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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자유》: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기사승인 2024.10.28  0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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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38

▲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오늘은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그의 작품들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유럽세계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일어난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루터의 저서를 읽기 전에 우리는 먼저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든 개혁에는 전조가 있듯이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개혁을 추동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교황권력과 세속권력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1300년, ‘우남 상탐’(Unam Sanctam, 하나의 거룩한 교회)이라는 교서를 통해 교회는 ‘영적인 검과 세속의 검 모두를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세속 권력의 잘못은 영적인 권력이 판단하지만, 영적인 권력의 잘못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판단될 것이라고 공표했습니다.(1)

어디서 많이, 아니 지금도 한국교회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이지요? 교역자의 권위를 내세우고, 잘못에 대한 책임추궁을 면하기 위해서 강조되는 주장입니다. 교황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하고, 왕이나 황제도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주장하는 우스꽝스런 일로 논쟁이 벌어졌고, 논쟁은 파문과 반격, 납치와 암살 등 추악한 권력 투쟁으로 번졌습니다. 급기야 교황이 아비뇽으로 사로잡혀 가거나, 교황이 동시에 두 명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권력 다툼은 마침내 세속권력의 승리와 교황권의 약화로 끝나는데,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교황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세속권력의 비호 때문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다른 역사적 배경은 교회의 타락과 성직자들에 대한 민중의 증오였습니다. 교황청이 아비뇽에 머무는 동안 교회는 돈을 모으는 조직으로 변모되었습니다. 교황은 각국에 세금징수원을 파견하여, 교회 수입의 약 10퍼센트를 ‘성직수임세’로 거두어들였습니다. 1376년 영국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의하면 성직수임세로 영국성직자들로부터 교황청이 거두어들인 수입은 영국 왕실 수입의 다섯 배에 달했다고 합니다.(2)

성직자들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고조된 것은 헌금 강요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악랄한 헌금은 영안실 사용료였다고 합니다. 이 사용료는 원래 자발적으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죽은 사람이 십일조를 온전히 지불하지 못했다는 전제 아래 거둬들였을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영안실 사용료는 죽은 자의 재산 중 두 번째로 값어치 있는 재산을 교회에 헌납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유가족은 매우 다양한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영안실 사용료는 남편뿐만 아니라 아내가 죽었을 때도 징수되었습니다. 남편이 다른 교구에서 죽었다면 그의 재산은 고향 교구와 죽었던 장소에 속한 교구 모두에게 이중으로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때로는 한 교구 안에서 교구 성직자와 감독이 동시에 세금을 거둬가기도 했습니다.(3) 그 외에도 고해성사, 속죄의 수단이 된 기부금, ‘대사’(면벌부) 판매, 성물 숭배 등도 모두 성직자들의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교회의 성직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헌금을 긁어모았고, 감독에게 뇌물을 바쳐 큰 교회로 부임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습니다.

또 다른 역사적 배경은 페스트로 인한 인구의 급감, 노예제 소작농의 해체와 자유농민의 등장, 도시의 발전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 인쇄술의 발전, 천년왕국설의 평등사상에 기초하여 성직주의와 교회를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의 등장, 르네상스, 성경의 대중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들이 중첩되면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었고, 마침내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지요.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삶

독일의 개혁자 마틴 루터의 삶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서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몇 가지 그의 삶에서 주목할 요소들만 살펴보겠습니다. 칼뱅과 달리 루터는 매우 서민적이고 비조직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맥주를 즐겨 마셨고, 그의 집에는 손님들이 그치지 않고 북적거렸다는 것도 그의 소탈한 성품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격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논쟁을 즐기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강한 어투를 사용했습니다. 그의 이런 격정적인 성격은 그의 글과 설교에 생동감을 부여했지만, 때로는 과격한 언행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유머 감각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종종 재치있는 표현과 유머로 강연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고,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박증에 가까운 강한 신념과 확신은 죽음의 위협을 무릎쓴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미처야 미친다’는 말이 있듯이 무엇인가 해내는 인물은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루터는 광산업자의 아들로 지식층과 대별된 대중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권력의 힘과 대중의 정서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각 조직체는 어떠한 일을 수행해야 할지에 대해 에라스무스보다 훨씬 분명한 이해를 하고 있었다고 보입니다.(4)

