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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실 안에는 무지개가 피었다

기사승인 2021.05.07  15: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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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다호 데이 (1)

2018년 1학기, 6번의 불장난 프로젝트 강연을 끝낸 우리에게 신대원 첫 학기를 잘 보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찾아왔다. 우리가 고민했던 지점들을 강연으로 풀어보고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는 지점에서 그리고 학교가 그런 열린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정도면 학교 안에서도 충분히 무언가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8년 1학기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로 가는 도중 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인권의 가면 뒤에 숨은 동성애> ‘염안섭 원장 초청’ 학교에 반동성애 동아리가 조직되었고 그 동아리에서 대표적인 반동성애 스피커인 염안섭 원장을 초청한다는 포스터였다. 믿기지가 않았다. 왜냐면, 2017년 10월, ‘[동성애: 현장이 답하다] 목회 현장에서 만난 성소수자들의 신앙과 삶 이야기’강연회가 취소되었을 때 학교에서 이야기 했던 것이 ‘학교는 중립을 지켜야 하고, 학교가 중립을 지키는 방식은 동성애와 관련된 그 어떤 강연이나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이다.’였기 때문이다. 즉 학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총회의 입장과 연구하고 토론하는 학교의 고유성 가운데서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겠다는 것이었다.

▲ 반동성애 강연 포스터

선택을 하지 않는 것... 그것도 일종의 선택일까? 동성애와 같이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강연에 대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할 수 없는 그 애매한 경계 말이다. ‘찬’, ‘반’을 떠나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겠다는 학교의 의지가 엿보였다. 우리는 학교가 처한 상황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에 학교 입장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2017년 학교의 일방적인 강연 취소를 받아들였는데! 한학기만에 학교에서 반동성애 강연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인권의 가면 뒤에 숨은 동성애>라는 직접적인 제목으로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이 무언가 뒤통수를 친 것 마냥 아파왔다. 학교가 결정을 내렸구나 하고 말이다.

학교가 반동성애 강연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자신을 밝힐 수 없지만 학교에 폐쇄성 속에서 상처받고 배척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의 결정에 저항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마침 5월 17일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아이다호 데이’인걸 알게 되었고 그날에 맞춰 <함께 살자 – 우리는 혐오에 저항한다!>는 피켓 시위를 캠페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살자> 피켓을 통해 교단은 성소수자를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고 학교 또한 학교 안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성소수자 입학을 불허하고 있는데... 교단에 속해있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인 나는! 우리는! 내 옆에 친구가 어떤 존재이든, 어떤 정체성이든 함께 공부하고 싶다, ‘함께 살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이 우리 학교 공동체 안에서도 고백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 ‘함께 살자’ 피켓을 제작했지만 결국 들지 못했다.

이런 마음으로 피켓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학칙 상 ‘시위’는 학교에 허가를 받아야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란 걸 알게 되었고 학교의 ‘승인’을 받기위해 교수님들을 찾아갔다. 교학처와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함께 살자>라는 피켓을 들고 싶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지금은 시기가 민감해서 안 된다’는 거절의 답변이 되돌아왔다. ‘함께 살자’라는 이야기조차 할 수 없는 학교, 혐오하지 말자라는 이야기도 못하게 하는 학교... 과연 이곳이 예수를 따른다는 사람들의 모임이 맞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막는 것일까?

강연도 열 수 없고, 피켓도 들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뜻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친구 중 한명이 ‘빨, 주, 노, 초, 파, 보 무지개 색을 맞춰 입고 채플을 드리면 어때?’라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때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2년 전인 2016년 아이다호 데이에 선배들이 무지개 색을 맞춰 입고 채플을 드렸다는 학교 신문 기사가 말이다. ‘오! 이거면 되겠다’ 내가 빨간색 옷을 입고 채플을 드리겠다는데! 내가 노란색 옷을 입고 채플을 드리겠다는데! 학생의 옷 색깔까지 학교가 지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5월 17일 아이다호 데이에 빨, 주, 노, 초, 파, 보 색의 옷을 맞춰 입고 채플을 드리자고 결정했다.

사실 무지개 색 옷을 입고 채플을 드리는 것은 굉장히 소극적인 의사표현이었다. 이정도 표현 밖에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학교와 교단은 성소수자들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못하게 하고, 어떠한 의견 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존재하면 안되는 사람들로 만들어 나가는데... 이러한 흐름에 소극적이나마 저항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이다. 누군가 채플실에 있는 우리의 무지개를 보고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5월 17일, 밖에는 비가 내리고 채플실 안에는 무지개가 피었다.

▲ 아이다호 데이 채플실에 무지개가 피었다.

서총명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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