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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왕국 이스라엘은 정말 멸망한 것일까?

기사승인 2021.01.14  16: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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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역사 알기 ⒅

북왕국의 괴멸

본래는 지난주에 북왕국 멸망 이후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 주제를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쉽지 않은 이야기여서 다루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한 번은 다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하기에 이번 주에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주에 생각해보려고 하는 주제는 북왕국의 멸망, 더 나아가 구약성경이 전하는 역사 속에서 ‘왕국의 멸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저도 교회에서 설교 말씀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진행하는 목회자이지만, 최근 열왕기를 계속 읽어가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열왕기 역사가에게 있어서 착하고 순진한 독자였다는 생각입니다. 경전이라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열왕기 역사가가 기록한 역사를 너무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이 듭니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북왕국은 멸망해서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마리아인’의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쉽게 다룰 수는 없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사마리아인에 대해 다루기 위해서는 신약성경과 당시 랍비들의 문서까지도 살펴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다 다룰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주전 700-500년경 이스라엘은 어떤 상태였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디글랏빌레셀 III세 벽화 ⓒ대영박물관 홈페이지(britishmuseum.org), Museum No. 118908

위의 사진은 ‘디글랏빌레셀 Ⅲ세’의 아스나르투(Astartu, 현재 요르단 지역) 원정 이후 포로를 사로잡아가는 장면이 담긴 부조입니다.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소장 중인데, 대영박물관의 설명이 따르면,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의 형태나 입는 방식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의 전형적인 옷차림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다른 부조에 나타난 북왕국 사람들도 같은 옷을 입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리아에 포로로 끌려가던 북왕국 백성들도 이런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북왕국 멸망에 관해 자세하게 다루는 성경은 「열왕기하 17장」입니다. 저희도 이미 이스라엘 역사 알기 (14) 「유다왕 ‘히스기야’를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에서 북왕국 멸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다뤘던 내용은 ‘언제’, ‘누가’ 북왕국을 멸망시켰을까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7장」을 해석하는 많은 학자의 관심도 거기에 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6절」은 아시리아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끌고 갔다고 말합니다. 「열왕기하 17장 18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열왕기하 17장 23절」도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사로잡혀갔다고 말하며 이런 상태가 ‘오늘까지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오늘’은 「열왕기」 본문만 가지고 생각한다면, 「열왕기하 25장 27절」에 나타난 바벨론 ‘에윌므로닥’ 원년인 주전 562년이 됩니다.

이후 「열왕기하 17장 24-41절」은 아시리아 왕에 의해 사마리아에 거주하게 된 이방인들에 대한 설명이 나타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17장」만을 본다면, 아시리아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면서 사마리아를 폐허로 만들었고, 그 땅에 살고 있던 북왕국 백성 전부를 흩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신명기 28장」에 나타난 불순종하여 받게 되는 벌과도 연결되며, 「신명기 4장 25-26절」에 나타난 우상을 숭배하면 땅에서 쫓겨나리라는 벌과도 연결되어, 구약성경의 독자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약성경 안에서 이집트, 아시리아, 바벨론과 같은 제국이 특정 나라를 철저하게 괴멸시켰다는 이야기를 본 일이 없습니다. 실제로 이들 제국의 기록을 보더라도, 점령한 지역을 자신들의 속국(屬國)이나 속주(屬州)로 만들었을 뿐, 괴멸시키지 않습니다. 속국과 속주의 차이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라를 다스리는 자체적인 왕이 있냐 없냐의 차이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는 지난 글에서 잠시 살펴보았던 아시리아 제국 시절 바벨론에서 두 번이나 왕위에 올라 반란을 일으켰던 ‘므로닥발라단’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아시리아에 대항해 지속적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아시리아는 바벨론을 완전 폐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열왕기」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4장 11-17절」을 보면 남왕국의 바벨론 1차 포로기에 관한 내용이 나타납니다. 「열왕기하 24장 14절」은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명단 앞에 ‘모든(콜, קול)’을 붙였기 때문에 남왕국의 모든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과 같은 느낌을 전합니다.