마틴 루터의 저술들

루터는 수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의 저술은 대부분 논쟁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기획되고 체계를 잡고 집필한 것들이 아닙니다. 루터의 이런 열정과 힘의 원천은 그가 수도원에서 받은 훈련과 기도의 능력에 있었습니다. 루터는 창문 옆에서 하루에 3시간씩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술 작업에 쏟은 열정은 대단해서 1517년부터 평균 40일에 한 권의 책을 써서 평생 1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5)

루터의 초기 저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논문들은 모두 152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 논문들은 이른바 루터의 3대 개혁논문들로 간주되는데, 1520년은 그가 공식적으로 파문당하고 프로테스탄티즘으로 갈라지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루터의 3대 개혁논문으로 알려진 글은 《교회의 바벨론 포로》, 《독일민족의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교회의 바벨론 포로》에서 루터는 종교개혁자의 입장에서 가톨릭교회를 근본적으로 비판한 후에 성경을 바탕으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시했습니다. 《독일민족의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에서 루터는 종교를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들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루터는 독일 영주들에게 교회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는 등 에라스무스라면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과정을 밟아나갔습니다.(6)

《그리스도인의 자유》(7)에 대하여

루터는 수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의 저술은 대부분 논쟁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기획되고 체계를 잡고 집필한 것들이 아닙니다. 루터의 이런 열정과 힘의 원천은 그가 수도원에서 받은 훈련과 기도의 능력에 있었습니다. 루터는 창문 옆에서 하루에 3시간씩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술 작업에 쏟은 열정은 대단해서 1517년부터 평균 40일에 한 권의 책을 써서 평생 1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였다고 합니다.(8)

루터의 초기 저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논문들은 모두 152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 논문들은 이른바 루터의 3대 개혁논문들로 간주되는데, 1520년은 그가 공식적으로 파문당하고 프로테스탄티즘으로 갈라지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루터의 기념비적인 3대 개혁논문으로 알려진 글은 《교회의 바빌론 유수》(9),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10),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교회의 바빌론 유수》(1520년 10월)에서 루터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포로기를 상기시키듯, 교회의 바빌론 포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성례전을 주로 비판합니다. 가톨릭교회의 7가지 성례전에 도전하면서 세례와 성만찬만이 성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성례의 축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례에 참여하는 신도의 믿음의 역할이라고 루터는 강조합니다.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1520년 8월)에서 루터는 종교개혁 초기의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교회 내부의 타락, 교회 권위의 남용, 부패한 관행들을 가톨릭교회가 개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독일의 귀족과 군주들이 나설 것을 요청합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필연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독일 귀족들이 교회개혁에 역할을 할 것과 신성로마제국의 구조에 도전할 것을 호소한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년 11월)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루터가 자기 친구이자 후원자인 츠빅카우(Zwickau)의 시장인 히에로니무스 뮐포르트(Hieronymus Muelphordt)에게 헌정한 책입니다. 루터는 뮐포르트 시장을 그의 목사인 요한 에그란(Johann Egran)의 소개에 의해 알게 되었습니다. 에그란 목사는 그를 사람들 앞에서 성실하고 끊임없이 성경을 찬양하는 인물로 소개했고, 루터는 그와의 교제와 친목의 좋은 시작을 위해 독일어로 된 이 논문을 헌정한 것입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앞부분에 교황 레오 10세(1475-1521)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첨부합니다. 레오 10세는 제217대 교황으로서, 1513년부터 1521년까지 재위했습니다. 그는 메디치 가문 출신의 최초의 교황으로, 재위 중에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사’ 판매를 승인했습니다. 역대 교황 중 가장 사치스러웠던 인물로 교황청에 많은 빚을 남겨 후임 교황들을 힘들게 했지요.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존경을 표하면서도, 교황을 둘러싼 부패한 권력집단들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1517년 비텐베르크 성교회에서 ‘대사’ 판매에 대한 95개 조항의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개혁이 시작된 후, 3년 동안, 루터는 “이 시대의 괴물들과 3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하면서, 레오 10세 교황이야말로, ‘자기가 치르는 전쟁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11)

