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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음(喜音)과 상황

기사승인 2020.02.15  17: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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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기장 신학대회 참관기

외적으로는 신종(新種) 바이러스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의 위협과 내적으로는 한국교회의 학문성과 실천성의 보루였던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회의 양적 성장과 교인 및 교역자의 질적 변화에 있어서 옛날과 달리, 새롭게 학문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실천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되는 위기의 시점에서 <2020년 기장신학대회, 기장의 현재와 미래-도전과 위협, 갈등의 상황에서 화해와 연대의 공동체를 지향하며(2020. 2.10~12)>가 열렸다.

필자가 2박 3일간 진행된 이 대회를 참석하며 마지막 날 떠올랐던 대회의 화두는 ‘희음(εὐαγγέλιον)과 상황’이다. 제시된 상황은 종교개혁부터 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또한 민족과 민중에서 목회행정과 목회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그 상황에 대한 기장 신학 본류인 ‘말씀에의 고민’이 응답으로 제시되었다. 발표자들의 문장 하나하나에, 또한 숨소리 한 호흡과 눈매에, 시대적 상황에 대한 자기 전공에서의 고민이 역력했다.

A4용지로 528쪽이나 되는 자료집에 33인의 박사들(독립선언서의 33인과 같은)의 신학의 향연은 마치 잘 차려진 뷔페처럼 필자에게 다가왔으나, 사실 뷔페에서 그 많은 음식을 다 먹을 수도 없거니와, 또한 필자의 전공(서양 철학과 문화 신학)의 한계로 핵심 내용만 간략히 요약하되, 발표자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오독 및 왜곡한 것은 필자의 책임이니, 목회와신학연구소에 문의하여 자료집을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한다. (물론, 은혜를 받은 이는 연구소를 후원하여, 한국교회가 살려면 기장이 제 목소리를 내야하고, 한국 신학이 살려면 기장신학이 빛나야 한다는 당위에 아낌없는 후원과 기도를 요청한다.)

1. 최성일 교수(한신대)는 한신 80년과 기장 교단의 역사를 운명공동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한신성’과 ‘기장성’의 회복이 중요함을 느낀다. 한신성은 ‘학문과 경건’으로 기장성의 핵심이며, 세부적으로는 첫째 학문은 세계적 수준이 되어야 하며, 둘째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 가장 복음적인 신앙에 도달해야 되며, 셋째 칼빈 신학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넷째 성서연구에 있어서 현대 비판학을 수용하며, 다섯째 신앙과 덕에 활력을 주는 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신학 대회가 한신과 기장을 살릴 수 있는 방안들이 논의되었으면 한다.

2. 한국교회의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관해, 김승태 소장(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은 정교분리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엄격히 구분하여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창조적 긴장관계가 적절하다. 정치가 성서의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게 공평하고 정의롭게 이루어질 때는 교회가 격려하고 협력해야 하지만, 정치가 그러지 못할 때에는 교회가 정치계에 예언자적 경고를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도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여 기독교적 이상과 문화를 실현하는 것이 되어야지, 기독교 이름의 정당이나 단체로 참여하면 하나님과 교회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이 많을 것이다. 101년 전, 개개인의 신앙적인 결단으로 적극 참여한 한국교회의 3.1운동 참여는 기독교인의 정치와 현실 참여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3. 기장의 현재와 미래를 비판적으로 조망해 보며, 이성진 목사(제주남부 교회)는 첫째 신학생의 감소이다. 이는 목회자의 감소로, 나아가 생활보장제 헌금의 감소로 이어져 작은 교회일수록 버틸 수 있는 힘을 상실할 것이다. 둘째 교회의 위기는 교단의 위기로 이어져, 교단 자산의 감소로, 교단 스스로의 자생력 상실로 이어진다. 셋째 교회와 교단의 양적 감소는 목회자 연금의 부실로 이어지고, 이러한 악순환으로 기장 교단 목회자가 되려는 수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기장교단은 '지속가능한 교단'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생존의 문제에 매몰된 교단으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발버둥 쳐야 할 것이다!

