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현우 목사와 “크레파스 프로젝트”

기사승인 2021.11.07  16:39:38

공유
default_news_ad1

- 후지고 구린 교회 탈출구 찾기 – 교회 밖의 교회를 찾아서 (1)

조금 늦었습니다!

인천에 있는 한 커피 집에서 ‘교회 밖의 교회’ 첫 인터뷰를 어떻게 할지 생각에 잠겨있을 때, 문득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한 현우 목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우리 동네에 오셨으니 제가 대접해야죠!’라며 또 그리 성큼성큼 커피며, 케이크를 담아 온 그와 마주앉아 시작된 이야기는 꽤 오래도록 진행되었다.

▲ 공부하시는 분야를 포함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뭐를 얘기해야 할까요?(그는 이렇게 인터뷰 내내 살짝 부끄러워하는 듯싶더니만 이내 열정적으로 돌변하여 말을 이어갔다.) 우선 저는 목회자이신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진 성결교 신앙 속에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해 학부를 마쳤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가 크게 다가왔고, 그것은 학문과 신앙의 답답함이 되었습니다. 졸업 후 감행한 미국행(그는 ‘도피성 유학’이라 표현했다)은 그 답답함의 해소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와 보스톤 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이민사회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한 실천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그는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신학적・신앙적 범주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개를 들으면서 아마도 계속 이어질 목회와 삶을 향한 한 개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공부와 한인교회에서의 목회를 이어가던 저는 목사안수를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은 학문함이 주는 매력에 푹 빠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교회가 싫었기에 신학에서 가장 인접학문에 닿아 있는 비교종교학을 선택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학업의 끝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현장이 없는 학문은 공허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고민이 저로 하여금 안수에 이르게 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 중 하나인 UCC에서 안수를 받으려 했어요. 하지만 내부에 잔존한 백인위주의 문화적 한계가 여실히 남아있음을 보고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너에게 안수를 줄 수 있지만,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교회는 없을 거야’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반면 미국 침례교는 회중전통이 강하게 있어서 각 교회별 개성과 특성이 상대적으로 존중되는 분위기더라고요. 인종, 사회적 입장 등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구조였죠. 그게 좋아서 미국침례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것이고요, 동시에 미국 침례교 중 성소수자에 대한 관점을 포함해 가장 진보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는 얼라이언스 침례교단에서도 안수자격을 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참 진지한 사람이었다. 커피와 케이크를 본인이 사야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도 그랬고, 신앙과 학문적 여정이 또한 그랬다. 심지어 아직 박사학위 논문완성을 앞둔 시점에서 귀국과 한국살이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역시나 진지했다.

학위와 코스워크는 마무리되었고요, 논문작성만 하면 됩니다. 언제 끝날 진 모르죠.(그러곤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국에서 살려고 인천에 집도 구했습니다. 월세이긴 하지만요. 10년 이상 살았던 미국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는 데는 아내의 직장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이가 자라서 유색인종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당하거나 힘겹게 싸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한국에선 생계를 위해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 목회도, 또 삶도 기본적인 수입이 있어야 안정적 지속이 가능하겠더라고요.

▲ 크레파스 프로젝트는 어떤 모임인가요?

‘크레파스 프로젝트(이하, 크레파스)’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성소수자와 엘라이(지지자) 한인 신앙인들의 교회입니다. 일단 크레파스는 다양한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그게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혹시 크레용과 크레파스의 차이를 아세요?(난 정말 몰랐다) 크레용은 미국 등의 것인데요, 연해서 손에 잘 묻지 않아요.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케이스도 내용물이 드러나지 않게 되어있는 경우도 많고요.

반면 크레파스는 역시 국산이지요. 단단하고 하나하나에 껍질이 있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색도 강하죠. 또  케이스는 내용물이 보이게 만들어져 있는 게 많아요. 크레파스에는 다양성, 한국, 드러냄, 진한 정감 등의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프로젝트는… 교회라는 단어에 국한되고 싶지 않았어요. 교회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기도 하고요. 또 사실 재정이나 모임 등에서 기성교회의 꼴을 구성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굳이 교회라고 반드시 명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크레파스의 시작은 한 사람과의 만남이었음을 말하는 그의 눈빛은 또 다시 진지해졌다.

