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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와 페스탈로치 (3) : 우리 시대의 빈민아동은 누구인가?

기사승인 2017.01.02  11: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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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와 페스탈로치>

이번에 살펴볼 페스탈로치 이야기는 『가난한 농촌 아이들의 교육에 관하여 N. E. T에게 보낸 편지들(Herrn Pestalozzi Briefe an Herrn N.E.T. ueber die Erziehung der armen Landjugend), 1777』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젊은 시절의 농촌운동에 관한 것이다. 앞 편에서 보았듯이 페스탈로치는 청년시절에 키웠던 애국심과 인류애를 가지고 당시 의식 있는 지식인들이 여러 가지로 시도하던 농촌운동에 큰 영향을 받아 1768년 브룩 근처의 비르펠트(Birrfeld)에 땅(약 18에이커)을 구입하여 본격적인 농촌경영에 들어갔다. 이와 더불어 취리히 대학 애국단 시절에 만나 같은 꿈을 키워왔던 안나 슐트헤스(Anna Schulthess, 1738-1815)와 그녀 집안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1769년 결혼하여 농장에서 멀지않은 뮬리겐(Muelligen)에 ‘노이호프’(Neuhof, 새집)라는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하였다. 

그러나 도시사람 페스탈로치의 농촌경영은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그의 목초재배와 빨간 무 재배 등 새로운 농작물 재배의 실험은 뜻밖의 심한 악천후로 타격을 입었고, 이러한 가운데서 특히 그가 농촌 상황과 자신의 경제상황을 개선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면직물 산업도 열매를 거두지 못하자 그의 상황은 극도로 나빠졌다. 그의 꿈과 새로운 농촌개혁의 시도에 공감하면서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물러가자 그는 많은 빚을 지고 곤경과 가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이들 부부는 태어난 아들 야콥을 위해서 『육아일기(Tagebuch ueber die Erziehung seines Sohnes, 1774)』를 써나갔고, 여기서 페스탈로치는 아들의 교육을 루소 『에밀』의 이상에 따라 이루어가려는 노력을 감동적으로 적고 있다. 
   
이번에 살펴보려고 하는 페스탈로치의 가난한 농촌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편지들은 이상과 같은 농장경영의 어려움과, 또한 그가 노이호프에서 시도했던 또 다른 사업인 농촌빈민학교의 운영경험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는 당시의 시대적인 변화와 더불어 농민들이 결코 농민으로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내 면직수공업과 더불어 확산되는 산업혁명의 물결에 따라 그는 농촌의 아이들에게 이러한 새로운 환경의 도래를 준비시켜주기를 원했다.

이에 페스탈로치는 1773년 말부터 노이호프에 가난한 농민아이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177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빈민노동학교를 운영했다. 약 50여명의 아이들과 더불어 삼 년여를 씨름하면서 그는 어떻게 가난한 농촌아이들이 배려되어야 하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새롭게 교육되어져야하는지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을 베른 지역의 귀족으로 가난한 농민계층 교육사업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챠르너(Nikolaus Emanuel Tscharner)에게 편지로 쓴 것이고, 이 편지들을 챠르너는 바젤의 인문학자 이젤린(Issak Iselin)의 「에페메리덴(Ephemeriden)」잡지에 싣게 했다.
 
빈민아동교육의 출발점과 근거

페스탈로치가 스탠스에서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모습을 그린 유화. 1879년 콘라트 그로브가 그림.

