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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가 『로마서 강해』에서 밝힌 신학의 학문적 디딤돌

기사승인 2022.01.01  16: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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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바르트, 신학의 학문성과 과제를 말하다 ⑴

▲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자필 원고 ⓒGetty Image

학문의 발전, 신학의 위기

중세에는 그리스도교 신학이 ‘교과과정의 여왕’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교과과정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 이후, 신학적으로 통합되지 않는 현대적 대학교의 성립과 함께 신학은 이런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고, 대학 사회에서 학문으로서의 지위마저 위협을 받기 시작하였다. 신학은 생존을 위하여 일반적 학문세계의 원리와 방법에 따라서 신학의 학문성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슐라이에르마허로 대표되는 19세기 신개신교 신학은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대학교의 인문과학들 속에 편입된 신학은 ‘실증적’ 인문주의적 표준들(문학적, 역사적, 철학적)에 의해서 그 자신을 평가하고 또한 평가받아야 했다.(1) 신학은 일반 학계의 규칙들을 준수할 때만, 신학의 학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고, 다른 학문분과들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신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가 되었다.(2) 신학이 다른 분과학문들 속에 묻히게 되면서, 자연히 교회는 그 사회에 동화되었고, 더 이상 그 사회에 맞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진리를 증언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가 말하고 행하는 것이 교회 밖의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과 너무나 똑같은데, 그들이 교회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신학의 학문성은 어떻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00년 가까이 유럽에서 학문적 신학의 주류를 이룬 19세기 신학이 마침내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1919, 1922)에 의한 신학의 새로운 이해 모델로 위기를 맞고 대체된 것이다. 바르트는 슐라이에르마허 이후 거듭 시도되었던, 신학을 학문들 속에 포함시키려는 많은 백과사전적 시도들에 대하여 한마디로 언제나 학문의 일반 개념에 신학을 내맡기는 혼란스럽거나 파괴적인 신학의 포기였다고 천명한다.(3)

“방법에 관하여, 신학은 아무것도 다른 학문들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CDⅠ/1, 8).

바르트에 의하면 신학의 학문성은 신학을 다른 학문들의 배경에서 유래된 어떤 표준들에 종속시킬 때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의 고유한 학문적 특성을 유지할 때 확보된다. 정확히 이것은 “복음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며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이 하나님을 이 하나님에 의하여 제시된 방법으로 인지하고 이해하며 언어로 표현하는 것”(4)이다. 말하자면, 신학적 사고는 언제나 ‘뒤따르는 사고’(Nach-Denken)이며, 전적으로 그 대상, 곧 복음의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는 사고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의 대상을 지배하는 것을 학문의 과제로 여겼던 학문에 대한 계몽주의적 개념과 방법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5)

바르트는 이와 같이 신학을 전혀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당시 바벨론 포로된 신학을 해방시켜 하나님의 초월적인 주권의 신학, 말씀의 신학, 은총의 신학으로 이끌었다.(6) 이 글에서 우리는 바르트의 신학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루는 몇 편의 논문과 저서를 중심으로 그가 신학과 신학의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살펴보자.

『로마서 강해』 (1919, 1922)

바르트가 『로마서 강해』에서 이른바 ‘학문적 신학자들’과 벌이는 논쟁은 주로 성서 역사비평학에 집중된다.(7) 우리는 『로마서 강해』 제1판 서문(1919), 제2판 서문(1922)을 중심으로 역사비평학과 학문으로서의 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견해를 살펴보려고 한다.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첫판 서문에서 사도 바울은 단순히 역사비평학이 말하는 대로 그 시대 그 곳에서 타당했던 진리를 선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예언자와 사도로서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진리를 선포했다고 주장한다.(8) 그러나 바르트는 역사비평학을 폐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능가하는 것을 원하였다.

