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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채 뿐인 노란 집

기사승인 2024.06.15  13: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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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와 산책하기 (42)

▲ <노란 집> (1888, 9, 캔버스에 유채, 72×91.5cm, 반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빈센트가 아를에 와서 처음 묵은 숙소는 카렐 호텔이었다. 카렐 부부가 운영하는, 1층에는 식당이 있고 2층에 두 개의 객실이 있는 아주 작은 호텔이다. 이 호텔은 주로 양치기들이 이용하였다. 숙소가 협소하기는 했으나 근처에 론강과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어 위치가 좋았다.

빈센트는 여기 머무는 동안 종종 양치기들과 실랑이를 벌이곤 하였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다른 투숙객보다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해야 하는 문제로 다투는 일이 잦았던 모양이다. 결국 숙소를 옮겨야 했다.

새로운 숙소는 카렐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몽마주르 거리에 있는 작은 이층집이었다. 시설은 전보다 초라했고 기찻길 옆에 있어 환경도 나빴다. 대신 집세가 쌌다. 1층은 주방과 작업실로 고쳤고, 이층의 방 두 개는 자신의 침실로, 다른 하나는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려고 생각했다. 빈센트는 이 집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고 노란 집으로 불렀다.

빈센트에게 노란 집은 희망과 절망을 안겨준 곳이다. 노란 집에 입주하면서 비로소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에게 노란 집은 안정감을 주는 장소이자 화가로서 기량이 정상을 향하는 즈음이다. 그는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었다. 마음이 통하는 화가들과 함께 노란 집에서 살고 싶었다. 빈센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편지로 써서 파리의 화가들에게 보냈다.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괴팍하고 자의식이 강한 빈센트와 함께 살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동생 테오에게 부탁하여 고갱을 오게 하였다.

주식 중계를 하다가 빈털터리가 된 고갱은 생활비도 주고 그림도 사주겠다는 테오의 말에 솔깃하여 아를에 도착하였다. 고갱을 맞이하는 빈센트는 마치 신랑을 맞는 신부의 마음 같았다. 노란 집 벽에 <해바라기> 작품을 붙이는 등 성의를 다하여 고갱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자의식이 뚜렷한 두 화가의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두 달 만에 파국에 이르고 말았다.

세상에는 빨간 집도 있고 파란 집도 있고 하얀 집도 있다. 노란 집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빈센트의 노란 집은 오직 하나뿐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게 아니라 당신이 누구인가에 따라 당신이 사는 집의 가치가 달라진다. 노란 집에 빈센트가 산 게 아니라 빈센트가 산 집이 노란 집이다. 노란 집은 세상에 수없이 많지만 <노란 집>은 오직 한 채뿐이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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