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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과 신학의 가능성

기사승인 2022.01.08  16: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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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바르트, 신학의 학문성과 과제를 말하다 ⑵

▲ 개신교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교회역사가 Adolf von Harnack(사진 왼쪽)과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자 칼 바르트(사진 오른쪽).

『로마서 강해』 제2판이 출판되었을 때, 바르트는 이미 괴팅엔 대학 개혁신학 교수직(1921)을 맡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신학’이 세속 대학교 내부의 학문적 신학의 맥락에서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르트는 이 시기에 신학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본격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괴팅엔에서 가르친 첫째 해와 둘째 해 사이의 짧은 휴가를 대부분 세 번의 특별한 강연들을 준비하고 행하는 것으로 보냈다.

신학의 과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1922년 7월 25일에는 슐포르트에서 “그리스도교적 선포의 필요와 약속”을, 9월 25일에는 비스바덴에서 “현대 윤리의 문제”를, 10월 3일에는 엘거스부르크에서 “신학의 과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란 제목의 강연을 하였다. 세 강연들 가운데 마지막 강연이 신학방법에 대한 바르트의 본격적인 학문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강연의 구조는 삼중적인 논제로 준비되었다:

“우리는 신학자로서 하나님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한다와 할 수 없다는 이 두 가지를 알아야 하고 바로 이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1)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그 첫 번째 진술을 설명할 때, 바르트는 신학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만나는 많은 질문과 문제들에 대답하는 과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한다. 신학적인 문제는 인간의 삶의 경계선상에서 나타난다. 그 문제는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 속에 있는 인간성 자체이다.(2) 그러므로 신학자들은 인간의 실존의 많은 질문들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 자체와 인간의 실존을 넘어서 하나님을 지시하는 하나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바르트는 이런 의미에서 타학문과 구별되는 신학의 고유한 학문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천명한다.

“신학은 다른 학문이 학문이라는 의미에서의 학문으로서는 대학에서 존재할 권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의 신학은 다른 학부에 속해 있는 공부를 불필요하게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학부의 과제는 다른 학부에서 말할 수 없는 그것을 말하는데 있다. 사람들이 듣지 않고 있는 것을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말해져야 하는 그것을 최소한 긴급신호로서라도 말하는데 있다... 신학부의 과제는 모든 학문적인 가능성의 가장자리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신학부의 가치가 있다.”(3)

신학의 방법은 두 번째 논제에서 다루어진다. 바르트는 전통적으로 신학자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세 가지 길들, 곧 ‘교리적인 길’, ‘비판적인 길’, 그리고 ‘변증법적 길’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4) 그런데 이 논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길들이 모두 다음과 같은 논제 아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길들은 모두 인간 그 자체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같은 통찰과 함께 끝난다.(5)

이것은 다른 두 가지 길들 못지않게 바르트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일컬은 ‘변증법적 길’에서도 그러하다. 변증법적 길은 교리적인 긍정과 비판적인 부정을 관련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인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의 말을 듣는 사람에게 그분 자신의 말씀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법조차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번째 논제에서 바르트는 모든 신학과 모든 신학자들의 분명한 패배를 단언한다.(6)

세 번째 논제는 하나님의 약속, 곧 신학의 가능성을 위한 유일한 근거에 대한 진술이다. 왜냐하면 단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불러 그에 관하여 우리의 말과 글로 증언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결코 말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바로 그 말씀이 우리의 연약함과 전도된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연약하고 전도된 상황 속에 있는 우리의 말이 최소한 하나님의 말씀의 껍질이 되고, 지상적인 그릇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곤경 대신에, 큰소리로 그리고 강력하게, 우리의 직업의 희망과 숨겨진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7)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신학을 하는 가능성 사이에 확립된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8)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1930년대 이후 『교회 교의학』 시기의 바르트의 신학을 특징짓는 ‘그리스도론적 집중’이 이미 여기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9)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최초의 증인들에 의해 말해졌기 때문에, 신학의 과제는 단순히 “그들의 증언을 근거로 해서 약속을 믿고, 그들의 증언을 또 증언하는 증인이 되는 것, 즉 문서신학자가 되는 것이다”(10)라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한다.

