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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기사승인 2022.11.26  2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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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Getty Image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요한 1서 2,3)

여기서 알고 있다 또는 안다는 것은 예컨대 얼굴을 안다는 것 이상으로 깊은 관계가 있음을 뜻합니다. 아는 그것이 내게 영향을 미쳐서 그 앎에 상응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그 모습이 없으면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습은 그 앎의 흔적이고 지표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는 바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말하면 꺼림직해 하거나 심하면 거부반응을 보일지 모릅니다. 교회가 오랫동안 계명과 법을 지키는 것을 믿음과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해온 탓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를 오해하고 예수를 잘못 안 결과입니다. 십계명에는 나(=하나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말이 있고(출 20,6), 산상수훈에는 나(=예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마 7,24).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수의 말씀은 단순히 들어서 좋은 교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지켜야 하는 계명 곧 법입니다.

예수와 그의 계명은 여기서 분리되지 않습니다. 한 가지 흥미 있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앎에 대한 자기 자신의 판단 근거라는 점입니다. 내가 예수를 알고 있느냐는 것은 내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그 기준은 나의 주관이 아니라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지가 우리에게 없는데,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한다면 그 믿음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한 사람의 태도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미래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준은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의 계명을 듣고 지키는지의 여부가 됩니다. 그의 계명이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랑입니다. 명령으로서의 사랑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일리 없습니다. 그 경계를 넘어 형제들에게, 또 그 경계를 넘어 저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르라 합니다.

그 명령을 수행하는 것의 의미를 요한1서 기자는 이렇게 밝힙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들어간’ 것을 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다.”(요한1서 3,14) 사랑이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사랑이 그리스도를 안다는 증거입니다. 이 증거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 증거를 지닌 믿음임을 아는 오늘이기를. 사랑으로 생명의 나라에 있음을 아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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