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 백문백답(6)
▲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전체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문: 주체사상에도 경전이 있나요?
답: 종교에는 경전이 있습니다. 경전은 해당 종교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경전에는 주로 창시자의 가르침이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은 성서입니다. 성서는 각기 다른 66권의 책으로 구성됩니다. 그리스도교는 성서를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으로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기고,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행적을 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읽는 목적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고, 그리스도처럼 살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가는 생활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할 때에 끊임없이 성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해답을 구하고 행동을 결심합니다. 일단 행동을 결심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유혹에 부딪히거나 의지가 나약해질 때마다 성서의 말씀으로 돌아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2,000년 전에 살다가 33살에 요절한 젊은이로 추모하지 않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우리 운명의 주인으로, 주인님으로,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서가 일반적인 역사책과 다른 지점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에도 ‘경전’의 역할을 담당하는 도서들이 있습니다. 이들 도서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체 인민대중들에게 운명구원의 방도와 그 실천의 푯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책들과는 기능이 구분됩니다. 일반적인 책들이 일상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면, ‘경전’의 역할을 담당하는 도서들은 ‘거룩한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대중은 자신들의 운명을 구원하는 거룩한 존재를 ‘수령’으로 고백합니다. ‘수령’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체 인민대중의 의사의 최고 대표자이자, 전체 인민대중의 이익의 최고 체현자로 인정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체 인민대중은 ‘수령’의 ‘지도’와 결합되어야만 자기 구원을 이루어가고 완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령신앙’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의 핵심이며 본질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경전’의 기능을 담당하는 도서는 모두 이러저러하게 ‘수령’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서’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을 드러내고 있기에 ‘거룩한 영역’에 참여하게 되고, ‘거룩한 책’이 됩니다. 단순한 ‘표시’는 대상을 지시하는 것에 그치지만, ‘상징’은 그것이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의 힘에 참여하며, 그 힘에 힘입어 ‘거룩한 영역’에 참여하게 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수령’과 연결되어 ‘경전’의 역할을 담당하는 도서들도 마찬가지로 ‘거룩한 영역’에 참여하게 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경전’의 역할을 담당하는 도서들의 장르와 종류는 다양하지만, 모두가 ‘수령’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공통적입니다. ‘거룩한 수령’을 다루고 있기에 ‘거룩한 책’으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경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도서로는 우선, ‘수령형상문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수령형상문학’은 수령을 형상하고 있는 문학입니다. ‘거룩한 수령’을 직접적으로 형상하고 있는 ‘수령형상문학’은 ‘거룩한 영역’에 참여하게 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수령형상문학’으로는 총서 ‘불멸의 력사’와 총서 ‘불멸의 향도’가 있습니다. 총서 ‘불멸의 력사’는 김일성 주석의 형상문학이고, 총서 ‘불멸의 향도’는 김정일 위원장의 형상문학입니다. ‘총서’라는 장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령형상문학’에만 있는 독특한 장르로서, 시기나 사건들이 각기 다양한 여러 권의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보도에 따르면 총서 ‘불멸의 려정’의 제1권인 ‘부흥’이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총서 ‘불멸의 려정’은 김정은 총비서의 형상문학으로 추정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대중들은 ‘수령형상문학’을 통해 수령의 역사와 발자취를 알게 되며 따르게 됩니다. ‘수령형상문학’은 수령이 인민대중의 운명을 구원해나가는 구원의 역사, ‘구원사’를 담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수령의 예지와 인품, 덕성과 의지를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령형상문학’은 인민대중이 단순히 수령의 역사와 품성을 아는 데에 그치지 않고, 수령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도록 이끄는 역할을 감당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에서의 ‘경전’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경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도서로는 다음으로, ‘회상기’ 종류의 도서들이 있습니다. ‘회상기’는 수령의 전사들, 제자들이 수령을 모시고 운명구원의 길을 개척하는 가운데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고 깨달은 바를 기록한 책입니다. ‘회상기’ 종류의 도서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총 20권으로 구성된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사도’들은 독특한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던 사도들은 살아생전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였던 자들이며,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았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들 가운데서 이들 사도들이 쓴 경전을 ‘서신서’라고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도’들은 ‘항일빨치산’들입니다. 이들은 살아생전 수령을 모시고 민족의 운명구원 개척의 길에 투신하였던 ‘투사’들이며, 수령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았던 자들로서, 전체 인민대중들은 ‘투사’들의 독특한 권위를 인정하며 존대합니다.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수령’을 중심으로 민족의 운명구원을 개척해 온 항일빨치산들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수령의 언행과 함께 그들이 느끼고 깨달은 바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투사’들이 쓴 경전으로, 그리스도교의 ‘사도’들이 쓴 경전인 ‘서신서’처럼 ‘수령’의 말과 행동을 직접 체험한 자신들의 깨달음으로 ‘공동체’, 즉 전체 인민대중들을 권면합니다. ‘사도’들이 쓴 경전이 단순한 사실전달을 넘어서 ‘사도’들의 ‘예수신앙’을 ‘교회 공동체’에 전수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듯이, ‘투사’들이 쓴 ‘회상기’는 단순한 사실전달을 넘어서 ‘투사’들의 ‘수령신앙’을 ‘전체 인민대중’에게 전수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경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도서로는 다음으로, ‘전집’ 종류의 도서들이 있습니다. ‘전집’ 종류의 도서들은 ‘수령’의 각종 연설문, 보고문, 논문 등을 모아놓은 어록집, 문집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가장 유명한 ‘전집’으로는 ‘김일성 전집’과 ‘김정일 전집’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복음서’에도 예수님의 어록이 실려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의 세 복음서에 실린 어록들은 공통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어록을 전하고 있기에, 사도들의 어록인 ‘서신서’보다 높은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에서도 ‘서신서’에 해당하는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보다 ‘복음서’에 해당하는 ‘김일성 전집’, ‘김정일 전집’이 보다 높은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김일성 전집’과 ‘김정일 전집’은 ‘수령’이 직접 ‘집필’한 ‘말씀’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경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도서들 중 끝판왕은 단연 ‘세기와 더불어’입니다. ‘세기와 더불어’는 ‘수령’인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입니다. 원래는 60권으로 출판할 계획이었으나, 김일성 주석의 서거로 인해 8권만 출판되었습니다. 1권부터 6권은 김일성 주석 생전에 출판되었고, 7권과 8권은 사후에 출판되어 ‘계승본’이라고 부릅니다.
‘세기와 더불어’는 그리스도교의 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르의 경전입니다. 예수님은 살아생전 하나의 문자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의 어록들조차 제자들을 통해 구전된 내용을 후대에 기록한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세기와 더불어’는 ‘수령’이 직접 ‘집필’한 책이며, 여기에는 수령의 사상과 경험, 의지와 감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수령’의 경험과 가르침을 생동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세기와 더불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에서 ‘제1 경전’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종교를 파악하기 위한 지름길은 해당 종교의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길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지름길은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를 통해 ‘수령’의 사상과 경험을 읽어내는 길입니다.
정대일 박사(그리스도교-주체사상대화연구소 연구실장 jungsc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