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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소노동자

기사승인 2016.06.20  14: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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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호의 일흔즈음>

누가 전화가 와 어려운 말투로
따로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 하면
은근히 겁이 난다
이런 경우 대체로 청탁성 어려운 부탁이거나
관계 속에서의 개인적 고민이거나
부담은 되지만 그래도 나은 것은
결혼 주례 부탁이나 강연 요청 같은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그분의 전화는 분위기가 묘했다
평소에 잘 모르는 분이기도 했지만
말이 매끄럽지 못하고 조금 더듬기까지 해서
무슨 내용이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만나서 얘기해야 하고 시간도 잠깐이면 되니
꼭 좀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노동조합 소속이라고 하는데
말이 환경미화원이지 어느 용역회사 청소노동자였다
어디로 가는 길 지하철역 부근
작은 찻집에서 우리는 어색하게 만났다
이런저런 인사도 잠깐 작은 쇼핑백을 내밀며
이유는 묻지 말고 얼마 안 되지만
전태일재단에서 좋은 일에 써 달라며
다만 한 가지 누군가는 밝히지 말아 달라며
부끄럽게 액수를 말하는데
최소한 그분의 1년 치 월급은 넘는 고액이었다
내가 언젠가 자기네 노동조합을 방문해
전태일과 전태일재단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때 작정을 한 건데 이제야 이루게 됐다며
개운해 하는 눈치였다
잠시 먹먹해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요즘도 전태일이 꼭 필요한 때 같다며
재단이 그 일을 하는 것 같아 고맙다는 말에는
부끄럽고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작년 이맘때는 전태일 친구 한 분이
친구 생각하며 10년 적금 부은 거라며
1억 원을 들고 와 장학사업하자 내놓더니
이런 게 바로 태일이 버스비를 쪼개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 나누어주던 그 마음이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 전태일이 살아 있구나
그래서 우리 사회가 망하지 않는구나 생각하니
어깨는 무거웠지만 마음은 따뜻해 왔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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