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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외에는

기사승인 2024.03.03  03: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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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없다. ⓒGetty Images
내가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분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린도전서 2,2)

표면적으로 이 구절은 이해하는데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데, 무엇을 말하는지가 분명해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이라는 말은 양자가 서로 다른 이인가 하는 문제를 낳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후자를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으로 옮기는 것은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때문에 바울은 예수의 생애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접속사 카이는  ‘~와’ 내지 ‘그리고’를 뜻하지만 때로는 동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곧’ 이란 말로 옮겨집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고백성을 지니고 있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이 분은 그의 역사성을 담보하는 말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그의 생애를 모르면 이해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이는 문법적으로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작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는 조금 더 어려운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가 이 구절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를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으로 풀어서 옮기는 시도가 있지만, ‘함께’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다른 표현이 있어서 적절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런지요?

1-5절은 2절을 제외하면 1절과 4a절, 3절과 4b-5절이 짝을 이루는 평행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의 2절은 6절 이하를 준비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세상의 지배자들에게는 감춰진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이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만 알기로 했다면 의미가 통할까요?

눈이 보지 못하고 귀가 듣지 못하고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준비하셨는데(9절), 곧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이’ 그를 깨달아 알도록 하려는 것이 바울의 목표이기에 그가 ‘여러분 가운데서’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 곧 그의 지혜인 십자가 사건의 예수 그리스도만 알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약하고 두렵고 떨어야 했습니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할 수 없고 성령을 의지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은 갑자기 일어난 것도 아니고 십자가를 향한 그의 삶의 길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 세상을 세우시기 위해 그 길을 가도록 오신 그입니다. 하나님 앞의 세상은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시작되는 이 나라는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알 수도 없고 환영할 리도 없는 ‘여러분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오늘이기를. 우리 가운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만이 우뚝 서시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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