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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신 나의 친구

기사승인 2021.03.27  15: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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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이야기 5

ⓒ김경훈 작가

살면서 친한 친구 몇 명 있기 마련이다. 아니 몇 명에만 그치지 않고 젊어서는 수없이 많은 친구를 사귀며 지냈는데 나이들어 하나둘 떠나고 나면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는 불과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요즘은 SNS를 통해서 안부라도 전한다지만 우리 부모님 시대에는 인생하직 하면서 그 친했던 친구에게 아쉽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났다.

인생길 멋 있는 소풍날 이라던 시인도, 한 번쯤은 살아 볼 아름다운 풍경속 주인공이라고 일컬었던 철학자도 친구와는 이별을 해야 했다.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난 지금도 두 사람의 친구와 소식을 전하고 산다. 두 사람 모두 나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아주 오래된 친구 이지만 얼굴 본지가 몇 해가 된다. 수 천 킬로 미터 떨어져 사니 만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얼굴에 버짐 피고 손등은 터서 갈라져 볼품 없었어도 그런 모습은 전혀 아랑곳 없이 동네를 싸돌아 다니며 구술치기와 딱지를 들고 즐겼다.

나이가 어느덧 할아버지 소리 듣고 살지만 그 시절을 떠 올리면 5.16 혁명 일어나고 재건복 입으신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 모습이 눈 앞에 삼삼히 나타나곤 한다.

친구는 내가 먼저 정하면 무조건 되는게 아니다. 상대 역시 너는 내 친구! 라는 “그래!” 하는 답이 있어야 친구 이거늘  앞서 언급한 친구에게선 아직 답을 듣지 못하고 나 혼자만 몇 십년째 친구로 살고 있다.

나와 영원히 함께할 친구는 과연 몇 명이 될까? 한 사람도 없다. 있을 수가 없지만 성경에 나오는 요절 속에 예수님은 나와 영원한 친구가 되어 주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도 먼저 친구가 되어 주신다고 먼저 말씀하시니 내가 얼마나 편한가! 굳이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냥 “그래!” 하면 다 되는 아주 쉬운 절차만 남았다.

초등학교 어린 나이에도 친구가 되려면 합의가 우선 되어야 하고 잘못한 일을 절대 담임 선생님께 고자질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계약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먼저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하셨다.  묻지도 않고 친구라고 먼저 말씀 하신걸 보면 뒷조사도 선서도 없이 그저 불쌍한 놈 하나 살려 주자! 하신 게 분명 하다.

예수님과 친구가 되면 시효가 없다. 이 세상에 시효 없는 계약이 어디 있던가! 그런데 성경을 보면서 계약 없는 친구사이 된다는 걸 알고 나니 세상 무서울게 없이 든든해 진다. 그 친구는 다 있고, 다 할 수 있고, 다  해결을 해 주시는 나의 구주이시기에 뭘 해도 좋다.

예수님과 사랑의 친구가 된다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믿으면 되거늘 콩나물 시루에 물 부으면서 콩나물 다 자란 다음에 보자고 하던 사람 오이 밭에 오이 다 자라면 보자고 미룬다더니 평생 사람들이 망설이다 죽을지도 모르니 답답할 뿐이다.

김경훈 작가(사진·십자가 목공예) kimkh530@g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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