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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은 여전히 울림이 있을까

기사승인 2021.12.16  23: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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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신학은 무엇인가? ⑴

▲ 브라질 올린다 레시페 대주교였던 Dom Hélder Câmara(돔 헬더 카마라)는 1981년에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Getty Image

우리에게 해방신학은 1960년대 말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발생한 급진적인 마르크스 성향의 신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해방신학은 위험하고 교회 파괴적인 신학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해방신학에 대한 이 같은 오해(?)는 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첫째는 성경을 파괴하고, 둘째는 교회를 파괴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르크스 신학이라 무신론적 유물론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조금만 해방신학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을 통하여 해방신학에 대하여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외면당하고 거부되었던 해방신학이 한국교회를 향하여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해방신학이 한국교회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에큐메니안 연재를 통하여 과연 해방신학은 한국적 목회 상황에서 유효하고 정당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국 교회의 위기상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위기 속 한국교회

우리는 코로나 국면에서 한국 교회의 위기를 목격하면서 이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국면에서 한국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 채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러저런 방법으로 코로나 국면을 이겨 나가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한국 사회의 교회를 향한 신뢰상실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젊은이들로부터 완벽하게 외면당하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본다, ‘가나안 교인‘은 신앙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개념이지만 이제는 퇴색되어버리고 말았다. ‘가나안 교인’이라는 표현은 ‘비록 지금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나안(안나가) 교인이지만 언젠가는 교회 출석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한국 교회의 희망 섞인 바람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가나안 교인의 표현도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이미 가나안 교인은 가돌안(안돌아가)교인으로 진화 되었다.

왜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와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지냐왔던 신학적 패러다임의 한계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길희성 교수가 지적했던 것처럼 한국 교회의 위기는 도덕적 타락을 넘어서는 메시지의 문제에 있지 않을까? 그에 의하면 도덕적 하자나 비리가 있는 교회라면 교인들이 피하거나 퇴출하면 되겠지만, 메시지의 문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방식과 언어가 문제라면 이는 어느 교회를 가든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세계와 오늘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메시지는 아무 소용이 없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의 메시지는 안녕한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국교회의 메시지 전환은 시급한 과제이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메시지를 지배해 왔던 키워드를 살펴보자. 현재까지의 전통적인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교리적인 측면에서는 죄(원죄), 구원(십자가), 은혜(구속의 은혜), 심판(천국과 지옥), 하나님의 절대성이 강조되고 있다. 교회의 목회적인 측면에서는 교회: 하나님의 나라로 동일시, 선교와 전도: 교회개척 및 교인 만들기, 교회 내의 봉사, 헌금, 희생, 제자: 교회 사람 만들기와 사회선교: 교회 중심이 전통적인 키워드이다. 그런데 이러한 키워드는 세계가 변화함으로서 특히 코로나 국면이 가져온 급격한 사회 변화 앞에 그 정당성과 유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간단한 예 하나를 들어보자, 코로나 국면에서 하나님의 전능은 어떤 형식으로 설명되어 질 수 있을까? 전통적인 신정론의 입장으로부터 해석되는 하나님의 전능은 오늘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 앞에서 힘을 잃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는 상황,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염병 위기에서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이 말의 의미는 더 이상 신정론(神正論)을 비롯한 전통적인 신학의 틀을 가지고서는 더 이상 인류의 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신학의 틀을 모색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신학의 전환과 그에 따른 메시지 전환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코로나 국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메시지 전환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코로나19가 주는 메시지 전환을 위한 키워드를 요약해 보자.