크레파스의 시작은 한 청년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많은 경우의 한국교회가 그렇듯, 미주지역 한인교회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인식이 강했습니다. 이민사회의 교회는 본국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비단 성소수자 이슈 뿐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자체에서 강한 보수성을 가지는 한국교회의 특성이 미국의 한인교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게다가 젊은 층은 매력 잃은 교회를 떠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기존관념을 가진 노년층의 입장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학기간 동안 파트교역자로 일했던 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담당하는 부서에서만이라도 다른 흐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저의 설교나 언행을 통해 드러났을 겁니다. 그러던 중 면담을 요청한 청년교인의 커밍아웃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안전한 대상으로 봐 주었던 것이 너무 감사했고, 이 사람을 위한 목회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안수도 이 일이 있은 후 결심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 청년과 둘이 준비한 첫 모임은 2019년 여름 아이스크림 가게 한 구석이었습니다. 지지방문을 와준 친구들 몇 명이 모여 같이 처음을 열고 난 후, 성소수자 개신교인들이 한두 분씩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할 때 첫 번째 목표는 당사자 교인 한 명, 두 번째는 다섯 명의 얼라이, 그 다음은 지역 한인교회에 도전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주 만에 성소수자 교인이 찾아왔고, 엘라이를 포함해 십여 명이 모이고 있으니 인원에 대한 건 초과달성이지요. 지역 교회 목회자 모임에서도 저와 크레파스를 알고 계시다 하더라고요. ‘현우라는 이상한 애가 이상한 짓을 한다. 크레파스 때문에 우리교회 청년들이 이상한 질문을 한다’라고들 말이지요. 이 정도면 우리의 목표는 모두 달성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이 있었다. 모임을 처음 시작한 목회자는 한국에 있는 미국의 신생모임, 어떻게 유지되고 또 운영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그의 우문현답을 들으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저는 여기에 있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매주 예배를 드리는 크레파스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사용했고, 이후에는 미국계 교회에서 장소를 내 주셔서 사용할 있었는데요, 모이고 두 달 쯤 되었을 때 코로나19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온라인 예배는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이제 우리예배는 온라인으로만 진행됩니다. 그러니 한국에 있지만 목회가 가능한 것이지요.

물론 미국 시간에 맞추느라 한국시간으로 새벽5-6시 정도에 참여해야 하니 조금 피곤하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일반적인 교회에서 ‘예배’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는 모임은 월1회 진행합니다. 나머지 주에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올린 후, 채팅창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질문과 대답을 나눕니다.

▲ 크레파스만의 특징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배 중 하나님은 ‘They’ 나 ‘She’로 지칭합니다. 남성중심적 신관에 대한 언어적 극복의 시도입니다. 대면 모임이었을 때는 반드시 원탁모임을 가졌는데요, 이는 평등한 모임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반영이었습니다. 또 예배 중에는 설교자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쌍방향 예전의 구현이라고 할까요?

물론 늘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주제에 대해 서로 입장이 다를 경우, 예배는 난데없이 격한 토론 시간이 되기도 했고, 그걸 중재하느라 긴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떠난 분들도 있었습니다. 제 역량의 부족이었지요. 모임의 가치관을 선명히 드러내는 것은 고민이 되는 지짐이지만 묻어놓고 갈 수는 없는 지점이라 판단했습니다. 대화와 설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한편 작은 모임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개인과 교회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크레파스 프로젝트는 한동안 저 혼자 예배를 책임졌습니다만, 아주 최근부터 팀 목회로 구조를 변경했습니다. 목회를 담당하는 팀은 저와 함께 예배를 준비는 이들과 영상을 제공하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인원이 매우 적기 때문에 정기회의나 정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전체 구성원이 속해 있는 채팅창을 통해 의사소통과 의결을 하죠.

평소에는 팀으로 구성된 모임에서 활동과 방향에 대해 결정합니다. 우리는 예배참석자, 채팅창에 참여하는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 모두를 크레파스의 광의적 ‘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생각은 기존교회의 교인개념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는 계속 새로운 개념을 범주화하고 이를 실험해 가려 합니다. 우리는 계속 교회를 만들어 갈 겁니다.

신생모임과 이를 시작한 목회자(라는 고전적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에게서 나는 신선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 같은 기운은 힘겨워 허덕이는 멸종직전의 공룡 같은 한국의 대다수 교회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들은 예배를 중심에 두는 기본기에 소수자라는 범사회적 이슈를 껴안는 실천성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은 과정과 실험이라는 무척 고민되는 여정을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신앙적 의지였다.

고상균 팀장(미디어 취재부) greatksk@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