루터는 교황 주변의 불경한 아첨꾼들이 비록 자기에게 맞서고, 선임 교황 피우스와 줄리우스의 어리석은 폭압이 있었지만, 교황 레오 10세와 교황청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진심 어린 기도를 해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교황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는 이유는 자기가 교황의 인격까지 비판했다는 오해를 해소하기 위한 것에 있으며, 자신은 ‘교황에 관해 언급해야 할 때마다 오직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는 말만 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12)

루터는 누구도 공격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자기 눈 안에 있는 들보를 늘 염두에 두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잘못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고”, 자기는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3)

그리고 자기는 “어떤 사람들과도 진리의 말에 관해서만을 제외하면, 상대방의 도덕에 관해서는 결코 다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 달라고 요청합니다.(14) 그러나 루터는 교황이 있는 곳, 로마 교황청을 진실로 경멸했다는 것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곳이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바빌론이나 소돔보다도 더 타락해 있음을 당신이나 어떤 다른 이라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그곳은 철저한 부패, 희망 없음, 악명 높은 불경함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저는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이름 안에서, 그리고 로마 교회라는 구실로 조롱당한다는 사실에 대해 대단히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저항했던 것이고, 믿음의 영이 제 안에 거하시는 한 저는 교황청에 저항하기를 계속할 것입니다.”(15)

루터는 “이전에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도 가장 거룩한 로마의 교회가 이제는 가장 제멋대로 날뛰는 강도들의 소굴, 모든 형제들 가운데서도 가장 파렴치한 이들의 소굴, 죄와 죽음의 왕국, 바로 지옥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16) 루터는 300여 년 동안 부패와 사악함의 엄청난 증가를 겪어온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광활한 하늘 아래 로마 교황청보다 더 썩어 있고, 더 역병을 일으키며, 더 극도로 불쾌한 어떤 곳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교황청은 한때 하늘의 문이었으나 이제는 지옥의 열린 입이 되었다.”고 규탄합니다.(17)

교황은 이리떼 가운데 있는 양과 같고, 사자들 가운데 있는 다니엘과 같은 신세가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로마 교황청은 이미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분노가 그 위에 가차 없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교회 공의회를 몹시 싫어하고 개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8) 루터는 이런 시대에 교황이 된 레오 10세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교황에게 ‘방탕한 적들이 자랑스럽게 교황의 영광이라고 내세우는 것을 버리고, 적은 성직자 수입으로든지 또는 가문의 상속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권합니다.(19)

그리고 루터는 자신을 공격했던 요한 에크(Johann Eck), 추기경 카예타누스 등을 거명하면서 이들이 사탄의 부추김을 받고 베드로의 수위를 세우는 데 관심이 없고 자신의 지도력을 세우는 데 목적을 둔 인물들이라고 규탄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조정안을 전복시켰고, 진리가 아니라 인정을 추구했다고 비난합니다. 바로 이들 아첨꾼들이 교황의 적, 로마 교황청의 적이라고 지적합니다.(20) 그리고 교황에게 그런 아첨꾼들을 멈추게 해달라고 바랍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평화를 지키는 시늉을 하지만, 사실은 평화의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21)