먼저 이웃(소통)에 대해서는 공정을 넘어서는 의미의 평등, 독선과 일치를 넘어서는 다양성의 조화, 수용과 포용을 향한 혐오와 차별 극복, 이주민/소수자: 민감한 배려와 감성적 연대,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축의 이동(주변부에 관한 관심)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제: 경제-정치체제의 측면에서 우리는 탈성장-탈경제(좋은 삶의 내적의미 추구), 욕망으로부터 거리두기(인간존재와 실존의 의미 찾기), (승자독식을 넘어서는) 상생(ubuntu), 상호성, 연대, 타자성에 대한 이해, 살림/살이와 돈벌이(좋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접근), 기후위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 전환체제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의 측면에서는 절대성을 넘어서는 상대성: 상대적 절대성의 추구, 신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교리를 넘어 삶의 현장으로 향하는 진리의 추구, 다양한 접근: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미학과 인문학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최근 2022년 독일에서 개최되는 제11차 WCC 총회를 준비하는 한국동행모임은 ‘코로나19 이후의 한국사회와 교회’라는 총 주제 하에서 기후위기와 생태 정의, 파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향하여, 디지털 혁명과 소외, 성 평등한 교회를 향하여, 우리는 모두 이주민입니다, 노동존중 세상을 향하여 라는 소주제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메시지 전환을 위한 키워드를 성찰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메시지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신학과 교리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의 제시가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에큐메니안을 통하여 기존의 신학과는 다른 신학적 패러다임을 갖고 있는 해방신학에 대하여 소개함으로써 이러한 의구심에 대한 해답을 추구해 보려교 한다.

해방신학의 출발선

해방신학은 기독교 신학에 어떤 새로운 주제를 도입했다기보다는 신학을 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소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모든 신학과 마찬가지로 해방신학 역시 신학의 모든 주제들, 예를 들어 신, 삼위일체, 그리스도, 성령, 은혜, 죄, 교회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방신학이 다른 모든 신학과 구별되는 독창성은 이 모든 주제들을 가난하고 억압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즉 Gutierrez의 말대로, 이 세계를 ‘가난한 자,’ ‘역사의 패배자,’ 혹은 ‘역사의 하부’(underside of history)의 눈으로 보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이라는 신학적 방법론이 남미 해방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해방신학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를 위해서 해방신학은 첫째는 상황화, 둘째는 Praxis (Praxis적 해석학: 믿음과 행위), 셋째는 현장-텍스트-현장이라는 해석학적 순환의 구조를 신학방법론의 전제로 제시한다. 이러한 신학적 방법론과 성서적 논거를 가지고 남미 해방신학자들이 탐구하려 했던 핵심적 주제는 이 ‘지상에서의 해방’(earthly liberation)과 ‘하늘에서의 구원’(heavenly salvation)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다.

남미 해방신학자들에게 ‘해방’은 언제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자유의 정복으로서의 역사”(history as conquest of freedom)였다. 이 말은 해방신학자들이 해방을 단순히 경제적 ․ 사회적 ․ 정치적 종속관계에서 벗어나는 일시적이고 우연한 정치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 안에서 인간의 자유가 확대되어 “인류가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the becoming of humankind)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연관되어 있다. 구원은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실현이다.

해방신학의 방법론과 해석학은 전통 기독교의 해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실지로 이러한 해석학 속에서 해방적 삶을 실천했던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서해석이 단순한 문자적 해석이 아니라 삶의 변혁을 위한 해방적 행위와 연결되어져야 함을 몸소 보여 주었고 또 보여주고 있다. 신앙의 견고성은 어떤 특정한 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견고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모범적으로 제시된 삶의 모델을 따르고 또 그에 대하여 헌신하는 삶의 행위로서 이루어진다. 현장-텍스트-현장으로 이어지는 해방신학의 해석학적 순환 고리는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이 세계의 변혁을 위하여 그리스도교가 중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해방신학은 위에서 언급한 오해에 의해 거부되었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위험한 신학으로 매도되기도 하였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에큐메니안을 통하여 해방신학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특히 목회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일들과 연관하여 해방신학적 목회 행위, 선교, 설교 등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우리로 급변하는 시대를 향한 성경의 새로운 메시지와 실천적 목회 행위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이번 해방신학 연재의 글을 모두 3부로 구성될 것임을 예고한다. 1부에서 나는 수회에 걸쳐 해방신학의 이론적인 모습을 소개할 것이다. 뒤이어 2부에서는 해방신학을 실천해 온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삶을 소개하려고 한다. 1세대 해방신학자들과 더불어 신진 학자 혹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학자들에 대한 소개도 함께 함으로써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해방신학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해방신학의 한국 교회 내 실천적 목회를 위한 적용의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 이를 통하여 해방신학적 목회는 무엇이며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해방적 목회의 실질적인 모습과 그리고 설교의 해방적 메시지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를 나의 실질적인 목회 현장의 체험을 통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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