페스탈로치가 보기에 당시 챠르너 등이 운영하던 공공 농촌아동시설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도시귀족 계층의 입장에서 낭만적으로 농업만을 강조하면서 아이들을 그 계층에 묶어두는 자선사업의 일종이지 진정한 의미의 빈민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페스탈로치는 자신도 철저히 가난한 사람으로서 3년 이상을 농촌빈민아동들과 씨름해 오면서 그들이 결코 농사만을 위해서 길러져서는 안되고,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생산할 수 있는 능력”(Gewerbsamkeit)에로 키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란 바로 자라나는 빈민아동들의 능력 안에 그들의 필요와 환경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기초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것이 그들 교육의 출발점과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페스탈로치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필요물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로 키워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육은 이 가난의 근원을 막는데 있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당시 계몽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은혜의 차원에서, 구제사업의 방식으로” 행하는 공공사업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기서 페스탈로치는 유명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로 키워져야 한다”(Der Arme muss zur Armut auferzogen werden)는 말을 한다. 이 말은 후에 그에 대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이 말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에로 묶어두려 했으며, 그래서 당시 유럽의 앙시엥 레짐적 사회계층을 고착시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어지는 활동에서 뚜렷이 보듯이 그는 누구보다도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혁명정부로부터 명예시민으로 추대되기도 하였으므로 이러한 언술들이 단순한 수구 보수주의자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이러한 빈민교육에서의 입장은 누구보다도 그 스스로가 가난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처지를 잘 알았기 때문인데, 그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은 진정으로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그 가난의 상황과 거기서의 걸림돌이 무엇이며, 앞으로도 그들이 아마도 계속해서 살아갈 가능한 상황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정확하며 깊이 있는 인지가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각각의 사회 계층은 자신들의 젊은이들을 먼저 그들이 계속해서 처하게 될 상황의 어려움들과 제약들, 한계들에 익숙하도록 키우는 것이 중요하며, 모든 직업의 훈련이란 바로 그러한 어려움들을 익히고 인내 속에서 극복해나가는 것을 배우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빈민아동교육의 방법 및 목적

페스탈로치가 이러한 말을 할 당시는 아직 프랑스 대혁명이 있기 전이었다. 그래서 사회 계층과 계급에 대한 이해가 그 이후에 보면 한계를 드러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가 가난한 계층의 삶을 고착시키려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평생 동안 그 가난과 더불어 싸웠으며, 그가 “비참”(Elend)이라고 표현한 민중의 가난이란 “그들이 그 구렁텅이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인간이 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난이란 단순히 누군가에 의해서 밖으로부터 치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가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 가난이 오히려 그들 교육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그는 가졌던 것이다. 

페스탈로치는 이러한 뜻에서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이란 바로 그들의 자연스러운 필요에서 나온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Verdienstfaehigkeit)에 접목해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서 교육의 제일 좋은 방법은 바로 피교육자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행하면서 익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당시 공공 구제 사업이 섣부른 안락과 호의로 빈민의 아동들에게 단순히 베풀기만 하며 어떠한 생산력의 완결도 키워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나쁜 교육이 된다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노이호프의 빈민학교는 “생산의 정신”(der Geist der Industrie)과 아동들의 “수입능력”에 접목하여 면방적과 직조일을 한 과제로 삼았다. 챠르너에게 보내는 편지에 페스탈로치는 어떻게 6살 나이부터 시작하여 18살까지의 빈민아동들이 나름대로의 노동능력에 따라서 가내 면방직 노동에 참여하면서 수입을 올리고, 그것들이 그 빈민노동학교를 유지시키는 근원이 되며, 거기서 아이들은 노동과 더불어 가정을 얻고 교육경험을 갖게 되는지를 밝히고 있다. 

아이들은 실이나 옷감을 짜는 일 등을 통해서 “완전성”(Vollkommenheit)이라는 개념을 배우게 되고, 어떤 일을 끝내는데 있어서의 “정확성”(Genauheit), “정리능력”, “민첩성”, “부지런함”, “정확한 절약성” 등을 배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빈민아동들의 교육을 “생산노동의 정신”에 맞추어 하자고 하는 것이 결코 그들을 단순히 공장으로 보내자는 것이 아니며, 그들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기계바퀴를 돌리기 위해 태어난 가련한 존재들이 아니라고 그는 확언한다. 당시의 많은 아이들이 그냥 고아로 방치되어 있고, 노예로 살고, 농토나 어떤 재산도 없는 집안에서 불량아로밖에 될 수 없이 떠도는 아이들에게 그는 그들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기초로 해서 인간적인 덕목을 심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챠르너와 더불어 페스탈로치는 빈민아동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도덕교육”(sittliche Endzweck)이라는 데에는 일치한다. 그러나 챠르너가 그 인간적인 덕목의 교육이 학교와 같은 시설에서만 가능하다고 본 데 반해서, 페스탈로치는 공장과 같은 노동현장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빈민아동들에게는 그들의 수입능력을 근거로 해서 세워진 노동학교 방법이 훨씬 더 적절한데, 왜냐하면 아이들은 여기서 ‘질서’를 배우고, 정확한 ‘절약성’을 배우며, ‘근면성’, ‘의무감’, ‘책임성’을 습득하며, 후에 자신들이 어떠한 처지에 놓이게 되더라도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기 때문이다. 페스탈로치는 자신의 노이호프에서 수용한 아이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들의 신체적 건강도 훨씬 좋아졌고, 그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여러 가지 인간적인 덕목들도 길러졌으며, 그들 노동력을 통해서 학원도 운영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으므로 커다란 확신을 가졌다. 