4. 한강희 박사(한신대)의 경우, 에큐메니컬 선교 프레임워크 전환을 위해, 유엔 총회에서 결의한 ‘지속가능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를 고민해야 한다. SDGs는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Leave no one behind)’이라는 슬로건으로, ‘사람, 지구환경, 번영, 평화, 파트너쉽’이라는 다섯 가지 영역에서 인류가 나가야 할 목표를 제시했다. 이것은 사회적 불평등, 사회발전, 환경, 경제성장, 이행 수단이라는 틀 속에서 인류 사회의 균등한 발전과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다. 2030년 까지 진행될 SDGs 체제와 방향성을 기장 교단의 에큐메니컬 선교에 활용해야 될 것이다.

5. 김판임 교수(세종대)는 먼저, ‘기장성’이란 역사비판학적방법에 근거한 성서해석과 구약성서의 예언자 전통에 입각한 민주화 인권 운동으로 전제한 후, 성서에 나타난 동성성애 관련 성서해석을 분석한다. 결론은 문자로는 죽임을, 영으로는 생명(고후 3:6)을 주기 때문에 문자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좀 더 들어보자. 동성성애 관련 구약본문인 레위기 18:22 ; 20:13은 성결법전으로 바벨론 포로기 이후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한 의도로, 음식규정(레 17:10-16)과 해서는 안 되는 성관계 규례 등은 생명의 위협과 인간관계의 무질서를 예방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성관계를 자녀 생산으로 보았던 유대사회에서 동성간 성관계는 무익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많이 언급되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경우, 나그네에 대한 집단 폭력, 홀대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바울의 경우, 고전 6:9-10, 딛전 1:9-10은 패덕목록에서 동성애 관련 문제가 나오기에 착취와 불평등, 정욕, 성적 학대의 맥락에서 보아야한다. 마찬가지로 롬 1:26-27의 경우도 인간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이라는 전제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곧, 바울에 의하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모두 죄인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이 죄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마 7:12).”

▲ 지난 2월 10일(월)부터 12일(수)까지 한신대학교 수유동 캠퍼스 한신신학대학원에서 진행된 ‘2020 기장 신학대학’ 첫 발제를 맡은 최성일 교수(한신대/선교신학) ⓒ이정훈

6. 김창주 교수(한신대)는 구약성서를 ‘information-transformation-conformation’으로 설명한다. 사실, 기독교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종교란 믿는 이(I)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YHWH)과 연합된 상태(religion)로서 예배와 전통을 통하여 또한 성서와 교리를 통하여 하나가 되며 부활절, 성탄절 등 성찬식과 규칙적인 제의를 행함으로써 상호 연관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훼를 하나님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종교는 ‘나’와 절대자인 하나님과의 연결고리, 즉 연대성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그 둘 사이를 묶어주는 매개체는 다름 아닌 정경으로 공인된 구약 39권과 신약성서 27권이다. 흔히 통용되는 구약성서는 타나크(Tanakh), 혹은 히브리 성경으로 율법서는 information(하나님 지식과 정보를 통하여 신학의 목표를 형성하는 과정), 성문서는 transformation(하나님 지식과 정보를 근거로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 예언서는 conformation(하나님 지식과 현실 적용의 불일치와 일치에서 형성된 열정과 확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7. 최병수 목사(대구중부 교회)는 초대 교회 내부에는 영지주의의 도전(예수 없이 영적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과 외부에는 로마제국(황제가 신)의 박해라는 위기가 있었음을 전제하고 이 위기의 중심에 한 가지 원인, 곧 예수를 해체하려는 도전이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교회의 참모습을 회복하려면 다시 예수로 돌아가야 한다. 요한공동체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외부와 내부의 위기 앞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믿음의 고백을 더 강화시킨다. 곧 예수가 ‘왕’이라는 기독론적 고백을 통해 로마 제국의 박해에 맞섰으며 오직 예수만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라는 확신을 통해 영지주의자들의 구원관을 극복하였다. 끊임없이 위기를 겪는 교회가 역사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예수라는 신적이고 실존적인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을 때 가능할 것이다.

