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 백문백답(1)
▲ 주체사상은 사람의 인식 변화가 중심이다. ⓒGetty Images |
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란 무엇을 말하나요?
답: 필자가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의 제목이며, 글자 그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를 뜻합니다.
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북한’의 정식 국호입니다. ‘북한’이라는 호칭은 ‘대한민국의 북반부 미수복 지구’라는 함의를 담고 있는 적대적 호칭입니다. 올해 2024년 벽두에, 북(조선)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였습니다. 더 이상 남북의 관계를 민족관계로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북의 신문과 방송은 남을 ‘대한민국’, 혹은 ‘한국’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남북관계에 따라 본 연재도 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줄여서 ‘조선’이라고 호칭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조선’이라고 줄여서 칭하는 것은 그 나라 신문 방송의 관례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본 연재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현재의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남과 북은 평화로운 두 이웃나라의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교전국의 관계입니다. 적대적인 교전의 최종 목표는 쌍방 모두에게 있어 미수복 지구에 대한 점령과 평정, 수복이며, 이 목표는 수복된 영토를 자국의 주권 범위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인의 양심으로 남과 북의 교전 관계와 적대적 대치 상태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과 한국 사이에 평화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평화는 화해에서 비롯되며, 화해는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서로를 원수로 여기는 막힌 담을 허물어야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할 수 있으며, 오해와 불신의 담을 허물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총체적으로 깊이 있게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알아갈 때, 가장 중요시하고 우선시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자기이해’입니다. 상대방이 스스로의 진면목이라고 자처하는 모습을 경시하고서 내가 원래 지니고 있던 선입견을 내세워 상대를 파악하려는 것은 ‘오해’의 시작일 수는 있어도 결코 ‘이해’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을 비판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 준거는 상대방의 ‘자기이해’에 기반하여야 건강한 대화를 통한 이해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조선의 자기이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자기 국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조선’은 조선민족이 가장 처음으로 세운 나라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쓰는 것은 이 나라의 역사적 연원이 ‘조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쓰는 ‘고조선’이라는 이름은 ‘옛 조선’이라는 뜻으로, 고조선의 국호가 바로 ‘조선’이었습니다. 조선은 옛 조선의 시조를 단군이라고 말하며, 단군을 ‘조선민족의 시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조선이 지향하는 정치체제를 나타냅니다. 조선은 민주주의와 독재를 상호 분리된 양자택일의 체제로 보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독재는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국가에 따라 민주주의의 측면이 주가 되거나, 독재의 측면이 주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선은 스스로를 사회주의 국가라고 자처하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 성격에 따라 대다수의 인민대중에게는 민주주의를, 극소수의 적대 세력에게는 독재를 시행한다고 주장합니다.
조선은 대다수의 인민대중에게 적용되는 민주주의가 자국 정치의 주되는 측면이기에, 자국 정치체제의 성격을 ‘민주주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자국 정치의 독재적 측면 또한 부정하지 않으며, 인민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에 대한 독재를 인민들이 시행하는 독재라는 의미에서 ‘인민독재’라 부릅니다. 다만, 사회 내에서 적대 세력이 미미하여, ‘인민독재’의 성격은 ‘민주주의’에 비하여 부차적이라고 봅니다.
‘인민’공화국은 인민대중이 주인되는 공화국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 모두를 아울러 ‘인민대중’이라고 부릅니다. 줄여서 말할 때는 ‘인민’이라고도, ‘민중’이라고도 합니다. 근대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등장한 공화국들은 하나같이 ‘부르주아 공화국’이었습니다. 부르주아가 주인되는 공화국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거친 조선은 ‘인민’이 주인되는 ‘인민’공화국이라는 자기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화국’은 ‘왕국’의 반대말입니다. ‘왕’이 없는 국가가 ‘공화국’입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영국, 일본 등 입헌군주제 국가들을 포함한 많은 왕국들이 있는데, 왕국이 아닌 나라들은 신분의 세습을 통한 ‘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선거를 통해 국가 지도자를 선출합니다. 조선은 국가의 지도부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공화국’이라는 자기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연재의 제목 중 ‘신앙세계’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국가종교, 즉 국교를 헌법으로 지정하여 정해놓은 나라들도 있고, 신앙의 자유를 표방하면서 국교를 정해놓지 않은 나라들도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는 나라들 중에서도 많은 나라들이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국가가 인정한 종교들을 지원하는 공인교 종교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국장에서 종교의례를 담당하고, 군대에 성직자를 파견하는 4개의 종교, 즉 개신교, 가톨릭, 불교, 원불교를 국가가 공인하는 종교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신앙의 자유를 표방하면서 국교를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조선에서 국교는 없지만 국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주체사상입니다. 주체사상은 전통적인 의미의 종교는 아니지만, 근대 이후 강력하게 등장한 ‘세속종교’의 하나로 분류됩니다. 종교학계가 주체사상을 세속종교로 분류하는 이유는, 조선에서 주체사상이 국교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전의 국가들에서 국가종교가 행한 기능은 전 사회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사회의 질서를 정당화하며,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능은 사회의 필요불가결한 기능입니다. 지금도 국가종교가 유지되는 사회에서는 국가의 행정적 지도자보다 종교 지도자가 그 권위에 있어 앞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를 행정적으로 이끄는 기능보다 전 사회를 하나로 묶어내는 기능이 더욱 중요하다고 전체 사회구성원들이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전 사회를 하나로 묶어내고, 사회의 바람직한 질서를 규정하며, 국가가 나아가야 할 전망을 제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주체사상입니다. 주체사상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종교가 아니지만, 전통사회에서 국가종교가 담당해왔던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에 학계에서는 주체사상을 세속종교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세속종교’는 전통종교가 아니지만, 전통종교의 기능을 담당하는 세상의 사상(여기에는 유물론도 포함됩니다)을 일컫는 말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온 사회를 주체사상으로 일색화하는 것을 국가의 목표로 내걸고 있습니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으로 일색화한다는 것은 전체 사회구성원을 주체사상의 신봉자로 만든다는 것을 포함하는 목표입니다. ‘주체사상의 신봉자’는 주체사상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뜻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는 바로 주체사상의 신봉자들이 펼쳐내는 신앙세계입니다.
신앙세계는 총체적이고, 입체적이며, 다면적이고, 전인격적인 세계입니다. 신앙세계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준거가 되는 경전과 교리,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의례와 공동체, 신앙공동체의 역사와 집단적 경험과 심리, 신앙공동체의 현실인식과 신앙의 실천으로서 지향하는 미래상 등을 개인과 집단의 차원에서, 이론과 실천의 차원에서, 이상과 현실의 차원에서 촘촘하게 해부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 백문백답’을 통해, 이제는 적대적 교전국의 관계가 되어버린 북녘 동포들이 무엇을 믿고 받들며 살고 있는지를 세세하게 살펴보고, 주체사상 신봉자들의 신앙세계에 대한 이해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정대일 박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