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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을 위한 교회 일치 모델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3.03.28  03: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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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일치와 민족의 통일문제 (3)

▲ Pope John XXIII leads the opening session of the Second Vatican Council in St. Peter's Basilica on Oct. 11, 1962. The council marked a watershed in the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s relationship with other Christian communities. ⓒCNS photo/L'Osservatore Romano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4년 11월 21일에 발표한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에서 교회의 분열은 “그리스도의 뜻에 명백히 어긋나며, 세상에서 걸림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야 할 지극히 거룩한 대의를 손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1)

개신교회의 세계적 규모의 협의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그 창립총회(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교회가 “믿음이나 직제, 그리고 전통의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국가, 계급,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에서 서로 분열”되어 있으며, “심지어 신학적, 언어적, 제의적 차이가 없는 곳에서조차 인종과 피부색으로 인해 분열된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걸림돌(스캔들)”이라고 탄식한다.(2)

교회의 분열이 스캔들인 것은 교회의 분열이 복음 선포에 해를 끼친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 자체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신앙과 직제 위원회’(Faith and Order)는 1927년에 개최된 제1차 세계대회에서 이미 ‘오직 하나의 그리스도, 그 안에 있는 하나의 생명, 그리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하나의 성령이 있듯이, 오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있을 뿐이다’라고 선언하였다.(3)

그러므로 교회의 일치는 이미 주어진 일치이며, 이 일치는 ‘우리의 지성의 일치와 우리의 의지의 일치에 달린 것이 아니다. 이 일치는 인간을 아버지 하느님께 다시 화해시키시기 위해서 지상에서 사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성령을 통하여 그의 교회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근거하고 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분열은 현실이고, 그 때문에 교회의 일치는 영원한 과제이다. 물론 교회의 다양성이 한 몸 안에 있는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과 한 창조자에 의한 창조의 다양성을 반영할 때, 그 다양성은 바람직한 것이 된다. 그러나 다양성이 몸의 명백한 하나 됨을 분열시킬 때, 그것은 ‘죄’가 된다. 교회의 분열이 ‘스캔들’을 넘어 ‘죄’가 되는 까닭은 ‘화해의 복음이 이것을 선포하는 사람들 자신의 삶 속에서 거부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의 구속의 충만함을 가리기 때문이다.’(5)

세계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그동안 추구해온 일치모델은 크게 두 모델로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협의회적 친교’ 모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연합’ 모델이다. 

협의회적 친교 모델

협의회적 친교 모델의 전신은 ‘유기체적 일치’ 모델인데, 이것은 “엄격한 획일성과 연관된 채 경직된 정치적 일치를 반대하여, 건강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회원들의 다양한 차이들과 함께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적 일치”를 의미한다.(6) ‘유기체적 일치’는 교회에게 하느님이 주신 모든 다양한 영적인 선물들을 한 공동체 안에서 회복하고 보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조직체적인 연합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효과적인 국제적 기구가 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협의회적 친교’ 모델인데, 이것은 획일적 일치를 극복하기 위해 교인 개인과 개교회의 은사, 타자성에 대한 깊은 존경과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협의회적 친교 모델은 교회 공동체성의 정치적, 사회적 모순들을 지각하지만, 그것을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협의회적 친교는 능동적 관용을 요구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전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7)

이 모델은 교회일치를 구조적이고 기능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상호인정의 가능성으로,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 진리를 찾는 데서 서로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배움 공동체’에서 ‘도움 공동체’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축제 공동체’로서의 새로운 사귐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협의회적 친교 모델은 사실 온전한 교회 일치에로 나아가기 위한 전단계적 일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협의회적 친교 모델은 교회들이 서로를 동일한 진리를 소유하고, 동시에 고백하고 있는 교회로 서로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으며,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단점이 있다.(8)

연합 모델

교회 일치를 보다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연합’ 모델이다. 연합이란 넓은 의미에서 두 개 이상의 교파가 연합하여 일국적(national) 교회, 혹은 대륙적 교회로(교구 연합이나 회중연합과는 구분되는) 조직되는 형태를 의미한다. 동일 교파 내(미국 연합감리교)에서 혹은 교파전통이 다른 교회들 사이에서(1947년 성공회, 감리교, 개혁교회 및 회중교회를 통합한 남인도 교회) 이루어질 수 있다.

교회가 연합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다양한 교파적 분열이 ‘화해되고, 화해를 가져오는 백성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소수인 지역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에 손상을 입힌다’는 신학적인 것도 있다. 하지만, 교회와 교파들 간의 ‘중복과 경쟁을 피함으로써 더욱 훌륭한 자원의 청지기가 될 수 있고, 이 자원을 집중화된 방식으로 사용하여 복음 증거와 봉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것에도 있다.(9)

복음증거와 봉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교회연합은 일반적으로 지역 단위에서의 일치를 추구하며, 또한 자신의 일치운동을 온전한 일치를 추구하는 과정의 한 단계로 인식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합하는’(uniting) 교회라고도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연합모델이 직면한 최대의 장애요인은 정체성의 문제, 곧 참여하는 교회들의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정체성이란 역사와 함께 형성되어 왔고 그래서 쉽게 해소되거나 흡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연합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치가 단계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며, 일치를 위한 논의가 공식적인 대표 간의 협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계층과 모든 장소에 있는 교인들의 공동의지와 행동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위에서 교회 일치모델로서 ‘협의회적 친교’ 모델과 ‘연합’ 모델을 살펴보았다. 이 두 모델이 각기 갖고 있는 장단점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해도 중요한 문제는 지상에서의 어떠한 형태의 일치도 온전한 일치에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통일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현안을 중심으로 분열된 경험을 갖고 있고, 또 지금도 분열되어 있는 한국교회가 어떤 모델의 교회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분열과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그리스도교 증언에 상응하는 교회일치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로 남는다.

미주

(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개정판), 한국천주교중양협의회, 2002, 363, 1항.
(2) 루카스 피셔 엮음, ‘에큐메니칼 신학의 발전사(I)’, 이형기 역,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98, 106.
(3) 루카스 피셔 엮음, 같은 책, 39.
(4) Michael Kinnamon and Brian E. Cope(ed.), The Ecumenical Movement -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Geneva, WCC, 1997, 85.
(5) 루카스 피셔 엮음, 위의 책, 181.
(6) 루카스 피셔 엮음, 같은 책, 82.
(7) EKHN(hrsg.), Der konziliare Weg der Kirche. Versuche zur kirchlichen Praxis, Heft 6, Darmstadt, 1971, 21 이하.
(8) 귄터 가스만 엮음, 에큐메니칼 신학의 발전사(II), 이형기 역,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127-129 참조.
(9)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 사전 II’, 에큐메니칼선교수련원 옮김, 한국기독교회협의회, 2002, 101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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