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30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삶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오늘은 이어서 그의 신학사상을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대이교도대전(Summa Contra Gentiles)》(1)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들
토마스는 엄청난 분량의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많은 책들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교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토마스의 저서들은 크게 4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13권의 주석서, 9권의 성서주석 등이 그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대이교도대전(Summa Contra Gentiles)》,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논쟁서입니다. 토마스가 실제로 벌였던 학문적 논쟁을 후에 체계화하고 요약한 것입니다. 네 번째 부류는 철학적, 신학적 소논문 등입니다. 예를 들면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 등에 대한 해석서들이지요.
《대이교도대전》은 어떤 책인가
오늘은 그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대이교도대전》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사상을 알아보겠습니다.
《대이교도대전》은 1258년(33세)에서 1265년(40세) 사이에, 여러 장소에서 거의 7년에 걸쳐 저술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이교도대전》은 《신학대전》과 《그리스인들의 오류 논박(Contra errores Graecorum)》에 이어 가장 많이 전승된 작품입니다. 라틴으로는 《숨마 콘트라 젠틸레스(Summa contra gentiles)》인데요, ‘숨마’는 본래 ‘주요내용’ 또는 ‘요약’이라는 뜻으로, 스콜라학의 전성기에 대작의 제목으로 많이 사용되던 낱말입니다. ‘숨마’는 중세 대학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학술 분야에서 전개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서술 양식을 일컫는 단어라고 하겠습니다.(2)
책의 제목을 보면 사람들은 토마스가 《대이교도대전》에서 이교도들을 비판적으로 논박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으로 상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급한 판단입니다. 토마스는 ‘이교도’들이 누구인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또 ‘이교도’라는 단어도 매우 드물게 등장합니다.
토마스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비신앙인이나 파리의 이단자들을 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토마스는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명백히 고수하는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을 위해, 예컨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증명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신학자(안셀무스)와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유지될 뿐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습니다.(3)
《대이교도대전》의 라틴 원전은 4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권은 다른 권들에 비해 부피가 곱절이라 두 권으로 다시 나누어 모두 5권으로 완역될 예정입니다.
《대이교도대전》은 무엇을 담고 있나
《대이교도대전》이 4권으로 집필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권에서 3권까지 첫째 부분은 이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신적 진리를 논하고, 둘째 부분인 4권은 계시를 통해서만 인식되는 신과 신적 실재들에 대해 논합니다.(4)
토마스는 철학과 신학, 이성과 신앙이라는 대립하는 두 개의 세계관을 서로 화해시키고, 그것도 두 세계관의 어느 쪽도 정당성을 잃지 않도록 화해시키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습니다. 토마스는 신앙과 이성을 각자의 범위 안에서 검토하고, 이들 각자가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신앙은 초자연적인 참과 관계하고, 그에 반해 자연적인 이성은 무엇보다도 세계의 현실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대표자들의 주장하는 것처럼 신을 통한 깨달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세계인식의 출발점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체험이며, 그 진실성의 근거는 이성적 통찰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초감각적인 것을 파악할 때도 자연적 이성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토마스는 이성과 신앙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기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한편으로는 신앙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적 이성의 창조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이성은 서로 대립할 리 없고, 신앙은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5)
토마스에게 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것처럼 가장 높이 갈망되는 존재로서 세계 안의 모든 갈망을 계속 움직이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창조주로서 모든 사건의 맨 앞에 서 있습니다. 토마스의 이런 생각은 자칫 범신론으로 오해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창조라는 생각으로 돌아갑니다. 창조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무한한 경계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창조사상은 토마스가 기독교 전통에서 받아들였고 신앙의 방법을 통해서만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었던 하나의 전제였습니다.
