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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의료대란’이 숨기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기사승인 2024.03.10  02: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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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통령의 신념정치가 한국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드러나고 있다

▲ 김경재 명예교수

의대 신입생 정원 조정 문제가 왜 국론분열 문제로 증폭되었나?

2024년 2월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에서 의과대학 지망생 수요공급 문제가 작금 한국 사회를 분열, 갈등, 붕괴 위험에로까지 증폭되고 있다. 너무나 확대해석하는 칼럼자의 관점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1876년 개항 이후 근 150년 가까이 축적된 우리 사회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의 본질은 왕과 귀족들 중심의 전제군주형 정치구조가 국민과 시민 중심의 공화제 정치구조로 바뀌어 가는 인류사회역사의 거대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맘속에 아직 청산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이 형식적인 민주주의 탈을 쓰고 왕조시대 정치문화를 탈피하지 못한대서 유래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겨레신문의 책지성팀 선임기자 고명섭 기자는 출판사가 간행하는 신간 서적의 소개를 해주는 매우 유익한 기사를 쓰는 선임기자다. 그런데 2024년 2월 28일 조간신문엔 ‘고명섭의 카이로스’라는 제목 아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1864-1920)의 정치철학을 압축소개하는 유익한 칼럼을 썼다. 한국 사회의 ‘의료대란’을 언급하거나 한국 정치현실의 문제점을 직접 언급한 글은 아니었지만, 오늘 나는 그의 칼럼 글에 공감하고 빚지면서 신학자로서 오늘날 ‘의료대란’의 본질 문제와 극복 방향을 솔직하게 피력하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고명섭 기자의 막스 베버 청치사회학 핵심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 혹은 정치가는 크게 보면 두 종류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한 종류는 허영심과 자아도취에 몰입된 ‘권력정치 형태’이고, 다른 하나의 그룹은 신념과 책임으로 무장한 ‘윤리정치 형태’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치란 힘의 현실만 추구하는 세계요 권력 지향적인 악마 같은 군상들이 활거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막스 베버가 ‘권력정치’에 대립되는 ‘윤리정치’를 언급하는 것이 얼른 이해가 아니갈 수 있다. 그러나, 정치 혹은 정치가는 자신의 입신출세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 심지어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영역이므로, 정말 능력 있고 생각이 깊고 높으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염원하는 뜻 높은 맘 그릇이 큰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는 영역이 정치영역이다.

그런데 막스 베버에 의하면 ‘윤리정치 형태’에는 분리될 수는 없지만 정치 목적과 수단방법에 결정적 영향을 끼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정치가의 이념이나 가치관을 절대로 중요시하는 ‘신념윤리’ 정치와, 정치의 행위와 결과에 정치가 자신이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 정치가 있다고 갈파한다.

‘신념윤리’ 정치란 정치가의 신념, 가치관, 이념 지향성이 중심을 이룬다. 그 정치가의 신념이 꼭 개인이 권력욕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만인과 국민 모두를 위한다는 ‘순수한 신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한 자기 신념이 강할수록, 그런 ‘신념정치’는 독단과 독선으로 변질되기 십상이고, 자기 순수한 신념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기의 신념정치에 비판적 정당이나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심지어 적대시하며 반국가 집단이라고 도덕적 틀을 덮어씌운다. 그러나, ‘책임윤리’ 정치 혹은 정치가는 인간의 가치 지향성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충분히 인지하며, 자기의 정치행위 결과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정치를 말한다.

▲ 정부가 집단사직 후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지난 6일 서울 한 우체국에서 관계자가 수취인 부재로 되돌아온 면허정치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신념윤리’ 정치의 장점과 문제점

오늘날 한국 사회 정치 현실을 규정하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고, 특히 극단적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겐 큰 차이가 있다. 현재 여당인 ‘국민의 힘’ 정당의 주류급 정치인들의 행태와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막스 베버가 지적하는 ‘권력정치’에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다른 한편엔, 오늘날 여당과 특히 윤 대통령의 정치는 새로운 한국 현대사를 열어가는 담대하고도 획기적인 정치이며,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엄중한 한반도 정치군사 안보적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외교정책을 밀고 나가는 믿음직스런 정치집단이요 정치가라고 칭찬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양극단적 진영논리에 입각한 정반대되는 현실 정치에 대한 판단과 해석학적 이해 관점을 일단 배제하고, 두 입장으로 갈라진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평가서의 이름은 막스 베버가 언급한 ‘신념윤리’ 정치사상과 정치 행위 유형이라고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윤 대통령 입으로 자주자주 강조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이념’, ‘자유와 번영’, ‘가치 외교’이기 때문이다. ‘신념윤리’ 정치가와 정치행태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첫째, ‘신념윤리’ 정치는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를 강조하거나 절대적 신념으로서 견지하기 때문에, 소신 있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신념하는 가치를 위해 추진력이 강하다. 단점은 신념에 대한 절대적 자기확신 때문에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단일극성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신념윤리’ 정치는 도덕적 자만심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기에, 정치를 함에 있어서 타협, 절충, 양보, 대화를 ‘순수한 신념의 변질’이라고 생각한다. 야당 대표를 집권 후 아직도 대좌하기를 거부하는 윤 대통령의 자세와 그가 검찰총장 시절 맡은 책임을 수행했던 충실한 검사들에게 ‘보복해직’을 시키는 모습은 범죄자를 대하는 검사 직업의 자세이지 다양한 국민 의견을 조정하고 통합해야 하는 정치가로서 자세가 아니다.

