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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16.06.16  12: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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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한국을 떠나기 전 동티모르를 잘 아는 분들은 직사광선이 강한 나라이니 선글라스와 안경을 여유 있게 준비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준비도 많았지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이라는 말을 생각하며 딸아이와 안경점을 찾았다. 시력 검사를 한 뒤 안경 두 개, 선글라스 두 개 그리고 그때 까지 써 본적은 없지만 혹시 몰라 돋보기도 하나 준비했다.

여유분의 안경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그곳은 안경점이 없다는 것이다. 안경이 망가져도 다시 구입 할 수 없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이 그랬다. 딜리에 와서 보니 직사광선이 강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력을 측정하는 제대로 된 안경점이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한군데도 없었다.

다섯 개의 안경 중에서 제일 먼저 망가진 것은 선글라스다. 시력에 맞추어 준비 해 온 선글라스는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코팅이 벗겨졌고 (아니면 코팅이 녹았는지) 여분으로 가져온 하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작은 나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졌다. 그러나 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니 또한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쓰고 다니는 선글라스는 한국에서 준비 해 온 두 개의 선글라스가 망가진 것을 보고, 이곳에 왔던 친구가 한국으로 들어 갈 때 자신의 선글라스를 놓고 간 것이다.

요즈음 나는 가방에 안경과 돋보기를 항상 챙겨 넣고 선글라스를 쓰고 학교에 간다.
세 개의 안경을 번갈아 써야 한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때 부터인가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도무지 출석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독서광이 아니어서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나름 외출 시에는 선글라스를 꼭 쓰고 다니는데도 말이다.

갑작스럽게 나빠진 눈은 불편함과 더불어 또 하나의 걱정을 가져왔다.
나는 이미 사후에 안구를 기증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내가 안구 기증을 결심했을 때는 사십대 초반이었고 적어도 그때 내 눈은 지금처럼 이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난시가 좀 있을 뿐이지 시력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후에 안구를 기증하기로 결심 할 수 있었다.
주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이 세상을 내 눈을 통하여 한 명이라도 더 보는 것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물론 나는 그 당시 내 몸도 기증하고 싶었다. 내가 물질로나 다른 어떤 것으로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분이 주신 내 몸이 라도 필요한 곳에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안구는 본인의 의사만으로 기증을 약속 할 수 있었지만, 몸을 기증하려면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설명을 해야 하고 가족이라 해서 내 마음과 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구기증서 뒷면에 내 뜻을 밝힌 내용을 쓰고 사인을 하여 지니고 다녔다.

나는 사후에 안구를 기증 하겠다고 정 한 후부터 세상에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눈에 많이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어떤 어마어마한 세상을 담고자 했던 것도 아니다.

ⓒ임정훈

내가 좋아하던 산길을 걸을 때 빼꼼히 보고 있던 풀꽃 하나 
파란 하늘에 하얀 줄을 긋고 지나가는 비행기
영화 “구름위에 산책”을 연상 시키는 하얀 뭉게구름 
우리 학생들의 천진하고 밝게 웃는 얼굴 
나무 꼭대기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잘 익은 파파야. 
무수한 별빛 속에 떨어지는 별똥별 같은 그냥 그런 소소한 세상을 많이 담아 주고 싶었다.

ⓒ임정훈
ⓒ임정훈

그러나 급격히 나빠진 시력은 내 눈에 대한 자신이 없게 만들었다. 돋보기를 미처 챙기지 못한 날은 가뜩이나 어려운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기가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럴 때 개구쟁이 학생들은 웃기도 하고, 나보다 앞서 다음 학생의 이름을 불러 주며 내 마음을 읽는 학생도 있다.

외할머니는 오랫동안 천식으로 고생을 하셨다. 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가면 외할머니의 기침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기침 때문에 외할머니의 몸은 가벼워졌지만 외할머니의 눈만은 언제나 맑고 빛이 났다.
외할머니의 눈 속에는 지혜로움이 있고, 거짓 없는 진실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외할머니는 맑은 두 눈을 감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느 날 보니 내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되어있었다.
어머니는 모습만 외할머니를 닮아 있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워 보이고 거짓 없어 보이는 외할머니의 눈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나도 그 눈을 닮고 싶다. 급격히 나빠진 눈을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눈에 좋다는 안구 운동도 하고 건강식도 챙기는 노력을 하겠지만, 이제 내 눈이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세상을 보게 한다는 생각은 내가 결정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바라는 것은
나도 우리 외할머니처럼, 내 어머니처럼
맑고 선량해 보이는, 겸손하고 거짓 없는 눈을 가지고 살다가 주님 곁으로 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램 만 해 볼 뿐이다.

<필자 소개>

필자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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