8. 김동환 교수(연세대)는 ‘군사정부시대(정치)’-‘IMF 금융위기시대(경제)’를 넘어 ‘4차 산업혁명시대(과학)’의 목회를 테크놀로지의 본질을 꿰뚫는 것으로 소개한다. 자끄 엘륄에 의하면 테크놀로지의 본질은 합리성(rationality)과 인공성(artificiality)이다. 따라서 합리적이지 않은 비합리적인 종교성(성령, 믿음, 기적 등)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이 가능해야 하며, 자연적인 것을 인공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테크놀로지의 인공성이 지닌,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특성에 종교적(혹은 자연적) 영역을 지켜내고, 테크놀로지가 나갈 인공성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9. 김성호 목사(나섬 교회)는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타자’에 관해 본회퍼는 신학으로, 레비나스는 타자성의 철학으로, 자아를 탈출하여 타자를 향한 열림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타자로 건너가려는 모험에 위험을 감수하고 감행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타자 망각(을 넘어 혐오하는)에 빠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일상에 타자의 얼굴로 다가오는(레비나스) 신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타자로서의 타자로부터 발생하는 그리스도교적 인격과 책임(본회퍼)을 망각하지 말고, 윤리적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교회 역시 타자를 위한 교회로, 그리스도인은 타자를 위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10. 권이선 목사(전북대)는 칸트의 악론(惡論)과 양심의 문제에 관해 고찰한다. 먼저 악론은 근본악(die radical Bose)으로, 이성이 경향성보다 앞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향성을 이성보다 앞에 내세울 때 발생한다. 결국 도덕 법칙보다, 충동의 만족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면 미신적인 요소로서 독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악은 생래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칸트는 인간의 심성이 개혁되기만 하면 언제나 자율적인 이성이 선(善)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칸트의 종교론은 도덕과 의무의식에 기반을 둔 자율적인 이성의 종교론이 된다.
 
11. 조직신학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후기 토대주의적인 신학방법론’을 제시한 오승성 박사(예아 교회)는 자신의 신학방법론을 전통에서 시작하되 그 전통이 오류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전통과의 대화를 통해 보다 진리에 근접해야 하며, 그 전통에 충실한 방법으로 사회변혁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후기 자유주의 신학, 해체신학, 수정주의 신학, 해방신학의 요구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토대주의의 일(一)과 반토대주의의 다(多)를 중재하여 소(少)를 구성하려는 대화적 합리성의 한 형식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신학은 ‘대화적 합리성의 시대’를 맞아 냉정과 열정 중 어느 한편으로 쏠릴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를 중재하여 외적인 비판을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부드러운 열정을 가지고 신학 작업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12. 김유준 목사(은진교회)는 먼저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를 ‘공평과 정의, 사랑(equality, justice, love)’으로 정립한다. 사실 한국교회와 기장교회는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혹독한 수난의 시기에 민족과 함께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기쁜소식(Ευαγγέλιον)’인 ‘희음(喜音)’을 ‘복음(福音)’으로 번역한 기복주의 신앙으로, 한국교회는 사회의 기득권과 현실에 타협하고 안주함으로 타락과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 따라서 희년실천을 통한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부채탕감에 있어서, 영적 차원만이 아닌 경제적 차원에서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미국의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나 한국의 ‘희년 은행’과 같은 청년부채탕감운동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그 실천적 신앙의 인식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롤링 주빌리는 미국의 유명 시민단체인 ‘월가를 점령하라(OWS: Occupy Wall Street)’가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부실채권을 사들여 서민의 빚을 탕감하는 프로젝트이다. 2011년 9월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 1주년을 기념해 2012년 11월부터 시작했다. 둘째 기본소득과 토지보유세와 같은 희년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빚에 허덕이며 약탈적 금융제도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채탕감의 희음을 선포하는 사람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회양극화의 주범인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와 같은 토지불로소득에 대한 환원을 제도화하는데 적극 앞장서야 할 것이다.