하지만 「열왕기하 24장 14절」 마지막에 적힌 ‘비천한 자’가 땅에 남았다는 언급과, 「열왕기하 24장 17절」 이후로 이어지는‘시드기야’의 통치 이야기는 ‘여호야긴’ 시절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남왕국을 점령하고 속국으로 삼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남왕국 백성 전부를 바벨론으로 끌고 갔던 것이 아닙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은 「열왕기하 25장 11-12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이 시기는 바벨론 2차 포로기라고 불리는데, 「열왕기하 25장 11절」에는 ‘느부사라단’이 포로로 끌고간 명단이 나타납니다. ‘성 중에 남은 백성’, ‘바벨론에 항복한 자들’, ‘무리 중 남은 자’입니다.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포괄적인 명단이지만, 「열왕기하 25장 12절」에는 ‘비천한 자들’이 남아 포도원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후 남왕국에는 서기관 ‘사반’의 후손인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세워집니다. 실제로는 왕으로 세워진 것인데 열왕기 역사가가 ‘총독’으로 격하시켜놓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만약 ‘그달리야’가 총독이 된 것이라면, 이는 남왕국이 바벨론의 속주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이들에 대해 무례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비천한 자’로 표현된 가난한 이들, 일반 백성에 속하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을 국가의 구성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 듯한 느낌도 줍니다.

또 자신들과 정치 성향을 달리하는 집단 역시도 똑같이 취급합니다. 「예레미야」를 보면 바벨론 2차 포로기 이후에도 ‘그달리야’를 비롯하여 남왕국에 남아있던 귀족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는 이들을 ‘비천한 자들’이고, ‘포도원 관리인’과 ‘농부’라고 말합니다.

남왕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북왕국 멸망 이후 모든 백성이 아시리아에 끌려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일반 백성은 그 땅에 남아있었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열왕기」가 북왕국과 남왕국 멸망 이후 땅에 남겨진 이들에 대해 어떤 취급을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북왕국 멸망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사실 ‘북왕국 멸망’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북왕국의 왕조가 멸망하고 북왕국이 아시리아의 속주가 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 ‘사르곤 Ⅱ세’의 프리즘 ⓒC. J. Gadd, ‘Inscribed Prisms of Sargon II from Nimrud’, 「Iraq」 Vol. 16, No.2(Autumn, 1954), 174.

위의 사진은 님루드 지역에서 발견된 ‘사르곤 Ⅱ세’의 프리즘입니다. 여기에는 사마리아 점령 이후에 관한 내용이 언급됩니다. 이 내용과 함께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코르사바드 비문(Khorsabad Inscription)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어 번역문은 ANET 284-85페이지와 British Institute for the Study of Iraq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Iraq」 16호 180페이지에 있으며, 한글 번역은 ‘밀러/헤이스’ 『고대 이스라엘 역사』 421페이지를 따릅니다.

“나는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정복하고 27,290명의 그 성 거민을 전리품으로 끌어왔다. 나는 그들로 50대의 병거로 된 부대를 만들었고 나머지 거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들을 맡도록 하였다. 나는 그들 위에 나의 관리를 임명하였고 그들에게 이전 왕의 공물을 부담시켰다.”(ANET 284)

“나는 이 성읍을 전보다 더 좋게 재건하고 거기에 내 자신이 정복했던 나라들로부터 끌어온 사람들을 정착시켰다. 나는 나의 관리를 그들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두었고 그들에게 아시리아 백성들에게 관례적인 공물을 부과하였다.”(ANET 285)

“타뭇족, 이바딧족, 마르시마누족, 하이파족, 사막에 거하며 높거나 낮은 관리들을 알지 못하며 어떤 왕에게도 조공을 바친 적이 없던 저 먼 곳의 아라비아인들-나의 주 앗수르 신의 병기로 나는 그들을 쳤고, 그들의 나머지를 나는 끌고와서 사마리아에 정착시켰다.”(ANET 286)

“내게 (적대적인) 왕과 손잡고 섬기지도 않고 조공도 바치지 않았던 사마리아 – 그리고 그들은 싸웠다. 나의 주들, 위대한 신들의 힘으로 나는 그들, (2)7,280명의 사람과 그들의 병거들과 그들이 의지하는 신들을 쳐부수고... 사마리아 성을 나는 재건하여 전보다 더 크게 만들었다. 나의 두 손으로 정복한 땅들의 사람들을 나는 그 안에 끌어다 두었다.”(Iraq 16, 180)

‘사르곤 Ⅱ세’의 비문은 「열왕기하 17장」과 일부 일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시리아가 점령한 다른 지역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다는 점입니다. 흔히 아시리아의 혼혈정책이라고 말합니다만, 실제로는 혼혈정책이라기보다 사마리아의 재건을 위한 ‘사르곤 Ⅱ세’의 인구이동 조치로 보입니다.

