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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비씨네 아이들

기사승인 2016.08.01  15: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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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빌립비씨와 가족

딜리 뒷산을 오르며 나의 꼴레가(친구)들의 집을 한 집 한 집 지나 산으로 더 올라가다 보면 하나의 산등성이가 나온다.
그곳에는 빌립비라 불리는 나뭇꾼이 사는 집이 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언제나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려 있는 나뭇꾼 빌립비씨는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 시키다 씨와 열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그 만의 왕국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빌립비씨네 집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전깃불을 켤 수 없는 밤에 그들은 달빛 아래에서 노래를 부를 것이고, 별을 세며 별똥별을 볼 것이다. 

우물도 없다. 그러나 빌립비 씨네 집에 가면 언제나 긴 빨래 줄에 열 두 명의 옷들이 그 가정에 다복함을 말하듯 사이좋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내가 빌립보 씨네 집을 알게 된 것은 한번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산에 오르다 보니 그곳엔 길이 없어 풀숲을 헤치며 하늘만 보고 위로 올라가던 중에 뜻밖에 빌립비 씨네 집을 본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찬양하는 아이들

나는  빌립비 씨 부부를 만나기 전에 아이들을 먼저 만났다.
그때는 빌립비씨 부부가 외출한 후여서 집에 남아있던 아이들만 보게 된 것이었는데 처음 나를 본 한 아이가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형제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간난아이까지 무려 열 명의 아이들이 내 앞에 선 것이다. 

아이들이 보기에 나는 낯선 사람이었고 아니 말라에 (외국인) 이었을 텐데 경계의 눈빛도 없이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내 앞으로 와서 내 손등에 입을 맞추며 예의를 표했다. 

동티모르 아이들은 길을 걸어 갈 때 나에게 꼴레가라고 부르며 먼저 인사를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손등에 입맞춤으로 예의를 표하는 아이들은 처음이어서 그날의 감동은 참으로 컸다.

나는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배낭에서 과자를 꺼내어 그 중 한 아이에게 주었다. 그러자 과자를 받은 아이는 제일 큰언니에게 과자를 다시 주었고 큰언니는 그 과자를 골고루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잠시 한국에 계시는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먹을 것이 생기면 우리 육남매가 골고루 나누어 먹도록 하셨다. 비록 가난하였지만 우리 형제는 혼자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싸우지 않았고  서로 나누어 먹으며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도록 교육받으며 자랐다.

내 앞에 선 아이들은 하나같이 맨발이었고 코는 질질 흘리고 옷에는 흙이 묻어 있었지만 아이들의 눈빛만은 천진스럽고 예뻤다.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 하며 박수를 알려주었다. 몇 마디 한국어 인사말도 알려 주며 즐겁게 지내다 그날은 그렇게 아이들과 헤어졌다. 그런데 내려오다 보니 아이들이 줄줄이 나뭇짐을 머리에 이고 산등성이를 내려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한국이라면 한창 재롱이나 필 여섯 살 꼬마 아가씨도 자기 몫에 나무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아이들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아이들이 생각나서 그다음 토요일에는 더 일찍 서둘러 산으로 올라갔다.

그날은 마침 아이들의 부모가 함께 집에 있었다. 그들은 점심이라며 낡은 식탁에 알파리나 (고구마 비슷한 뿌리식물)와 따뜻한 물을 정성스럽게 건네주었다.
그날 나는 보기에는 초라한 식탁이었지만 세상에서 먹었던 어떤 음식보다도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고 돌아왔다.

또한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 아이들도 예의바르게 자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빌립비 씨네 집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나는 이 아이들의 부모는 열 명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싶었었다.