13. 한경미 교수(한신대)는 먼저 기장교단이 미국선교사들의 지배를 벗어나, 세계적 수준의 신학교육을 실행하고자 한국신학대학(한신대)을 모태로 결성된, 앞서가는 교단이었음을 전제하고, 세계를 정의롭고 평화로운 삶의 터전으로 회복하려는 에큐메니칼 정신의 연장선상에서 ‘근본주의 신학’과 ‘타계적인 신앙’을 거부하며, 동시에 예수께서 시작한 하나님 나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교단이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장교단의 교회교육 현실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성하는데 역부족이다. 첫째 사회비판의 목소리는 높았으나, 교단과 교회 현실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부족하다. 둘째 기장 신학은 교회교육 현장에 방향전환을 가져오지 못하고 목회자와 신학자의 전유물이 되었다. 셋째 근본주의 신학의 논리와 교권주의는 교회 안 평신도들과 교회교육에 여전히 남아있다. 따라서 대안은 첫째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변혁시키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성서 속에서 발견하고 성서의 메시지를 새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 메시지로 경청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과 함께 변혁의 역사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이렇게 예수의 삶을 따라 사는 '삶의 방향전환'이 일어나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14. 장동현 목사(한국교회환경연구소)는 기후위기와 생물멸종 시대에 한국교회에 요청되는 기독교 생태교육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후위기의 아이콘인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기후 위기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과 기후난민, 또한 죽어가는 이웃생명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활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자신의 이익과 자본 추구에만 몰두하는 정치 지도자와 기업가,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었다. 따라서 두 가지 생명의 원리인 ‘자기보존’과 ‘타자를 위한 자기희생’의 측면에서, 핵분열과 화석연료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햇빛, 바람, 물을 대안 에너지로 활용하고, 생명의 보고인 숲을 살리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앞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15. 최철기 목사(백구중앙교회)는 미래목회를 위해 ‘지도력과 관리, 그리고 경영’이라는 교회행정과 목회지도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특히 21세기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목회지도력 때문인데, 기장목회자에게 요구되는 미래 지도력은 섬김, 복음 전파, 변혁적 사고, 선교, 도덕성, 비전 제시, 영적 지도력과 민주적 지도력이, 또한 수평적이고 성도를 양육하는 제자훈련의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탁월한 영성’의 목회지도력, ‘경건한 인격’의 목회지도력, ‘전문성과 팀웍’을 갖춘 목회지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상황과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역사이고 상황이다. 이러한 새로운 물결의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고, 도래하는 새로움에 적응하기 위해 올바른 목회지도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16. 서승룡 박사(부천교회) 역시, 위기의 한국교회에 목회 리더쉽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할 때, 선장은 옷도 입지 않은 채로 허겁지겁 탈출하기에 급급했다. 교회라는 배도 목회자인 선장으로 인하여 풍랑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내부적인 다툼으로 인해 좌초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타락상은 크게 세 가지로 ‘교회세습(명성교회 등)’, ‘목회자의 성문제’, ‘교회의 재산권 분쟁’ 등이다. 이것은 첫째 예배와 설교에서 말씀과 삶이 일치하지 못한 것, 둘째 왜곡된 신앙을 가르쳤던 것(번영신학), 셋째 시대적 변화(글로벌 시대, 디지털 시대, AI시대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넷째 목회 지도력의 부족 등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먼저 예수는 목회자로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으며(한국교회 초창기), ‘선한 목자’이자,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셨고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다. 이러한 예수의 리더십으로 -사랑의 마음과 섬김으로- 기장 교회를 올바로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17. 이광수 목사(신갈장로교회)는 좀 더 교회 성장의 측면에서 접근했는데, 90년 역사의 신갈장로교회가 늙어가는 교회, 과거를 추억만하는 교회가 아니라, 오늘보다 미래가 더 희망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를 지향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선교적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는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에 부임하여 먼저, 비전미팅을 통해 30개 기관 회원들을 만나 교회와 기관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 소통하였다. 또한 지역선교를 위해 이미지 전도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복지센터를 건립하여 지역복지선교와 문화선교를 시작하였다. 특히 ‘생명살림 어머니 학교’를 통해 영혼구원, 생명문화 창조, 사랑나눔운동을 실천하였다. 복지사업 관련으로 기부식품 접수 및 배부, 사랑의 연탄, 빵, 비누, 김장 나눔과 반찬 나눔 운동(라이온스 클럽과 협약), 숲체험 교실 운영 등을 실시하였다. 신갈장로교회의 5대 사역 운동으로 모이는 교회(예수 닮기, 신앙계승 운동)와 흩어지는 교회(생명살림 운동, 사랑나눔 운동, 하나님 나라 운동)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전 공유이다. 리더 그룹(당회원, 위원장, 부장 등)이 비전을 공유하고 공동체를 변화시켜나가야 한다.

