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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은 구원 사상을 이야기하는가?

기사승인 2024.10.11  03: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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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 백문백답(2)

▲ 4D 입체 영상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북의 소년들

문: 주체사상도 구원을 말하나요?

답: 주체사상은 ‘구원’을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원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과학’이라는 자기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종교는 ‘비과학’으로서 관념론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진정한 구원은 종교에서 올 수 없고, 오직 주체사상만이 구원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진리 주장을 합니다.

주체사상은 철학의 사명을 ‘사람의 운명 문제 해결’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의 운명 문제 해결’이 곧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구원’입니다. 주체사상은 ‘구원’이야말로 ‘철학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철학의 사명’이라는 개념은 주체사상에만 있는 고유한 개념입니다. 이전 시기의 철학은 철학에는 ‘사명’이 있다는 것과, 그 사명은 바로 ‘사람의 운명 문제 해결’에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정식화하지 못했습니다. 맑스주의 철학도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그에 기초한 실천을 통해 세계를 변혁할 수 있다는 데까지는 설명하였으나, 그 모든 설명을 철학의 사명, 즉 구원으로부터 이끌어내지는 못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이 자신의 철학적 체계 속에서 ‘구원’의 문제를 정식화하여 명시적으로 제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의 운명’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운명 문제 해결’이 바로 ‘구원’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정식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의 운명’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야 합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의 운명’의 정의는 ‘세계와의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사람의 생활 처지와 그 발전의 전도’입니다. 이 정의에 의하면 주체사상의 ‘구원’, 즉 ‘사람의 운명 문제 해결’은 ‘세계와의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사람의 생활 처지를 개선하고 그 발전의 전도를 밝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정의는 주체사상의 구원관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으며, 그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의 운명’에 대하여 우선, ‘세계’와의 관계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종교는 대체로 사람의 운명은 ‘신’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며, 따라서 구원은 ‘신’으로부터 온다고 설명합니다. 주체사상과 종교는 구원의 방향이 다릅니다. 종교는 구원을 하늘에서 찾는 반면, 주체사상은 땅에서 찾습니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세계’의 정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입니다. 주체사상은 철학을 전개함에 있어 ‘사람’과 ‘세계’를 양대 범주로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이 사람을 둘러싼 ‘세계’에 속하게 됩니다. 사람을 포함한 전체 세계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주위 세계’라고도 씁니다. 주위 ‘세계’에 속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자연’과 ‘사회’가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 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사회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사회를 만들면서 ‘동물에서 벗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사회를 만들면서부터 동물 일반과는 다른 ‘사회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주체사상이 말하는 ‘운명’의 기원이 놓여 있습니다. 사람이 사회를 만들어 사회적 존재가 되면서부터 사람의 운명 문제가 생성되고 제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여 사회와 함께 인간의 구원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종교에서는 구원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와는 별개로 개인의 구원이 취급됩니다. 주체사상은 구원 문제 자체가 사회와 함께 발생하였다고 봅니다. 따라서 사람의 구원 문제는 오로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 해결된다고 봅니다. 종교가 대체로 개인 구원에 경도되는 반면, 주체사상은 사회 구원을 주장합니다. 종교는 계급사회의 피지배계급에 속한 사람도 내세의 보장을 통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주체사상은 피지배계급이 계급사회를 철폐하고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구원으로 봅니다.

사람의 운명 문제에 있어서 자연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노동을 통하여 자연을 자신에게 이롭게 만들면서 생활을 영위합니다. 과학기술의 혁신을 통해 높은 생산력에 도달하는 것은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전제가 됩니다. 경제가 받침이 되어야 높은 문화생활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의 운명’에 대하여 다음으로, ‘사람의 생활’을 말하면서 그 처지와 전도가 바로 사람의 운명이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에서 ‘사람’과 ‘생활’을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쓰는 용어들이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전혀 다른 정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공민들이 갈구하는 구원을 적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이 구사하는 용어들의 정확한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먼저,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은 개인이 아닙니다. 집단으로서의 ‘인민대중’, ‘민중’을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철학적인 개념인 ‘사람’에 부합하는 사회 역사적 실체가 ‘인민대중’, ‘민중’입니다. 주체사상의 입장에서 ‘인민대중’, ‘민중’과 유리된 개인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한 존재를 ‘사람’으로 지칭하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입니다. ‘사회’가 있고서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구원관은 인민대중의 집단적 구원인 ‘민중 구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주체사상이 말하는 ‘생활’의 정의는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를 개조하는 사람들의 창조적 활동이며 투쟁’입니다.

여기서 자연을 ‘정복’한다는 것은 자연의 ‘구속’을 극복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구속하는 자연에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이 적신(갓 태어난 상태)으로 자연에 던져지면 순응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노동을 통해 자연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내며 살아갑니다. 노동이 없이는 사람의 생활은 불가능하며, 사람의 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노동을 생활의 일차적 요구라고 합니다.

사람은 또한 자신을 예속하는 사회 질서에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노예적 삶을 강요하는 사회 질서에 맞서 투쟁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사회 질서를 만들어 갑니다. 사람이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회적 속성인 자주성으로 인하여 사회적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주체사상의 입장에서 보면,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구호는 사람의 본성을 반영한 진리입니다.

이처럼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를 개조하는 창조적 활동과 투쟁, 즉 ‘생활’을 통하여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갑니다.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생활의 처지와 발전의 전도를 더욱 낫고 밝게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 운명의 ‘구원’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종합하면, 주체사상이 말하는 ‘운명’은 사람, 즉 민중이 자연과 사회의 주인으로 되는 길에서 지금 현재 처한 ‘상황’과 향후 발전의 ‘가능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이 밝힌 철학의 사명인 ‘사람의 운명 문제 해결’이란 ‘민중이 자연과 사회의 주인으로 되는 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해결하여 민중이 세계의 주인으로서 그 지위와 역할을 다하게 하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체사상이 말하는 ‘구원’인 것입니다.

주체사상이 밝힌 구원에 대한 견해, 구원관은 첫째, 구원 문제를 초월적인 신과 같은 관념적 존재와의 관계에서 설명하지 않고, 자연과 사회라는 물질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풀어낸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구원관’입니다. 둘째, 운명 구원의 장이 내세가 아닌 현실 세계라는 점에서 ‘현세적인 구원관’입니다. 셋째, 운명 구원의 완성이 역사 바깥이 아닌 역사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역사 내재적 구원관’입니다. 넷째, 구원은 사람, 인민대중이 주인이 되는 과정이며, 구원을 이루어 내는 힘 또한 사람, 인민대중에게 있다고 고백한다는 점에서, 주체사상의 구원관은 민중이 주인 되는 ‘민중 주체 구원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대일 박사(그리스도교-주체사상대화연구소 연구실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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