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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향한 기도라는 폭력

기사승인 2021.04.09  15: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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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기도였을까

▲ 신학기 사경회 당시 저녁 기도회 모습 ⓒ서총명

2018년 나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신대원 입시부터 쉽지 않았는데... 면접 때 교수가 나에게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다. 이 질문과 신학대학원 진학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질문을 받은 나는 ‘아... 떨어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에 대한 내 태도가 내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면접과의 질문에 “성경에는 죄라고 쓰여 있을지 몰라도 그 특정 구절을 가지고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거나 성소수자를 죄인이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은 내가 속한 예장통합에 ‘동성애는 죄이지만 차별하지 않고 사랑해야 한다’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신대원 입시에 합격한 나는 2017년 강연을 함께 연 친구들에게 지금은 우리가 조용히 있어야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치지 않고 주목 받지 않는 학교생활을 하고 싶었다. 왜냐면 대학원에 들어가기도 했고, 교회에서 전도사로서 사역도 처음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활의 시작, 안정된 미래를 꿈꾸려면 신대원 생활이 매우 중요했다. 신대원은 인맥과 좋은 사역지를 구할 수 있는 사다리 역할을 했고 여기서 삐끗하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성소수자 운동을 할 생각은 아니었고 의도치 않은 일이 커진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 태도는 조금 아쉽지만 내 삶은 또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 모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나도 잘될 수 있다’고 말이다.

웃긴 건 그렇다고 또 대형교회에 가고 싶다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건 내 성미와 맞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나는 이미 망한 거 같기도 하고 입학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조용히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동기들 사이에서도 튀지 않으려고 했고, 교회 사역도 점점 적응해가고 있었다. 작년에 있었던 일은 작은 헤프닝 정도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다.

이렇게 끝났으면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해보곤 하는데 폭풍은 이제 시작이었다. 신학교는 매학기 초, 학생들이 사경회라는 수련회를 참석해야 한다. 2박3일간 ‘예배-밥-예배-밥-특강-밥-예배-기도회’ 대략 이런 순서로 진행되는데 신학생이지만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다. 사건은 너무나 은혜로운 사경회에서 시작되었다.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은혜가 충만한 사경회에 참석한 나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2층 구석에 앉아 있는데 지난날의 전우들이 한명씩 주변에 모이기 시작했다. 역시는 역시인가 생각하면서 그들과 사경회 프로그램을 함께 보냈다. 이야기도 나누고, 잠도 자고 어떤 친구는 책을 읽으면서 사경회를 견뎌냈다. 말 그대로 견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가 나는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더 이상 섞일 수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2층에 외딴섬처럼 모여 있었다.

밤 예배가 끝나고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목사를 꿈꾸는 600명의 학생들이 인도자가 안내하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통성으로 기도했는데 굉장히 열기가 뜨거웠다. 찬양을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첫 번째, 두 번째 기도 제목이 바뀔수록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다섯 번째 기도가 끝나고 인도자가 여섯 번째 기도제목을 이야기하는데 PPT에 띄어진 기도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뜨악하며 충격을 받았다.

‘사이비, 이단 척결과 동성애와 이슬람세력의 팽창을 저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는 것이었다. 척결과 저지가 우리의 기도제목이었다. 600명의 학생들이 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데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금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 거지?’ 하고 말이다.

살기어린 기도제목에 나는 기도를 드릴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 동성애를 ‘저지’해달라고 기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폭력’이다. 누군가 ‘이성애’를 저지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동성애 저지가 기도 제목이 된 현실과 기도제목을 열심히 부르짖는 학생들... 나는 그날 밤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2층에 앉아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역시나 그들도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성소수자를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게 막는 것과 이들을 저지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영역까지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들어왔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 충격으로 나는 신대원 입학, 새학기를 조용히 보내자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논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상상이 시작된 것이다. 한쪽에서는 은혜로운 예배가 한쪽에서는 전복을 꿈꾸는 이들의 모임이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이 상상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따를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세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우리의 미래를 아직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양손에 둘 다 쥘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서총명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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