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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역사교과서 국정화 막아야

기사승인 2016.06.24  11: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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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호 칼럼>

역사적인 여소야대의 20대 국회가 출범했다. 국민들의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 심판의 결과이다.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에 따라 정부(대통령)에 대한 감시, 감독과 견제를 국회가 확실히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20대 국회는 그러한 국민의 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의지라는 하나의 이유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이며 폭력적으로 추진해 왔고, 총선 결과의 민심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추진해 나가고 있다. 제동장치도 없이 폭주하고 있는 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열차를 막지 않으면, 바로 내년 2017년 3월 1일부터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는 국정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데, 그 혼란과 난맥상은 불을 보듯 환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8개월도 체 남지 않아, 인쇄, 배포 등을 생각하면 제작기간은 반년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필자 등 진행과정은 공개되지 않은 체 암흑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학자와 교사, 학생들이 앞 다투어 반대의사를 밝혔고, 국민의 국정화 반대 여론은 행정예고 기간을 거치며 계속 높아갔으나,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2015년 12월 헌법소원까지 제기되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학생, 학부모, 교사와 교장, 집필자 그리고 국민 등 3,374명을 청구인으로 하여, 국정화 고시와 근거법령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청구서를 제출하였다. 소송대리인단은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을 포함한 48명의 변호사로 구성됐다. 그러나 현 정권 아래서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신속하게 또 진지하게 다루어 줄까는 의문이다. 재판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

평생 교사로 살아온 나는 ‘국정교과서’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몇 있다. 내가 1974년부터 교단에 섰으니까 30년도 더 전 군사독재시절 얘기이다. 요즘도 나는 가끔 그때 학생들이나 함께했던 교사들을 만나곤 하는데, 특히 그때 가르쳤던 학생들을 만나면 수업시간에 있었던 얘기가 다시 꽃 피기도 한다.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교과서에 대한 얘기다. 내가 가르치던 국어는 당연히 국정교과서였는데, 획일화된 내용도 문제였지만, 그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할 때의 여러 가지 토막얘기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당시 국정교과서에는 군사정권을 미화하거나 전현직 대통령을 칭송하는 내용도 있었는데, 그런 내용이 나올 때 마다 내가 화를 내며, “이런 따위를 교과서에 실으면 어찌 하냐?”며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침통한 목소리로, “여기 교과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사실은 다를 수도 있다”며, 그 배경설명도 재미있게 해 주면서, “이런 건 시험에 잘 안 나오지만, 그래도 모의고사나 입시 등에서 문제가 나오면 잘 알아서 판단하라”는 등, 애매하게 가르쳐서 몹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는 것이었다. 특히 남북관계나 북한의 현실 등에 이런 내용이 많았는데, 6.25 전쟁의 배경과 발발 등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다면서, 내용을 좀 더 풍부하고 깊게 가르쳐 주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또 이런 때도 있었단다. 한 번은 어느 단원을 새로 시작하는데, 내가 갑자기 “이 단원의 필자는 친일파여서, 민족배반자의 글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도 용납할 수 없고, 그 내용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건너 뛸 수밖에 없다”며, 대신 그 시간엔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친일파들의 행적과 문제점에 대해 토론수업을 하자고 해서, 한편으론 재미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입시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국어교과서에 실린 친일파의 글이 한 두 편이 아니어서, 그걸 다 빼자니 전체 균형도 안 맞고, 그와 비슷한 유형의 다른 작가의 작품을 골라 대안으로 가르치자니, 그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학생들과 같이 고민하며 수업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되니 나는 자연스럽게, 수업시간에 교과서는 안 가르치고 다른 엉뚱한 소리나 많이 하는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군사독재정권이 교과서와 입시로 교육을 철저히 통제했음을 잘 알 수 있다. 초중등 보통교육을 독재정권의 유지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에 이어, 당시 체제에 복종하지 않았던 많은 교사들은, 그 다음 해 벌어진 유월항쟁의 민주화기운에 힘입어, 자주적 교원단체인 전국교사협의회를 결성하고 학교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이어 1989년 5월에는 한 걸음 더 발전한 조직형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오한 대로 감옥으로 끌려갔다. 지루한 재판이 계속되고 드디어 결심공판에 이르러 최후진술의 기회가 왔다. 나는 차가운 독방에서, 한 평범한 교사인 내가 왜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교사로서 양심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뿐이었다.

결심공판 날 재판정에서 나는, 울먹이며(촌스럽게) 최후진술이랍시고 몇 마디 했다.
“내가 지금 이 시대의 한 교사로 푸른 죄수복을 입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내가 가르치는 교과서대로 살아라 하면서,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나도 내가 가르친 대로 살기 위해 애쓰다 보니, 오늘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교과서대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또 교단에 서겠지요. 그때도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얘들아 우리 최소한 우리가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는 교과서대로만이라도 살도록 노력하자. 나도 그렇게 살도록 최선을 다할게’ 라고 말입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아니 우리 교사들이나 학생들에게는, 교과서는 그런 의미였다.

결국 나는 그 일로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왔다. 그 뒤에 또 한 번 끌려가서 2년의 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 길거리교사 생활 10년 만에 복직하여 다시 교단에 섰다.

모든 게 변해 있었다. 교과서도 몰라보게 바뀌어 있었다. 현 대통령을 칭송하는 글도 친일파의 글도 없었다. 대신 여러 종류로 다양하고 풍부했다. 교육민주화의 기반이 마련되어 가고 있었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교과서를 국정으로 돌린단다. 민주주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겠단다. 헌법이 명시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교육을 정권의 손아귀에 움켜쥐겠단다. 그래서 영구집권의 토대를 마련하겠단다.

이미 스물일곱의 청년 전교조를 법 밖으로 추방하고, 무지막지한 탄압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또 교사들이 해직당하고 감옥으로 끌려가고 있다. 학생들은 진실과 정의에서 소외당하고 있다. 결국 보통교육이 또 죽임을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국민의 압도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다수를 점한 새누리당의 횡포로, 야당은 아무 일도 못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시대착오적이며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일임에도, 교육부가 고시로 밀어붙여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국회 지형이 바뀌었다. 야당이 의지를 가지고 힘을 모으기만 하면, 고유권한인 입법권으로 얼마든지 이 횡포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재앙은 화산재처럼 온 땅을 뒤덮을 것이다.

원내 야 3당의 분발을 촉구한다.

 

   
▲ 필자 이수호.

 

 

 

그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전 박원순 서울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로 활동 중에 있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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