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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언약궤를 따라 갔을 뿐이다

기사승인 2025.01.15  01: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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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진실(여호수아 3:5-11, 17)

여호수아서를 대할 때 어떤 느낌부터 들까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지닌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예수아’라는 변형을 거쳐 ‘예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 뜻의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를 떠올릴 때와 ‘여호수아’를 떠올릴 때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닐 것입니다.

예수에게서 사랑의 화신으로서 구원자를 떠올린다면 여호수아에게서는 정복자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오늘날 보편적 인도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성격의 인물입니다. 그 불편함을 거두어내고 말씀의 진실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은 모세에 이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그 백성과 함께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당도하게 된 극적인 장면을 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입니다.

성서의 첫 다섯 권 곧 오경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의 여정에 나서는 과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거쳐, 마침내 그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출애굽 사건에 이르러 구원의 파노라마는 절정에 이릅니다.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놀라운 사건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최종적으로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두고 모세가 백성에서 말씀을 전하고 홀연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은 여호수아서에 이르러서입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비로소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는 첫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는 여호수아가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에 앞서 정탐꾼을 보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리고성의 라합이라는 여인과 내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본문 말씀이 이어집니다.

비로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진입할 즈음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릅니다. “당신들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시오. 주님께서 내일 당신들 가운데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3:5).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매고 백성들보다 앞서 나갈 것을 명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상자를 말하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백성들 앞에 나서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오늘부터 내가 너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고,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겠다. 이제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 강의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 강에 들어가서 서 있으라고 하여라”(3:7~8).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를 환기하며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이제 이루어질 이 일을 보고, 당신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당신들 가운데 계셔서,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히위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당신들 앞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언약궤가 당신들 앞에서 요단강을 건널 것입니다”(3:10~11).

그리고 이어 놀라운 기적이 벌어집니다. 가득 차 있던 요단강에 둑이 생겨 물줄기가 끊어졌습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 강에 머무는 동안 그렇게 물줄기가 끊어진 가운데 모든 백성이 마른 요단강을 안전하게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3:17). 마치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넜을 때와 다르지 않은 기적이 재현된 것입니다. 이 기적의 사건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일이 실제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약속하셨다지만 그 땅에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 과연 그대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 보편적 인도주의 관점에서는 용인되기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날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는 모든 민족의 자결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원주민 또는 선주민의 생존권과 자결권 또한 마땅히 보장합니다. 모든 민족이 평화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오늘날 보편적 가치관에서 볼 때 선주민을 군사적 정복으로 배제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유대인,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마저 성서의 표면적 진술을 그대로 믿고 따르며, 사실상 부족신앙의 잔재에 해당하는 믿음을 그대로 지키며 승리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온 땅의 주권자’라면(3:11), 그런 사태를 용인하는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셈입니다.

성서 본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기록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헤아림과 동시에 오늘의 보편적 가치관 또는 윤리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서학은, 도무지 오늘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서의 이야기를 두고 매우 치열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에서 가나안 땅에 이르는 과정을 전하는 이야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깊이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견해는 세 가지로 집약됩니다. 정복설, 이주설, 사회혁명설이 그 견해들입니다.

정복설은 외부의 세력이 가나안 땅을 무력으로 정복하여 정착하게 되었다는 견해입니다. 표면상으로 보면 성서의 진술과 가장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주설은 일거에 군사적 정복을 통해 정착했다기보다는 점진적인 이주를 통해 정착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성서에 보면 장기간 다른 종족들과 공존하는 가운데 갈등을 겪은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군사적 경합의 양상이 성서의 표면적 기록상 부각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점진적인 이주가 정착 과정의 중심적 양상이었다는 견해입니다.

마지막으로 혁명설은 하층민들이 기존의 왕권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여기서 그 하층민은 가나안 외부 세력과 가나안 내부 세력이 결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외부의 히브리인과 가나안의 농민 세력입니다.

본문 말씀은 마지막 가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단서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로 앞에 나오는 라합 이야기는 외부 세력과 내부 세력이 연대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로 여겨지며, “당신들 앞에서 쫓아내신...”(3:10)이라는 표현은 권력자들을 내몬 이야기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가설을 받아들이면,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착 과정은 억압적인 왕권체제를 부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살아가는 평등주의 체제를 이루고자 분투한 여정이 됩니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억압이 없는 사회, 진정으로 해방된 사회에 대한 열망과 분투의 여정입니다. 왕이 없이 사사의 지도력하에 평등한 공동체를 형성한 역사는 이에 잘 부합니다.