“(그의) 전적인 관심은 역사적인 것을 관통하여 영원한 정신, 곧 성서의 정신을 깊이 들여다보는데 집중되어 있었다.”(9)

그러므로, 바르트에 의하면, 본문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는 필연적으로 본문 자체를 넘어서 그 본문이 드러내려고 하는 실체에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본문을 성립시키는 힘이었던 실체, 그리고 지금은 그 자체를 알리고자 하는 같은 실체의 핵심을 관통하려고 하는 노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는 성서해석에서 단지 “본문의 신비 앞에” 서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실체의 신비” 앞에 서게 되는 지점까지 나아가고자 했다.(10) 그는 좀 더 엄격한 의미에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작업을 생략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단지 진지하고 경건한 이해의 보다 더 중요한 과정을 위한 하나의 ‘준비’로서만 사용되었다.(11)

그러나 『로마서 강해』 첫판은 학계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고, 바르트는 당대의 학계로부터 “역사비평학의 공공연한 적”(12)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제2판(1922) 서문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다시 한 번 역사비평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로마서 이해를 위한 서론 격으로 역사비평을 적용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없다... 역사비평이 단순히 본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확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율리허, 리츠만(Lietzmann), 찬(Zahn), 퀼(Kühl)의 문하에서, 그리고 또한 그들의 선배들인 톨룩(Tholuck), 마이어(Meyer), 바이스(B. Weiss), 립시우스(Lipsius) 등의 문하에서 배우고 싶다.”(13)

바르트는 주석가들이 본문 안에 있는 것을 확정하는 이 예비적인 작업에 보다 전념하며 본문의 의미를 깊이 천착해 내는 과정 없이 곧장 “진정한 이해와 해석”의 단계로 넘어가서 성급하게 어떤 난해한 구절을 바울의 독특한 교리 혹은 견해로서 간주하고, 또한 자신의 종교적 사고의 몇 가지 안 되는 범주, 말하자면 자신의 느낌, 체험, 양심, 확증 등을 매개로 하여 본문을 재구성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14) 말하자면, “역사적 비평가들은 보다 더 비평적이어야 한다”(15)는 것이다. 그리고 바르트는 루터와 칼빈을 “진정한 이해와 해석”의 모델로 제시한다.

“진정한 이해와 해석이란 루터가 그의 성서 주석에서 직관적 확신을 갖고 발휘했던 저 창조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루터의 창조적 에너지가 바로 칼빈의 조직적 성서 해석 아래 깔려 있다. 그런데 적어도 이와 같은 시도를 한 사람들은 호프만(Hofmann), 벡(J. T. Beck), 고데트(Godet) 및 슐라터(Schlatter)라고 할 수 있다.”(16)

예컨대, 칼빈이 로마서를 주석할 때, 본문 안에 무엇이 있는가를 성실하게 밝힌 다음에도 1세기와 16세기 사이에 놓여 있는 장벽이 투명하게 될 때까지 그 본문을 계속 깊이 숙고하는 일에 몰두했던 것과 같은 것을 바르트는 “진정한 이해와 해석”의 작업으로 본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성서해석을 위해서 성서 본문의 실제적인 말들에 나타나 있는 “주제의 내적인 변증법”에 대한 인식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라고 본다. 바르트가 말하는 ‘변증법’은 “영원과 시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한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의 변증법인데, 그는 이것을 “하나님은 하늘에 있고, 너는 땅에 있다”는 성서적 증언(전 5:2)의 철학적 표현으로 이해한다.(17)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거대한 심연을 강조하는 이 변증법적 방법을 그의 성서해석의 ‘체계’ 혹은 ‘원리’로 삼았다. 그리고 19세기 신학과 그 성서해석에 반대하여 성서의 주제는 인간의 종교, 종교적 윤리 또한 인간의 은밀한 신성이 아니라 자연적인 세계는 물론이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도 대립해 있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독자성과 유일성이며, 인간과 관계하는 가운데서도 초월해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유일한 존재, 능력과 주도권이라고 강력하게 천명하였다.(18)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제2판에서 이 ‘변증법적 분리’(diastasis)의 형식을 통하여 인간 자신이 고안한 방식에 의해서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결코 하나님께 이르지 못하지만,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시간과 인간의 실존 속에 돌입해 들어온 하나님과 그의 활동을 통하여 만들어진 다리가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다.(19) 바르트는 이와 같은 “변증법적 방법의 강인하고도 탄력적인 적용”에 의해서 19세기 신학의 성서해석 방법을 능가하는 새로운 성서해석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 일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기록된 성서에 대한 해석은 단어들과 구절들에 대한 일련의 연결없는 각주들에 불과할 수는 없다. 주석가는 그의 자연적 이해의 범위 안에서 운동하는 지성보다 더 폭넓은 지성을 소유해야 한다. 성서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오직 경직된 지성없이 본문에 기록된 사상들이 노출시키는 긴장을 대면해야 할 단호한 결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보기에 역사적 문서에 적용되는 비판이란 그 문서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표준으로 하여 단어 및 구절들을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20)