18. 김동영 박사(한신대)는 예배공간의 새로운 이해에 관해, 사실 공간은 단순히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특별히 예배공간은 나무와 대리석,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소재와 면의 형태를 통하여 종교체험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빛의 활용을 통해 거룩한 영감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고 기도의 공간을 창조한다. ‘자기-자기대상 체험’이 현존하는 예배공간은 ‘하나님, 자기, 그리고 공동체’가 상호 내주하는 관계적 공간이다. 여기서 자기대상(self object)이란, ‘자기의 일부분으로(part of the self) 경험하는 대상’이다(H. Kohut). 여기에는 ‘거울 전이(mirroring transference)’, ‘이상화 전이(idealizing transference)’, ‘쌍둥이 전이(twinship transference)’가 있다. 하나님의 집이며 동시에 신앙공동체를 구성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드리는 곳인 교회 공간은 자기-자기대상 체험의 공간으로서, 첫째 ‘정감과 사랑의 반응 공간’, 둘째 ‘정신적 고양과 치유의 공간’, 셋째 ‘환대와 돌봄의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방교회의 바실리카 양식이 벽체 위에 고창을 내어 어두운 실내공간에 빛을 유입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동방교회 전통에서 비잔틴 교회 건축물(하기아 소피아 교회)의 경우, 정방형의 벽체 위에 지붕으로 돔을 올려놓은 형태로, 기둥이나 벽이 없는 넓은 공간을 창조해 냈다. 따라서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들과 벽 내부에 그려진 프레스코 성화들이 어우러지면서 ‘빛이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임재’를 통하여 천상의 예배를 맛보게 한다.

