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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와 호박죽

기사승인 2016.03.24  11: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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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씀바귀 나물 무침 ⓒ임정훈

해마다 봄철이면 나는 나물을 뜯었다.

이른 봄날. 
집주변에서 자란 여린 쑥을 뜯어 쑥국을 끓여 먹었고, 좀 더 자란 쑥은 며칠 뜯어 모아 쑥 개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쑥을 뜯다가 냉이가 보이면 냉이는 바구니 한옆에 따로 모아 두었다가 초고추장을 넣어 무치거나 된장을 옅게 풀어 냉이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봄날, 따뜻한 햇볕에 앉아 나물을 뜯는 것은 나의 유일한 취미이기도 하며, 기쁨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물이 쑥이나 냉이가 아니라  씀바귀 일 때 나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매서운 한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자라는 것은 씀바귀 뿐 만이 아니고 쑥이나 냉이도 마찬가지이지만 씀바귀는 쑥이나 냉이처럼 들녘 어디서나 흔히 있는 것은 아니다. 씀바귀는 자라는 곳이 따로 있어서, 씀바귀가 있는 곳을 잘 보아두었다가 해마다 그 자리에 찾아가서 뜯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씀바귀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누가 알세라 주변에 씀바귀가 하나도 남지 않을 때 까지 해지는 줄 모르고 욕심껏 뜯어 왔다.

씀바귀 나물 ⓒ임정훈

나는 씀바귀에 생김새를 잘 알고 있다. 씀바귀와 비숫한 성질의 식물이 있는데 그것은 민들레다. 민들레는 봄철에 노란 꽃이 피며 줄기에서 하얀 진액이 나오고, 쓴 맛이 나는 것이 씀바귀와 같다. 그렇다고 민들레가 씀바귀인 것은 아니다. 민들레는 민들레이고 씀바귀는 씀바귀이다. 씀바귀와 생김새가 비슷한 나물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씀바귀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명품을 가장한 짝퉁 처럼 다른 것이다.

어머니는 씀바귀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언니들을 따라 논두렁이나 냇가 주변을 다니며 씀바귀를 뜯었다. 우리가 씀바귀를 뜯어 온 저녁이면 우리 세자매는 어머니가 무쳐 주신 씀바귀를 먹으며 자랐기 때문에, 나는 척 보기만 해도 한 눈에 어느 것이 진짜 씀바귀인지 알 수 있다.

씀바귀는 나에게 봄바람이었고, 나는 씀바귀를 뜯으며 봄바람을 잠재웠다. 그러나 해마다 봄날 한철 나에게 큰 기쁨을 누리며 뜯던 씀바귀를 어느 때 부터 인지 뜯을 곳이 마땅치 않아 뜯고 싶어도 뜯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뜯었던 곳을 기억하고 다음해 찾아 가보면 그곳은 이미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있어 씀바귀가 자라 던 자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점차 씀바귀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씀바귀가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찾아 다녔지만 그나마 점점 씀바귀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해는 씀바귀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해  제대로 한번 뜯어보지도 못하고 아쉽게 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다 중국에 있을 때 학교 뒷산에서 씀바귀를 뜯었다. 한국에서도 찾기 어려운 씀바귀이기에 중국에서 봄이 되어도 씀바귀가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혹시 쑥이라도 있을까 싶어 학교 뒷산을 올라갔는데 뒷산에서 씀바귀를 본 것이다. 내가 처음 씀바귀를 본 날은 밤새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이었다.

봄비를 머금은 씀바귀는 눈부신 봄날에 눈이 가리워지지 않을 만큼 갔던 길을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때의 그 기쁨은 양손을 들어 할렐 루야~~

학교 뒷산 ⓒ임정훈
학교 뒷산에서 바라본 들녘 ⓒ임정훈
학교 ⓒ임정훈

나는 내 중국어 선생인 이방과 함께 주말이면 씀바귀를 뜯으러 산에 올라갔다. 이방은 큰 씀바귀를 발견 할 때 마다 老師~ 瀚大!를 외치며 나에게 들고 와서 보여 주곤 하였다.

주변에서 나물을 뜯던 아주머니들은 우리가 열심히 씀바귀를 뜯는 것을 일부러 와서 보고 그것은 못 먹는 것이라며 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분들이 뜯은 나물이 못 먹는 나물 같아 보였다. 더구나 그분들이 씀바귀를 못 먹는 나물로 아는 바람에 나는 여유롭게 씀바귀를 뜯으며 봄날을 즐길 수 있었다.

씀바귀를 뜯어 바구니에 채우는 재미는 참으로 쏠쏠하다. 만족할 만큼 바구니를 채운 씀바귀를 일단 TV 앞에 펼쳐 놓는다. 그리고 TV를 보면서 씀바귀를 다듬는다. 씀바귀는 다듬는 것도 즐겁고, 다 다듬은 씀바귀를 씻어 끓는 물에 잠깐 삶아 된장과 고추장, 파, 마늘을 넣고 무치는 요리 자체도 즐겁다. 

씀바귀나물의 그 쌉소롬한 맛을 아는가.
세상에 이 보다 더 오묘한 맛을 내는 음식이 있을까 싶다.
중국, 사방 천지 한국 사람은 달랑 나 혼자 살고 있는 그곳에서 그때도 내 봄바람을 잠재워 주었던 씀바귀를 나는 주께서 이 땅에 나를 위하여 특별히 선물로 주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씀바귀나물무침을 먹었다.

“주여, 바라옵나니,
이로 내 마음에 쓴 뿌리가 빠져 나가게 하소서”

요즈음 딜리의 한낮은 엄청나게 덥다. 간간히 비가 오기는 하지만 비가 그친 후에 따갑게 내리 쬐는 햇볕이 어찌나 강한지  잠시도 밖을 거닐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딜리에서 한여름을 보내며 살고 있지만 내 몸은 한국의 봄을 기억하고 있나보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들녘에 나가 나물을 뜯고 싶으니 말이다. 그런들 사철이 더운 계절과 더 더운 계절을 살고 있는 딜리에서 내가 무엇을 바라겠는가.

오늘 교회를 가려고 준비하는데 카톡이 하나 들어 왔다. 가까이에 사시는 선생님께서 호박죽을 쑤었으니 함께 먹자는 문자였다.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땅을 뚫고 나와 자라는 씀바귀처럼  여름의 숨조차 쉬기 어려운 더위를 견뎌내고 열매를 맺어 황금색으로 알맞게 여문 호박이 동티모르에 있었다.

호박죽 ⓒ임정훈

그래도 이렇게 더운 날, 호박죽을 쑨다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가. 그런데도 선생님은 한국에서 드셨던 호박죽을 쑤어 나를 찾으셨다. 나는 호박죽에 담긴 선생님의 소박한 정에 감격하며 호박죽을 맛있게 먹었다. 그 호박죽 한 그릇이 한국으로 향하던 내 봄바람을 잠재우며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다. 

그래, 
나에게 주어진 일 성실하게 하다보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듯 씀바귀 있는 곳을 찾아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굽었던 허리 펴며 한국의 봄 하늘을 보고 있을 때가 있겠지.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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