하르낙과의 논쟁과 새로운 방향전환

신학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즉각 학문적인 논쟁으로 발전했다. 바르트의 스승 가운데 한 명인 하르낙은 ‘기독교세계’(Die Christliche Welt)에 “학문적 신학의 경멸자들에 대한 15개 질문들”이란 논쟁적인 글을 기고했다. 바르트는 “하르낙 교수에 대한 15개의 대답들”을 동지에 발표했다. 하르낙은 “칼 바르트 교수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으로 대답하고, 여기에 바르트는 다시 “하르낙 교수의 공개서한에 대한 답변”으로 응답했다. 그러자 하르낙은 “바르트 교수에게 보낸 공개서한의 후기”를 발표하였고 이것으로 논쟁은 일단락이 되었다.(11)

이 논쟁에서 하르낙은 선포와 신학을 철저하게 분리시켰는데, 이것은 그가, 한편으로는 경건주의와 주관주의 종교적 전통에 속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신학의 과제가 복음의 기본 개념들을 역사적 반성과 윤리적이고 철학적 숙고를 통하여 명확하게 해명하는 것이며, 따라서 신학의 학문적 지위는 역사적 학과로서의 그것의 특성에 있다고 본다.(12) 그러나 바르트에게 이것은 신학에서 그 신학적 특성을 제거하는 것이다.(13)

바르트가 하르낙에게서 본 문제는 다음과 같다. 19세기 신개신교 신학에서 종교적 지식의 대상은 그 자체로서 합리적인 것이 아니고, 다만 상징적 형식들로만 표현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신학의 과제는 그 대상의 본질을 꿰뚫고 들어가 윤리학과 철학에서 끌어낸 개념의 형태들을 사용하여 합리적 해석을 하는 것이다. 종교적 경험이 역사적 자료인 한, 그것은 과학적 탐구와 반성을 따를 의무가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게 과학의 지배적인 형태와 표준에 따라서 재편집되고 재해석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사고는 하르낙의 견해와 대척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본래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곧 신학의 대상이 합리적 명제들 혹은 합리적 개념들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계시 가운데 있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합리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말씀에서 주격인 대상, 곧 인격이며 동시에 메시지인 분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시는 단순히 삶의 전달이 아니라, 육신이 되신 말씀에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합리적인 진리, 말씀의 인격과 분리할 수 없는 합리적 진리의 나누어줌이다. 따라서 바르트는 신앙이란 본래적으로 합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가져온 개념의 형태들을 사용하여 합리적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는 사상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합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그의 대상 안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진리와 관계하는 신학은 그의 대상의 합리성을 통하여 합리적이라는 것이다.(14)

하르낙과의 논쟁이 바르트에게 남긴 것

하르낙과의 논쟁은 바르트의 신학의 이해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다. 『로마서 강해』에서 단지 하나님을 움켜잡고, 자신의 필요와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도구화하는 19세기 신학에 맞서 하나님은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던 바르트는 이제 신학의 ‘내용’이고, 이런 의미에서 그 ‘대상’이 되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인간에게 제공하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한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은 신학적 사고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의해 그 자신을 신학적 사고를 위하여 현실적으로 만드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은 신학자에게 은총을 베풀어 하나님에 관하여 바르게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사고의 대상인 하나님 자신이 신학자의 사고체계 내에 들어와서 그 자신을 신학자에게 보여주고, 그로써 그의 사고가 하나님 자신의 본질에 대한 타당한 이해가 될 때까지 수정하고 교정한다는 것이다.(15)

그러나 만약 우리가 말씀이 알려지는 사건에 대하여 전혀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떻게 우리는 그 말씀에 대한 지식에 이르게 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바르트가 하나님의 말씀을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 자신만이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동으로서도 생각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행동은, 태초에 그의 말씀에 의한 만물의 창조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말씀의 성육신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그 자체가 말함이고 하나님의 말함은 그 자체로 행동이기 때문이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행동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다. 인격 안에서 말씀하는 하나님과 인격 안에서 행동하는 하나님은 한 분이고 같은 분이다.(16)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그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그에 대한 우리의 지식 사이에 일종의 타원형의 운동을 세우고, 그 안에서 그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사고의 운동에 침입해 들어오며 우리의 사고를 그의 자기 계시의 내용으로 가득 채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그 말씀은 바로 그 행동에 의해 우리 안에서 발생한 상응하는 결과를 통하여 우리에게 인지되고 들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을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고(CDⅡ/1, 179), 단지 계시를 통해서만 우리가 계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7) 바로 이것이 그가 1930년대 안셀름의 신학방법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신학적 인식론의 기본 틀이며,(18) 정확히 바르트가 그의 「교회 교의학」에서 채택했던 절차이다.