19. 이순태 목사(전주신광교회)는 목회자는 하나님과의 소통, 평신도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목회가 지향하는 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 참사랑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 알렉산더(F.  G. Alexander)의 ‘교정적 정서경험(corrective emotional experience)’이 도움이 되는데, 이것은 첫째 상담자는 내담자와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둘째 내담자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셋째 상담자는 때로는 ‘나쁜대상’이 되어, 내담자가 견뎌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좋은 경험을 환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20. 필자가 어려워하는 목회상담의 영역에서 정푸름 교수(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는 목회상담에 있어서 탈근대적 관점을 소개한다. 사실 전근대와 근대의 관점은 개인과 일방적인 관계에 주로 집중되었다면 탈근대적 관점은 상호적인 관계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이러한 탈근대적 관점에서 목회상담의 ‘상호적인 관계’가 ‘자아확장’과 함께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개인의 성장, 관계의 성장, 다양성의 확장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21. 김경종 목사(목포성림 교회)는 목회자는 삼당자로서 ‘상처 입은 치유자(H. Nouwen)’가 교인을 치유하고 교회를 회복시켜야 된다고 말하는데, 사실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은 결핍을 껴안고 풀어가려고 했을 때 발생했음을 지적한다. 먼저 1908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소외된 여성과 아동을 비롯한 하층민들에게 한글 교육을 시켰기에 부흥이 가능했다. 또한 1970년대는 당시 군부독재 시대에, 사회적 결핍과 정치적 박탈감으로 인해 결핍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과 위안을 교회가 제공해 주어 성장했다(물론 이것은 보수 교단의 성장 역사로 논의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결핍은 무엇인가? 바로 심리적인 고통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이러한 결핍을 잘 파악해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22. 김영수 박사(동수원 교회)는 현재 기독교 영성이 ‘하나님 현존과 임재’에 관심하는 것은 루터가 반박했던 가톨릭적인 것이라고 꼬집는다. 따라서 다시 가톨릭 영성으로만 돌아가지 말고, 개신교가 가진 기본적인 영성수련의 내용, 곧 말씀, 예배, 성찬, 설교, 성경공부, 심방, 간구기도 등을 좀 더 심화시키되, 물론 기존 영성 훈련(관상 기도 등)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23. 최영 소장(목회와신학연구소)은 사도적 개혁전통의 에토스로서 기장성을 소개한다. 사실 기장성은 ‘새역사 60주년 선언서’에 나타난바, “우리 교단의 처음 정신, 곧 종교개혁의 정신이자,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이다.” 이것은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몸부림쳤던 자들의 에토스이다. 기장성은 개혁교회적 정신과 기질, 곧 한국 상황이라는 상황 속에서 꽃핀 사도적 개혁교회의 에토스이다. 이러한 기장성을 살리는 목회는, 첫째 말씀과 성령의 상관성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규제되는 설교가 필요하다. 셋째 하나님의 행동과 말씀의 일정한 경향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선포가 필요하다. 넷째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의식, 그리고 고백과 증언이 필요하다. 다섯째 (칼뱅과 바르트를 따라) 하나님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인간의 책임,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결단 양쪽 모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그리스도인의 책임적 삶에 대한 강조가 필요하다. 이것은 율법의 ‘제 3용법’으로, 채찍으로 게으른 나귀를 재촉하는 것과 같이, 신자들을 격려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는 기능을 말한다. 일곱째 자유로운 순종의 삶이 필요하다. 나아가 만우 송창근, 장공 김재준의 신학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기장성의 정체성이 사회과학을 통해 약화되었는데, 이것은 사도 바울처럼 말씀 앞에 순종할 때, 극복 가능할 것이다.

24. 정미현 교수(연세대)는 장로교의 시작은 칼뱅이 아니라, 츠빙글리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기장의 신학은 츠빙글리의 개혁신앙의 맥락 가운데 정의, 평화, 창조의 보존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먼저 루터보다 3년 빠른 독일어 성경번역(1531년)에서 나타난 바, 곧 ‘말씀 중심’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회적 수난(스위스의 용병제, 음식규례 등)’에서 시작된바, 이러한 스위스 개혁교회 전통이 담보하고 있는 저항의 정신을 회복해서 기장성의 기초를 다져야 할 것이다.

25. 이오갑 교수(케이씨대학교)의, 칼뱅의 경제사상 개요는 이렇게 정리된다. “칼뱅은 자본주의적이면서 사회주의적인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사상을 가지고, 자칫 공동체를 파괴하기 쉬운 자본주의 경제에 고삐를 잡았던 사람으로서, 현재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실 보수적인 계통에서는 여전히 칼뱅주의나 개혁신학을 강조하지만, 근본주의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성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는 칼뱅 없는 신학교육을 하고 있어서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마저도 칼뱅을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16세기 칼뱅주의가 자본주의의 폐해와 남용에 엄격하고 분노에 찬 설교를 했지만, 17세기 제네바의 목사들은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고 경건주의 경향을 띠어갔다. 따라서 사람들이 내면적인 신앙이나 경건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칼뱅주의자들은 대부분 사업가와 부자들로 이뤄진 제네바 귀족정을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또한 당시에 기득권을 가진 부자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어 칼뱅주의는 더욱 보수적인 신학이 되었다. 따라서 칼뱅의 저술과 신학을, 그리고 잃어버린 칼뱅의 역사를 되찾아, 깊이 이해하고 계승해야 될 것이다.