교황 주변의 아첨꾼들은 교황이 “그저 사람이 아니고, 반신반인의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황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명하고 요구할 수 있도록” 하지만, 루터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교황은 그런 놀랄 만한 권능을 갖는 것도 아니고, 교황은 종들의 종이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몹시도 비참하고 위험한 직책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교황은 하늘과 지옥과 연옥에 대해서 권한을 지니고 있다고 지껄이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현혹되지 말라.”고 권합니다.(22)

심지어 “교황을 공의회와 보편적인 교회를 초월하는 위치로 격상시키면서, 또 교황에게만 성경을 해석할 권한을 돌리면서” 아첨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만, 이들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루터는 지적하면서, 교황에게 “자기를 드높이는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오히려 자기를 겸허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믿으라.”고 권고합니다.(23)

루터는 이 책이 비록 분량으로 보면 작은 책자에 불과하지만, 간략한 형태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삶의 전체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는 가난한 사람이고, 교황에게 드릴 다른 어떤 선물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교황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더 부유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서 다만 영적인 선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이 책을 헌정한다고 공개서한을 마무리합니다. 서명 일은 1520년 9월 6일이다.(24)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학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고, 오직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고 합니다.(25) 그러나 책은 작고, 무식한 사람들을 위해 쉽게 썼다고 하지만 결코 쉬운 책이 아닙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속박에 관한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는 두 개의 진술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완전하게 자유로운 만물의 영장으로서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온전하게 충실한 모든 이의 종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매여 있습니다.”(26)

이 두 진술은 모두 다 사도 바울의 진술인데,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고 말했습니다. 또 빌립보서 2장 6-7절에서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런 진술을 근거로 루터는 그리스도는 자유인이며, 동시에 종이셨다고 합니다.(27)

▲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가 뷔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자유는 일반적으로 ‘자아실현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런 자유는 타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영혼의 자유, 섬김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도 타인을 위해 절제하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루터는 자유를 무엇이든지 허락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의식과 전통들 또한 인간의 법의 흠을 찾아내고 경멸함에 의해서만 자신들이 자유로운 사람들이고 그리스도인들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28)

이런 사람들의 정반대의 극단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의식들을 지극히 숭배하고 준수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특정한 날에 단식하거나 고기 먹는 것을 금하고, 특정한 기도를 바치는 것을 구원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지요.(29)

루터는 이 두 집단의 사람들은 모두 오류 가운데 있다고 평가합니다. 단순한 경멸로 의식을 소홀히 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은 지식에 의해 교만해져 있는 사람들이고, 이들도 의롭다고 간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의식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신 28,14)고 합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행위로부터 벗어나게 하지 않고, 행위에 관한 잘못된 견해로부터, 즉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것이 행위에 의해 획득된다고 하는 어리석은 건방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 루터의 입장입니다.(30)

사람은 누구나 행위가 없이 존재할 수 없는데, 그것은 인간이 먹을 것과 음료,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루터는 긍정합니다. 비록 의로움은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신의 행위들이 그런 이유 때문에 멸시되거나 경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31)

그래서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도의 길을 취해야 하지만,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맞서야 한다고 권합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유연성이 없이 고집이 센 의식주의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고집이 센 의식주의자의 예로 루터는 옛 유대인들을 듭니다. 그들은 자유에 관한 진리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믿음 없이, 그저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수단으로서 의식을 자랑하고 규정하고 고집하는데, 그리스도인은 이들에 맞서 정반대의 것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32)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루터의 반유대주의의 단초를 찾습니다. 루터와 반유대주의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과제이어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기분 상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루터는 권합니다. 그들이 충분한 가르침을 받을 때까지 그들의 약함에 양보해야만 한다고 한 것이지요.(33) 하나님의 백성을 노략질할 때 사용하는, 교황들의 규례들은 날카롭게 질책해야 하지만, 불경한 폭군들의 규례들을 수단으로 해서 억류하고 있는 겁 많은 대중은 그들이 해방될 때까지 잘 대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루터의 입장입니다.(34) 폭군들과 완고한 사람들 앞에서는 굴하지 않고 저항해야 하지만, 연약한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의 자유를 행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5)

