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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고유한 나의 리듬을 찾는 것

기사승인 2016.12.21  11: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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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가 영성을 아느냐?④> ‘더불어 사는 이’ 김홍일 신부

1986년 9월 상계동 달동네 판자촌 작은 전세방에서 시작한 ‘나눔의 집’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성공회(대한성공회) 청년들이 어느 한 전셋집에서 시작한 이 집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배우고자하는 사람들을 위한 야학과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과 탁아소, 가난한 이웃의 경제적 자립과 자활을 위한 자활지원센터, 고용지원센터 등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30년을 걸어왔다.

이 시작에는 당시 스물여섯이었던 청년 김홍일이 있었다. 김홍일 신부는 2002년까지 나눔의 집에서 주변부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의 삶을 나누었다. 그 발걸음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현재 그는 청년 대안주거공동체 ‘숨과 쉼’을 통해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년들과 함께 더불어 살고 있다.

김홍일 신부는 최근 영성운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 중 한명이며,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 중 한명으로, 브랜든선교연구소의 소장이자, 한국샬렘영성수련원의 운영위원이다. 그는 학교, 교회, 워크샵, 피정, 각종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온 그에게 영성과 기도를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영성생활이 아니라, 개인의 영성과 공동체적 영성의 균형과 조화에 대해서 주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은 김홍일 신부와 필자의 대화이다.(필자: 광희/ 김홍일 신부: 홍일)


워커홀릭, 고독과 당혹스러움

광희: 신부님께 영성에 대한 안내요청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일: 현대인들은 분주함 가운데서 스트레스가 많은 삶을 사는데 그 속에서 삶의 의미랄지, 근원적인 것에 대한 물음이 있을 것입니다. 영적존재인 인간에게는 참된 자신을 회복시키고 싶어 하는 갈망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점점 사회가 여유를 잃어가고 공동체적인 모습이 파괴되어 가기 때문에,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할 만한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나는 누구지?’ 라는 갈망이 생겼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전 교회 안에 영성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개신교전통에서는 주로 부흥회라는 영적인 차원이 있죠. 그런데 그 부분이 감정적인 부분에 연결됐다면, 지금은 보다 깊은 무언가를 찾는 것 같습니다.

베네딕트 수도규칙을 보면 인간은 몸을 가진 생각하는 존재이고,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수도원의 삶을 공부하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일하는 시간으로 구분해 인간을 균형 있게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려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삶의 리듬이 파괴됐어요. 생산성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다 망가지게 됐죠. 개인의 휴식은 물론 공동체의 관계도 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회복시키길 원하는 갈망이 예전보다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광희: 그렇다면 신부님께서도 같은 이유로 영성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걸어오신 길이 궁금합니다.

홍일: 저는 ‘나눔의 집’이라는 곳에서 빈민선교를 오래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저를 말할 때 ‘워커홀릭’이라고 할 정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경직된 사람이죠. 사람과의 모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일은 될지 모르겠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외로워졌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늘 같이 살았어요. 나눔의 집에 있을 때는 야학교사들, 야학생들, 시설로 보낼 수 없는 아이들과 같이 살았죠. 하지만 야학생들이나 교사들은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면 떠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하고 저만 남게 되죠. 나눔의 집에 함께 있다가 결혼을 해서 근처 동네에 살게 된 청년들을 찾아가면 처음에는 고마워하다가 여러 번 가면 내가 부담스러워 지는 모양이었습니다. 자신들의 할 일이 많은데 저는 옛날 생각만 하고 끊임없이 일 얘기만 했어요. 점점 저를 부담스러워 했죠. 서운하기보다는 외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구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김홍일 신부. ⓒ에큐메니안

그저 골방에 들어가 성경을 보며 기도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성경이 다가오지 않았는데, 그런 마음상태에서 성경을 읽으니까 시편의 구절들이 가슴에 박혔죠. 그리고 기도를 하려하는데, 제가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더군요.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아침저녁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기도서(성공회전통)를 가지고 기도하기 때문에 혼자서 있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었던 거예요. 때마침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이유는 제각기지만 비슷한 외로움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모여 공부하고 기도해보자.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영성도 배우고, 기도도 배워보자’ 해서 같이 5년을 매달 1박 2일을 모여서 수도원을 돌아다니기도 하며 기도하고 공부했죠.


