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34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 Sandro Botticelli, 「Posthumous portrait in tempera」 (1495) ⓒWikipedia |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1) 여러분은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3곡에 나오는 말이지요. 단테는 지옥의 문 위에 쓰인 이 글귀를 본 다음 입구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이 지옥의 입구에는 “선이나 악에도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나태한 자들이 왕벌과 파리, 벌레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은 정확한 집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307년경, 42세의 나이에 쓰기 시작하여 56세 사망 직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첫 사랑의 죽음과 정치적 망명이라는 깊은 상실감과 고통 속에서 《신곡》의 집필은 단테에게 위로를 넘어 살아야 할 이유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신곡》 외에도 여러분은 단테하면 곧바로 ‘베아트리체’를 생각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져 있지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단테가 1274년, 9살의 나이에 동갑의 소녀 베아트리체를 먼발치에서 보고 한 번에 반했고, 베아트리체가 2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를 짝사랑한 단테의 삶과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9살에 멀리서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 후, 두 사람의 관계가 실제로 진전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딱 한 번, 9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19살이 되던 해, 단테는 길거리에서 다른 두 여인과 함께 걸어가던 베아트리체와 마주쳤는데, 그녀가 단테에게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2)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좋아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고 친절했던 베아트리체의 성품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단테는 사랑에 더 깊이 빠졌습니다.
그런데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두 가문의 사회적 신분 차이도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단테도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베아트리체는 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베아트리체는 1287년 은행가 출신 바르디 가문의 시모네와 결혼했으나, 1290년, 24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3), 이런 배경이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이 더욱 거룩해지고, 더 나아가 구원의 상징으로 이상화되는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일방적인 짝사랑이 단테에게 《신곡》이라는 불멸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보이는데요, 단테와 베아트리체 이야기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가 말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끌어올린다”, 도스토옙스키의 “오직, 아름다움만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알리기에리 단테의 삶
알리기에리 단테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시인, 《신곡》의 저자, 단테의 본명은 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인데요, 두란테의 약칭인 단테로 불린 것입니다. ‘장수하는 날개가 달린 자’라는 뜻을 가진 단테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알리기에리 혹은 알라기에리 가문의 아들로 1265년에 태어납니다.
그의 어린 시절과 교육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는데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재구성한 것에 의하면, 10세 때부터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도미니쿠스 수도원에 출입하면서 스콜라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중세 교양학문인 3학(라틴어, 논리학, 수사학)과 4학(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을 공부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당시 피렌체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브루네토 라티니(Brunetto Latini, 1220-1294)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4)
단테는 당시 관습에 따라 12살의 나이에 젬마 도나티(Gemma Donati)라는 여인과 약혼을 했고, 26살에 그녀와 결혼해서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합니다.(5) 스무 살의 나이에 시칠리아 전쟁에 참전했는데, 그의 전쟁 경험은 단테의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단테는 결혼과 함께 피렌체와 피사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합니다. 단테의 고향 피렌체는 12세기부터 시민들이 대표를 선출하여 통치하는 자치 도시 국가로 발전했습니다.(6)
35살의 나이에 단테는 피렌체 시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38살까지 정치활동을 하는데요, 당시에는 교황과 신성로마 제국 황제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단테는 교황을 옹호하는 파를 지지했는데요, 교황 옹호파는 다시 내부적으로 소위 흑당(Neri)과 백당(Bianchi)으로 분열되어 서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흑당은 백당에 속했던 단테를 공금 횡령과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하고 법정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합니다. 그러나 단테는 출두를 거부했고, 피렌체 법정은 1302년 1월 궐석 재판에서 단테에게 벌금형과 함께 재산을 몰수하고, 체포될 경우 화형에 처한다고 선고했습니다.(7) 이때부터 단테는 20여년에 걸친 긴 망명생활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망명 기간 중, 마흔 두 살의 나이에 단테는 《신곡》 집필을 시작합니다. 그 외에도 철학 윤리 문제를 다룬 《향연(Convivio)》, 단테가 18세부터 7-8년에 걸쳐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다룬 《새로운 삶(La Vita nuova)》, 이탈리아 토착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한 《토착어에 관하여(De vulgari eloquentia)》 등을 저술했습니다. 작품 활동 외에도 단테는 망명 시절, 백당의 남은 지지자들과 함께 흑당에 저항하여 피렌체를 무력으로 탈환하려고 했지만 실패합니다.(8)