페스탈로치는 이 농촌지역의 빈민노동학교는 농사일과 수공업의 일을 함께 할 것을 강조한다. 아이들이 도와서 농사일을 담당하면서 자신들의 먹을 것을 스스로 경작하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자연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들도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아이들의 건강은 크게 증진되었으며, 아이들은 안정된 가정과 같은 노동학교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페스탈로치가 이렇게 자라나는 빈민아동들의 노동능력을 그들 교육과 빈곤퇴치의 훌륭한 자원으로 생각한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결코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려 했다거나 그들에게 어떠한 부드러움과 사랑도 없이 냉정하게 현실만을 각인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강조해서 밝히기를 이러한 모든 구상은 결코 그 일을 주관하는 교육자의 어버이 마음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노동학교에서의 아이들은 자신의 친 아이들이고, 그는 어버이로서 아이들의 모든 노동과 교육이 그 최종목표인 참된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의 믿음에 따르면, 아무리 가난한 아이들이라도 그들 속에 이미 자연으로부터 이러한 노동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란 이미 그들 속에 놓인 힘이고, 그래서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도울 수 있는 그 힘에 접목한 교육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하고 확실한 교육이다. 그는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하기를 빈민교육은 바로 그들의 본래적 노동정신에 근거되어야 한다. 그는 “공장과 농사, 그리고 덕성을 종합하는 위대한 정신”(der grosse Ideal der Verbindung von Fabrik, Landbau und Sitten)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 시대에 빈민아동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200여 년 전 유럽에서 산업혁명의 정신이 막 동틀 무렵 어떻게 하면 가난한 농촌 아이들이 보호받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능력에로 교육되어질 수 있을까를 살펴보았다. 페스탈로치는 당시의 사회가 더 이상 농업의 경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일수록 새롭게 대두되는 환경 속에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는 6살 나이의 아동을 벌써 노동 활동에 참여시키고 그 아이들의 상황이 가난하므로 가난의 어려움을 같이 겪게 하면서 그 가운데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한국사회는 지난 20세기에 형제복지원과 같은 끔찍한 경험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페스탈로치의 제안이 현실에서 왜곡될 소지도 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말하고 있고, 지금 한국 사회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촛불 혁명의 기운이 특히 젊은 세대의 가난하고 암울한 미래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페스탈로치의 이러한 제안은 깊이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페스탈로치 자신도 이 실험 이후에 쓴 농민소설 『리엔하르트와 게르투르드(Lienhard und Gertrud), 1780-』를 계속 고쳐나가면서 과연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경제의 비중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고심을 하였다.