26. 정현진 박사(수도교회)는 ‘츠빙글리 67개 조항’을 통해 츠빙글리의 신학과 종교개혁을 살펴본다. 1523년 1월 29일, 취리히 시청의 강당을 가득 메운 600여명의 청중들 앞에서 츠빙글리와 천주교 대표가 사전에 제시된 67개의 토론 주제들을 두고 서로 열띤 논쟁을 벌였다. 츠빙글리의 ‘67개조 논제(The Sixty-Nine Articles)’는 그의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토론회는 츠빙글리의 탁월한 주장으로 압도되었고, 콘스탄츠 주교가 파견한 로마측 대표들은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이후 67개 조항이 그 해설과 더불어 출판되었다. 츠빙글리가 이렇게 67개 조항을 통해 중세 로마 가톨릭의 불의함을 지적하고, 취리히 시의회에 제출하면서 스위스의 종교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조항의 핵심은 ‘오직 성경으로’이다.

27. 김윤규 교수(한신대)는 기장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예배와 설교’를 위해, 첫째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sis)’ 위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동화시키고,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영광(Gloris dei)’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인식능력을 끊임없이 고취시켜야 된다. 둘째 예수께서 예전과 삶, 예배와 정의, 윤리와 의례 사이의 유대를 굳게 믿은 것처럼, 또한 장공 김재준이 끊임없이 명목(名目)적인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앙(행동하는 신앙)으로서 삶의 신앙을 외쳤던 것처럼, 기장교단의 목회자들이 성례전적인 예전을 구현해낼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28. 임창세 박사(둔전교회)는 칼빈의 성만찬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참여하는 사람의 믿음과 둘째 성령의 임재이다. 곧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러한 성찬은 완전한 자를 위해서 재정된 것이 아니다. 특히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신비는 하늘에 속한 것이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와 결합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를 땅으로 끌어 내릴 필요가 없다(가톨릭의 화채설 비판). 성령은 우리를 들어 올리시어 그리스도와의 신비를 이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영적 임재설). 놀라운 것은 한국 교회는 부흥집회에서 ‘안수’를 통하여 치유하려고 하는데 독일 교회의 경우, 성만찬을 통해 치유집회를 한다. 그리고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임했다. 따라서 매주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성령의 임재를 통해 우리의 몸과 영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29. 김지목 박사(한국민중신학회 총무)는 우리 기장 교회는 ‘선교를 희망하는 가슴 벅찬 예배’, ‘예배를 완성하는 선교’를 추구해야 된다고 말한다. 사실 한국 교회 초기에 복음은 부패한 봉건주의와 폭압의 제국주의 질서를 혁파할 사회적, 민족적 희망이었고 개혁의 정신이었다. 또한 70-80년대에는 인권과 민주화, 그리고 민족통일을 위한 선교활동으로써 십자가의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 이에 충실한 교회는 근현대사 속에서 민중과 함께 호흡하며 생명, 정의, 평화를 위한 선교의 지평을 넓혀왔다. 신앙고백(예배)과 (사회)선교를 건강하게 일치시킨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우리 기장교단도 문을 열어 세상을 구원의 축제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옹벽을 쌓고, 원심적 선교를 거절한 채, 그 안에서 예배의례로써 신앙을 충족하려고 한다. 이렇게 선교로 이어지지 않는 예배는 온당하지 않으며 그런 예배로 형성된 교회와, 그 교회가 추구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30. 김용성 박사(한신교회)는 본회퍼에 관한 연구가 교회론(타자를 위한 교회)과 윤리학(불의한 세상에 저항하는 윤리)에만 치중되었는데,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본회퍼가 이해한 설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본회퍼 당시 독일 신학은 신의 초월적 자유를 토대로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상황을 정위하는 칼 바르트의 신학, 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적 환경을 토대로 신에게 도달하려고 하는 루돌프 불트만의 신학이었다. 본회퍼는 이러한 신학의 이분법적 상태를 ‘행위(로서의 신앙)’와 ‘존재(로서의 계시)’로 구분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육신한 그리스도 사건에 나타나 있듯이, 행위와 존재를 연결했다. 따라서 신학과 교리는 하나님의 행위가 드러나는 설교를 통해서 반성되어야 할 것이다.