루터에 의하면 “믿음은 기쁘고 애정 어리게 행해지는 가장 자유로운 섬김의 행위들 안에서 표현되고, 그런 행위들을 통해 사람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기꺼이 섬긴다.”고 합니다.(36)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 이외에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유롭고 관대하게 선행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7)

루터는 “믿음으로부터 주님 안에 있는 사랑과 기쁨이 흘러나오고, 사랑으로부터 기꺼이 우리 자신의 이웃들을 섬기는 기쁨에 찬 자발적이며 관대한 마음이 흘러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감사함이든, 배은망덕이든, 칭송이든 비난이든, 얻음이든 손실이든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습니다.”(38) 그리스도인은 친구와 적을 구별하지 않고, 사람들의 감사나 감사하지 않음을 예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모든 것을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허비하든 아니든 또는 그가 보상을 얻든 아니든 관계없이, 매우 관대하고 기꺼이 그 자신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칩니다.(39)

루터는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관대하게 도와야 하는 이유는 천상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아낌없이 우리를 도우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과 행위를 통해서 이웃을 관대하게 도우는 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는 일이라고 합니다.(40)

루터에 의하면, 믿음과 사랑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사랑을 통하여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고 합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하나님께로 들려 올라가고, 사랑에 의해서 그는 자신 아래로 그의 이웃에게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41)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다른 주제는 ‘믿음’입니다. 루터는 로마서 1장의 말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에 의지하여, “영혼은 어떤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오직 믿음에 의해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42)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신앙을 통해서 모든 죄가 용서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으며,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43)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관심은 행위에 대한 모든 신뢰를 벗어버리고 점증적으로 신앙만을 강화시켜 가는 것이고, 믿음을 통하여 업적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즉 자신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 안에서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루터는 말합니다.(44)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앙을 전개하기 위해 성경이 두 부분, 곧 계명과 언약으로 나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계명들은 우리에게 그것을 행하는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계명들이 의도하는 것은 계명들을 통해서 우리가 선을 행함에 있어서의 무능력을 깨닫고 스스로의 능력에 절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45) 그래서 계명을 통해 사람은 참으로 겸손해지고, 자기가 볼 때에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낮아지면서, 스스로 의롭게 여김을 받고 구원될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자신 안에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46)

바로 이 지점에서 성경의 두 번째 부분인 언약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들은 거룩하고 참되며 의롭고 자유로우며 평화로운 말씀들로서, 선함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굳건한 믿음으로 그 말씀들을 붙잡고 있는 영혼은 말씀과 몹시 가깝게 연합되어 말씀으로 모두 잠기게 될 것입니다.”(47)

그리고 요한복음 1장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언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이 놀라운 권세를 얻는 원천은 믿음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어떤 선한 행위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할 수 없고, 또한 영혼 안에 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대한 믿음만이 영혼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신앙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그를 의롭게 할 어떤 행위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가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율법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루터는 말한다. 그리고 그런 ‘그리스도인의 자유,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게으름과 사악함으로 살도록 이끌지 않으며, 다만 모든 이의 의로움과 구원에 있어서 율법과 행위를 불필요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신앙의 으뜸가는 힘이다.”는 것입니다.(48)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고 할 때,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무슨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의로우시다고 여기는 것, 또한 신뢰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돌리는 모든 속성들을 다 지니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49)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된 분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신앙을 통해 그분께 합당한 큰 영광을 드릴 때, 그분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진실하고 의롭다고 여기시는 커다란 영광을 주신다.”고 루터는 말합니다.(50)

