 금송아지도 만들고 그러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모든 그 모든 신앙의 중심에는 바다를 가르신 주님 체험 신앙 체험이 있는 것이죠.

자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냐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백성들, 홍해 바다를 가르신 주님을 직접 두 눈으로 잘 본 사람들 사람들도 때로는 하나님께 등 돌리고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때로는 금송아지도 만들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출애굽? 그게 뭐야? 이집트 종살이? 난 모르겠어. 홍해바다를 갈랐다고? 에이, 진짜야? 전차 부대를 이겨냈다고? 말도 안 돼! 난 모르겠는데!’ 이런 시절이 곧 닥쳐온다는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문제는 기억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거죠. 어떻게 해야 됩니까? 신앙은 기억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잊지 않고 있어야 돼요. 무엇을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이 모든 삶을 주장하신다!’ 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시편 1편을 읽어보면 ‘복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묻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이죠?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그럴듯한 집에 살아야 복 있는 사람입니까? 외제차 몰고 다녀야 복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시편의 시인은 분명히 이야기해요.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성경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우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 모든 순간순간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고 계시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고 계시지. 이게 하나님의 은혜지.’ 이 고백을 내 삶의 모든 순간순간에서 내 머릿속 맨 앞에다가 두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을 보면 주님의 말씀을 내 길에 등불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맨 앞에 주님의 말씀을 놓고 간다는 겁니다. 모든 일 앞에 주님의 말씀을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의 핵심이에요.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헌금 잘하고 기도 잘하고 찬양 잘하고…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아니구요. 형편이 어려워서 헌금도 제 때 하지 못하고, 살림살이가 나를 놓아주지 않아서 주일 성수도 제대로 못 하고 일하러 나가야 되고, 기도하는 법도 잘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앞에서 마이크 앞에 서면 덜덜 떨리기만 하고, 찬양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그저 한숨만 나오는… 그러나 모든 순간순간들 앞에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사람. 그 모든 순간순간들 앞에 ‘주님,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 나를 인도해 주십시오’ 그렇게 엎드려지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 온전히 잘 믿는 사람이에요.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 말입니다.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백성들은 한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노래를 만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신명기 6장입니다만, 출애굽기 15장을 읽어야 할 순서였어요. 출애굽기 15장은 바로 모세의 노래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주님을 찬송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채워 넣으셨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그를 찬송한다. 주님이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 주님은 용사이시니 바로의 병거와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빼어난 장교들이 홍해에 잠겼다. 깊은 물이 그들을 덮치니 깊은 바다로 돌처럼 잠겼다. 주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의 오른손이 원수를 쳐부수셨습니다.”

노래는 그냥 한번 부르고 끝나는 행위가 아니에요. 모세의 노래는 기억의 방법이에요. 모세가 만든 이 노래를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불렀다는 거예요. 한 번 부르고 끝난 게 아니라 계속 불렀다는 거예요. 홍해 바다 건넌 사람들만 부른 게 아니라 자손의 자손들까지 계속 가르쳐 불렀다는 거예요. ‘이 노래를 불러라. 이게 우리의 노래다. 이게 하나님을 기억하는 이야기다. 그 내용을 잊지 말아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 것을 잊지 말아라’ 그렇게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의 말씀이 바로 신명기 6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함께 읽었죠. “쉐마 이스라엘. 들어라 이스라엘아!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다. 주님은 오직 한 분이다. 그러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쳐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하나님인지,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구원을 주셨는지, 내가 살아가는 삶의 순간순간들에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셨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인도해 주셨는지... 그것을 기억하라는 거예요. 그냥 기억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새기라는 거예요. 나 혼자만 새기는 게 아니라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거예요. 잊혀지지 않게 집에 앉아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언제든지 기억하고 언제든지 가르치라는 거죠.

오늘 마침 딱 5월 5일 어린이 청소년 주일입니다. 선물 주고받고 카네이션 달아드리는 것도 물론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만.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어주는 겁니다. 참된 어른이 되어 주는 거예요. 한 사람으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고 보살피고 가르치고 때로는 혼내고 그렇게 키워 주는 겁니다. 육신의 돌봄만이 아니라 영적돌봄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영적 양육을 노래로, 신명기의 쉐마로 가르쳤다는 거죠. ‘기억해라. 무엇을 기억하느냐?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기억해라! 이 세상이 너 혼자 사는 건 아니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하나님이 주관자 되시는 것이다.’ 단순히 기적을 사건을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고, 엄청난 일이 있었다고, 그런 신기한 이야기 해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의 구원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양육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양육은 가르침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른이 스스로 아이들에게 증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증언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부모가 어른이 보여주는 거예요. 삶으로 증언해 주는 거예요. ‘너, 착하게 살아야 돼’ 백 날 말로만 하면 아이가 착하게 살까요? 제일 중요한 교육은 아버지가 어머니가 실제로 착하게 사는 삶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거죠.

아이들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먼저 하나님을 믿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 보는 겁니다. 자녀의 삶을, 자녀의 구원을 책임지는 것은 바로 나의 삶의 모습이에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내 자녀의 구원을 결정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내 자녀가 구원받으며 하나님의 백성 되느냐를 결정해요.

‘나는 자녀가 없는데요?’ 육신의 자녀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죠. 영적 자녀들 있지 않나요?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 이웃들 있지 않나요? 구원받아야 될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삶으로 구원의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까? 모세의 노래가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의 입에 끊이지 않습니까? 내 삶의 노래가 나만의 구원의 노래가 여러분의 입술에 있습니까? ‘하나님,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다. 하나님, 나를 이렇게 구원하셨다.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한다. 하나님과는 이렇게 친구가 되었다.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신다.’ 여러분의 입을 열어 찬송하십니까? 증언자로 살고 계십니까? 내 자녀가 내 이웃이 내 친구가 내 삶을 보면서 ‘그래, 저게 하나님 믿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감탄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여러분은 살고 계시냐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번 떠올려 봅시다. 사랑하는 자녀들, 사랑하는 이웃들, 내 사랑하는 친구들, 사랑하는 내 자신을 떠올려 봅시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그들에게로, 내가 내 자녀의 아름다운 어른이 되도록, 구원받아야 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믿음의 선구자가 될 수 있도록, 내 삶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낼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삶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의 가수들이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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