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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외교를 하다

기사승인 2024.09.07  02: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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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립학교 생존기 13

▲ 우리네 삶에서 크든 작든 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어디에 있을까. ⓒGetty Images

신규 교사를 길들이는 방식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싫었는지, 교장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거의 쫓아다니면서 내게 ‘갈굼’을 시전했다. 내가 갓 대학을 졸업한 신규가 아니라 다른 학교를 거쳐서 온 경력직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고, 나중에 알게된 ‘자신이 찍어 놓은 내정자를 실력으로 탈락시키고 들어온’ 괘씸죄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수업시간에 불쑥 들어와서 아이들 수학 익힘책이나 교과서의 빈칸을 제대로 쓰게 했는지 보는 일도 있었고, 쉬는 시간에도 올라와서 교실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니 교실 앞의 복도가 이렇게 더러운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냐하면서 호통을 쳤다. 이전의 학교들에서도 어이 없고 황당한 일들을 경험했지만 수업시간까지 불쑥 들어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내게 굉장히 모욕감을 주었다. 그저 이곳은 ‘사립’이기 때문에, 입술을 꾹 깨물며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너무 상심이 되고 화가 나서 퇴근 후 동료와 술을 진탕 마셨다.

“아, 진짜 돌아버리겠다. 당장 그만두든가 해야지 하면서도 가족을 생각하고 꾹 참는건데. 해도해도 너무한다. 진짜.”
“형, 명절도 다가오니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해봐”
“맨날 자기는 청렴하다.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 이 소리하는데 되겠냐? 그냥 그 인간은 내가 싫은거지 뭐.”
“혹시 모르잖여, 그래도 뭐 갖다주는데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나아지지 않겠어?”

며칠 뒤 인삼세트를 적당한 가격에 구입해서 한적한 시간에 교장실을 찾아갔다. 교장은 처음엔 이런 것 받지 않는다고 사양했지만 나 또한 교장에게 이것을 좀 ‘먹여놓아야만’ 할 간절함이 있었다.

어쨌든 그는 못이기는 척 하고 내 ‘조공’을 받았고, 그 약빨은 대략 3주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 조공외교로 얻은 평화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잠시 숨을 돌리고 아이들을 챙길 여유가 생겼다. 또한 앞으로 내 미래를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내 치즈는 어디로 옮겨졌는지를 깊게 생각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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