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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눈, 마음의 눈, 송과체, 그리고 글쓰기

기사승인 2016.07.28  10: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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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신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사야는 새로운 제3의 눈으로 우주를 주관하는 주인이 천상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것은 신을 찾으려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로 일상의 숭고한 경험이다.
‘제3의 눈’ 혹은 ‘마음의 눈’은 일반인들이 지나치거나 간과해버리는 우주와 인생의 중요한 상징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이것을 12세기 스페인에 등장한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에서는 ‘호크마(지혜)’라 하며, 인도 힌두교 전통에서는 ‘아즈나(ajna)’ 혹은 ‘차크라(chakra)’라 한다. 그리고 생리학자들은 이것을 ‘송과체(pineal gland)’라 한다.
송과체는 두뇌 한복판에 있는 기관으로 솔방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과체에 빛을 비추면 실제로 빛을 감지할 수 있고, 이 부분을 활성화하면 모든 감정과 관념에서 벗어나 무지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제3의 눈을 가진 사람을 ‘르시’, 즉 ‘시인(視人)’이라 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제3의 눈은 세상을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세계를 넘어서는 신비의 눈으로, 심라만상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다.

 

-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인간의 특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설명을 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행위자이자 관찰자라는 것이다. 내 몸과 마음으로 행하는 것들을 또 다른 나의 시선이 포착해 그 내용을 내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3의 눈 혹은 내면의 눈이라고 한다. 이것이 발달되면 발달될수록 내면의 성찰이 깊어져 여느 사람들보다 더 깊은 인식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런 사람 가운데 위의 사례처럼 우주의 작동 원리를 직감해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가?

송과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었을 때였다. 육체와 정신을 이어주는 게 뇌에 있다는 생각이 신기했고, 흔히 말하는 재야의 고수들 가운데 송과체가 열리면 우주가 보인다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해서, 이 부분을 뇌를 다루는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였다.

인터넷을 다시 뒤져 보니 송과체는 영혼이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곳이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라고 한다. 그런 것 같다. 모르는 것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 그것이 삶이지 않을까? 모른다는 것을 더 확실히 인지하려고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자기의 생각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글쓰기가 인간의 인식 세계를 넓혀가는 데 유용한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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