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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초판에서 제2판으로

기사승인 2022.06.11  16: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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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바르트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와 문화 ⑷

▲『로마서 강해』 사본이 있는 자펜빌의 칼 바르트의 책상 ⓒWikipedia

『로마서 강해』 초판은 모든 신학의 장에서, 무엇보다도 독일 개신교에서 강렬한 관심과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바르트는 그 책에서 종교경험, 합리주의, 경건 또는 도덕 등에 매달려 있던 동시대의 모든 신학적 입장들과 과감히 단절하고자 했다. 그것은 인본주의적이고, 감정적이거나 사회적인 모든 신학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는 인간의 종교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타락에 관한 종교개혁의 과격한 강조를 예언자적인 힘을 가지고 묘사했다. 그러나, 이 초판에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안에 돌입했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그가 칸트적이고 플라톤적이라고 비난받았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1)

『로마서 강해』의 전면재수정

바르트는 그의 책을 논평한 사람들의 비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서, 바울과 기독교의 근본 메시지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심화시키기 위해 연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 결과 그는 많은 새로운 사상들과 접하게 되었고, 그의 사고는 사변적인 형식을 탈피하기 시작했다.(2) 그러면 그 시기에 바르트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상의 요소들은 무엇인가?

바르트는 제2판 서문에서 몇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3) 첫째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인 문화적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오버벡(F. Overbeck, 1837-1905)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버벡은 기독교 신학이 교부시대 이후 비기독교적이고 악마적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기독교를 문명과 문화에 종속시키고 그로써 기독교가 본래 지니고 있는 종말론적인 본질을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4)

바르트는 오버벡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하나는 신학이 정도를 걸으려면 오버벡의 역사적 기독교에 대한 종말론적 비판을 진지하게 취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와 문화 모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두 가지를 일단 서로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르트는 그의 시대의 내적, 외적인 환경에서 단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인데 그것은 “애굽의 고기 가마”를 등지고 “이를 악물고 광야로 나가야 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이러한 결단과 용기 없이 진정한 신학이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보았다.(5)

둘째로, 바르트는 철학자였던 동생 하인리히(Heinrich)의 도움으로 플라톤(Platon)의 지혜에도 새롭게 눈을 뜨고 플라톤으로부터 칸트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도 재발견하게 되었다. 셋째로, 그의 친구 투르나이젠(Thurneysen)을 통해서는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Dostoyewski)를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무엇보다도 죄인으로서의 인간의 곤경을 통찰하게 되었다. 넷째로, 키에르케고르(S.Kierkegaard, 1813-1855)에게서는 역설을 배웠는데, 19세기와 20세기초 독일 신학은 이 역설을 알지 못했다. 바르트는 그의 사상을 마치 새 날의 여명을 알려 주는 수탉의 울음소리처럼 받아들였다.

이 시절에 그는 화가 그뤼네발트(M. Grünewald)가 이센하임 제단 뒤편에 그린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라는 걸작의 사본을 책상 위의 벽에 걸어 놓았는데, 그 그림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세례 요한’은 그의 새로운 신학적 추구에 계몽적인 역할을 해주었다.(6)

둘째 판의 신학

이러한 다양하고 집중적인 연구를 통하여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초판에서 말했던 것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원고를 탈고한 지 2년 만에 다시 새로 쓰기로 결심하고, 1920년 10월말에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그 작업에 들어가서 불과 11개월 만인 다음해 여름에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것은 폭탄과 같은 인상을 주었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첫째 판이 “아직도 모호한 사변적인 형태”로 쓰여졌다면, 둘째 판은 날카롭고 논리 정연하게 구성된 변증법적인 대립 구도 속에서 독자에게 향했고, 범신론적인 색채도 없어졌다.(7) 이로써 바르트는 전보다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을 더 이상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적이고 적극적인 신학에 반대하여 성서의 주제는 인간의 종교, 종교적 윤리 또한 인간의 은밀한 신성이 아니라 자연적인 세계는 물론이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도 대립해 있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독자성과 유일성이며, 인간과 관계하는 가운데서도 초월해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유일한 존재, 능력과 주도권이라고 강력하게 천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8)

바르트의 새로운 발견은 “하나님은 하늘에 있고, 너는 땅에 있다”로 표현된다. “이 하나님과 이 인간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내게는 성서의 주제요 철학의 본질이다.”(9) 바르트는 이 사실을 강조하고 분명히 하기 위해서 우선 많은 ‘부정적’ 용어들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거대한 심연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존재이고, 이 세계를 초월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낯설고 숨겨진 ‘전적 타자’이며, 인간과 신앙, 그리고 교회와 신성에 대한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부정하는 분이시다.(10)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빙하의 깊은 틈”, “양극 지역, “사막의 장벽”이 놓여 있다.(11)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혼동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은 19세기 신학에 반대하여 바르트가 사용했던 그런 여러 가지 표현들은 후에 그 자신이 스스로 비판했던 대로 그 의도들이 아무리 탁월했다고 하더라도 “약간은 냉혹했고, 비인간적이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교적인”(12) 것이었다.

하지만 바르트는 그와 같은 철저한 변증법적인 분리(diastasis)(13)의 형식을 통해서 기독교 신학에서 신비주의나 도덕, 경건주의, 낭만주의나 관념주의의 느낌을 주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완전히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신학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가 그런 변증법적인 분리를 통해서 말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미주

(1) D. L. Muller, Karl Barth (Waco: Word Books, 1972), 이형기 옮김, 『칼 바르트의 신학사상』 (서울: 양서각, 1988), 21.

(2) Eberhard Busch, Karl Barth: His Life from Letters and Autobiographical Texts (Eugene, Oregon: Wipf & Stock Publishers, 2005), 118.

(3) Karl Barth, Romans, 3 이하 참고.

(4) Ibid., 3.

(5)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London: SCM Press LTD., 1962), 42 이하.

(6) E. Busch, Karl Barth, 116.

(7) Ibid., 117-119.

(8) Ibid., 119.

(9) Romans, 10.

(10) E. Busch, Karl Barth, 116. 이점이 또한 첫째 판과 구별되는 『로마서 강해』 둘째 판의 특징이다.

(11) Romans, 49.

(12) K. Barth, L'Humanité de Dieu, Genève: Labor et Fides, 1956, 15.

(13) 바르트의 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과 달리 인간의 이성에 의한 인위적인 종합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은총 가운데서 우리와 하나되신 그 종합을 존중하기 위해 인간에 의해 날조된 종합을 공격한다. 그래서 바르트의 변증법은 하나님의 은총과 계시, 용서와 칭의와 중생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이 종합을 드러내기 위해 은총의 종합을 찬탈하려는 인간의 거짓된 종합 앞에서 철저하게 변증법적인 분리 형식을 취할 뿐이다. 이에 대해서,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80-84를 참고.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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