1315년 피렌체 당국은 정치적 망명자들과 추방된 사람들에게 사면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굴욕적인 조건을 요구했고, 단테는 이를 거부합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단테는 1318년부터는 라벤나로 돌아가 영주였던 구이도 노벨로 다 폴렌타(Guido Novello da Polenta)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으나, 그의 사신으로 베네치아를 다녀오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1321년, 56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단테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
단테가 살았던 13세기 후반의 이탈리아는 중세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르네상스의 서막이 맞물려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플로렌스를 비롯한 많은 도시들이 귀족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화국 체제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화국들은 내부적으로는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 외부적으로는 다른 도시들과의 영토 확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특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이탈리아의 패권을 두고 끊임없이 대립했고, 교황과 황제의 갈등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이탈리아 도시들은 지리적 이점을 살려 활발한 상업 활동을 펼쳤고, 부유한 상인 계급이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도시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상인 계급의 부상과 함께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귀족들은 기존의 특권을 유지하려 했고, 평민들은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며 사회 변혁을 추구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 전역을 강타한 흑사병이 사회적 혼란과 인구 감소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단테 시대는 르네상스의 초기 단계였습니다.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조류가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는 라틴어가 학문과 종교의 언어로 사용되었지만, 이탈리아어를 사용한 문학 작품들이 등장하며 민중의 언어로서 이탈리아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신곡》의 원제와 저술 배경
《신곡》으로 번역된 자기 작품을 단테는 ‘코메디아’(Commedia)라고 불렀다고 합니다.(9) 코메디아는 ‘희극’을 의미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분석하는 ‘비극’과 대비됩니다. ‘비극’은 최고의 문학 장르로 ‘고귀한 주제’를 ‘고상한 문체’로, 즉 라틴어로 다루는 작품을 말합니다. 중세 유럽의 문인들은 대개 라틴어를 보편적 언어로 사용했는데, 단테는 피렌체 민중의 언어인 ‘속어’, 즉 ‘여자들과 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언어’로 작품을 썼고, 또 저승 여행이라는 세속적인 주제를 다루고, 행복한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코메디아’로 불렀던 것이지요.(10)
그런데 후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작가인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가 ‘신성하다’는 의미의 형용사 ‘divina’을 앞에 붙여 ‘신성한 희극’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보카치오는 최초의 단테 학자로 꼽히는 인물인데요, 단테가 세상을 떠난 후 반세기가 지난 1373년 피렌체 당국의 허락을 받아 단테와 《신곡》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보카치오의 지적에 따라 1555년 베네치아에서 인쇄된 판본에서 ‘La divina commedia’라는 제목이 처음 사용된 이후 일반적으로 ‘신곡’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11)
《신곡》에 나타난 사후 세계
단테는 사후 세계를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눕니다. 지옥은 죄를 지은 자들의 영혼이 고통 받는 곳이며, 연옥은 죄를 회개하고 정화되는 곳, 천국은 신과 합일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삼원설은 중세 기독교의 우주관을 반영합니다.
단테의 사후 세계관에서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입니다:
첫째, 단테가 이해한 지옥, 연옥, 천국은 무엇인가? 단테는 누가, 어떤 죄 때문에 지옥과 연옥에 있으며, 천국은 어떤 사람들이 간다고 이해했는가?
둘째,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 사후 세계를 삼등분하는 그리스도교 교리는 언제 생겼는가?
셋째, 단테와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지옥과 연옥과 천국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믿음이자 세계관이었겠지만, 사후 세계에 대한 그런 생각은 과연 지금도 타당한 것일까? 다시 말해 현대인들도 지옥와 연옥, 천국으로 삼등분 된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을까?
《신곡》의 구성형식을 보면 매우 치밀하게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난히 3이라는 숫자를 좋아했기 때문인지 《신곡》은 세 개의 노래 편, 즉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 구분됩니다. 또 각 노래 편은 모두 33편의 ‘노래’(곡)로 구성되었고, ‘지옥’편 앞에 서곡을 붙여 모두 100곡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12)
단테가 그리는 저승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고 기하학적인 구조로 묘사됩니다. 단테가 묘사하는 지옥, 연옥, 천국은 중세의 천문학과 지리적 지식과 믿음, 지구의 형상과 천체의 구조에 대한 당시의 지배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13) 《신곡》에 의하면 지옥은 지하에 있고, 연옥은 지구 남반구 대양의 한가운데에 높이 솟아 있고, 천국은 하늘에 있습니다.(14)
누가 지옥에 있을까?