루터는 신앙을 혼인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마치 신부가 신랑과 결합됨과 같다는 것입니다. 신랑인 그리스도는 은혜와 생명, 그리고 구원으로 충만하고, 신부인 우리의 영혼은 죄와 죽음, 그리고 지옥살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을 통해 신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신부에게 주고, 신부도 신랑에게 모든 것을 줍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혼인반지에 의해서 신랑은 신부의 죄와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고, 자신의 것인 은혜와 생명,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51) 따라서 “믿음의 영혼은 그의 신앙이라는 담보에 의해서 신랑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고, 모든 죄로부터도 해방되며, 죄와 죽음에도 안전합니다.”(52)

루터는 “하나님을 흠숭한다는 것은 행위에 의해서 될 수 없고, 오직 마음의 신앙에 의해서 가능하다.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고, 다만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그분께서 진실하시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믿음만이 그리스도인의 의로움이요, 모든 계명의 실천이다.”라고 합니다.(53)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장자권에 의해 왕직과 사제직이라는 두 특권을 얻으셨듯이 …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제들이고 왕들이다.”고 합니다(벧전 2,9).(54)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물질적 권세에 의해서 모든 것들을 소유하고 통제하기 위해 그것들 위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성직자들은 그렇게 된다고 믿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루터는 지적합니다.(55) 그런 ‘권세는 왕들이나 제후들,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고, 우리의 일상적 경험은 우리가 그리스도교적으로 되면 될수록, 더 많은 악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것임을 루터는 인정합니다.(56)

여기서 루터가 의미하는 왕적 권세는 영적인 것입니다. 오직 믿음만으로도 구원에 충분하기 때문에, 믿음 고유의 자유에 속하는 권세와 지배를 행사하는 그러한 믿음을 제외한 어떤 것도 그리스도인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권세,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약한 데서 온전해지는 능력’입니다(고후 12,9).(57)

그래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왕들 가운데서도 가장 자유로운 왕일 뿐만 아니라, 또한 왕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이라고 할, 영원한 사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제로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서,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신적인 것들을 서로서로 가르치기에 합당한 존재라는 것입니다.(58)

그리스도인은 왕적인 권세에 의해서 모든 것을, 죽음과 생명과 또한 죄를 다스리고, 그의 사제적 영광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전능합니다(빌 4,13).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것들을 행하기 때문입니다.(59)

루터는 선한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되고 자유로워지고 구원받으며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물에 비친 개에 비유합니다. 입에 고기 한 조작을 물고 개울을 건너는 개가 물속에 비친 그 고기의 상을 보고 착각해서 그것을 잡으려고 입을 벌리다가 그 고기와 그 상 모두를 잃게 되는 것처럼, 행위를 통해 의로워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주는 모든 특혜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60)

▲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부터 로마가톨릭과의 반목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수많은 위협에도 루터는 굽히지 않았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이른바 ‘만인사제직’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제라고 하면 교회에 있는 교황, 주교, 교회의 고위 성직자로 불리는 사람들과 평신도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냐는 물음이 제기됩니다.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평등하게 사제들이기는 하지만, 공적으로 모두 다 목회를 하고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루터는 그런 “청지기의 직분이 너무나도 커다란 권세의 표현으로, 또 너무나도 끔찍한 폭압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어떤 이교의 제국이나 어떤 다른 지상적 권력도 그것에 비교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런 왜곡을 통해서 그리스도교적 은혜, 믿음, 자유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리스도 바로 그분에 대한 지식이 다 함께 소멸되어 왔다.”고 비판합니다.(61)

루터는 선한 행위와 선한 존재 사이의 관계를 마태복음서 7장 18절의 말씀,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으로 조명합니다. 루터는 “선한 행위가 선한 사람을 만들지 않고, 다만 선한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한다. 악한 행위가 사악한 사람을 만들지 않고, 다만 사악한 사람이 악한 행위를 한다.”는 진술이 옳다고 봅니다.(62) 사람이 선하거나 사악한 행위를 행하기에 앞서 먼저 그 사람이 선하거나 사악함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63) 그리고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믿음이다. 신앙 이외에 어떤 것도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않고, 반면 불신앙 이외에 어떤 것도 사람을 악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64)