윤 대통령의 ‘신념윤리’ 정치철학에서 강조되는 가치는 자타가 인정하듯이 압도적으로 ‘자유’ 가치를 강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삶의 공동체 생활에서 진정한 ‘공정과 상식’이 살아있는 공동체를 실현하려면 ‘자유’ 가치와 동일한 무게만큼 ‘평등’ 가치가 담보되어야 한다. 새는 두 날개로 날아가는 것이지 한쪽 날개로 날아갈 수 없다. 평등 가치가 경시되는 자유 가치 강조는 공허한 소리,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르주아지 사회에서 중산계층 이상 사람들의 독점 이념에 불과하다.

반대로 자유 가치가 경시되는 평등 가치만 강조는 경직된 전체주의와 사회주의 독재를 낳는다. 진정으로 자유가 치를 신념으로 가진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가 치는 구체적으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직업 선택 자유가 아니던가?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자유가 치를 그토록 강조하는 ‘신념윤리’ 정치가 윤 대통령의 통치 아래서 위에서 언급한 구체적 자유가 치들은 심하게 제약받거나 손상당하는 현실을 본다. 왜 그럴까?

둘째, ‘신념윤리’를 신봉하는 정치와 정치가의 장단점으로서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라는 점과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현실적 힘’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현실에 몰입하고 힘숭배를 지향하게 된다. 지난 30여년 동안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해서 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어렵게 지탱해왔던 남북의 ‘화해, 교류, 평화통일’ 노력은 거짓 평화요, 환상에 불과하고, 심지어 종북지향적 생각들이라고 매도한다. 오직 해양 세력의 두 실체인 미국과 일본과의 굳건한 동맹강화로서 ‘힘 우위에 입각한 대북정치’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그러한 윤 대통령의 ‘신념정치’에 아부하고 부화뇌동하는 정치모리배들은 ‘광주5.18 민주항쟁’을 북한 특수부대의 공작 선동에 광주시민이 놀아났다고 아직도 굳게 믿는다.

‘자유’ 가치를 세계적 지구촌 현실 속에서 실현하겠다는 맹주국가로서의 미국은 그들의 건국 조상들이 지녔던 숭고한 인류의 보편적 자유국가가 이미 아니다. 지극히 세속적이고 미국이라는 자국의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하고, 미국 국내에 거대한 갈등과 분열을 안고 있는 쇠퇴하고 있는 국가이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지구촌 현실은 미국, 중국, 유럽연합, 러시아. 인도, 아랍국가 등 다극 체제로 변했다. 자유 가치에만 몰입하는 윤 정권의 ‘신념윤리’ 정치가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을 염려하는 국민이 많은 현실엔 타당한 면이 있다.

셋째, ‘신념윤리’ 정치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정치행태에서 문제점은, 너무나 쉽게 ‘국민을 위해서, 국민만 바라보고’라는 명분을 아전인수격으로 남발하고 전유(專有)하는 태도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중반에 한국 신학계에서 일어난 민중신학자들이 발견한 점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특히 정치영역에서는 항상 백성, 국민 등 ‘집합적 추상명사’만 있어 왔고, 그 ‘구체적 실체’인 민중이나 씨알들은 무시되고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갈등 문제가 되어버린 ‘의대생 모집 정원 2,000명 숫자’는 타협 대상도 아니고 협의를 통해 합리적 조절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는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에 물론 박수갈채를 보내는 국민도 많다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일 년마다 2,000명씩 갑작스런 증가 모집 숫자는 합당하지 않고 무리라는 주장을 펴는 의료계의 저항과 증가 숫자는 합리적으로 조절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국민도 이 나라의 국민인 것이다.

1만명 이상의 전공의사들이 직장을 떠나고, 의과대학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 교수들의 저항을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요 국민생명을 볼모로 삼는 집단적 이기적 행위라고 매도하며, 의사면허 취소 등 극단적 강압 정치로서는 문제해결이 안 된다. 의대생 증가 인원 숫자 2,000명이라는 숫자 조정 건의가 대통령의 절대 권위를 손상시키는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처럼 되어버린 우리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증가는 필요하지만, 한 번에 2,000명 증가보다는 교육여건, 의료 체계, 다른 직종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면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말 없는 양심 있는 국민 다수의 소리에 대통령과 정부는 귀 기울여야 한다.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soombat19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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