31.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안병무의 민중이해를 ‘민족적 민중(national Minjung)’과 ‘오클로스적 민중(ochlos Minjung)’으로 구분하고, 여기서 민족적 민중은 한국 민중론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라 규정한다. 물론 안병무 역시 저항적 민족주의가 그의 생각 도처에 있었다. 그러나 안병무의 민중론을 ‘징후적 독해(알튀세르)’를 통해 살펴보면, 저항적 민족주의(이것은 안병무의 시대적 한계 때문인데)를 넘어선 오클로스적 민중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주객이분법의 해체이다. 예수는 예수 주변의 대중과 분리할 수 없이 뒤섞여 있으며 예수의 사역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이다. 또한 구원자 예수는 ‘순정체 예수’가 아니라, ‘사건으로서의 예수’이다, 그리고 사건 속에서 예수는 개체가 아니라 집합체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 메시아론으로 연결된다. 또한 안병무의 민중신학적 윤리는 무조건적 환대(자크 데리다)와 유사한 결론에 이른다. 민중이 거칠고 무윤리적 행보로 우리의 것을 잠식해 들어올 때조차 우리는 무조건적 환대를 제도화하는 노력을 유보해서는 안 될 것이다.

32. 이종철 목사(한신대)는 기존의 민족 개념을 넘어서, 성서신학과 고조선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제시한다. 혈연 중심의 민족개념이 아니라, P기자의 창조질서의 일부로서 민족 개념(보편사적 시각)과 계약법전의 해방, 평등, 공존의 정신(예언자 정신으로 이어지는데)과 역대기사가의 토착민 수용정신으로서의 민족 개념 확장을 모색한다. 고조선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도 민족 자주성을 지키되, 다른 민족과 공존, 공영하는 민족 개념이다. 나아가 초대교회의 사마리아 공동체 포용 정신 역시 민족 개념의 확장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를 주로 믿는 이방인 공동체를 위한 바울의 ‘칭의론’에 나타난 ‘칭의 공동체’야 말로 새로운 민족 개념이다. 기장교단이 이러한 ‘민족’신학을 정립하는데 앞서 나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민족은 한낱 ‘이 땅의 도성’이 아니라, 신학이 꽃피는 삶의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3. 따라서 바울의 칭의 개념을 우진성 박사(성경과설교연구원)는 아가페의 관점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믿음(pistis/fides)의 발생사적 기원을 추적한다. 히브리어 에무나(emunah, 신실, 충성, 한결같음, 합 2:4)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핵심은 인정과 동의의 개념이 아니라, 신뢰와 신의, 충성과 같은 행동적이고 관계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어 번역 ‘belief(인식론적 동의)’보다는 ‘faith(신념)’이 본래적인 의미에 맞다. 또한 ‘하나님의 의’는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것은 죽기까지 그 사랑을 드러내는데 신실하셨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예수께서 보이신 길을 가는 것이다. 결국 피스티스와 아가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기장신학대회의 ‘희음(喜音) 뷔페’를 맛보기만 소개한다. 맛은 눈으로도 먹지만, 직접 입으로 먹어야 제 맛이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변혁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되었는데, 교회와 교단이 또한 목회자와 신학자가 갱신하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고인물이 되어 썩어 버려질 것이다. 모쪼록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 한국 신학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고민하는 이번 기장신학대회를 통해, 비록 기장교회가 안팎으로 위기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고 방황하는 한, 우리 기장교단의 앞날은 아름다울 것이다. 일찍이 괴테도 이렇게 덧붙였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Es irrt der Mecsch, solange er strebt).”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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