...김홍일 신부가 청년시절부터 일을 하며 열심히 달려오다 마주치게 된 외로움과 당혹감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인생을 모르는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다만 추측하기로 영성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뒤에는, 멋없고 외롭고 당혹스럽고 고통스럽고 처절하기까지한 실존의 싸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오늘의 문제, 오늘의 수도원

광희: 수도원을 돌아다니시며 기도와 공부를 하셨다고 해주셨는데요. 신부님께서는 신수도원운동(New Monasticism)을 활발하게 소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신수도원운동이 최근 영성 담론에서 차지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수도원운동은 무엇인가요?
 
홍일: 전통적인 수도원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인 자산들을, 수도원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수련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기 때문에 하나의 흐름이라고 딱 말하기 어렵습니다.

전통적인 수도원과 새로운 수도원의 겹쳐지는 부분 중 하나는 규칙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서약을 예를 들 수 있는데요, 가난, 정결, 순명이 전통적인 수도원들의 서약입니다. 전통적인 수도원에서 가난은 무소유, 정결은 독신, 순명은 수도원 원장에게의 복종을 의미한다면 새로운 수도원에서는 이것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이들은 가난은 나눔과 연대, 정결은 내 파트너에게의 성실함, 순명은 공동체와의 약속의 복종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전통적인 수도원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자신들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삶의 리듬입니다. 베네딕트 수도원이 노동하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이 나눠져 있듯이, 전통적인 수도원에서는 삶의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현실에 맞게 이것을 적용시켜서 일하고 활동하는 시간과 성찰과 기도하는 시간을 균형 있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필자가 교회사 세미나를 통해서 배웠던 수도원운동의 배경은 교회가 직면한 새로운 과제들, 예를 들면 도시화문제, 교회 개혁의 문제, 선교의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신수도원운동 역시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과제들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발생한 타인과의 단절의 고통과 쉼 없이 내달려 찾아오는 탈진이 바로 그것이다. 김홍일 신부가 예를 들어준 신수도원운동에서 보이는 새로운 해석들은 관계성의 회복과 인간다움의 회복을 시도하고 있어 보인다...

창조의 ‘선함’에 주목하기

광희: 제가 속한 장로교에서는 수도원영성의 전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요, 성공회의 수도원 전통 속에 남아있는 영성은 무엇인가요?

홍일: 성공회 영성의 뿌리를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켈틱영성’과 ‘베네딕트영성’입니다. 켈틱은 로마교회가 본격적으로 영국에 선교를 시작하기 전부터 있었던 토착 기독교입니다. 이미 영국은 3~4세기 그러니까 아주 초기부터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로마교회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교회였죠.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시리아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켈틱이 로마교회와 가장 다른 점은 굉장히 ‘수도원적’이라는 것인데요, 주교와 수도원장이 있으면 수도원장이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마을에는 꼭 교회와 수도원이 있고, 이는 마을 전체가 수도원처럼 사는 모습으로 나아갔습니다. 굉장히 독특하죠. 씨를 뿌릴 때, 고기를 잡을 때, 밥을 먹을 때 등 삶 전체의 모든 기도문이 있습니다. 교회-수도원-마을이 하나의 수도원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죠.

그 교회가 쭉 존재하다가 7세기에 로마에서 영국으로 선교사들을 보내면서 켈틱과 로마교회가 만나게 되었어요. 당시 로마는 어마어마한 힘의 제국이었죠. 그래서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켈틱을 로마교회에 합병시켰습니다. 이때 로마의 선교사들이 베네딕트 수도자들이었기 때문에 영국교회에는 켈틱과 베네딕트의 수도원적 전통들이 함께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켈틱교회는 부활절을 계산하는 방법이나, 수도자들의 복식, 두발전통 등이 다릅니다. 특히 신학적으로는 펠라기우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과의 논쟁에서 이단으로 평가받은 사람이죠. 켈틱이 정교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어거스틴이 말하는 전적타락은 정교회와는 다릅니다. 정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이 지금은 세계적인 흐름이 됐습니다.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것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어쩌면 펠라기우스는 인간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이해했다기보다, 차별 없이 모든 인간 속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멸절되지 않았던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었던 사람은 아닐까? 우리가 그런 감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본다면, 불신과 판단의 색안경 없이 온 몸으로 타인을 환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로마교회 베드로를 예수의 수제자로 생각한다면 켈틱은 요한을 가장 중요한 제자로 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있는 사람으로 예수의 심장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심장은 기독교에서 중심을 나타내는데,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깊은 중심을 알았던 사람이다’라는 평가에서 요한의 전통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켈틱교회는 기본적으로 선교하는 전통이 강합니다. 그 사람들의 선교는 일종의 순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교회의 순례가 목적지가 있고, 돌아오는 것이라면 켈틱의 순례는 목적지가 없이 그냥 떠나는 것이죠. 굉장히 무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주 무모한 경우, 파도가 치는 바다에 돛단배도 없이 배를 띄우고, 성령이 이끄는 데로 가기도 했습니다. 가다가 죽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 사람들은 그것을 순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정도로 모험적인 선교정신이 강했습니다.