그러나 내 염려와 다르게 이제 마흔을 갓 넘긴 빌립비씨 부부는 언제나 밝게 웃었으며 아이들에게 짜증 섞인 말이나 얼굴로 대하지 않았다. 불평불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들의 표정에는 행복이 담뿍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연신 콘텐티 (행복하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가족사진을 찍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고 가족들에게 모이자고 했더니 어느새 넷째 셀피아는 우물로 물을 길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막둥이 라파엘은 잠이 들어 결국 빌립비 씨 부부 그리고 팔 남매 그렇게 열식구 만이 사진을 찍게 되었다.

나는 사진사처럼 자리 배치도 해 주고 “웃어보세요” “여기를 보세요”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묻어나는 빌립비씨네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내가 빌립비 씨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은 동티모르에서 누리는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는 사이  큰 딸 리디아는 학교를 마치고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었고, 어머니 시키다 씨는 리디아의 근사한 남자친구 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사비누, 조엘

둘째 제로니와  셋째 사비누는 장남과 차남답게 씩씩하게 아빠와 나무도 하고 나무를 팔아 생계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넷째 얌전하고 예쁜 딸, 셀피아는 어머니가 없을 때는 내게 어설픈 점심밥을 지어 주기도 하였고, 그 귀한 계란도 삶아주었다. 

다섯째 메르셀라는 누나답게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언제나 여념이 없었다. 

여섯째 조엘과 일곱째 산조는 멋진 남자아이로 커가고 있었고 어느 날은 나를 위하여 휘파람을 불어 주기도 하였다. 

아 ~~애교쟁이 여덟째 글레시아는 내가 피곤해서 잠시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있으면 살며시 내 옆에서 잠이 들곤 하였다.

갓난쟁이여서 누나, 형들 품에 안겨 있었던 쌍둥이 형제 아홉째, 열 번째 가브리엘과 라파엘은 어느새 병아리처럼 마당 구석구석을 아장 아장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내가 빌립비 씨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할 수밖에 없었던 날

산 중턱 쯤에서 나무를 가득 수레에 실고 딜리로 팔러가는 빌립비씨와 셋째 사비누와 넷째 셀비아를 만났다. 잠시 나를 만나 땀을 식히던 빌립비씨가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어서 올라가 보라고 하였다. 

점심은 어떻게 할 거냐는 내 물음에 빌립비씨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만 띠었다. 가방에서 빵 세 개를 건네주고 나는 그들과 헤어져 빌립비씨 집을 향해 올라갔고 빌립비씨와 아이들은 그날도 맨발인 채로 딜리를 향해 산길을 내려갔다.

빌립비 씨 집에 다다르니 나를 먼저 본 조엘과 산조가 달려 내려와서 여전히 내 손등에 예의를 표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들도 우리가 오랫동안 못 볼 거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날은 아이들이 나를 위하여 성당에서 배운 찬양을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찬양을 반복하다 율동까지 하며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나는 가지고 간 빌립비 씨네 가족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내 놓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주는 나의 마음이 담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가족사진은 그들이 주일이 되어도 성당이 멀어서 못가기에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탁자 위에 놓여졌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 오는데 아이들이 “하래달란” (길 조심하세요) 이라고 몇 번을 말했다. 나는 돌아서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대꾸 없이 땅만 보고 내려갔다. 그런 내 귀전으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시끼다 씨의 뱃속에는 열한 번째 아이가 자라고 있다. 
빌립비씨네 아이들은 곧 열한 명이 될 것이고 언젠가 내가 빌립비씨 집을 찾을 때는 더 많은 아이들이 지금처럼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배웅하는 가족들

나는 동티모르 사람들에게서 “콘텐티” (행복하다)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힘들어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서로 나누며 살아가기에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건전한 사회가 되려면 소외감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발달만으로 건전한 사회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문명은 발달 했지만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아닌, 느리게 가지만 서로 다독이고 서로 우애를 다지면서 화목하게 사는 동티모르 빌립비 씨 가족이야 말로 소외감을 느낄 수 없는, 건전한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건전한 가정이 아닐까.

나는 빌립비 씨네 가족의 행복은 계속 될 거라고 믿는다.
빌립비씨의 열한명의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도 말이다.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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