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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 한국교회 분열의 한 씨앗

기사승인 2023.03.13  23: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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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일치와 민족의 통일문제 (1)

▲ 지난 2007년 한국 전라북도 군산 항에서 인부들이 대북 지원 물자를 베트남 선박에 실고 있다. ⓒVOA

교회일치와 통일문제 접근의 몇 가지 전제

교회일치와 민족의 통일문제라는 주제를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전제되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교회일치가 민족통일의 전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교회가 일치되면 민족통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민족통일이 교회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민족이 통일되었다고 교회가 일치된다는 것은 분단 상황 아래 있는 남한 교회의 분열을 보아도 그것은 현실성이 없다. 셋째, 지금까지 교회일치와 민족통일의 상관성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접근은 새로우나, 이런 접근이 자칫, 도덕적 당위성을 주장하는 설교적 선언에 그치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교회 분열의 또 하나의 불씨

이런 한계 안에서 우리는 주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한국교회는 비록 교파교회적 선교에서 시작되었고, 교파적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매우 훌륭한 일치의 전통을 지켜 왔다. 1887년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으로 상임성서위원회를 조직하고, 1890년에는 ‘한국성교성회’를 조직, 성서의 번역과 출판 선교를 위해 일치운동을 전개하였다.

1903년에는 최초의 에큐메니칼 단체인 ‘황성기독교청년회’를 조직하였고, 1905년 장로교와 감리교가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를 조직하였다. 해방 이전까지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은 1919년 3.1독립운동에서 드러난 반제국주의적이고 민족의 자주 자립을 기본 바탕으로 한 에큐메니칼 정신 위에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미주 1)

그러나 해방 후, 신사참배 문제, 성서비판문제, 세계교회협의회 회원권 문제, 반공주의, 독재정권과의 관계 문제 등을 두고 크게 양분되었고, 지역주의와 교권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또다시 많은 수의 군소교단들로 분열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통일문제는 지난 80년대부터 한국사회만이 아니라, 한국교회도 양분시켰다. 이른바 ‘선민주, 후통일론’과 ‘선통일, 후민주론’, ‘민중민주론’과 ‘민족해방론’ 등의 분열이 그것이며, 교회 안에서는 통일문제에 앞서 북한을 보는 냉전적 시각에서 이미 갈등을 보였다. 통일문제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또 그 분열을 심화시키는 요인이었지, 결코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던 것이 지난 80년대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난과 식량난이 가중되면서부터,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중심으로 교회들의 협력과 일치가 전개되었다.(미주 2) 그러나 대북식량지원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느냐, 대북지원이 북한의 체제를 더 유지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가지고 그리스도교 보수주의측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또다시 분열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필자는 통일문제를 중심으로 지난 80년대부터 전개된 한국 교회의 분열과 일치시도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에큐메니칼 진영, 특히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Faith and Order)에서 논의된 교회일치시도를 유형별로 소개한 다음, 민족의 통일을 지향하는 한국교회가 교회일치를 위해 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유형은 무엇인지를 성서를 근거로 제시하려고 한다.

미주

(1) 전택부,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79, 12-13쪽 참조.

(2) 세계식량계획(WFP)의 존 파월 아시아 국장은 지난 2002년 5월 2일, ‘올 해 북한에서는 640여만명이 굶주릴 것으로 예상되며, 이들을 위해 61만톤의 식량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 굶주림에 허덕일 640만명 중 90%가 임산부 등 여성과 어린이들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교회협에 가입하지 않은 보수교단들의 대북 지원참여도 높아졌는데,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은 1998년에 평양에 국수공장을 건립한데 이어 2002년 10월에는 빵공장을 건립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2002년 한국교회정황,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2003, 60-61 참조.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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