...나는 영성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지만, 켈틱의 순례는 영적 여정의 일면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 내가 잘 세워둔 계획에 따라 목적지에 잘 도착하는 여정이 아니라, 무언가 나를 이끄는 대로 내 맡기는 점에서 말이다. 어쩌면 영적 여정을 떠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로 무모함을 강행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광희: 켈틱영성 전통에서 강조하는 수련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홍일: 우선 켈틱에서 중요한 특징은 수도원입니다. 생활과 신앙이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노동하는 것, 쉬는 것, 노는 것 모든 것이 다 하나의 기도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요즘 범재신론과 비슷한 면이 있죠. ‘하나님은 언제나 계신다’는 세계관을 하나의 의식으로 자신들이 체계화 시켰습니다. 물론 켈틱 전통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웃음)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기도문을 보면 그렇게 살려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켈틱영성이 주목받는 것은 사실 ‘생태문제’ 때문입니다. 특히 자연과의 교감이 그런데요, 모든 만물 속에 신이 내제되어 있다는 사상들이 토착적인 켈틱 문화에는 강하게 남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와 연결되면서 켈틱그리스도교 안에서는 모든 피조세계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해가 강했습니다.

켈틱교회 안에 있는 독특한 세계관 중에 하나인데,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가면 내세와 이승을 넘나들 수 있는 그런 지점이 있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영어로는 ‘thin place’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이 있는데, 어떤 공간에 가면 그 장벽이 굉장히 얇아서 톡 치면 하나님과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믿었죠. 예를 들어 ‘아이오나’(Iona) 같은 곳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어떤 시간에 기도하면 하나님과 연결된다는 그런 자신들의 세계관과 기독교 신앙을 연결 시켜서 독특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장벽이 얇아지는 그 장소와 그 시간, ‘Thin place’라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Thin place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곳이 예배당일 수도 있고, 골방일 수도 있고, 거리일 수도 있으며, 집일 수도 있고, 그 시간은 아침일 수도 밤일수도 있다. 나의 Thin place는 언제, 어디일까? 이것을 의식하여 찾는 것도 중요한 과제인 듯 보인다...


광희: 마지막 질문입니다. 신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영성가란 어떤 사람입니까?

홍일: 영성이 없는 사람은 없죠. 특별한 사람을 영성가라고 하는데, 도로시 데이(1897-1980)는 자신이 죽으면 절대 성녀로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인은 진정한 자기가 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생긴 대로 살면 그게 성인이라는 것이 도로시 데이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다 고유하며 다르죠. 고유한 자신이 고유한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잘 살면 우리는 다 성인이고, 영성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고유의 자신대로 사는 것 그것이 영성가입니다.


...‘숨과 쉼’ 그가 청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이름이다. 김홍일 신부와 만난 날,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숨과 쉼’에 머물 수 있도록 이사 준비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날도 누군가와 더불어 살기 위해 고민하며 행동하고 있었다. 그의 삶과 영성의 한 꼭지를 들으면서, 김홍일 신부가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을 개방하며 약한 이웃과 삶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베푸는 입장에서의 경제적 나눔은 아니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고루 심겨주신 ‘불멸의 다이아몬드’에 주목하는 것이었고, 그것들이 함께 꿰일 때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는 믿음의 실천이 아니었는지, 그것이 바로 김홍일 신부의 영성은 아니었을까.. 무한한 경쟁 사회 속에서 혹사당하고, 사람들 사이의 극심한 단절 속에서 고통 받는 오늘날, 나도 사람들 속에 빛나는 아름다움에 주목하며 더불어 숨을 쉬고, 다른 누구에게 쉴 곳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광희 webmaster@ecumen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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