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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 뒷산에 사는 꼴레가들

기사승인 2016.06.29  12: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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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안토니오 할아버지.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는 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 있다. 가볍게 생각하고 산에 오르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길에 놀라고, 숲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에 또 한 번 놀란다.

산길은 언제나 설렘으로 다가 온다. 숲에서 풍기는 풋풋한 냄새를 맡으며 걷다보면, 내가 한국에서 걷던 해솔길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느새 잡다한 생각들이 아득해진다. 

산에 들어서니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운 새소리가 나를 반긴다. 드문드문 있는 풀꽃들을 보며 걷다보니, 산 중턱에서 홀로 사시는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안토니오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집안이 어둡고 조용하다. 인기척을 내니 그제야 밖으로 나오신다. 어둠 속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집에 커피도 없고 아무것도 마실 것이 없으니 어떡하냐”며 미안해하신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살고 계신 할아버지가 건재하심을 확인 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부엌을 살펴보니, 불을 땐 흔적만 있을 뿐 무엇을 드셨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뭣 좀 드셨냐”고 하니, 아무것도 안 드셨다고 하신다. 배낭에 있는 빵과 사탕을 나누어 드리고, 언제나 깨끗하게 쓸어 놓은 마당에 앉아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할아버지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얼른 안으로 들어가 가져 오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훈장처럼, 가보처럼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할아버지의 핸드폰이다.

동티모르는 핸드폰을 사용하려면 “풀샤”라는 것을 사서 금액을 충전하여 사용한다. 할아버지는 우리 앞에서 자랑스럽게 어딘가로 전화를 하시지만 내 귀엔 “잔액이 부족하여 통화를 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야속하게 들릴 뿐이다.

집 앞의 작은 텃밭에는 고구마가 심어져있고 밭 주변에는 열매를 맺으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할 것 같은 바나나 나무가 있다. 집집마다 한 그루 이상 다 있는 야자나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것마저 없다. 야자나무 한그루 마당가에 딱하니 버텨주고 있으면 덜 적적해 보일 텐데. 나는 할아버지가 마음이 쓰여 엉뚱한 트집을 잡는 것 같다. 다행히 마당가에 아주 탐스럽게 익어가는 석류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석류에 눈독을 들이며 사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내려오는 길에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거라 “ate-logu” “다시 만나요”라는 인사를 나눈다.

아낀이와 아버지.

안토니오 할아버지 집에서 얼마만큼 더 산으로 오르다보면 아낀이네 집이 나온다.
아낀이는 일곱 살이 되는 사내아이다.

언제나 말이 없이 조용한 아이인데, 오늘 따라 아낀이 더 힘이 없어 보인다. 호들갑스럽게 들어서는 나를 큰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반가움을 대신할 뿐이다.

“아낀이 나흘째 열이 나며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며 아낀이 아버지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하는 말에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다”라고 말하지만 가슴이 너무도 아프다. 병원도 갈 수 없는 외딴집에서 왜 아픈지 이유도 모른 체 약도 못 먹고, 그렇게  앓고 있으면 어쩌겠는가. 아낀이가 부디 빨리 낫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아낀의 형제 육남매는 모두 정말 잘생겼다. 부모와 다르게 잘생겨 신기하기까지 하다.
특히 아낀이의 누나 아밀린은 엄청 예쁘다. 나는 아밀린이 크면 동티모르를 대표할 미인이 될 거 같다.

아밀린.

아낀이네 집에는 언제나 중국노래가 나온다.
아낀이의 아버지는 나무꾼이지만 볼 때마다 집 앞에 만들어 놓은 나무의자에 아낀이를 데리고 앉아 무심히 중국노래를 듣고 있다.
아낀이의 아버지에게 중국 노래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왠지 음악에 미련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으로 더 오르다 보면 아네스 할머니 집이 나온다.

아네스 할머니도 산속에서 혼자 사신다.
내가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신 할머니가 집  안으로 급히 가신다.  앙상한 다리가 보기에도 애처로운 할머니 뒤로, 할머니처럼 앙상하게 마른 강아지가 따라간다. 집 안에서 할머니가 의자를 들고 와서 “여기 앉으라”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아네스 할머니 집은 석류나무 만 있는 안토니오 할아버지 집보다는 나은 것 같다. 몇 개의 커다란  바나나 나무에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려있으니 말이다.

할머니에게 나이를 물었다.
머뭇머뭇하셔서 내가 괜한 질문을 드렸나보다 생각하는 동안 할머니는 나이를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아네스 할머니 나이가 몇 살이나 되시는지 나도 짐작이 안 간다.

아네스 할머니.

갑자기 할머니가 얼굴에 화색이 돋으며 말씀하신다.
“지난주에 손자가 한국으로 돈 벌러 갔어.”
그날 할머니는 공항에 따라가 손자와 헤어지면서 엄청 우셨단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한국으로 돈을 벌러 떠난 손자가 마냥 대견스러운가 보다.
아네스 할머니는 손자가 돈 벌러 떠났다는 한국이란 나라를 알고 계시는 걸까.

“여기까지 전기가 들어오네”
할머니 집 지붕으로 지나가는 전선을 보고 말하니 어느새 할머니는 집안으로 뛰어가서 자랑스럽게 전기를 켜 보인다. 동그란 전구에 30촉은 될까 싶은 전깃불이 빨갛게 들어온다. 

밝은 대낮,
할머니가 켜 준 전깃불이 마당을 나서는 내 뒤를 비추고 있다.

산에서 사는 나의 꼴레가(친구)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나라 사람들의 절반정도가 하루에 한 끼 식사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이들은 하루 한 끼도 어려운지 모른다. 그럼에도 마음이 따뜻하다. 누구를 미워할 줄 모르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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