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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빛이노라

기사승인 2024.12.26  02: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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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30)

▲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의 빛을 깨닫는 것이 곧 구원이다. ⓒGetty Images
제자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어느 곳에 계신지 그곳을 저희에게 보여 주소서. 이는 저희가 그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르되, “두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빛은 빛의 사람 속에 존재하고 그 빛이 온 세상을 비추노라. 그 빛이 비추지 않으면 어둠이 있으리라.”(도마복음 24)

예수(참나)의 거처는 한정된 곳이 아니라, 온 세상을 밝히는 ‘충만한 빛’(無量光佛, 마 6:22)이다. 둘이 아닌 진리(참나)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분별의 마음(거짓 나)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죽은 자’(마 8:22)이다. ‘예수가 계신 곳’(빛)을 덮고 있는 이원성의 어둠(ego)을 소멸하고(無我), 하나의 영안(靈眼), 즉 진리의 빛(참나)을 깨닫는 것이  천국의 구원이다(막 8:35). 그러므로 예수는 “눈은 몸의 등불이니 네 눈(靈眼)이 하나가 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마 6:22)라고 하셨다.

무한한 빛(그리스도)을 인식하기 위한 필요 조건은 내면의 눈(靈眼)이 열리는 단순성(비 이원성)이다. 내면의 그리스도(참나)를 깨닫게 될 때 영(靈)의 눈으로 충만한 빛을 볼 수가 있다(갈 2:20). 무욕(無慾)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육체가 곧 ‘나’라고 하는 ego를 소멸하면(無我), 내면에 있는 그리스도(참나)를 깨닫게 된다(시 46:10). 이러한 명상의 수행은 전통적인 종교가 쇠퇴하고 있는 이 시대에 깨달음으로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평화를 얻는 방법 중 하나이다.

‘빛의 사람’(요 1:9)은 인간 그 자체를 생명의 빛으로 규정하는 표현이다. 맹자는 인간의 본래적 성품(참나)이 선(善)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 예수도 인간의 본래 성품(참나)은 빛이라고 하였으며, 원죄의 교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허상인 육체와 마음은 본래 없으므로 원죄라는 뿌리는 없는 것이다(五蘊皆空). 죄는 ‘나는 몸이다’라는 생각(個我)로 허상(현상)을 분별하여 보는 것이며(요 9:41), 거듭남(깨달음)의 빛으로 어둠(죄)을 벗어나 둘을 하나로 만들 때 천국을 본다(도마복음 22).

우리는 본질적으로 원죄라는 것이 없는 고귀한 생명(그리스도)이지만(골 3:4). 생명(참나)을 깨닫지 못한 단계에서는 죄를 범하면 자연의 힘인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이 따른다. 우리는 타고난 죄인이 아니라 예수(빛)처럼 본래 구원을 받은 ‘빛의 사람’이다(요 15:27). 예수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예수 그리고 인간이 모두 하나(One)로서 평등 무차별한 ‘광명의 한 몸’이라는 것이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요 14:20). 현대물리학이 ‘우주는 오직 광자(光子)의 파동뿐이다’고 하는 것처럼 온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생명(참나)인 신성(불성)의 광명뿐이다(光明遍照十方世界, 아미타경).

우리는 무지의 굴레인 어둠(ego)을 벗어나 번개가 번쩍이는 것과 같은 깨달음(회개)으로(눅 17:24) 지금 여기에 편재하는 그리스도의 빛(참나)을 볼 수 있다(골 3:11). 또한 모든 상대적인 양변의 차별 세계(어둠)를 버리면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절대적인 천국의 무차별 한 세계(빛)를 회복하게 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막 9:1)고 하셨다. 이미 내면의 신성(참나)의 광명, 즉 천국이 임한 것을 자각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마음을 닦아 불성(참나)의 광명을 되찾으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물에 편재하는 신성(참나)의 광명을 자각한다는 것은 사물을 전체성인 ‘하나님의 시각 ’으로 본다는 것이다(마 5:45). 둘이 아닌 하나(One)를 보는 자는 취하고 버리며, 나와 너를 분별하는 허상의 어둠을 소멸 하고(신심명), 실상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춘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우주에 충만해 있는 진리(참나)의 빛을 깨닫지 못하고, 이분법적으로 분별하는 자(ego)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눅 23: 34).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화면을 볼 수 있지만 불을 다 켜면, 모든 화면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진리(참나)의 빛 속에서는 분별하는 온 세상의 어둠(ego)이 사라진다.

따라서 모든 것은 하나이며(All is One, 요 17:21),, 오직 그리스도(참나)뿐이다(無所不在, 골 3:11). 오직 에너지의 파동인 물질과 육체는 텅 비어있는 공(空)이지만(諸法空), 공(空)의 실상은 온 우주에 충만한 그리스도(참나)의 빛이다. 우리의 본래 성품(참나)은 죄가 없는 청정한  하나의 빛이며(自性淸淨, 自性解脫), 이원성의 어둠(ego)인 죽음과 불행(고통)이 사라진 자리이다. 내면에 있는 무한한 참나(神性, 佛性)의 빛을 깨달은 자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을 회복하게 된다(天上天下唯我獨尊). 그는 외적인 기쁨과 아름다움보다 자신 안의 기쁨과 아름다움이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며, 자연의 전체성을 경험하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평화를 누린다. 우리는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 본성, 즉 성령(참나)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추어야 한다(回光返照, 고전 3:16).

구자만 박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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