이 신학적 인식론에 따르면, 신학적 인식의 과정에서 이성은 그 자체를 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성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고, 인간을 위해 자신을 객관화하는 하나님에 상응하는 합리성의 양식을 채택한다. 바로 이것이 인식론적으로 신앙의 의미이다. 신앙은 결코 불합리한 도약이나 어떤 모험적인 감행이 아니라, 주어진 실재의 성격에 맑은 정신으로 위임하는 것이며, 드러난 대상의 성격을 따르고자 하는 이성의 결정이며, 대상과의 만남에서 그 대상이 요구하는 방향을 향해 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진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기를 내어줌, 자기 계시, 그리고 자기 전달에 인간의 진리의 수용, 이해, 전유가 상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이론적 근거와 필연성은 그 자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앙의 대상 안에 있다는 것이다.(19)

미주

(미주 1) K. Barth, 바르트 학회 공역, “신학의 과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말씀과 신학: 칼 바르트 논문집 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5), 93.
(미주 2) Ibid., 96-97.
(미주 3) Ibid., 101 이하.
(미주 4) Ibid., 105-120.
(미주 5) Ibid., 107 이하.
(미주 6) Ibid., 119, 122.
(미주 7) Ibid., 124.
(미주 8) B. L. McCormack, Karl Barth’s Critically Realistic Dialectical Theology, Its Genesis and Development 1909-1936,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12.
(미주 9) 바르트의 신학의 ‘그리스도론적 집중’에 대하여, 제4장 “칼 바르트는 과연 ‘자연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나?”를 참고.
(미주 10) K. Barth, “신학의 과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124.
(미주 11) 토랜스는 이 논쟁에서 나타난 하르낙과 바르트의 입장을 매우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다. 이하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1, London: SCM PRESS LTD., 1962, 180-182를 참고.
(미주 12) A. von Harnack, “Fifteen Questions to the Despisers of Scientific Theology”, in H.-M. Rumscheidt, ed., Revelation and Theology. An Analysis of the Barth-Harnack Correspondence of 1923,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2, 29-31.
(미주 13) K. Barth, “Fifteen Answers to Professor Adolf von Harnack”, in Rumscheidt, ed., Revelation and Theology, 31-5.
(미주 14)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1, 181 이하.
(미주 15) K. Barth, Anselm: Fides Quaerens Intellectum (tr. from the second German edition), 1960, 7f; H. P. Nebelsick, “Karl Barth’s Understanding of Science”, ed. by Theology Beyond Christendom, Essays on the Centenary of the Birth of Karl Barth, May 10, 1886, Pennsylvania: Pickwick Publications, 1986, 194에서 재인용.
(미주 16) CDⅡ/1, “하나님의 현실성”을 참고.
(미주 17) 이러한 사상의 노선은 바르트가 1923년 9월 17일 엠덴에서 열린 세계개혁교회연맹의 지역 모임에서 “개혁교회의 교리적 과제”라는 제목으로 행한 강연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K. Barth, “The Doctrinal Task of the Reformed Churches”,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78, 218-71.
(미주 18) K. Barth, Anselm: Fides Quaerens Intellectum, tr. by I. W. Robertson, Cleveland: The World Publishing Co., 1962을 참고.
(미주 19) T. F. Torance, Karl Barth, Biblical and Evangelical Theologian, Edinburgh: T & T, 1990, 최영 옮김,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인 신학자』 (서울: 한들출판사, 1997), 90. 이점에서 가톨릭의 바르트 해석자인 폰 발타자르가 바르트의 신학적 사고는 이 시기에 변증법적 신학에서 유비(analogia)에 근거한 신학에로 전환했다고 주장한 것은 옳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신앙과 은혜를 통하여 신앙의 대상, 곧 하나님에 상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을 추구하는 신앙”의 신학은 가장 아름다운 학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U. von Balthasar, The Theology of Karl Barth, tr. by J. Drury, 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71, 43-150을 참고.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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