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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핸드폰

기사승인 2016.07.19  11: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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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이틀간의 휴일을 보내고 학교 교문을 들어서다 세자르를 만났다. 
세자르는 2학년 학생인데 간간히 영어로 질문을 하여 나를 당황하게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성실한 학생이다.
  

세자르 ⓒ임정훈

 “세자르! 휴일동안 뭐하고 지냈어?”
반가운 마음에 묻고는 있었지만, 사실 딜리는 청소년이 누릴만한 놀이 문화가 없는 도시다. 그래서 휴일에 무엇을 했는지 물으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잠을 잤어요.”, “쉬었어요.” “공부했어요.” 라며 간단히 대답한다.
  
 “뿔샤를 팔았어요.”
 “뿔샤? 전화 충전카드를 팔았다고? 어디서?”
나의 쉴 틈 없는 질문에 세자르는 잠시 망설이더니 “길거리에서요” 라고 말했다. 
나는 세자르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하며 번 돈으로 무엇을 할 건지 물었다. 세자르는 빙그레 웃더니 “핸드폰요” 라고 대답했다.
  
이곳 학생들은 대부분 핸드폰이 없다. 
몇 명이 가지고 있지만 핸드폰이 없다고 해도 그다지 부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수업이 끝나면 핸드폰으로 함께 셀카를 찍자며 내 앞으로 모여들기도 하고, 찍은 사진을 마땅히 받을 핸드폰이 없는데도 즐겁게 사진을 찍는다. 그다음 그냥 한번 핸드폰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학생들과 셀카놀이를 하고 놀 때마다 한창 나이에 얼마나 핸드폰이 갖고 싶을까 싶었다.

세자르도 핸드폰이 갖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뿔샤’를 팔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뜨거운 거리에서 뿔샤를 사라고 외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기도 했을 것이다. 폭염 속에서 뿔샤를 팔고 있었을 세자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학생들 ⓒ임정훈
사진 찍기 좋아하는 학생들 ⓒ임정훈

그러다 문득 한국에 있는, 이제는 의젓한 가장이며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아들이 생각났다. 우리 아들도 세자르처럼 고등학생이었을 때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갖고 싶어 했다. 그즈음 대학은 이미 합격한 상태였고 머리를 노랗게 물을 드리고 와서 나를 당황 시키더니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해서 핸드폰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 “아들” 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글을 찾아보았다.

동네에 마트가 새로 문을 열었다. 
아들은 이곳에서 축하세일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핸드폰을 사기 위해서였다.

마트가 문을 열던 날, 밤새 배가 아파 잠을 못 잤다는 아들은 늦지 않게 가야 한다며 아침밥도 못 먹고 마트로 출근을 하였다. 
배 아픈 것도 걱정이 되고, 아들이 하는 일도 궁금하여 내가 마트에 갔을 때, 새로 문을 연 마트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 속에서 아들을 찾아 돌다가 한 귀퉁이 생선코너에서 발목까지 오는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생선을 담아 주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뜻밖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아 아들의 얼굴을 못보고 생선만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 갈치가 세 마리에 만원이에요.”
좀 전 까지는 두 마리에 만원이었는데 지금은 세 마리라고 아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배는 어떠니?”
 “아직도 좀 그래요. 곧 낫겠지요.”
 “너는 생선 코너니?” 
 “네. 여기에서 일하래요” 라며 아들은 밝게 말했다.
 “엄마도 갈치 줄래” 
아들은 내 말에 갈치를 손으로 덥석 집더니 “여기 갈치 세 마리요”하면서 생선을 손질하는 아주머니에게 넘겨주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꿀물과 소화제를 챙겨 다시 마트로 가져다주고 나는 집에서 아들을 기다렸지만 아들은 저녁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쪼르르 가보기도 그랬다.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11시가 다되어 초인종이 울리더니 생선냄새를 가득 안고 아들이 들어왔다. 무려 열세시간을 서서 일하고 청소까지 하고 왔다며 아들은 자고 싶다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도 아들은 노란 머리를 날리며 마트로 출근을 하였다. 
  

아들과 손녀 ⓒ임정훈

어제와 같이 밤에 돌아온 아들은 “아줌마들이 참 치사해요. 자존심이 상해서 못하겠어요. 오늘은 반품되는 생선도 많았어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도 만났고 동네 아는 사람들은 모두 만났어요” 라며 투덜거리더니 “그만 두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나는 아들의 하루가 고스란히 느껴져 콧날이 시큰 거렸지만 “그만 두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할일이지만 그곳이 그렇게 바쁜데 일단 네 대신 일 할 사람을 찾으라는 말부터 하고 다른 사람이 오면 그 때 그만 둬야겠지. 그리고 자존심 상할 것이 뭐있어. 목표를 두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거지” 라고 말했다. 

조용히 내말을 듣고 있던 아들은 “엄마도 주무세요” 한마디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도 변함없이 아들은 늦었다며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출근을 하였다. 

일당 4만원! 
원래 3만원에 밥 두 끼를 주기로 하였는데 밥은 집에서 먹고 올 테니 4만원을 달라고 하였단다. 어린애로 보이는 아들에게 그런 수완이 있을 줄이야 신기하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들은 “엄마, 이제 생선이름은 다 알 수 있어요. 아줌마들에게 방금 들어 온 생선이라며 소개도 해주고 가격도 싸다고 말 해 줘요”라며 “좀 지나면 마이크도 잡게 생겼어요”라고 농담을 하였다. 

“글쎄 좀 지나면 우리 아들 길가에서 ''골라! 골라! 도 하겠네”라고 나도 응수 하였다. 

아들은 하루하루 일당을 받아왔다. 아들의 일당은 은행에 갈 시간이 없어 통장에 넣지 못하고 생선냄새를 풀풀 풍기며 책상위에 쌓여갔다.
나는 은행가는 일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아들이 제 손으로 번 돈을 직접 넣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 두었다가 바로 핸드폰을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못 본 척 그대로 두었다. 

드디어 아들이 열흘간의 아르바이트를 마치던 날이 되었다. 
어젯밤 아들이 들고 온 신선도가 조금은 떨어지는 고등어를 조려 놓고 나는 마트 앞으로 마중을 나갔다. 제 딴에 힘에 겨웠을텐데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아들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노랑머리 날리고 생선냄새가 풀풀 나겠지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을 빨리안아 주고 싶어서였다.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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