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를 짓는 농부이야기 15
▲ 마을상수도 보호구역 내 취수구가 있는 계곡 ⓒ유대은 |
자연부락에는 대부분 마을상수도가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우물이나 샘, 천, 계곡물을 길러 사용했지만 배관자재와 설비기술이 생기면서 집안에서 물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우리 마을처럼 커다란 공동 수조에 물을 모은 뒤 각 집으로 보내기도 하고 모터를 이용해 우물에서 각 집으로 보내기도 한다. 지역의 광역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마을의 물로 생활용수, 하우스나 노지의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했다. 우리마을도 관을 매설하여 사용한지 40년이 넘었고 수조도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스텐리스 수조로 바뀌었다고 한다.
옆집 아짐께 마을 수도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하셨는지 여쭤보았다. 먹는 물은 마을의 샘에서 길러먹었고 생활용수는 마을 뒷산에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데 그곳에 관을 꽂아서 근처 두세집이 같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마을회관 자리 앞으로 개울이 흘러 마을 빨랫터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을 사용할 수 있었던 세대이기에 물을 대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종종 오래된 마을수도관의 연결구에 물이 새거나 오래 비워진 집의 노출된 수도꼭지가 터지기도 한다. 작년부터 올봄까지 마을 운력으로 조금씩 새는 관을 찾아 메꾸는 작업도 하였고 마을 취수구에서 오는 2킬로미터 구간의 오래된 관을 교체하는 대공사도 진행되었다. 수량도 많아지고 더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취수구가 있는 계곡 뒷산의 임도공사였다. 지역의 산림조합에서 진행한 사업이었다. 우리마을을 포함해 두 마을의 상수도를 취수하는 곳으로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철조망이 쳐져 있어 마을관리자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그런 곳의 상층부 산에 임도공사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경사가 심한 암반구역을 억지로 임도를 내면서 이번 여름 장마기간의 쏟아진 비로 토사가 대거 휩쓸렸다. 결국 마을수도관의 인입구가 계속 막히게 되었다. 뚫고 나면 하루 이틀 지나 또 막히는 게 계속 반복되었다. 작년부터 마을물을 담당하고 있었던 터라 몇날을 계속해서 계곡까지 오르내리며 뚫는 작업을 하였다. 마을에서는 너무 고생한다고 쌀도 십시일반 모아 한푸대 선물로 주셨다. 감사히 받으면서 또 한번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 물이 새는 마을상수도관을 수리하고 있다. ⓒ유대은 |
마을이 형성되는 곳은 여러 지리적인 위치의 장점이 있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이 물을 얻는 것(得水)이다. 인간이 생활하는 데 절대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농사가 주를 이루는 농촌마을에서의 물은 필수다. 농사라는 게 ‘물’을 크게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자연’이 ‘물’을 내주지 않으면 농사에 사용하는 그 많은 물을 어떻게 감당해야겠는가.
그저 자연이 값없이 주는 것을 농부들은 감사함으로 사용한다. ‘물’이 없다는 건 ‘농사’도 지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지 않는가. 가뭄에 논과 밭에 물을 들이기 위해 노력해 본 농부들에겐 ‘물’의 소중함과 그 ‘물’을 주는 자연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은 마을의 물을 관리해주는 것에 대해 매우 고마워하시는 것 같다.
나도 농촌마을에서 살기 전까지는 ‘물’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마을에 들어와 살고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물’의 소중함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집안에서 언제든지 쉽게 사용할 수 있고, 돈만 내면 광역상수도에 연결하여 펑펑 물을 사용할 수 있지 않는가. 물은 흔하고 항상 있는 것이기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마시고 사용하는 물이 어떻게 오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은 마트에서 물을 사먹는 것이 당연시 된 시대가 되었다. 물이 부족하다고 느낀적은 한번도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 모든 물질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는 태도가 그만큼 필요하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보이지 않는 대수층의 물을 사용할 수 있는 허가받은 자에게 결국 물이란 보이지 않는 대수층에서 흐르는 물질이고 자본의 원료일 뿐이다. 하지만 물을 얻기 위해 취수구 주변을 통제하고 숲과 산을 보호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 어떨까. 나는 마을의 ‘물’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오히려 ‘물’에 대한 자세를 갖게 되었다.
▲ 마을 윗쪽에 있는 물탱크 ⓒ유대은 |
생태학에서도 ‘물’에 대한 접근이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물이 얼마나 깨끗하냐에 따른 ‘수질’ 개념에 관심이었다면 지금은 ‘물’이 지나면서 동식물과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생명수’ 개념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계곡에서 내려주는 물은 마을에 있어서 소중한 농작물을 키워주는 ‘생명수’이고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물이다.
누구나 오늘도 돈을 지불하고 플라스틱 병에 든 물 한통을 사먹지만, 그 물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 당장 라벨지를 펼쳐보자. 물한통이 오기까지의 길을 생각해보자. 그 물 한통도 자연이 내어주지 않으면 없는 소중한 것이다.
다행히 임도공사에 대해 마을에서는 면에 공사중단을 요청하였고 다행히 공사는 현재 중단된 상태이다. 계속 막혔던 인입관도 중장비를 동원해 새로 매설하였고 토사에 견디게 설계하였다. 물이 막히면 또다시 계곡으로 올라가겠지만 ‘물’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많이 배운 나날이었다.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