그런데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어느 한 개인을 선하거나 악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이 맞다고 루터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매우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속임을 당해 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눈먼 사람들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누구나 행위를 넘어서서, 행위들에 관한 규례와 가르침을 넘어서서 보아야만 합니다. 시선을 행위들로부터 돌려서 그 사람을 보아야 한다고 루터는 권면합니다.(65)

루터는 선행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행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능한 한 많이 그것에 대해 가르칩니다. 행위 자체 때문에 행위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행위에 대한 그런 비신앙적인 생각과, 또한 의로움이 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왜곡된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은 행위를 표면상으로 선한 것으로 보이게 하지만, 사실상 선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행위들에 의해 사람들은 속임을 당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속이니 마치 양의 탈을 쓴, 먹이를 찾아 날뛰는 이리들(마 7,15)과도 같다고 합니다.(66)

마틴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미친 영향은 ‘오직 믿음으로’라는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하면서, 부패한 교황청과 대사(면벌부) 판매에 대한 비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과 규례에 대한 비판과 개인적 양심의 자유 강조는 후대의 민주주의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개인적 권리의 관철이나 개인적 욕망의 충족과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루터에 의하면, 믿음과 사랑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사랑을 통하여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고 합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하나님께로 들려 올라가고, 사랑에 의해서 그는 자신 아래로 그의 이웃에게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67)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신자유주의’가 자유를 오직 개인적 권리의 무한확대, 특히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이익추구의 제한받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의미하는 시대에, 루터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지배의 자유가 아니라 섬김의 지배로서의 자유는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미주

(1) 폴 존슨, 《2천년동안의 정신(II) - 유럽의 문명을 만들다》, 김주한 역 (서울: 살림, 2005), 167.
(2) 폴 존슨, 《2천년동안의 정신(II) - 유럽의 문명을 만들다》, 237.
(3) 폴 존슨, 《2천년동안의 정신(II) - 유럽의 문명을 만들다》, 239.
(4) 폴 존슨, 《2천년동안의 정신(II) - 유럽의 문명을 만들다》, 364.
(5) 폴 존슨, 《2천년 동안의 정신(II) - 유럽의 문명을 만들다》, 371.
(6) 폴 존슨, 《2천년 동안의 정신(II) - 유럽의 문명을 만들다》, 372.
(7)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전경미 역 (서울: 키아츠, 2021).
(8) 폴 존슨, 《2천년동안의 정신(II) - 유럽의 문명을 만들다》, 371.
(9) 마틴 루터, 《교회의 바빌론 유수》, 전경미 역 (서울: 키아츠, 2021).
(10) 마틴 루터,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 원당희 역 (서울: 세창출판사, 2010).
(11)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2.
(12)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3.
(13)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4.
(14)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6.
(15)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6-17.
(16)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7.
(17)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20.
(18)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8.
(19)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9.
(20)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25.
(21)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28.
(22)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29.
(23)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31.
(24)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33.
(25)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36.
(26)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36.
(27)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37.
(28)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05.
(29)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05.
(30)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06.
(31)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07.
(32)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08.
(33)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09.
(34)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10.
(35)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11.
(36)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88.
(37)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91.
(38)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92.
(39)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93.
(40)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94.
(41)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03.
(42)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42.
(43)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43.
(44)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44.
(45)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46.
(46)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47.
(47)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49.
(48)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50.
(49)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51.
(50)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53.
(51)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55.
(52)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56.
(53)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58.
(54)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61.
(55)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62.
(56)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62.
(57)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63.
(58)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64.
(59)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65.
(60)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66.
(61)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67.
(62)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77.
(63)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78.
(64)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80.
(65)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81.
(66)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83.
(67) 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03.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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