▲ Benjamin West, 「Joshua passing the River Jordan with the Ark of the Covenant」 ⓒGoogle Art Project/Wikipedia

문제는 어떤 가설도 역사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저 허구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성서의 진실은 그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어야만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보편적인 구원의 열망이 중요합니다. 그 열망을 표현하는 데서 기록될 당시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지만, 그 한계 넘어 구원의 열망과 그것을 위한 분투의 과정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줄거리상의 역사 그 자체를 사실로서 기록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상황을 더 깊게 반영합니다. 아마도 이 기록은 유다 왕국의 멸망 전후의 상황을 더욱 깊게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실은 그 위기 가운데서 어떤 답을 찾고자 했는지 하는 것입니다.

그 관점에서 볼 때,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내쫓고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본문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겪어야 했던 갈등의 상황을 반영해 주는 것일 뿐 이스라엘 민족 외부의 세력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언뜻 보기에 한 민족의 생존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그저 주어진 정체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정반대로 그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에는 대비되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라합(2:1이하)과 아간(7:1이하)입니다.

라합은 이방인 성매매 여성으로 완전한 타자였으나 새로운 공동체에 편입된 반면, 아간은 버젓한 공동체 구성원이었음에도 사리사욕을 취하는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공동체에서 배제됩니다. 이 대비되는 진실은 공동체의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누가 인정을 받고 누가 징벌을 받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등장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이 전하는 언약궤입니다. 본문 말씀이 전하는 핵심적 진실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서 언약궤가 일으킨 기적의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있습니다. 약속의 땅, 곧 하나님 앞에서 공평한 삶이 보장되는 그 땅을 누리는 사건의 시작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격 또한 기존의 어떤 정체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말씀의 수용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서가 전하는 신앙의 고유한 성격이 이 이야기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성서는 철저하게 형상을 금지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요구합니다. 고대의 모든 종교가 신의 형상을 세움으로써 그 임재를 표현하였습니다. 반면에 성서의 신앙은 그 형상 대신에 말씀을, 그 말씀을 담은 언약궤로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했습니다.

형상을 거부한 것은 지금 보고 만지는 것을 절대화하는 것에 대한 철저한 거부를 뜻합니다. 지금 주어진 조건을 절대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입니다. 그것은 신앙을 맹목적 복종과 숙명으로 일치하는 것에 대한 거부를 뜻합니다. 그것을 넘어 있는 진실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희망을 이끄는 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의 진실을 따르는 믿음, 그것이 언약궤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 언약궤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이 담겨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노예에서 해방된 백성이 자유민으로 살아갈 길을 보장하는 법도입니다.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며, 그 뜻을 구체화하는 법도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의지가 담긴 말씀입니다.

따라서 언약궤가 일으킨 사건의 진실은 그 말씀을 따르는 삶이 불러오는 사건의 진실을 뜻합니다. 종이 아닌 자유민으로서의 삶, 모든 억압을 물리치고 당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리는 삶의 기적을 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뜻을 따라 구현되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뜻합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의 의미를 숙고하고 따르는 것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 말씀의 주술적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뜻이 이 땅 위에 이뤄지기를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되새기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며, 그 마음과 뜻을 삶 가운데 펼치는 것입니다.

주술에 의존할 때 사람이 어떻게 망가지고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목사들까지 덩달아 그 주술에 박자를 맞추고 있을 때 교회와 신앙이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지 그 적나라한 실상을 보고 있습니다. 신앙이 점술로 둔갑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광화문광장에는 두 개의 대한민국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태조기’인지 ‘성극기’인지 알 수 없는 부적을 들고 주문을 외우는 낡은 대한민국과 깃발에 저마다 꿈을 새겨넣고 그 꿈을 말하며 춤을 추는 발랄한 대한민국입니다.

성서의 진실, 말씀의 진실을 우리는 제대로 헤아리고 그 뜻을 이뤄야 합니다.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 하늘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믿음의 진실을 새기며, 진정한 꿈을 안고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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