이와 반대로 「열왕기」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사르곤 Ⅱ세’ 비문을 따르면 북왕국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어떤 ‘사회적 지위들’을 맡았다는 말을 보면 일부 귀족도 북왕국에 남아있었고, 북왕국 백성들 대부분은 그대로 자신들의 땅에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아시리아에 대한 국지적인 반란이 일어나던 때에 ‘사르곤 Ⅱ세’는 사마리아를 속국이 아닌 속주로 만듭니다. 아시리아에 의한 직접 통치를 시작합니다. 이는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던 국지적 반란에 대비한 정책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중심부인 사마리아를 직접 통치하고 군사를 주둔시키며 나머지 나라들을 견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국가’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왕조가 국가의 중심이라고 말한다면 북왕국은 멸망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국가의 중심이라고 말한다면 북왕국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시리아의 속주 상태일 뿐입니다.

이쯤에서 다시 「열왕기하 17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17장」에도 북왕국이 멸망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북왕국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쫓겨났고, 그 자리를 ‘이방 민족’이 차지했다고 말합니다. 북왕국에 남겨진 수많은 북왕국 백성들을 모두 ‘이방 민족’으로 대체해버립니다.

열왕기 역사가의 의도는?

학자들은 「열왕기하 17장」이 다양한 편집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학자마다 각 층위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살펴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우리 손에 놓인 최종 본문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일반 백성이나 자신들과 성향이 맞지 않는 귀족 집단을 무시합니다.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깁니다. 이는 북왕국만이 아니라 남왕국에도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그래서인지 북왕국은 왕조의 멸망 이후 나라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도록 만듭니다. 북왕국 왕 호세아 이후로 북왕국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바벨론 포로기를 겪고 있는 남왕국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지만, 남왕국은 북왕국과 조금 다른 것처럼 말합니다.

열왕기의 마지막 이야기인, 「열왕기하 25장 27-30절」은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포로로 끌려온 37년 되는 해에 남왕국의 왕 ‘여호야긴’을 석방하고 다른 왕들보다 높였다고 말합니다. 앞서 바벨론 1차 포로기 이후 남왕국에 남겨진 사람은 ‘비천한 자들’이라고 말했다는 점을 보았습니다.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남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1차 포로기 때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야긴’이 진정한 왕이고, 그의 왕권이 아직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모습은 「에스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기 중에도 ‘여호야긴’ 연호를 사용합니다.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북왕국 왕조가 사라졌기 때문에 북왕국은 멸망한 것과 똑같이 표현합니다. 하지만 남왕국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지언정, 왕조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 참된 남왕국의 백성은 모두 바벨론에 끌려왔고, 남왕국에 남겨진 사람들은 남왕국 백성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7장」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나타납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열왕기하 17장 24-41절」의 이야기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북왕국의 민담이 전승되어 기록되었다고 말하는데, 저는 이 내용이 괜히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세히 따져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북왕국에 거주하게 된 이방 민족들이 그 땅의 법을 알지 못하여서 신의 사자에 의해 죽임당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시리아 왕은 사마리아에서 끌고 온 제사장 한 사람을 벧엘에 파견하여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도록 합니다. 하지만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과 함께 자신들의 신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열왕기하 17장 35-41절」에는 하나님께서 옛적에 ‘야곱의 자손’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지금 북왕국에 살고 있는 민족들은 자신들의 풍속대로 살며 우상을 숭배한다고 말합니다. 코간(Mordechai Cogan)은 앵커바이블주석 『2 Kings』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도대체 왜 이방 민족에게 ‘야곱의 자손’이 되길 강요하는가?” 북왕국이 이방 민족으로 채워졌고 본래 북왕국은 멸망한 것과 같다면, 이들에게 ‘야곱의 자손’이 지켜야 할 법도를 강요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첨가하고 있는 열왕기 역사가 집단의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북왕국은 여전히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참으로 신앙적인 집단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가면 상당히 날강도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맡긴 땅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땅의 소유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 기록에 따르면 북왕국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없습니다. 남왕국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바벨론에 끌려온 포로 집단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바벨론 포로들 사이에 퍼져나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겔 8-11장」에 나타난 예루살렘 심판 환상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 바벨론으로 오셨다는 이야기는, 포로민들 사이에 퍼져있던 ‘자신들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합니다. 또 포로 귀환 이후 기록된 「에스라 4장 1절」에 나타나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는 표현도 이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생각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역대기」입니다. 역대기는 기본적으로 북왕국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28장 8-15절」을 보면 「열왕기」에는 나타나지 않는 전승이 나옵니다.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이 남왕국을 공격하고 남왕국 백성을 끌고 가던 때에 선지자 ‘오뎃’이 등장하여 포로를 귀환시키라고 권유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역대기 역사가 집단은 사마리아와 유다가 ‘형제’라고 말합니다.