성서 본문에 있는 모든 것은 결정적으로 그 문서가 말하는 바로 그 내용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는 바르트의 성서해석 방법은 그가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불렀던 것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나 소위 ‘학문적’ 신학과 날카롭게 대조되는 신학방법에 관한 바르트의 본격적인 성찰은 『로마서 강해』에서는 제시되지 않았다. 여기서 그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과 세계”, “문화와 종교”, “신앙과 사고”, “신적 질서와 지상적 질서”, “권좌와 제단”을 혼합 내지는 자연적인 조화로 연결시켰던 19세기 신학(21)에 반대하여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학이 신비주의나 도덕, 경건주의, 낭만주의나 관념주의의 느낌을 주는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완전히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신학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있었다. ‘변증법’은 단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된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다.

미주

(미주 1) H. Küng/D. Tracy(Hrsg.), Theologie -Wohin?, Benziger Verlag, 1984, 박재순 옮김, 『현대신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9), 254-260.
(미주 2) Peter Eicher, Theologie: Eine Einführung in das Studium, München: Koesel-Verlag Gmbh. & Co., 1980, 박재순 옮김, 『신학의 길잡이』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164-168.
(미주 3) K. Barth, Church Dogmatics, Ⅰ/1, 10(이하 CD로 표기).
(미주 4) K. Barth, Einfü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1962), 이형기 옮김, 『복음주의 신학입문』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3), 27. 토랜스는 이러한 바르트의 신학방법이 합리성, 정확성, 객관성, 보편성의 원리로 추진되고 전문화되며 특화되는 정밀 과학의 방법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힌바 있다.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1, London: SCM PRESS LTD., 1962, 32.
(미주 5) 박봉랑, 『교의학방법론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6), 92.
(미주 6) 오영석, 『신앙과 이해』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31.
(미주 7) 성서역사비평학은 성서본문이 기록된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근거하여 그 본문의 올바른 의미를 결정하려고 함으로써 성서연구와 해석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심을 보이는 역사비평학은 본문이 현재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만, 본문이 최초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를 추론하기 위하여 작품에서 저자의 의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역사비평학은 성서본문이 보도하는 사건들의 사실성 여부에 관한 규명이나 성서의 문서들의 성립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들에 관한 지식들을 획득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성서의 본문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현대인의 오성의 판단에 굴복시키는 것이 역사비평학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P. Stuhlmacher, Vom Verstehen des Neuen Testaments Eine Hermeneutik,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9, 전경연·강한표 옮김, 『신약성서해석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6), 10.
(미주 8) K. Barth, Der Römerbrief, tr. by E. Hoskins, The Epistle to the Roman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2, 1(이하 Romans로 표기).
(미주 9) Ibid.
(미주 10) Ibid., 8.
(미주 11) Ibid., 1.
(미주 12) Ibid., 6.
(미주 13) Ibid., 7.
(미주 14) Ibid.
(미주 15) Ibid., 8.
(미주 16) Ibid., 7.
(미주 17) Ibid., 10. 『로마서 강해』 첫판과 제2판 사이의 발전과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에 대하여, 제3장 “칼 바르트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와 문화”를 참고.
(미주 18) Eberhard Bush, Karl Barths Lebenslauf, Nach seinen Briefen und autobiographischen Texten(1975), tr. by J. Boden, Karl Barth, His life from letters and autobiographical texts, London: SCM Press Ltd., 1976, 119.
(미주 19) T. F. Torance, Karl Barth, Biblical and Evangelical Theologian, Edinburgh: T & T, 1990, 최영 옮김,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인 신학자』 (서울: 한들출판사, 1997), 168 이하.
(미주 20) Romans, 8.
(미주 21) H. Zahrnt, The Question of God: Protestant Theology in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William Collins Sons & Co. Ltd., 1969, 16.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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