세계가 창조된 것이라는 전제가 받아들여지면 이것으로부터 신의 여기있음은 자연적 이성의 방식으로 통찰될 수 있다고 토마스는 주장합니다. 토마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원인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원인은 다시 더 높은 원인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원인의 사슬을 무한히 거슬러올라갈 수는 없기 때문에 최초의 원인이 있음이 분명한데, 이 최초의 원인을 우리가 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6)
신을 제일 존재자로 부르는 토마스는 신의 속성을 검토하기 위해 부정의 방법(제거의 길)을 제시합니다.(7) 즉 신의 본성은 아닌 것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진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신은 움직여지지 않기 때문에 영원합니다.(8) 신은 수동의 가능태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불변한다는 것입니다.(9) 신은 제1질료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적 범신론에 대해 제1질료는 순수 수동태인데 신은 순수 능동태라며 반박합니다. 신 안에 합성의 요소가 존재하지 않고, 물체들에는 부분들이 있게 마련이므로 신은 물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10) 그리고 신 안에서 본질과 존재는 동일하기 때문에,(11) 신 안에서 우연(우유)은 없다는 것입니다.(12)
《대이교도대전》의 제2권(13)은 신적 권능의 완전성(창조론)을 고찰합니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인간 영혼의 문제입니다. 토마스에 의하면, 천사들은 육체가 없지만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결합되어 있습니다.(14)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처럼 영혼은 육체의 형상입니다. 동물의 영혼은 인간의 영혼과 달리 불멸하지 않습니다.(15) 지성은 인간 각각의 영혼의 일부입니다. 영혼은 정액과 함께 전달되지 않고, 각 사람과 함께 새롭게 창조됩니다.(16)
《대이교도대전》 제3권(17)의 논의는 주로 윤리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하느님을 명상함으로써 궁극의 행복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다수가 소유하는 신에 대한 지식은 궁극의 행복을 위해 충분하지 않습니다. 증명을 통해 얻은 신에 대한 지식도 충분하지 않으며, 심지어 신앙으로 얻은 지식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신을 본질 그대로 보지 못해 궁극의 행복에 이를 수 없지만, 내세에서 신과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대면은 우리의 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라 신의 빛에 의해 이루어질 것입니다.(18)
혼인관계도 깨져서는 안 된다고 토마스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이유입니다. 토마스는 자식을 교육하려면 어머니보다 더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벌을 줄 때 힘이 더 센 아버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지요. 성교는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모두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일부일처제도 엄격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성윤리에 관한 토마스의 논증들은 모두 신의 계명과 금령이 아니라 순수하게 이성적인 고찰에 호소합니다.(19)
토마스는 죄, 예정설, 신의 선택 등의 문제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토마스의 견해는 대략 아우구스티누스와 유사합니다. 예정설에 관해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이 왜 어떤 사람은 신의 선택을 받아 천국에 가고, 다른 사람은 신의 버림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지 이유를 댈 수 없다고 주장한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느 누구라도 세례를 받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20)
《대이교도대전》 4권에서는 삼위일체설, 성육신, 교황의 지상권, 성사, 육신의 부활에 관해 논합니다. 토마스에 따르면 신을 아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성으로 통하는 길, 계시로 통하는 길, 그리고 오직 계시로 미리 알려진 중요한 것을 직관함으로써 통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는 셋째 길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신비주의 경향을 띠는 저술가는 셋째 길에 대해 말을 더 많이 했을 테지만, 토마스는 신비주의보다 이론을 따지기 좋아하는 철학자입니다.(21)
성사(sacraments)는 악한 성직자들이 베풀더라도 유효합니다. 대다수 사제들이 도덕적인 죄를 지으며 살았기 때문에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부도덕한 사제들이 성사를 주재해도 괜찮은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이 문제가 이단과 교회 분열로 이어지면서 청교도적 신자들이 나무랄 데 없는 덕에 근거한 별개의 사제제도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사제의 죄가 사제기능의 수행 자격을 박탈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야 했습니다.(22)
이상이 토마스의 《대이교도대전》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 것입니다. 스콜라(학교) 신학자답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체계적 유형에 따라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논증한 ‘대이교도대전’은 그의 또 다른 대작, ‘신학대전’과 함께 토마스를 그리스도교 신학사에서 전무후무한 인물로 만들었음이 분명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신학대전》의 요약판인 《신학요강》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미주 |
(1)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신창석 역주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2015); ⟪대이교도대전 II⟫, 박승찬 역 (2015); ⟪대이교도대전 III-1⟫, 김율 역 (2019)이 번역되어 있다. (2)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23(해제) 참조. (3)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35, 149, 159. (4)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47. (5) 빌헬름 바이셰델, ⟪철학의 에스프레소⟫, 안인희 역 (서울: 아이콘C, 2004), 157. (6)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167; 빌헬름 바이셰델, ⟪철학의 에스프레소⟫, 162-163. (7)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195. (8)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199 이하. (9)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205 이하. (10)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213 이하;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역 (서울: 을유문화사, 2009), 595. (11)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253 이하. (12)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 263 이하. (13)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I⟫. (14)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I⟫, 801 이하. (15)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I⟫, 785 이하. (16)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I⟫, 865 이하;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599. (17)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III-1⟫. (18)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599. (19)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601. (20)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601. (21)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602. (22)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602. |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