물론 구약성경, 특히 예언서를 보면 북왕국과 남왕국을 형제로 표현하는 일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로기 예언자였던 ‘에스겔’ 역시도 남북왕국을 형제라고 표현합니다(겔23장 참고). 하지만 에스겔의 경우 형제가 모두 심판 받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선포된 내용이기 때문에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역대기」가 말하는 ‘형제’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개인적으로 「열왕기」는 아시리아 속주 이후 북왕국에 남겨진 집단과 바벨론 속주 이후 남왕국에 남겨진 집단을 거부하고 자신들(바벨론 포로민들)만이 이스라엘 소유에 대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있다고 봅니다. 반면 「역대기」는 최소한 남겨진 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으며 북왕국의 남은 자들과 화해를 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북왕국 사람들에 대해 귀환민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 지는 몇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 4장」은 북왕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2성전을 건축할 때, 그들의 도움을 거절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학개 2장 11-14절」에 나타난 ‘부정함 논쟁’은 성전 건축에 귀환민 이외의 손길이 닿았음을 암시합니다. 「학개」의 해석은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긴 하지만, 저는 포로 귀환민 이외에 성전 건축을 도운 집단이 있었고, 예언자 ‘학개’는 이를 거부하는 집단에 속해 있었다고 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성경이 이렇게 생각이 다른 두 집단의 글을 함께 담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우리의 시야를 넓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고민할 수 있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심없이 「열왕기」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어버린다면,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 아니며,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놓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짧게 ‘사마리아인’은 누구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마리아인’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과 「누가복음 10장」의 비유에 나타난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 ‘사마리아인’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마리아인’은 북왕국 멸망 이후 아시리아의 혼혈정책으로 생겨난 족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으로 분류되는 집단은 성경 안에서 계속 변합니다. ‘사마리아인’에 대해서는 1992년 「기독교사상」 36(3월호, 4월호)에 게재된 ‘랍비문학에 나타난 사마리아인’과 2006년 「신학논단」 43호에 게재된 ‘사마리아인의 기원에 관한 유대-기독교적 주장에 대한 재해석적 근거’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영어 논문에서도 찾기 어려운 내용인데, 한국에서 이 부분을 연구하신 분이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논문입니다.

「열왕기하 17장 29절」에 나타난 ‘사마리아 사람’은 북왕국에 거주하였으나 「열왕기」가 기록될 때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이때 사마리아에 거주하기 시작한 이들은 ‘각 민족’, ‘여러 민족’ 등으로 표현됩니다.

「에스라 4장」에 나타난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은 「열왕기」가 ‘여러 민족’으로 표현했던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북왕국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에스라」가 말하는 ‘사마리아인’에 속하는 집단에는 이방 민족과 북왕국에 남겨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조심스럽게 한 집단을 더 추가하자면, 남왕국에 남겨졌던 사람들도 이 집단에 포함됩니다. 이들은 포로 귀환민들에 의해 거부되고 남왕국 지역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포로 귀환민들에게 거부된 사마리아인들은 북왕국 지역에서 자체적인 신앙 체계를 만들어서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이 「요한복음 4장 20절」에 나타난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는’ 전통입니다. 장춘식의 논문에 따르면, 주후 1세기 랍비 문학은 ‘사마리아인’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사마리아인’을 유대인보다 신앙이 투철한 이들로 그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유대-로마 전쟁 이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 인구가 극적으로 줄어든 상황이 되자, 사마리아인에 대한 거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후 2세기에 ‘사마리아인’은 부정한 존재, 거부해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말합니다.

정리해 보자면, 성경에 나타난 ‘사마리아 사람’은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권력이 약화되었을 때, 그 권력을 되찾기 위해 배척했던 인물들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사마리아인을 꼭 북왕국 출신 혼혈민족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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