오늘은 먼저 단테가 신곡에서 묘사하는 ‘지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옥은 예루살렘과 지구의 중심을 연결하는 직선을 축으로 하여 깔때기 모양으로 펼쳐진 형상입니다. 반경이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원들이 차례로 겹쳐 있어 아래로 내려갈수록 원은 좁아집니다. 그 원들은 죄의 유형에 따라 9개로 나뉘어 있고, 일부는 다시 여러 구역으로 구별됩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원은 좁아지지만 더 무거운 죄를 지은 영혼들이 있기 때문에 형벌과 고통은 더욱 심해집니다.(15)
자, 그렇다면 어느 지옥에, 누가, 무슨 죄 때문에, 어떤 형벌을 받을까요?
로마 시대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기원전 19)의 영혼의 안내를 받아 지옥에 간 단테는 제일 먼저 지옥의 입구에서 “선이나 악에도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나태한 자들이 왕벌과 파리, 벌레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16) 단테는 자기 자신 외의 타자나 세계에 관심하지 않는 사람, “치욕도 명예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 하느님께 거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충실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산 사악한 천사들’이 지옥 입구에 있는 것을 본 것이지요. 선을 행하지도, 그렇다고 악을 행하지도 않는 사람들, 요한 계시록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사람”(3,15),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아, 입에서 뱉어버리는 사람”(3,16)들이라고도 표현한 사람들이지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태도 때문에 쳐다보거나 생각만 해도 구역질나는 사람들이 지옥 문턱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 Sandro Botticelli, 「La voragine infernale」 (Disegni per la Divina Commedia) ⓒWikipedia |
입구를 지나면서 지옥이 단계적으로 전개됩니다. 제1원 림보(17)에는 “죄를 짓지 않았고, 덕성은 있지만 그리스도를 몰랐거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순진한 어린아이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이들은 육체적 형벌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천국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위대한 옛 시인들과 철학자들을 단테는 지옥의 제1원에 포함시킵니다.
가톨릭은 세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하지만, 세례를 받지 못한 영유아의 경우는 신의 자비에 맡겨지며,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지옥에 간다고 단정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 내에서는 견해가 다양한데요, 일부 개신교는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다른 개신교는 세례의 유무보다 믿음의 진실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구원의 기준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주장하는 개신교도 있지만, 이른바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테는 중세의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지만, 단테가 지옥에서 심판받을 죄라고 규정한 죄들은 – 설령 그 때문에 지옥에 갈지 안 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오늘도 비난받아 마땅한 죄임이 분명합니다.
지옥의 제2원에서는 “음란함과 애욕의 죄인들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벌을 받고”, 제3원에서는 “탐식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제4원에서는 “낭비 또는 그 반대로 인색함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제5원에서는 “불화와 분노에 사로잡힌 자, 이단자들이”, 제6원에는 “영혼의 불멸을 부정했던 에피쿠로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그리고 “기만”의 죄를 지은 자들이, 제7원의 첫째 둘레에는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죄인들”이, 둘째 둘레에는 “자신의 육체와 재산에 폭력을 가한 자들, 자살한 영혼들, 재산을 함부로 대한 자들의 영혼”이, 셋째 둘레에는 “신성에 폭력을 가하고 모독한 영혼들, 즉 신성과 동일시되는 자연의 법칙이나 순리에 거슬러 행동한 자들, 남색의 죄인들, 고리대금업자들”이 고통 받습니다.
지옥의 제8원은 열 개의 “악의 구렁”으로 구분되는데요, 첫째 구렁에는 “뚜쟁이와 유혹자들이 악마들에게 채찍으로 맞고 있으며”, 둘째 구렁에는 “아첨꾼들이 더러운 똥물 속에 잠겨 있습니다”. 셋째 구렁에는 돈을 받고 성직이나 신성한 물건을 거래한 죄인들이 구렁의 바위 바닥에 뚫린 구멍 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으면서 발바닥에 불이 붙어 타는 형벌을 받습니다. 넷째 구렁에는 “점쟁이와 예언자들이 벌을 받고 있는데, 그들은 앞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머리가 등 뒤쪽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소위 미래를 점친다는 거짓 점쟁이와 예언자들에 대한 풍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섯째 구렁에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탐관오리들이 펄펄 끓어오르는 역청 속에 잠겨 벌을 받습니다”.