분명 시대적 한계와 그 자체의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인류의 대 스승의 사고를 만난다. 즉, 그는 끊임없이 아이들의 교육이 지금, 여기에서 그들의 필요와 스스로가 이미 가능성으로 가지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가난한 빈민고아의 아이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일 것이며,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며, 그 일 가운데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절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집중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여기에서 그 절실한 필요성이 그들 교육의 훌륭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루소도 말했듯이 진짜 가난한 사람이란 그의 욕망이 그것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힘과 능력보다 항상 더 큰 사람이라고 한 것처럼 오늘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도 많은 수의 아이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소비적이 되어가고, 세계는 온통 경제 시장이 되어서 사람들의 욕망을 한껏 부추기는 상황에서 우리 시대의 아이들도 소비의 욕망을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있지만 그들에게는 학교 공부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그 욕망을 스스로의 힘으로 채울 수 있는 길이 허용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마침내는 자기 파괴적인 방법으로, 또한 나쁜 어른들의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날 어른들의 번창한 섹스산업과 소비산업에 건강한 경제활동에의 통로가 막힌 가난한 청소년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날 청소년들도 제일 관심하는 것은 ‘돈 버는 일’이다. 오늘의 아이들은 신체적으로도 일찍 성장해서 많은 노동을 감당할 정도로 충분히 건강하지만, 그 남아도는 에너지를 쓸 만한 관심 있는 대상을 찾지 못하여 방황한다. 그들이 온몸과 마음과 정신을 써서 바로 하고 싶은 일이 책에만 매달리는 입시공부가 아니므로 그들은 거기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아니면 그 경쟁에서 일찌감치 밀려서 집중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다른 일은 허락하지 않는 사회는 그리하여 그들을 게으르고, 몸은 비대하지만 한 가지 일도 제대로 끝까지 완성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무능자로, 페스탈로치가 말한 대로, 정확성도 없고, 어떤 일을 끝까지 마무리한 참을성과 인내심도 없으며, 어려운 일을 처리해내는 영리함이나 민첩성과도 거리가 먼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절실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교육은 그 최종목표인 도덕성도 키워줄 수가 없는 것이다. 도덕교육은 그저 책을 통해서, 머리로 실행과는 동떨어져서 시험이나 치는 것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요사이 한국 교육에서는 ‘인성교육진흥법’까지 만들면서 다시 인성교육을 강조하지만, 인성교육은 페스탈로치가 말한 대로 그 아이들의 가장 절실한 필요물과 관심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관심들을 이용해서 몸과 마음과 정신이 함께 사용되어질 때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오늘의 청소년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을 그들의 관심사로부터 격리 당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의 소망과 관심을 스스로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악한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원함을 채울 수 있는 길을 찾거나, 아니면 몸도 훨씬 약한 부모가 모든 책임을 감당하느라고 등골이 휘고, 아이들은 모든 의무와 노동으로부터 제외되면서, 그러나 그 대가로 그들의 머리와 마음과 몸은 녹슬어간다. 
   
페스탈로치는 당시 부모를 잃고 버려지거나 하는 일이 없이 떠돌면서 그들이 원래적으로 가졌던 노동력과 정신과 마음의 힘을 모두 묻어 두고 망가뜨리면서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들을 수용해서 단순히 먹여주고 은혜를 베푸는 차원에서만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정확하고 근면하며, 검소하고 청결하며, 계획성이 있으며, 서로 협동하는 노동과 가정의 삶을 경험하게 됨으로써 그들 각자를 그러한 독립적이며 도덕적인 인간으로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시대 우리 부모들도 공부와 학교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단지 은혜만 베푸는 독지가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삶의 근본적인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이제 오늘날 우리 시대에 더 이상 억누르거나 부인만 할 수 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고, ‘카드빚’과 ‘다단계판매’ 등의 수렁에 빠져서 절망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예전의 방식으로만 묶어두려고 한다. 그들에게 어떤 것이 진정한 도움인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늘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국 교육이 지금의 배우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예전 페스탈로치가 당시 가난한 아이들이 미래에는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롭게 도래하는 산업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농업과 산업을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교육방식을 바꾸려고 한 정신을 오늘 우리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의 그는 아직 프랑스 대혁명을 겪기 전이었다. 그래서 사회 구조와 정치적 개혁의 의미를 아직 충실히 반영할 수 없는 시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젊은 세대의 교육개혁은 어떤 정치적 혁명도 무시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기초가 됨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 촛불집회를 나오는 청소년들도 탄핵 이후 자신들의 삶과 자신들의 교실과 자신들의 직업세계도 진정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오늘 우리 시대 욕망은 크게 부추겨져 있지만,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건전한 노동의 길이 모두 차단된 우리의 아이들과 청소년이 나는 오늘 우리 시대의 빈민아동들이고 고아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은선 (세종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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