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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평안을 누리는 자인가

기사승인 2024.07.25  13: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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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21)

▲ 예수께서 칼을 주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가 그 칼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Getty Images
예수는 말씀하셨다.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 평화(화평)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저들은 내가 이 땅에 불, 칼 그리고 투쟁을 주려고 왔음을 모르고 있느니라. 다섯 식구가 집에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서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서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니, 그런 후에 그들은 홀로된 자로써 담대하게 서리라.”(도마복음 16)

예수는 세상에 ‘검을 주러 왔다’(마태 10:34-53)고, ‘불을 던지려, 분쟁을 일으키려 왔다’(누가 12:51-53)고 하여 분별하는 마음(거짓 나)을 벗어나는 절대부정과 진리(참나) 깨달음인 절대긍정이 하나(One)임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가 세상(몸과 마음) 안에 온 것은 이기적인 집착, 탐욕에 맞서는 ‘불, 칼, 그리고 분쟁’을 통하여 이원성의 에고(ego)인 자기 목숨(거짓 나)을 버리고, 하나의 진리(참나)를 살리기 위함이다(눅 17:33). 하나의 진리 깨달음을 통하여 분별과 집착의 ego(거짓 나)를 넘어선 ‘홀로된 자’(참나)는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된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내면의 성소(골방, 마 6:6)에 들어가 탐욕이 사라진 명상적 기도 속에서만 하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명상의 수행은 상대적 개념으로 분별하여 보던 것을 해체하고 분별 이전의 자리(One)를 깨닫는 지혜이다(本來無一物). 또한 인생과 우주의 실상(神性, 佛性)을 바로 보는 정견(正見)을 얻게 된 홀로된 자(독생자)로서 스스로 부처(化身)임을 깨닫게 한다(요 9:39). ‘홀로된 자’(모노게네스)는 신에게 구걸하는 세속적 삶(ego)을 벗어나 무욕(無慾)으로 생명(神性)의 전체성을 성취한 자이며, 그에게는 항상 어떠한 상황에서도 초연한 삶이 빛난다.

예수처럼 자신의 생명(참나)을 깨달아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서서 ‘하나(One)가 된 자’가 ‘홀로 된 자’(독생자)이다. 부처도 하나의 진리를 깨닫고 ‘이 세상에 오직 나(참나)만이 존귀하고 삼계가 고통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평안케 하리라’(장아함경)고 하셨다. 우주는 오직 하나의 생명뿐이며, 진리뿐이다. ‘하나의 생명(神性)을 회복한 자’(홀로된 자)는 신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와 같이 모든 염려로부터 벗어난 평안을 누리는 자이다(마 6:26, 28).

이 세상에서 평화라고 말하는 다툼과 갈등이 없는 ‘현상적인 상태’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다만 내면의 생명(참나)에서 비롯된 ‘본질적인 상태’(One)가 참된 평화이다. 홀로된 자(One)는귀에 들리는 소리와 눈으로 보이는 모양(名相)의 양변(兩邊)이 다 떨어진 초연한 자세의 평화로운 자이다. 그는 영원한 생명인 내면의 성품(참나)을 깨닫고,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대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하나의 진리를 자각한 자이다.

성경은 ‘하나님, 예수 그리고 인간은 모두 하나다’(요 17:11)라고, 불경(佛經)은 ‘마음, 부처 그리고 중생은 모두 하나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라고 하나의 진리(생명)을 설명하고 있다. 홀로된 자(독생자)는 ‘개체적인 나’(ego)를 넘어 ‘둘이 없는 하나’(One without second)가 된 자이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무한한 사랑(빛)으로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和光同塵, 도덕경 4장)이다. 그는 진동하는 에너지의 한 패턴인 육(肉)의 ‘나(거짓 나)를 벗어나 모두의 안에 있는 영(靈)의 ’나‘(참나)를 자각하여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사랑하는 자이다(自他一如).

따라서 예수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그것을 찾으리라”(마 16:25)고 하셨다. 진리(예수)를 위한 내면의 투쟁을 통하여 분별 집착하는 육체의 ‘나’(거짓 나)를 버리면 무분별하는 신성의 ‘나’(참나)를 찾게되어 행복자체인 영원한 생명(神性)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홀로된 자’(독생자)는 온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실상(참나)을 깨달은 자이며, 이분법적 사유의 생명(ego)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우리 모두는 본래 영원한 생명(참나)과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귀한 자’(神의 자녀)이며, 이원성인 원죄의 죄의식이나 자기 비하를 버리고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홀로된 자(독생자)로서 담대하여야 한다.

구자만 박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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