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를 바라보는 생각과 사회의 변화를 위한 장애학의 역할
▲ 콜린 반즈 교수의 비교할 수 없는 공헌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바라보도록 시각의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영국 리즈대학교 |
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오랫동안 개인의 불행이나 의료적 문제로만 여겨져 왔다. 이러한 인식은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연구와 더불어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장애를 죄의 결과나 징벌로 바라보는 현실은 여전하다.
교회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또한 교회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대형 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회들이 장애인의 접근성 문제에 직면해 있다. 좁은 출입구, 계단만 있는 예배당이나 강대상, 장애인용 화장실의 부재 등 물리적 장벽부터 시작해, 수어 통역이나 점자 성서의 미비 같은 정보 접근성의 문제, 나아가 장애인을 동등한 공동체 일원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적 장벽까지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히 시설 개선의 문제를 넘어, 장애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 필요성을 보여준다. 바로 여기서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장애학은 장애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을 뒤집고,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서 장애를 재해석하려는 학문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장애학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바로 영국 리즈대학교(Leeds University)의 콜린 반즈(Colin Barnes) 교수이다. 반즈 교수는 1980년대부터 장애학 분야를 개척하며, 장애인의 권리와 사회적 포용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의 연구와 저술은 장애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전 세계 장애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회가 이러한 장애학의 관점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단순히 물리적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장애를 가진 성도들을 동정과 배려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그들의 참여와 기여를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교회 밖 장애인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인식에 이를 수 있다. 즉 전 세계 장애운동의 핵심 이슈 중 하나인 ‘탈시설화’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교회가 이러한 장애학적 관점을 수용함으로,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중받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는 반즈 교수가 제창한 장애학의 핵심 개념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교회가 어떻게 더 포용적이고 정의로운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장애인 인식 개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주마간산 격의 글이지만 반즈 교수의 장애학 개념의 핵심이 잘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
반즈 교수의 장애학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장애의 사회적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이다. 이 모델은 기존의 ‘의료적 모델’과 대비된다. 의료적 모델에서는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으로 보고, 이를 치료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반면 사회적 모델은 장애를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본다.
반즈 교수는 장애가 개인의 손상(impairment)이 아닌, 사회의 장벽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계단만 있고 경사로가 없는 건물 설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장애 문제의 해결책을 개인의 치료나 적응이 아닌, 사회 구조와 인식의 변화에서 찾는다.
억압의 형태로서의 장애: 사회 구조와 차별을 넘어 사회 정의를 향해
반즈 교수는 장애를 ‘사회적 억압의 한 형태’(Disability as a Form of Social Oppression)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과 배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구조적이고 체계적이다. 이러한 시각은 장애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정의의 문제로 재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즈 교수는 장애인들이 교육, 고용, 주거, 교통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체계적인 차별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차별은 단순한 편견이나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축된 사회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를 위해서는 이러한 억압적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장애, 다양성의 긍정적 재구성
반즈 교수는 장애인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장애는 부정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반즈는 장애를 다양성의 한 형태로 보고 이를 축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에 우열의 시선을 개입할 여지를 차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 문화’의 개념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농인(聾人) 문화는 고유의 언어와 예술, 전통을 가진 독특한 문화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기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장애인이 겪는 고통과 절망은 99%가 사회적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기에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장애학의 역할이다. ⓒGetty Images |
장애인의 인권과 시민권: 장애인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반즈 교수의 장애학은 장애인의 권리를 ‘인권과 시민권’(Human Rights and Civil Rights)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는 장애인들이 단순히 복지나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의 인권과 시민권에 대한 강조는 사회 각 분야의 변화를 촉구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 권리 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예를 들어, ‘UN장애인권리협약’은 반즈 교수와 같은 장애학자들의 연구와 활동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협약은 장애인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 복합적인 차별과 억압을 이해하기
반즈 교수는 장애가 다른 사회적 범주들과 교차해 복합적인 차별과 억압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장애를 가진 여성은 장애와 성별로 인한 이중의 차별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장애로 인한 차별과 성차별의 합이 아니라, 두 요소가 상호작용해 만들어내는 고유한 형태의 차별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교차성에 대한 인식은 장애학을 더욱 포괄적이고 복잡한 학문 분야로 발전시켰다. 반즈 교수는 장애 연구가 인종, 성별, 계급,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사회적 범주와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은 장애인의 경험을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더 효과적인 정책과 지원 방안을 수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해방적 연구 방법론: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
반즈 교수는 장애학 연구에 있어 ‘해방적 연구 방법론’(Emancipatory Research Methodolog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방법론은 연구 대상인 장애인들을 수동적인 객체가 아닌, 연구 과정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인식한다. 이는 전통적인 연구 방법론이 가진 권력 불균형을 해소하고, 연구의 목적과 과정, 결과가 장애인 커뮤니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해방적 연구 방법론에서는 장애인들이 연구 주제 선정, 데이터 수집, 분석, 결과 해석 등 연구의 모든 단계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연구가 장애인의 실제 경험과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고, 궁극적으로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장애인 연구 참여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변화를 위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독립적 생활: 장애인의 자율성과 자기결정을 향해
마지막으로 반즈 교수는 장애인의 ‘독립적 생활’(Independent Living)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여기서 독립은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과 통제권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장애인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별 지원, 접근성 있는 주거, 이동권 보장 등 다양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반즈 교수는 이러한 지원이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장애학, 사회변화를 위한 학문
콜린 반즈 교수의 장애학 이론은 장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사회적 모델’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로 재정의했다. 이는 장애인 권리 운동에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으며, 정책과 법률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또한 반즈 교수의 ‘억압의 형태로서의 장애’ 개념은 장애 문제를 사회정의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정체성 정치’와 ‘인권 및 시민권’ 개념은 장애인의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교차성’ 개념 역시 장애 경험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해방적 연구 방법론’은 장애 연구의 질을 높였고, ‘독립적 생활’ 개념은 장애인 복지 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개념들은 장애학을 단순한 학문을 넘어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만들었다. 반즈 교수의 이론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을 위한 길을 열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욱 포용적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반즈 교수의 장애학 이론은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