여섯째 구렁에는 “위선자들이 겉은 황금빛으로 화려하지만 안은 무거운 납으로 된 옷을 입고 다니는 벌을 받습니다.” 일곱째 구렁에는 엄청나게 많은 뱀들이 도둑의 영혼들에게 형벌을 가하고 있습니다. 여덟째 구렁에는 “사기와 기만을 교사한 죄인들이 타오르는 불꽃 속에 휩싸여 있습니다.” 아홉째 구렁에서 단테는 “종교나 정치에서 불화의 씨앗을 뿌린 자들의 영혼이 신체의 여러 곳이 갈라지는 형벌을 받는 것”을 봅니다. 마지막 열 번째 구렁에서 단테는 “온갖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 화폐를 위조한 자들이 역겹고 악취 나는 질병에 시달리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침내 단테는 지옥의 마지막 원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에는 온갖 다양한 배신자들이 코키토스 호수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옥의 가장 밑바닥 주데카에서 단테는 은혜를 배신한 영혼들이 처참한 양상으로 벌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지옥은 있는가?
지옥을 사람이 지은 죄의 경중에 따라 지하세계의 심층부를 향하여 단계적으로 분류하고, 지은 죄와 그에 대한 형벌, 그리고 역사 속의, 혹은 동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적시(摘示)하는 단테의 서술은 단테가 살았던 시대의 세계관과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도 시간과 더불어 변했고, 사후세계의 존재유무에 대해서는 임사체험한 사람들의 증언 외에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확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후세계는 믿는 사람에게는 있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일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발표된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미국인 가운데 72%가 사람이 죽으면 가는 문자 그대로의 천국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58%가 문자 그대로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앞선 시대에 비하면 현저히 낮아진 수치이지만, 그래도 놀라운 수준이지요.(18)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후 세계가 천국과 지옥, 혹은 그 사이에 연옥이라는 공간으로 삼등분되어 있고, 생전의 행위에 근거한 심판과 정화와 구원을 받는다고 믿으시나요?
어떤 사람은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디로 보내질지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소관이므로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런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사후 세계의 존재 유무가 지금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사후 세계는 없다.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죽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외치는 종교인들의 주장 때문에, 인간이 더 착해지고, 역사가 더 좋은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을 믿는 것이 오직 천국에 갈 희망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 자체가 전적으로 은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죽음 이후의 삶도 전적으로 은혜일 것이기에 천국에 대한 희망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지금의 삶이나 사후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도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종교마다 사후 세계에 관해 놀랍도록 다채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한 종교 안에서도 시대마다 다양한 사후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지옥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생겨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수정되고 변모했는지, 어떻게 믿음으로 자리 잡고, 의심을 사고, 믿음을 잃었는지에 대하여 더 공부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몇 권의 참고서를 소개합니다.
- 바트 어만, 《두렵고 황홀한 역사 – 죽음의 심판,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허형은 역, 갈라파고스, 2020.
- 조르주 미누아, 《간략한 지옥의 역사》, 고준석 역, 가톨릭출판사, 2017.
- 앨리스 터너, 《지옥의 역사 1-2》, 이찬수 역, 동연출판사, 1998.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단테의 ‘연옥’과 ‘천국’을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미주 |
(1)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지옥》, 김운찬 역 (서울: 열린책들, 2007), 24. (2)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김운찬 역 (서울: 열린책들, 2007), 299. (3)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김운찬 역 (서울: 열린책들, 2007), 299. (4)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298. (5)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299. (6)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0. (7)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1. (8)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1. (9) 《신곡 - 지옥》, 16곡 128행, 21곡 2행 참조. (10)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3. (11)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3. (12)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4. (13)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6. (14)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7. (15)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08. (16)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지옥》, 24. (17) 림보(limbo)는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림부스’(limbus)에서 나온 말로 원래 예수의 부활 이전에 죽은 훌륭한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기다리는 장소이다. 지옥의 가장자리에 있는 그곳의 영혼들은 육체적 형벌의 고통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국에 오르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고대 교회 전통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직후에 지옥에 내려와 림보의 영혼들 중에서 덕성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리고 올라갔다고 한다. 알리기에리 단테, 《신곡 – 천국》, 33. (18) 바트 어만, 《두렵고 황홀한 역사 – 죽음의 심판,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허형은 역 (서울: 갈라파고스, 2020), 12. |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